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모든 사무실 직원의 주목을 받는 그녀는 태연하게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으음, 프로듀서님 커피를 진짜 잘 타시네요.”
“하, 하하하. 그렇죠. 예. 나름 자신합니다.”
“이 커피 매일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황이서의 손이 슬그머니 계약서 쪽으로 가는 게 보였다.
상대가 상대라 그런지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모두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진효원과 황 프로듀서를 번갈아 보았다.
모두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상황 파악을 위해 머리가 핑핑 돌아가고 있었다.
‘설마.’
뒤늦게 한진성의 말이 떠올랐다.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이거였나?’
너튜브에서 기록적인 조회 수를 채우는 것도.
방송 3사 음악 방송에 나가는 것도 아닌.
진효원이 우리의 노래를 마음에 들었다는 거.
그래서 소속사에 찾아올 정도라는 거.
이게 한진성이 말한 좋은 일이었다.
진효원이라면, 대한민국 최고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진효원의 픽에 꽂혔다면, 충분히 한진성도 대단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와 눈을 마주친 진효원이 찡긋 웃었다.
하지만 단순히 마음에 든 것만은 아니겠지.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피어올랐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아티스트인 진효원과 공동작업, 혹은 피처링.
“이틀 연속으로 보네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성훈의 목소리가 유독 컸다.
가장 진효원을 보고 격렬한 반응을 보였던 그답게,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런데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그냥 유망한 후배들 얼굴도 볼 겸, 오랜만에 GH엔터 사무실도 볼 겸 왔어요.”
싱긋 미소를 짓는 그녀의 말투에 묘한 확신이 들어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정한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야 최고의 가수가 되는 걸까.
“비주얼 좋고, 노래 실력 괜찮고, 캐릭터 명확하고…. 프로듀서님이 애 많이 쓰셨겠네요.”
“애들이 잘 큰 거죠. 하하하.”
여전히 황이서는 남들 몰래 계약서를 만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효원은 나와 성훈, 그리고 멤버들을 번갈아 보며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깊게 내쉬는 숨.
그 한숨 하나만으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진효원이기에 가능한 존재감.
연예계 바닥에서 십수 년을 최고의 자리에서 우뚝 선 그녀였기에 할 수 있는 공간 장악력이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를 구경하고 있던 사무실 직원도, 남몰래 계약서를 만지던 황이서도, 그리고 우리도.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같이 피드백을 좀 해주고 싶어서요.”
“피드백…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피드백. 올리오스 무대를 나름 재미있게 봤거든요. 신경 쓰이는 부분도 좀 있고, 물어보고 싶은 구석도 있고.”
진효원의 피드백.
그 말을 들은 황이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뜬금없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업계 최고, 0티어의 싱어송라이터인 진효원의 피드백이다.
무조건! 무조건 올리오스 멤버들에게 좋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과장 많이 보태서 억만금을 줘도 얻기 힘든 게 그녀의 피드백이었다.
반드시 잡아야 하는 딜이다.
황이서는 그녀 몰래 멤버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성훈은 떨려서 말조차 잇지 못하는 듯했다.
“저희야 정말 좋죠! 선배님께서 봐주신다는데.”
가장 먼저 정신을 다잡은 건하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얘기할 줄 알았어요.”
진효원의 손이 테이블 아래로 향했다.
가방에서 나온 건 작업용 노트북.
노트북을 켠 진효원은 어제 우리가 찍었던 음악 방송, 뮤직에어를 틀었다.
‘Angel’을 부르는 우리의 모습, 어제 하루 종일 보고도 부족해서 우주는 자기 직전까지 몇십 번이고 돌려본 영상이었다.
‘이거 좀 부끄럽네.’
외부인이 함께 본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시작하는 부분, 우주 후배가 맡았죠.”
“네! 그렇습니다!”
“도입부 들어가는 음정이 깔끔하고 좋네요. 단순하게 내지르는 발성이 이미지와 어울려서 더 좋은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다만, 너무 밝은 표정이 천사랑은 조금 맞지 않는 느낌이에요. 약간만 더 날카롭게 표정을 지으면 좋을 거 같아요.”
“아, 네.”
“음원과는 다르게 무대에서는 단순히 들리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 부분을 계속 신경 써줘요.”
“알겠습니다. 선배님.”
칭찬과 지적,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주며 진효원은 우주의 강점과 약점을 나열했다.
“정민 후배님은 New Taste를 직접 작곡했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제가 작곡했습니다!”
“잘 만들었던데요? 혼자 만든 건가요?”
“아뇨. 건하가 많이 도와줬어요!”
