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역시 비슷하게 느꼈구나. 그렇지. 건하 너도 그렇게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어.”
정민의 공감 수치가 MAX를 찍었다.
감동을 받은 듯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잡았다.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건하 너는 천재가 맞아.”
신나서 말했다.
정민아, 그걸 다 들리게 말하면.
다른 멤버들이 우리를 힐끗 보았다.
그중 우주는 묘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피곤하고 빡빡한 일정.
여기서 깨어 있는 멤버는 나와 정민이 유일했다.
“물론 그렇다고 같은 생각을 한 내가 천재라는 말은 아니고, 마치 내가 생각한 걸 미래에서 본 것처럼 말했다는 게 이미 몇 보는 앞선 생각을 하는 천재란 뜻이지!”
차마 정민에게 게임에서 봤어.
…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떠오른 영감이 사라지기 전에 그것부터 얘기하자.”
“아, 그러자!”
정민은 어느 때보다 신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가 생각해둔 컨셉이 뭐냐면 사방에서 별이 터지는 느낌이야. 입에서 파바밧 터지는 슈팅스타처럼. 약간은 달콤한 디저트 같은 노래 느낌을 내는 거지. 멜로디는 부드럽게 가져가면서. 비트는 강하게 가져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신나서 얘기하는 정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방에서 별이 터지는 느낌은 역시 우리를 비추던 조명 이야기 같았다. 파바밧 터지는 슈팅스타는 빠른 박자를 얘기하는 걸 테고, 달콤한 디저트는 관객들의 반응일까?
아무튼 그렇게 느낀 소스를 바탕으로 곡을 만들겠다는 뜻이잖아?
말하는 것만으로도 영감이 정리가 되는 건지, 처음에는 추상적이었던 이미지와 비트가.
“둔단단단. 둔단단. 이런 느낌으로 변주를 주는 거야.”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었다.
‘확실히 재능은 넘치네.’
작곡의 재능이 꽃피우고 있었다.
정민의 말을 들으며 그가 뱉을 다음 대사를 떠올렸다.
“꼭 하늘 위를 봤을 때 볼 수 있는 이미지가 별일 필요는 없지 않아? 예를 들어 노을이라든가 아니면 동쪽에서 떠오르는 일출이라든가.”
이 한마디로 조금 더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거다.
타인에게 비슷한 감상을 들었을 때 더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을 수 있거든.
나는 잘 모르겠는데, 천재들은 꼭 그러더라고.
정민이라면 알 거라 믿었다.
“오.”
악상이 떠오르는 걸까.
눈을 감은 정민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리듬을 맞추고 있었다.
“이거 괜찮다. 곡에 반주를 주는 거야. 가사에도 의미를 담는 거지. 너를 만나서 내 삶이 달라졌다는 의미로. 1절 벌스가 끝나고 후렴 전에 프리코러스에서나 후렴이 끝난 이후 브릿지에서 지금보다 리드미컬하게 반주를 들어가면서 피치를 높이는 거지!”
내가 개입하는 것으로 게임과 다른 대사가 나왔다.
“멜로디가 어떨 거 같은데?”
“음, 아마도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정민이 허벅지를 두드리는 소리를 비트로 삼아 콧노래로 부드럽게 흥얼거렸다.
“여기서 살짝 오토튠을 사용하면서 신나는 느낌으로 가져갈 수 있어.”
흐으음~ 흐음~.
이게 어떤 식으로 스노우볼이 되어 굴러갈지 모르겠지만.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자부할 수 있었다.
“아니면 템포를 죽이는 대신 악기 수를 조금 늘려서 풍성하게 만들면 되겠다.”
게임에서 듣지 못했던 현실의 간극이 메워지고 있었다.
내가 <마이 아이돌>에서 봤던 대사들을 떠올려 정민에게 전해주면, 정민이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와 악상을 흥얼거리며 내게 말해줬다.
스스로 말하면서 구성을 점점 더 선명하게 이뤄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정민이 만들어내는 노래가 내가 게임에서 봤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나아졌다는 걸.
‘New Taste’ 때처럼.
“좋다, 좋아. 역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랑 같이 얘기하니까 뭔가 더 잘 나온다.”
나는 정민처럼 재능을 지닌 건 아니었다.
그저 게임을 통해 미래시를 봤을 뿐.
‘이 거짓된 천재성을 어디까지 꾸밀 수 있을까.’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말에 정민이 알아서 악상을 계속 떠올린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말이 악상을 만들고, 새로운 악상이 또 다른 악상을 떠올리는 긍정적인 사이클을 만들었다.
악상을 어느 정도 구체화시킨 정민이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건하야, 정말 고마워. 그런데 너도 떠올린 악상을 내가 가져가도 되는 걸까?”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대부분 정민이 다 했지.
나는 그저 왼손처럼 옆에서 거들 뿐이었고.
‘대사를 다 외워둬서 다행이다.’
정민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애들아, 기사 떴다.”
그때 앞 좌석에서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살피던 황이서가 말했다.
