<제41화>
“다 있지?”
“예, 전부 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지?
갑자기 황이서가 숙소로 찾아왔다.
당장 내일 새벽에 스케줄이 있어 푹 쉬기 위해 다들 늘어지고 있던 찰나에 갑자기 들이닥쳤다.
허억, 허억.
숨을 거칠게 쉬는 걸 보니 사무실부터 뛰어온 게 분명했다.
“중요한 소식을 전해주려고 왔다. 원래는 좀 천천히 오려고 했는데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빨리 전해주고 너희도 쉬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무슨 일이지?
“혹시 뭐 사건 터졌습니까?”
“찔리는 거 있냐?”
“아뇨. 그런 건 없는데, 지금 프로듀서님 표정이 사건 터진 거 아니면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라서요.”
“커흠흠.”
황이서가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 하나랑 나쁜 소식이 하나 있다. 뭐부터 들을래?”
“이왕이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나쁜 소식 먼저 듣는 게 낫죠.”
“건하 너라면 그렇게 얘기할 줄 알았다.”
황이서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다음 주부턴 더 바빠질 거다. 아마 쪽잠을 자야 할 수도 있다.”
“더 바빠진다고요? 지금보다요?”
“그래.”
이 말을 듣자마자, 강 PD의 말이 떠오른 걸 왜일까?
-축하한다. 너희 다음 주에 방송 3사에도 나오겠어?
“그럼 좋은 소식은 뭔가요?”
우주의 질문에 황이서가 높아진 어깨를 뻣뻣하게 세우며 씨익 웃었다.
“너희 방송 3사 음방에 전부 출연할 거다.”
“정말이에요?”
“그럼! 전부 픽스됐다. 아쉽지만, 센터뮤직이랑 음악온은 전부 녹화 무대야. 그래도 뮤직에어는 저번처럼 생방 무대 올라가니까 최고지.”
“3사 음악 방송 전부 픽스라니….”
우주가 입을 쩍 벌리며 감탄했다.
다른 멤버들은 전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야, 너희 반응이 왜 이러냐? 안 기쁘냐? 좋아할 줄 알고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강 PD님이 한 번 얘기하셨거든요. 방송 3사 음악 방송 캐스팅될 거라고.”
“뭐? 강 선배가 그런 말을 했어?”
“예. 저번에 퇴근 전에 인사했을 때요.”
정민과 성훈이 번갈아 뱉은 대답에 황이서는 우주를 바라봤다.
“그런데 우주는 왜 놀랐냐?”
“아, 저는 긴장해서 그날 기억이 잘 안 나서요….”
실없는 우주의 대답에 황이서가 맥없이 웃었다.
“에이, 그럼 그냥 전화로 말할 걸 괜히 왔네. 아니, 그 양반은 왜 먼저 설레발을 쳐서…. 하아, 오케이. 아무튼 지금 순항 중이니까 다들 걱정하지 말고.”
그런데 우리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치고는.
“프로듀서님이 제일 걱정하는 거 같은데요?”
“그래 보이냐?”
“예.”
데뷔한 이후로 황이서는 유독 불안한 듯 이리저리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경험이 많은 프로듀서라고 들었는데, 그런 프로듀서도 긴장을 하긴 하나 보다.
“내가 너희한테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서 그렇다. 어쩔 수 없어. 너희 실패하면 나도 깡통 차는데. 하하핫!”
농담 섞인 웃음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순항 중인 우리의 성적 때문이리라.
“아무튼 다 예상하고 있었다니, 쩝.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네.”
황이서가 나가고.
“와, 근데 진짜 3사 다 나가는 거야?”
“우리 진짜 잘한 걸지도…?”
다들 감탄 섞인 목소리로 감상을 나눴다.
황이서 앞에선 점잖게 말했던 성훈도 조금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됐구나….”
다들 너무 놀라서 감탄을 못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 잠 다 잤네.’
내일은 좀 많이 피곤하겠어.
방송 3사 음방에 다 출연할 거라는 강 PD의 말처럼, 우리의 출연 날짜가 픽스됐다.
* * *
바쁜 하루가 계속 이어졌다.
행사. 이동. 행사. 이동. 행사.
눈을 감았다 뜨면 다음 날이 될 정도로 우리의 일정은 바빴다.
단순히 행사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화보도 찍고, 심지어는 심야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우리의 노래를 알렸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진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일주일이 한순간에 지나갔다.
“고생하셨습니다!”
센터뮤직의 녹화 무대를 마친 우리는 스태프들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성공적인 촬영이었다.
NG도 없이 단박에 끝냈다.
담당 PD인 오 PD의 얼굴에도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아주 잘 나오겠어! 크하하하!”
PD의 칭찬을 들으며 돌아가는 우리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오늘 방송이 괜찮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늘이네. <주중 아이돌> 방영일.”
우리가 출연한 첫 예능 방송이었던 <주중 아이돌>의 방영이 오늘이었기 때문이었다.