“그 노래 진짜 좋았어요. 제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뒀거든요. 참고로 너튜브에 올라온 뮤비랑 음원도 다 들어봤어요.”
그 말에 정민이 소녀처럼 기뻐하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내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셨대!”
저렇게 좋을까.
“호진 후배님도 좋았어요. 그런데 댄스는 내 전문이 아니라 보컬 쪽만 말해주자면….”
진효원의 피드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성훈 후배님의 보컬은 정말 최고였어요.”
“감사합니다!”
“고음도 부드럽고, 음역도 넓고, 고음과 저음 처리도 전부 깔끔해서 아주 좋아요. 곡 해석도 괜찮았어요. 명확한 컨셉이 있는 멤버와 다르게 힘들었을 텐데, 무난하게….”
각 멤버들의 피드백을 마친 진효원의 눈이 내게 향했다.
“건하 후배님?”
“예, 선배님.”
“목소리가 좋아요. 타고나길 목소리가 좋게 태어났나? 별다른 스킬도 없는 거 같은데 청중을 휘어잡는 노래를 부르던데요?”
“아닙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겸손한 자세는 좋네요. 신인의 기본 자세죠. 성훈 후배의 보컬 옆에서 보조하는 느낌이 굉장히 좋아요. 영화로 따지면 맛깔나는 조연 느낌? 감초 배우라서 자꾸 듣고 싶은 음색이라 좋았어요. 어디 하나 부족한 거 없던 거 같네요.”
칭찬 일색이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칭찬하던 그녀가 한 장면에서 멈췄다.
“그런데 여기, 후렴구를 부르는 파트 말인데요.”
“예.”
“무슨 생각하면서 부른 거예요?”
후렴구….
내 단독 파트임과 동시에 성훈이 내 파트를 받아 노래의 하이라이트로 들어가는 직전에 화음을 깔아주는 부분이었다.
생각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없었다.
다른 부분과 똑같이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을 뿐.
다만 차이가 있다면.
[호소력 짙은 목소리(B)이 발현되었습니다.]
[빛나는 스타덤(SS)이 발현되었습니다.]
이 파트에서 두 개의 스킬이 동시에 발현되었다.
녹화 방송 때도, 생방송 때도.
‘여기가 제일 중요한 파트였기 때문이겠지.’
스킬이 제대로 터졌고, 내가 지금껏 불렀던 노래 중에서 제일 괜찮았다고 스스로 자부할 정도로 노래 실력을 뽐냈다.
“그냥 제 파트를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다인가요?”
“예.”
“호오…. 신기하네요. 그렇다고 보기엔 감정이 제대로 실려 있던데.”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흐음, 그런 거라면 이 부분은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겠네요. 지금 후배님이 잡아놓은 감정에 내 색이 잘못 들어가면 이 좋은 느낌을 망칠 수 있으니까. 그냥 정말 좋았어요. 성훈 후배의 노래와 더불어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거든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고음으로 올라갈 때 처리가 많이 미숙해요. 자신의 약점을 음색으로 덮은 느낌이 강해서, 그건 앞으로 계속 개선해야 할 거예요.”
“명심하겠습니다.”
진효원은 전체적으로 우리의 강점과 보완점을 짚어준 뒤, 이후로도 그녀는 우리의 노래 Angel과 New Taste의 재생과 정지를 반복하며 포인트를 하나하나 짚어줬다.
삼십 분.
두 곡을 전부 살피는데 삼십 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피드백을 해줬다는 걸 생각하면 절대 가볍지 않은 시간이었다.
0티어 아티스트의 개별 교습.
이걸 돈으로 지불한다면 몇천만 원은 줘야 하지 않았을까.
멤버들의 표정이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업적 – 톱스타의 조언]
[보상: 노래 스탯 +2]
마치 개인 과외를 것처럼 스탯이 올랐다.
“하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효원 씨.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괜찮아요. 프로듀서님, 제가 하고 싶어서 온 걸요.”
“하하하, 마음도 넓으셔라.”
“마음에 드네요. 마음가짐도 그렇고 노래 실력도 그렇고…. 물론 부족한 게 보이긴 하지만, 그런 건 전부 커버할 수 있고….”
황이서 프로듀서와 잠시 대화를 나누던 진효원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미간을 구겼다.
사무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을 뺏은 그녀가 우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같이 작품 하나 할래요?”
입을 쩍 벌린 황이서가 만지고 있던 계약서를 툭, 떨어트렸다.
* * *
“효, 효, 효원 씨, 방금 뭐라고?”
황이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 같이 작품을 하자는 얘기를 했던 거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 거지?
같이 작전 짜자는 얘긴가? 아니야, 그것도 이상하지. 무슨 작전을 짜.
