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34화 (34/236)

<제34화>

“좋은 소식이 뭔가요?”

-흐음, 내가 알려주면 재미없지.

그럼 대체 왜 말한 거야.

-지금 그럴 거면 왜 말했냐고 생각했지?

“예? 아닌데요.”

-그런 거 같은데.

깜짝 놀랐다.

귀신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 마음을.

-나 귀신 아니야.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한진성 얘, 어디 점집이라도 차렸나.

-아무튼, 공연 잘 봤다고 말하려고 연락했어. 잘하더라. 준비 많이 한 게 느껴졌어.

“감사합니다.”

-센터 두 명을 올리는 건 건하 네 아이디어지?

“예.”

-하하하, 과감하네. 데뷔 전부터 그런 승부수를 던지고.

“한 번은 주목시킬 필요가 있으니까요.”

-두 번째 무대는 자작곡이지?

“예, 정민이가 작곡한 그 곡입니다. 예전에 저희 내부 평가에서 보신 그 무대예요.”

-열심히 했네. 나도 분발해야겠는걸.

수화기 너머에서 후련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참, 너 왜 연락 안 하니?

“예?”

-연락하라고 명함까지 줬는데 안부 문자 하나 없더라. 섭섭해.

“바쁘기도 했고, 마땅히 연락을 드릴 명분이 없어서 전화 안 했었는데요. 너무 바쁜 선배님 방해가 될까 봐요.”

-조언 같은 건 구할 수 있었잖아? 지금 음방 PD 성격이 어떠냐느니, 무대 올라갈 때 어떤 식으로 시선을 처리해야 하는지, 긴장감 푸는 방법이라든지. 그런 거 말이야.

목소리에서 섭섭한 기색이 느껴졌다.

섭섭해하는 한진성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물어볼 게 딱히 없었다.

내가 모르는 대부분은 황이서가 알려줬고, 시선 처리나 긴장감 푸는 건 굳이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볼 것도 아니었다.

“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었는데요?”

-와, 섭섭하다. 섭섭해. 너무 똘똘한 후배 둔 내 잘못이네. 내 잘못이야.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죄송합니다. 제가 좀 잘나서.”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데뷔 앨범 활동 끝나면, 우리 집에 놀러 와. 그때 아이돌 선배로서 이것저것 알려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선배님이 뭐라고 하셨어?”

멤버들의 눈이 모두 내게 향했다.

초롱초롱.

마치 어미 새에게 먹이를 바라는 아기 새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부담된다, 얘들아.

“잘했다고 하시던데? 무대 두 개 다 보셨나 봐.”

“또 없었어?”

호진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다가와 물었다.

야, 너까지 그러면 어쩌냐.

“좋은 소식 있을 거라던데?”

“좋은 소식이 있다고?”

“그게 뭐지?”

다들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우주도 정민도 호진도 심지어 성훈마저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까진 말 안 해줬어.”

차올랐던 기대감이 푸시시 빠지는 얼굴들이 보였다.

“애들아! 고생했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황이서.

지금 선배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공연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무조건 한 소리 들었을 거다.

두현과 예리도 흥분된 얼굴로 뒤따라 들어왔다.

듣지 않아도 뭔가 좋은 일이 있는 모양새였다.

한진성이 말한 그 좋은 소식인가.

“아, 프로듀서님!”

“지금 우리 신곡 너튜브 반응이 난리다.”

“너튜브 반응이요?”

다들 황이서의 핸드폰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Angel 오픈 12시간 만에 조회 수가 17만! New Taste는 조금 낮은 12만! 아이돌 데뷔곡 첫날 조회 수치고 높은 수치다. 전에 데뷔했던 슈퍼스타가 24시간 조회 수가 8만이었으니까. 아마 진성이가 너희를 SNS에서 몇 번 언급한 게 좀 크게 작용한 모양이더라.”

흐뭇하게 웃던 황이서의 눈이 어쩐지 조금 슬퍼 보였다.

댓글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비주얼 뭔데?

-더블 센터 둘 다 진짜 외모 열일한다. 한 명 고르기 힘들어서 두 명 골랐다는 데 500원 건다.

-노래 넘 좋아서 자동재생 돌림ㅋㅋㅋ

-오늘 데뷔한 애들 맞아? 노래 너무 좋은데?

-GH에서 몬스터즈 다음으로 보이그룹 낸다는 얘기 들었는데, 얘넨가봐.

-올리오스? 이름 딱 외웠다ㅋㅋㅋ.