“잘 보고 각자 SNS에 올려도 좋아. 일주일간 고생한 만큼 오늘 하루는 푹 쉬고. 다들 내일 보자고.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두현이까지 우리 숙소 앞에서 내렸다.
오늘은 첫 예능 방송을 다 같이 즐기라는 의미로, 스케줄을 전부 비워놨다고 했다.
황이서는 차를 몰고 사무실로 쌩하고 사라졌다.
매니저 두현은 혹시나 모를 일 때문에 같이 숙소로 함께 왔다.
“기대된다. 어떻게 찍혔을지.”
모두가 기대를 품고 TV 채널을 틀었다.
삑.
방송 전 광고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가볍게 화장을 지우고 빠르게 씻어 거실로 옹기종기 모였다.
“진짜 열심히 했는데, 재밌었으면 좋겠다.”
“우주 넌 괜찮게 찍혔을 거다.”
“건하 형도 나쁘지 않게 나왔을걸?”
글쎄.
오히려 나는 내가 제일 걱정인데.
호진이야 뭐 워낙 잘생겼으니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재미가 보장되는 애였고.
성훈도 노래 덕분에 확실한 임팩트를 보여줬다.
정민이는 우주랑 은근히 쿵짝이 잘 맞아서 방송 내내 좋은 콤비로 활약했다.
게임을 성공한 건 정민의 활약 덕분이었으니까.
문제는 나다.
‘초반에 괜히 개인기 했다가 분위기 망쳤지….’
다들 괜찮았다고 위로를 해주긴 했는데, 애들이 착해서 그런 거다.
나는 전혀 모르겠던데.
광고가 끝이 나고, 하얀 배경에 이창모와 빌리지, 두 MC가 떡 하니 서 있는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주중~ 아이돌!
다 같이 모여 방송을 보는 와중에 특히 우주가 TV 화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에 웃으며 분위기를 띄울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입꼬리가 착 내려가고 눈도 깜빡하지 않은 채로 TV를 노려봤다.
당장 TV랑 싸울 기세였다.
아무래도 예능 쪽에 자신이 있다 보니, 진지하게 모니터링을 하는 거 같았다.
정민이 우주 대신 커뮤니티 글을 틈틈이 확인했다.
우리를 소개하는 이창모의 멘트가 끝나고, 스튜디오로 들어오는 우리가 보였다.
“와! 우리다!”
“TV로 보니까 느낌 되게 이상하다.”
“음악 방송 때랑은 또 다르지?”
“신기하네.”
팀 인사가 끝나고,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시작 부분, 우리들을 막 대하는 연기를 하며 분위기를 푸는 이창모의 MC가 끝나자마자, 그가 우리를 보며 감탄을 했다.
-이야, 비주얼 대박이네. 다들 피부 관리를 따로 하는 거야?
원래 여기서 리더를 물어보고 바로 개인기를 했던 거 같은데.
“어? 순서 바뀌었네?”
호진이 놀란 눈으로 TV를 바라봤다.
진짜 자연스러웠다.
현장에서 촬영했던 우리마저 원래 이렇게 찍었던가? 잠깐 생각할 정도로 편집점이 굉장히 정교했다.
왜 잘렸지?
설마 재미가 없어서 편집 당한 건가.
“사람들 반응은 어때?”
나는 커뮤니티를 확인하는 정민에게 물었다.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다들 우리 비주얼 얘기랑 음악 방송에서 불렀던 노래 이야기하고 있어. 아, 저번에 인터넷에서 떴던 축제 얘기도 하는데?”
“축제 얘기?”
“핫산돌이라던데?”
“왜 핫산돌이야?”
“규모 되게 작은 행사까지 다 간다고 해서 핫산이라나 봐.”
나는 정민이랑 같이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역시 핫산돌, 여기에서도 나오네.
-최근에 어디에든 다 있는 거 같던데? 커뮤니티에서도 여기저기 보이고.
-GH는 돈독이 오른 건가? 몬스터즈도 있는데 왜 얘들만 이렇게 굴려? 신인이라고 무시하는 거임?
-우리 동네 진짜 시골인데 여기에도 왔더라.
-(올리오스의 무대 직찍)(윤건하 밀접 사진)(최우주 직찍)
⌎우리 우주 좋아하시는구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
이대로만.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누가 리더야?
리더 이야기가 나옴과 동시에, 개인기 차례가 돌아왔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이거 안 되는데.
좋은 분위기 다 망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대망의 내 개인기.
-살. 려. 주. 세. 요.
그 얼토당토않은 개인기를 본 이창모가 난리를 부리고, 나는 그런 이창모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카메라가 그 표정을 클로즈업 했다.
입술을 꾹 닫은 멍청한 너구리가 카메라에 담겼다.
다른 너구리랑 다른 점은 머리카락이 금색이라는 거 정도?
-????
물음표 네 개가 내 얼굴 밑에 깔렸다.
“건하 형, 표정 봐. 하하하하! 진짜 잘 찍혔다. 카메라 감독님 제대로 담으셨는데? 이걸 이렇게 살리시네. 현장에서는 진짜 침묵이었는데.”