기사가 떴다고?
“저희 방금 축제 공연한 거 말인가요?”
“아니, 그거 말고 우리 지난번에 <주중 아이돌> 촬영한 기사.”
“그 기사가 이제 나갔어요?”
“촬영장 비하인드 사진이 괜찮은 게 많이 찍혀서 올렸지. 예능 프로그램 허락받고 스포일러 안 되는 한도 내로 홍보팀에서 여기저기 뿌렸어.”
“오오, 반응은 어때요?”
“괜찮아. 지금 조회 수도 평소 우리 기사보다 훨씬 높아. 역시 아이돌 대표 예능이라 그런가 보더라고. 하하하.”
기사에는 우리끼리 장난치는 사진들이 올라가 있었다.
대기실에서 메이크업을 받으며 수다를 떠는 사진, 내가 개인기를 위해 뱉었다가 대기실 현장을 조용하게 만든 사진, 거기에 이창모에게 방송에 대한 조언을 받는 사진 등.
쉬는 시간에 촬영장에서 찍힌 사진도 많았다.
사진 속에서 빛나는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감상하다 보니.
“기사 댓글로 반응을 볼 수 없으니 아쉽네요.”
“없는 게 낫다. 거기 댓글 있어서 좋은 적이 많이 없었으니까. 물론 댓글이 있어서 생기는 장점도 있지만, 너희처럼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애기들은 괜히 봤다가 악플에 상처 입어.”
그래도 우주의 얼굴에 기대심이 사라지지 않자, 황이서가 한숨을 내쉬며 간단한 조언을 해줬다.
“정 보고 싶으면 관련 커뮤니티를 찾아보는 게 좋을 거야. 그래도 좋은 말을 해주는 팬 커뮤니티도 많으니까.”
황이서가 룸미러로 뒷자리에 있는 우주를 보며 경고했다.
“난 말했다. 안 보는 게 좋을 거라고.”
“저 멘탈 강해요! 걱정 마세요. 프로듀서님!”
나는 어깨너머로 우주가 검색하는 댓글을 함께 봤다.
“그렇게 궁금해?”
“건하 형은 궁금하지 않아? 팬들이 우리 보고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긴 하지.”
그래서 뒤에서 말없이 우주가 여는 커뮤니티를 가만히 바라봤다.
-얘들 신인인 거 같은데 여기저기 보이네.
-노래 좋긴 하더라. 너튜브 영상도 신경 쓴 거 같고.
-역시 몬스터즈 키운 짬 어디 안 가는 듯?
⌎뭔솔 몬스터즈 빼고 다 망했는데ㅋㅋㅋㅋㅋ
-먹을 만함?
-근데 비주얼 보면 칼 갈고 나온 건 맞는 듯?
-근데 얘네 이름이 뭐임?
⌎멤버 이름, 차례대로 최우주, 안호진, 유성훈, 윤건하, 정민.
⌎이 사람은 올리오스 글만 나오면 이 댓글 다네. 혹시 홍보팀임?
⌎홍보팀이 이렇게 티 나게 하겠어?
-그런데 촬영 분위기 좋았나 봄? 이창모 표정이 좋다.
⌎창모씌 애들 태도 불량이면 티 바로 내는 사람인데, 저렇게 웃는 거면 꽤 마음에 들었나본데?
-아직 예능 얼마 나오지도 않아서 찍먹 한다 생각하고 본방 봐도?
-근데 나만 얘네 왠지 별로인가?
⌎응, 너만 별로야.
전체적으로 반응이 좋았다.
GH의 과거 업보 때문인지 얼굴만 잘생기고 별거 없을 거라는 악플도 있었지만, 신경 쓰이진 않았다.
그런 말보다 우리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댓글 하나가 보였다.
-어? 올리오스 얘들 우리 동네 축제에서 공연하고 가던데?
-영상 아직 안 떴나.
-응응. 여름 축제 야시장에서 공연하던데…. 아직 하꼬라 온갖 곳 불려다니는 듯.
-잘 부름?
-잘 부르긴 하더라. 캠 찍는 사람 꽤 있던데 영상도 곧 올라올 듯?
“이거 방금 우리가 공연한 거기 얘기지?”
“그런 거 같은데?”
설마.
진짜 찍은 건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이 하나 올라왔다.
-올리오스 오늘 공연 움짤
-부모님이랑 같이 가다가 우연히 봐서 녹화함. 홍보팀 아니고, 어디 홍보하려는 축제 관계자도 아님. 첫 곡은 중간부터 들어서 녹화 못 함. 뭐 공지도 안 하고 공연하더라ㅋㅋㅋ GH 뭐하는 건지… 자리도 초반엔 널널해서 걍 대놓고 찍었음 알바 아님
우리의 무대를 스마트폰으로 찍은 3분짜리 영상이었다.
‘Angel’이 아닌, 두 번째로 불렀던 ‘New Taste’.
