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멤버들이 메이크업을 끝냈을 즈음.
“도착했슴다!”
운전을 맡은 두현이 촬영지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작은 도시.
공원에 설치된 무대에서 조명이 쏟아지고 있었다.
여름 축제라도 벌어지고 있는 걸까.
공원 위에는 마치 야시장처럼 여러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들, 산책 겸 마실을 나오기 위해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 전체적으로 가족 단위가 많았다.
젊은 사람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저희 노래를 들을 분들이 계실까요? 연령대가 높아 보이는데….”
우주가 불안한 눈빛으로 무대를 살폈다.
무대의 규모는 꽤 컸다.
우리가 신나게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상당한 규모의 축제로 보였다.
“초반에는 어디든 뛰어야지. 비록 아이돌 시장이 팬덤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처음에는 무조건 어디에서든 뛰면서 어필하는 게 중요해. 그래야 팬덤이 생성되는 거고 말이야. 그리고 이런 곳에서 행사 뛰는 게 앞으로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다. 좋은 사진이 찍힐 수도 있지.”
답답한 무대 의상 때문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뻘뻘 났다.
“밤인데도 엄청 덥네요.”
“열대야가 심해져서 요즘엔 저녁에도 사무실에 에어컨 틀잖아.”
어렵게 칠한 메이크업이 지워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땀이 주룩주룩 흐르니 시야가 자꾸 방해됐다.
덥긴 진짜 덥네.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조명까지 내리쬐니 체감온도가 훨씬 더 높았다.
“리허설 할 시간이 많이는 없을 거다. 음향 체크랑 동선 체크 정도만 가볍게 하고 들어갈 거야.”
“네, 알겠습니다.”
“너희가 첫 무대니까 분위기 잘 살려줘. 이런 무대에서 잘 보여주면 앞으로 무대 관계자들한테 좋은 얘기가 돌 거야. 스태프끼리 소문 잘 도는 거 알지? 열심히 하자.”
“네!”
소문은 무섭다.
특히 좁디좁은 연예계에서는 더더욱.
작은 무대라도 방심하지 말고 최대한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게 신인의 자세였고, 아이돌의 자세였다.
자의든 타의든 적어도 우리 무대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을 실망하게 해선 안 되니까.
“여긴 느낌이 다르네.”
“그러니까. 솔직히 여기서 무대를 펼칠 줄은 몰랐어.”
“열심히 하자. 무대가 어디든지.”
“후우….”
안녕하십니까!
스태프들이 지나갈 때마다 우렁차게 인사했다.
“이 정도면 될까요?”
“MR이랑 같이 틀어봐야 할 거 같아요.”
“제 마이크 좀 더 올려 주시겠어요?”
음향 감독과 현장 PD와 함께 음향을 손보고.
“무대가 넓어서 좋긴 한데, 생각보다 바닥이 미끄럽다. 여기서는 조금 동작을 약하게 가져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건하야, 그럼 네가 여기서 조금 더 뒤로 빠져서 공간 만들어주고….”
무대 위로 올라가서 동선을 가볍게 짰다.
아직 조명이 밝지 않았지만, 동선을 짜기 위해 무대 위를 돌아다니니 주위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우리를 아는 듯한 시선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동선을 체크한 뒤, 우리는 다시 무대 뒤로 내려갔다.
“후우….”
우리 다음으로 다른 가수들도 각자 마이크 세팅을 마쳤다.
다들 우리랑 비슷한 인지도의 가수들이었다.
TV에 한 번 정도는 나왔는데 잊힌 이들, 그게 아니라면 지역에서만 유명한 가수들.
신경 쓰지 말자.
저들과 경연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니니까.
멤버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멤버 모두가 멀뚱멀뚱 나를 바라봤다.
다들 긴장한 건가.
이제는 무대를 즐길 때도 됐는데.
“리더, 할 말 없어?”
“어?”
정민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대꾸했다.
그때 <주중 아이돌>에서 멤버들이 리더로 나를 가리켰던 게 떠올랐다.
“그거 진짜로 했던 말이었어?”
“당연하지. 리더를 장난으로 뽑았겠어?”
“형은 장난이라고 생각한 거야?”
“난 아닌데.”
“건하가 리더감은 맞다.”
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나를 리더로 가리켰다.
아, 진심이었구나.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르기 전에 멤버들 기 좀 살려줘야지.”
이야, 무슨 말을 하지?
나는 잠시 멤버들에게 할 말을 고민했다.
“다치지 말자. 바닥 미끄러우니까 조심하고. 동선 신경 잘 쓰고. 괜히 무리하다가 삑사리 내지 말고. 그리고 또….”