우주를 시작으로 자리에 있던 멤버들 모두가 피식 웃었다.
저게 재밌다고? 왜?
멍한 표정을 지은 건 맞는데, 저건 오히려 좀 비호감 느낌 아닌가? 선배 개그맨을 보고 저런 멍청한 표정이라니.
묵묵히 화면을 보던 성훈만이 유일하게 웃지 않았다.
“역시, 성훈 형은 이해하는 거지? 저게 웃겨?”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친 성훈은.
“푸흡!”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왜 웃어?”
성훈의 웃음소리에 우주가 나를 마주 봤다.
“맞아! 이 표정! 이게 진짜 웃기다니까?”
나는 거울 속에 비치는 내 표정을 보았다.
TV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
억울하다는 듯 항변 의지를 가득 품고 있는 이 결연한 표정이 대체 어디가 웃기다는 거지?
“잘생기니까 얼굴로 웃기네? 하하핫!”
시청자들은 다른 생각을 할 거다.
이건 방송사고 급이니까.
필사적인 개인기로 분위기를 살리는 화면 속 우주를 뒤로하고 커뮤니티를 살폈다.
-왘ㅋㅋㅋㅋㅋㅋ 저 표정 뭐임?
-표정ㅋㅋㅋ 왜케 귀엽냐
-나 저 표정 본 적 있음. 그… 솜사탕 씻어먹으려다 없어졌을 때 너구리 표정
⌎아 진짜네ㅋㅋㅋㅋㅋ
-완전 억울 100%인데?
-우리 건하 은근히 허당이구나.
-개인기는 별로 안 웃겼는데 얼굴이 웃겼다.
-안 할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피지컬 개그하네.
…….
다들 미쳤다.
나 빼고 다 미쳤어.
잠깐, 나를 제외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미친 거라면.
‘내가 미친 건가?’
진짜 나만 이해 못 하는 재미가 있는 거야?
순간 E+에 불과한 예능 스탯을 올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참자.
예능은 내가 굳이 올리지 않아도 돼.
이러다 망캐된다.
캐릭터 삭제당하는 건 싫잖아.
이어지는 우주의 개그에도 반응이 좋았다.
-얘들 진짜 몸 안 사린다.
-설마 몬스터즈 신인이 예능 주력이었을 줄은;
-치고 들어오는 수준이 걍 개그맨인데?
-차기 개그돌, MC돌은 최우주다.
⌎떡상하기 전에 최우주 코인 사둡니다.
⌎탑승222222
방송에 대한 코멘트는 전체적으로 좋았다.
보는 우리가 민망할 정도로 <주중 아이돌>은 호평을 받으며 끝이 났다.
우우웅!
방송이 끝나자마자 멤버들의 폰이 울렸다.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온 문자와 전화들이었다.
답신을 해주는 멤버들의 얼굴엔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지인이 없…지.’
가족이라곤 아버지의 번호가 유일했다.
뚫어져라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한진성에게 문자가 왔다.
-<주중 아이돌> 잘 봤어! 그 표정 괜찮더라. 나중에 예능 나갈 때마다 종종 써도 되겠는데? 나중에 같이 예능 나가도 재밌겠다. (웃음 이모티콘)
그 이후로도 어디가 재밌었는지, 어느 부분은 개선되었으면 하는지에 대한 코멘트로 따로 남겼다.
정성이 대단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그런데 선배님들은 데뷔 때 저희보다 더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선배님들의 그림자를 벗어나려면 한참 노력해야죠. 하하하.
-너무 입에 발린 소리 아니야?
-몬스터즈가 한국 최고 아이돌 아닙니까? 라이언 선배님들도 대단하시지만, 제겐 몬스터즈가 최고입니다.
-건하 너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 기분은 좋다.
-조만간 음악 방송 1등 하고 선배님 이름 부르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겠습니다.
그 말에 한진성이 미친 듯이 이모티콘을 보냈다.
토끼, 여우, 동글동글한 이모티콘.
전부 다 화를 내며 눈에 불을 켰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 영광은 내가 먼저 할 거야.
후배가 먼저 먹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싫은가.
잠깐.
그럼 몬스터즈도 조만간 복귀하는 건가?
우우웅!
그때 MAE 엔터의 양 실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부득이하게 나를 MAE에서 쫓아내는 역할을 맡은 담당자.
나를 GH 엔터에 소개해 준 사람.
-축하한다. 데뷔할 때 보냈어야 했는데 이제 보낸다. 데뷔도 축하하고 예능 데뷔도 축하한다. 우리 애들보다 빨리 올라갔구나. 다행이다. 네가 성공해서.
이어지는 문자.
-우리 애들도 2주 후에 데뷔한다. 라이언이라는 장벽이 있지만, 열심히 해봐야지. 언젠가 제대로 한번 붙는 날이 있으면 좋겠다.
골든트랙의 데뷔.
문제는 그 전에 라이언이라는 거물이 컴백한다는 거다.
‘많이 힘들겠네.’
나는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고 그대로 핸드폰을 껐다.
그러고 보니 라이언이 내일 컴백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