무대 컨셉은 달랐지만, 시간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Angel’의 의상에서 외투를 벗은 채로 노래를 불렀다.
“우리 진짜 잘 불렀던 거 같네.”
나도 모르게 자화자찬을 했다.
좀 재수 없어 보이려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의 생각만큼 댓글 반응이 좋았다.
-잘 부르는데?
-메인 보컬 음색 ㄹㅇ 미쳤다;;;
-나도 모르게 벌써 열 번이나 들었다.
⌎올라온 지 5분 됐는데ㅋㅋㅋㅋㅋ
-와… 춤도 경력치고 괜찮은데. 이번엔 GH 믿어도 되나?
-오늘부터 입덕해 본다.
-나도 오늘부터 1일임.
이거 반응 좋은데?
어쩌면 의외의 곳에서 복덩이를 얻은 걸지도.
이것도 S급 보상이려나?
“우리 진짜 잘하긴 했구나.”
“우주 네가 제일 잘했어.”
“형, 그거 저번에 예능 때 내가 좀 놀렸다고 일부러 비행기 태우는 거 아니지?”
“진짜 잘해서 말하는 거야. 오구구. 우리 우주가 최고예요.”
“아이, 진짜. 하지 마.”
하지 말라는 애의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그러나 기쁨에 오래 취할 순 없었다.
“자, 다음 목적지 곧 도착한다.”
아이돌에게 체력이 필요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
또 무대라니.
* * *
오늘도 바쁜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올리오스 멤버들을 전부 숙소로 돌려보냈지만, 황이서 자신은 아직 할 일이 남았다.
“후우, 바쁘네.”
이것도 이제 1주일이면 끝난다.
올리오스 담당 매니저인 두현이가 일에 적응하면 자신은 올리오스의 차기작과 기타 일정, 앞으로 잡힐 여러 스케줄을 조절하는 데 전념해야 할 테니까.
‘그럼 좀 심심해질지도 모르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현장 스타일이었다.
단순히 아이돌을 구성하고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애들과 함께 같은 곳에서 숨을 쉬며 경험하며 함께 커가는 것.
그게 황이서가 느끼는 프로듀서의 재미였는데.
그러니까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들이 꽤 있었다.
“프로듀서님, 오셨습니까?”
“응, 다들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애들 스케줄 때문이야?”
“그것도 있고, 지금 화보 발주 확인받고 있고, 스케줄 조정이랑 앞으로 애들이 챙겨야 할 물건들 정리하고 있습니다. 홍보팀도 혹시 나쁜 기사가 없나 모니터링을 하고 퇴근한다고 했고요.”
황이서 프로듀서 밑에서 함께 개고생을 하는 이도현 팀장이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스케줄 조정할 게 더 있나? 뭐 들어온 거 있어?”
“그, 음방 PD님들이 들어오시면 연락 달라고 하시던데요?”
“음방 PD? 아, 윤석이 형?”
“아뇨. 뮤직에어 말고 센터뮤직이요.”
“거기서 연락이 왔다고?”
다른 공중파 음방에서 전화라니?
설마, 이거?
“흐으응~ 어디~ 보자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 고집 센 음방 PD가 먼저 전화해서 찾아달라니.
방송에 나오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나 보지?
‘그럼 누가 키웠는데.’
황이서는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 책상에 앉았다.
김예리가 말할 때마다 운율을 넣는 게 아저씨 특이라면서 싫어했지만, 나오는 걸 어떡해.
그리고 자신은 아저씨라 나오는 게 아니고 음악 쪽에서 아이돌과 자주 작업을 하기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다.
프로듀서, 음악적 고뇌.
이러면서 새로운 영감을 탄생시키는 건데.
뭘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암, 나는 아저씨가 절대 아니지.”
나이도 30대를 훌쩍 넘기고 이제 하루를 밤새우면 이틀은 죽는 나이지만, 그렇다고 아저씨라고 불릴 건 아니었다.
아직 결혼도 안 했고 말이야.
아저씨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
‘그런 거 신경 쓰는 게 더 아저씨 같네요.’
김예리가 있다면 그렇게 말했겠지.
“흠흠.”
황이서는 연락처를 찾아 이 팀장에게 받은 센터뮤직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YBS 센터뮤직 오주현 PD.
뚜르르.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오 PD님. GH 엔터의 황이서 프로듀서입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올리오스 팀, 맞죠?
“예, 맞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애들 데뷔하고 많이 바쁘신 모양이에요. 직원들한테 물어봤는데, 운전 때문에 연락이 어렵다고.
“하하, 죄송합니다. 데뷔 초반에는 여기저기 움직여야 하잖습니까? 여기저기 영업도 돌리고 그래야죠.”
-흠, 저번에 보내주신 건 잘 먹었습니다.
“하하, 별거 아닙니다.”
-본론부터 얘기할게요.
잠시 말을 가린 오 PD의 목소리가 들렸다.
-올리오스 우리 센터뮤직에 나오는 거 어때요? 기대되는 신인으로.
“정말입니까?”
월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