신경 쓸 게 뭐가 더 있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건하 형, 우리 삼촌 같아. 지금도 건강만 챙기잖아.”
우주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방 오디오 끄고.”
“흠흠.”
“다들 첫 생방 무대도 잘 마쳤고, 우리 성적도 좋으니까 하던 대로만 하자.”
이거 말고는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하던 대로.
다들 잘했으니까.
연습한 대로만 하면 잘할 거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돌발 퀘스트: 첫 사설 무대]
[성공 시: 등급에 따른 신규 팬 확보]
퀘스트 창이 핸드폰이 아닌 내 눈앞에 떴다.
무대 위에서 핸드폰을 쓸 수 없으니 내놓은 대책일 것이다.
이럴 때만 융통성이 있단 말이지.
깰 수 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S급은 쉽지.’
“올리오스 팀 올라 가실게요!”
우리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부스의 조명이 다소 어두워졌다고 느낄 정도로 더욱 밝아진 조명, 무대에 앞서 사회자가 사람들을 모으는 멘트.
꽤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들의 시선이 전부 우리에게 쏠렸다.
무대의 시작.
많은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순간.
이 순간을 이겨내야만 했다.
[돌발 퀘스트: 첫 사설 무대]
[무대 등급: -]
아직 시작하지 않아, 올라가지 않은 무대 등급.
S를 만든다.
만든다.
속으로 다짐을 되뇌고 있을 때, 무대가 시작되었다.
우주가 첫 소절을 시작하고, 점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리듬게임의 박자를 맞출 때마다 점수가 오르듯이.
너를 보며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로 느껴지겠지.
소절이 이어질 때마다 점수가 올랐다.
이어지는 내 파트.
제발 떠나지 마. 내 곁에 있어 줘.
I can't let you go.
미련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어.
[호소력 짙은 목소리(B)가 발현되었습니다.]
내가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특성이 터지며, 점수가 빠르게 올라갔다.
집중하자.
점수에 연연하지 마.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고, 내 노래에 전념했다.
호진의 파트, 정민의 파트, 성훈의 파트마다 점수가 다르게 올라갔다.
멤버들의 특성과 능력치도 무대에 영향을 주는 거다.
[무대 등급: B]
1절이 끝나고 이 정도면 충분히 양호하다.
다소 부족할 수 있지만, 앞으로 내가 가진 S급 이상의 특성만 잘 터져준다면 충분히 가능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칼각과 빛나는 스타덤. 둘 다 발동시키기 어려운 조건이 아니니까.’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칼각(S)이 발현되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특성이 터졌다.
[빛나는 스타덤(SS)이 발현되었습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최종 특성까지.
점수가 빠르게 올라가 등급이 A까지 찍혔다.
[무대 등급: A]
이제 신경 쓰지 말고 무대에 집중하자.
바닥이 미끄러워서였을까.
아니면 긴장한 탓일까.
이제 슬슬 더 점수가 올라야 할 타이밍에 점수가 오르지 않고 지지부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모든 스킬도 터졌고, 내 파트도 전부 끝났어.’
그러나 무대 등급은 여전히 A+.
더는 미동이 없었다.
마치 여기가 끝이라는 것처럼, 아무리 집중해도 등급은 오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신경 꺼.
애들한테 긴장하지 말고 평소대로 하자고 말했잖아.
내가 먼저 긴장하고 흔들리면 어떡해?
마지막을 앞두고 딱 하나,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파트가 남았다.
그러나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파트가 아니었다.
내 눈이 성훈에게 향했다.
우리 팀의 메인 보컬, 유성훈.
그가 S를 달성하기 위해서 부족한 한 조각을 메꿔주길 바랐다.
성훈의 시원한 보컬이 점점 하이라이트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터지는 지점.
“워~~우워!!!”
시원하게 하늘을 찌르는 성훈의 청량한 목소리.
듣는 사람들의 가슴이 뻥 뚫리게 만드는 성훈의 고음은 굉장히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우와아.”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지금 이 순간, 무대에선 성훈이 주인공이었다.
야외, 열대야나 다름없는 더위, 현장에서 급히 맞춘 음향.
거기에 미끄러운 바닥에서 춤을 계속 춰서 숨이 차오를 텐데도 굴하지 않고 훌륭하게 고음을 질렀다.
A+에서 S.
변하지 않던 무대 등급이 바뀌었다.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목표치를 찍었다.
그리고.
[무대 등급: S+]
원래 목표보다 한 단계 더 높은 S+.
나 혼자 스킬이 터진다고 좋은 게 아니었다.
방금 유성훈의 노래가 관객들을 감동시키지 않았다면, 퀘스트는 실패로 끝났을 거다.