그럼 같이 작…당모의.
‘이건 말도 안 되지.’
대체 ‘작’자로 시작해서 진효원이 우리 올리오스 애들한테 할 말이 뭐가 있을까.
천하의 진효원이.
검증된, 혹은 자신이 인정한 가수가 아니라면 함께 작업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 깐깐한 진효원이 찾아와서 할 말.
진짜 작품인가….
“작품을 같이 하자고요?”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하가 되물었다.
“맞아요. 작품 같이 하나 하자고요. 내가 생각해 둔 게 있는데.”
“작품!”
황이서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작품이라니!
진효원이 올리오스와 함께 작품을 하자고 제안하다니!
처음엔 잘못 들은 건가 했다.
그런데 다시 들어보니 진짜더라.
뜻밖의 장소에서 보물을 발견한 선장의 기분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 우리 멤버들을 칭찬만 하러 왔을 리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공동 작업이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효원이!
머리가 아찔했다.
진효원이 함께라면 어떤 식으로든 망할 일은 없다.
황이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황이서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놀라서. 핫.핫.핫.”
어색하게 웃으며 발밑에 떨어진 계약서를 황급히 주워 숨겼다.
“크흠, 그나저나 무슨 작업을 같이 하시려고….”
“지금 컴백 앨범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컴백 앨범이요?”
“미니앨범을 하나 준비 중이에요. 싱글로 치기에는 너무 곡이 많고, 그렇다고 정규로 내기엔 아쉬워서. 다섯 곡 정도 뽑을 예정인데….”
미니앨범 또는 EP.
한 곡에서 세 곡 정도를 준비해서 내는 것을 싱글, 여덟 곡 이상의 곡을 모아 풀 패키지로 내는 앨범을 정규 앨범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그 사이, 네 곡에서 일곱 곡 사이를 묶어서 내는 걸 EP라고 불렀다.
따지고 보면 올리오스의 데뷔 앨범은 싱글 앨범이고, 수록곡은 싱글 타이틀곡인 ‘Angel’과 정민의 자작곡 ‘New Taste’.
이 두 곡을 동시에 묶어서 냈으니.
최근 아이돌 판에선 데뷔 앨범을 싱글로 내고, 인지도를 쌓고 팬덤을 확보한 뒤 정규 앨범을 내는 경향이 많았다.
데뷔 앨범으로 얼마나 팬덤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를 위해서 확실한 컨셉을 잡고, 최대한 많은 미디어에 애들을 노출해야만 했다.
거기서 등장한 진효원.
이건 기회였다.
우리 올리오스 애들의 얼굴을 대중과 팬들에게 알릴 기회.
그녀가 왜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연결된 끈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거기 타이틀곡을 남자 보컬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마침 딱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진효원의 눈이 올리오스 애들에게 향했다.
“애들이 이 노래를 가지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지금 어떤 마음가짐인지 얘기하고 싶어서 왔어요. 아쉬운 점은 분명 있었지만, 그걸 무마할 강점을 갖고 있더라고요.”
‘이건 대박이야!’
황이서는 음악 방송에서 올리오스와 따로 인사를 가졌던 진효원을 떠올렸다.
무대가 있는 것도 아님에도 음방을 찾아왔던 그녀가 굳이 애들에게 다가가 인사했던 이유.
‘이거 때문이었구나.’
얼굴이 밝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라이언의 컴백 소식으로 모든 이슈가 묻혔다는 건 전부 잊었다.
데뷔 직후에 모든 시선을 가져간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상관 없다.
진효원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실력을 인정받은 거나 다름이 없어.
자기 소속사도 아니고, 다른 소속사의 이제 데뷔한 보이그룹과 콜라보?
피처링이어도 상관없다.
우리의 이름을 알리면 된다.
전부 애들의 능력 덕이기도 했지만, 딱 그 날짜를 픽스한 황이서의 덕도 없잖아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잘했다. 나 자신.’
황이서는 터지려는 환호를 삼키며 올리오스 애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여기서 프로듀서가 끼어드는 건 삼류.
중요한 건 애들의 의견이었다.
너희도 나랑 같은 생각이지.
* * *
‘진효원과 공동 작업.’
역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 보컬이자, 싱어송 라이터인 진효원의 앨범에 피처링이라.
좋은 일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희가 담당하는 건 피처링입니까?”
“단순 피처링으로 처리할 거면, 이렇게 소속사까지 찾아오지 않았죠.”
그녀의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황이서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저러다 의자 넘어가겠다.
“그러면…?”
“말 그대로 공동 작업이에요. 앨범에 저랑 같은 란에 이름이 들어갈 거예요. 가수, 진효원 그리고 올리오스.”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