혼자만 잘한다고 좋은 게 아니야.
늘 사업적으로만 생각했다.
내가 잘하기만 하면, 기업은 늘 성공했고.
나만 잘해도 다른 이의 실패를 무마할 수 있었다.
특출난 한 명이 이끌어갈 수 있는 사업과 다르게 아이돌은 한 명이 잘난다고 뭔가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팀원들의 능력치와 포텐도 중요했다.
그리고 멤버들의 포텐이 제대로 터졌다.
메인 댄서이자, 비주얼 센터인 호진도.
프로듀싱과 랩을 담당하는 정민도.
서브 댄서와 애교 담당인 우주도.
메인 보컬인 성훈도.
지금 이 무대는 그동안 연습해왔던 올리오스 멤버들의 연습량에 대한 보상을 받는 순간이었다.
‘New Taste’의 무대까지 훌륭하게 소화해낸 우리는 환호하는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노래 되게 잘 부른다. 고음 봤어? 대박.”
“춤도 군무가 완전 딱딱 맞던데.”
“저기 중앙에 있는 애가 잘생기지 않았어요?”
“저 친구들 이름이 뭐야?”
사람들이 환호성 속에서 목소리들이 들렸다.
어떻게 저런 목소리들은 이리 잘 들리는지.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건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모두 여름밤의 뜨거운 온도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입가에 미소를 띠지 않은 이가 없었다.
우리는 모두 무대를 즐겼고, 제대로 성공시켰다.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화려한 조명이 우리를 비췄다.
눈이 부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우리도 저렇게 눈부신 스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돌발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보상: 1 오픈 마일리지]
[돌발 이벤트로 이어집니다.]
* * *
무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내 옆자리에 앉은 정민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던 정민이 내 쪽을 돌아봤다.
“건하야.”
“응?”
“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난 게 하나 있는데….”
왠지 모르게 익숙한 대사.
익숙한 표정.
몇 번이나 본 표정이다.
정민의 얼굴로 본 건 지금이 처음이지만, <마이 아이돌>에서는 몇십 번이고 보았다.
아마 다음 대사는, 상담을 해도 될까?
“상담을 해도 될까?”
역시.
‘이거였냐. 돌발 퀘스트 보상이.’
돌발 이벤트가 쉽지 않았던 것치고 1오픈 마일리지는 좀 짜다고 생각했는데, 스토리 이벤트가 보상으로 지급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돌발 이벤트라는 멘트가 뜬 거였구나.
스토리 이벤트.
특정 스킬이나 스탯을 달성하거나 특정 무대를 완료했을 때 주어지는 공통 이벤트였다.
일반적으로 선택지가 주어지고 그 선택지를 골라 멤버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캐릭터 선택지 이벤트와 다르게, 스토리 이벤트는 단순히 게임의 스토리를 더해주는 이벤트였다.
약간의 능력치 상승이나, 새로운 곡의 컨셉을 정하거나, 혹은 특별 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RPG 게임의 연계 퀘스트라고 보면 되지.’
다른 캐릭터가 같은 스토리 이벤트를 띄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그리고 이 이벤트는.
‘차기 앨범의 컨셉을 결정하는 이벤트지.’
미래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은 이벤트는 없었다.
작곡을 담당하는 멤버와 일정 이상 호감도를 쌓고, 인정을 받은 뒤에 내가 팀 내에서 신뢰를 받는 입장이 되는 것. 거기에 무대 등급을 S급 이상으로 찍는 것.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그 보상 역시 훌륭했다.
조금 더 나중에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무대 위에서 조명이 우리를 비추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리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막 나오더라고. 사위가 반짝반짝 빛날 때 나도 모르게 막 영감이 떠오르는 거 있지?”
원래라면 나는 그냥 지켜보고 멤버가 말하는 걸 들으면 그만인 이벤트였다.
그래, 게임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그게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이 없어.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의 이야기.
이벤트의 시작은 게임이지만, 대화 사이의 간극마저 게임이 보여주진 않았다.
이곳은 다른 현실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게임의 요소를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현실.
내가 여기서 정민의 자신감을 채워주고, 그를 도와준다면.
게임에서 봤던 것보다 조금 더 멋진 곡이 탄생하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당연히 가능했다.
내가 줄 수 있는 도움, 아니 나만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확실하게 있다.
나는 이 이벤트를 몇 번이고 봤으니까, 정민이 떠올린 영감이 뭔지 알고 있었다.
“구름 위에 누워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을 바라보는 기분이었지?”
“어, 어떻게 알았어?”
나를 보는 정민이는 마치 용한 점쟁이를 마주한 듯한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