-멤버 이름 차례대로 최우주, 안호진, 유성훈, 윤건하, 정민.

-전부 본명인가?

⌎가명이겠지

⌎⌎가명이 아니라 예명;

-천사랑 악마 미쳤냐고!

말고도 영어 댓글도 많이 보였다. 아마 한진성의 해외 팬들이 아닐까 싶었다.

New Taste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조회 수에 비해 댓글이 훨씬 많이 달렸다. 좋아요도 훨씬 더 높고.

“조회 수가 부족하네. 하긴, 타이틀곡은 아니니까.”

“그래도 민이 형 칭찬 진짜 많다!”

우주의 말에 정민이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며 침착한 척하고 있지만,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보였다.

첫 자작곡의 반응이 좋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정민이 히죽 웃으며 댓글을 읽었다.

그러다가 흠칫 놀란 정민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악플 읽었네.’

설마 이건가?

좋은 일이 있을 거라던 한진성의 말이 떠올랐다.

“진성 선배님이 말씀하신 게 너튜브 조회 수일까?”

성훈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마치 내가 답을 알고 있다는 것 같은 강렬한 눈빛이었다.

음….

“아닐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성 선배인데.”

이미 국내에선 최고의 아이돌 중 한 명이라고 손꼽히는 사람이 고작 너튜브 조회 수 때문에 전화를 걸진 않았을 거다.

‘문자로 남겼겠지.’

축하한다고.

보다 큰 거다.

너튜브 100만 조회 수도 고작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큰 거.

“음, 그렇겠네. 진성 선배가 그런 일로 전화할 리는 없지.”

성훈도 내 말에 납득한 듯 보였다.

그러고는 다시금 혼자만의 생각에 깊게 잠긴 듯 턱을 괴었다. 가장 빠르게 평소처럼 돌아온 성훈이었다.

확실히 캐릭터에 맞는단 말이지.

묘하게 지적인 캐릭터.

저기에 안경만 딱 씌우면 대기업 본부장 느낌 제대로 날 거 같은데 말이야.

깐깐하고 상대하기 번거로운 잔소리 많은 본부장님.

‘나중에 의견 내봐야겠다.’

앨범엔 몰라도 화보 같은 건 찍을 수 있으니까.

황이서의 목소리에 감상은 끝났다.

“자, 아무튼 고생 많았다. 바로 퇴근시키고 싶지만, 저번에 말했다시피 방송국 PD들이 조금 깐깐해서 말이지.”

소문은 들었다.

방송국 PD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신인 아이돌들이 꽤나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

“조만간 홍보팀에서 뿌리는 기사들도 퍼질 거고, 이번 음방 생방 반응도 나쁘지 않아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최대한 예능이나 이쪽 활동도 픽스해볼 테니까 열심히 해보자.”

“알겠습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복도에 주르륵 줄 세워 서 있던 아이돌들은 방송국 스태프가 지나가자마자, 목 놓아 인사했다.

최대한 PD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이돌들의 생존방법이었다.

우리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모두가 하니 안 할 수 없지 않은가.

괜히 미운털 박히기도 싫고.

그때 뮤직에어의 강윤석 PD가 지나갔다.

음악 방송의 총 책임자.

그가 지나간다는 건 곧 우리 역시 퇴근이라는 뜻과 다름이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목소리가 더욱 우렁차졌다.

“어? 아, 올리오스 팀 맞지?”

우리를 발견한 강 PD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아, 공연 잘 봤어. 진짜 잘하더라. 카메라 빨도 잘 받고, 노래도 꽤 괜찮게 부르고. MR로 부르는데 곧잘 하던데?”

강 PD가 우리 손을 맞잡으며 껄껄 웃었다.

“솔직히 황 후배가 다급하게 꽂아달라고 애원할 때 조금 불안했거든. GH가 큰 소속사는 아니잖아. 몬스터즈 빼고는 애매하고. 그래서 조금 걱정도 많이 했는데, 기대 이상이야.”

껄껄껄.

강 PD의 호탕한 웃음에 우리도 어색하게 웃었다.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거기 메인보컬이 아주 목소리가 깔끔해서 좋아. 받쳐주는 멤버들도 괜찮고. 각자 제 역할을 잘하니, 보는 맛도 살더라.”

그렇게 마지막 우주와 악수를 끝낸 강 PD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다음 주에도 볼 것 같은데?”

“예?”

“너희 데뷔 첫 주에 음방 나오는 거, 우리 뮤직에어뿐이잖아? 그런데 이런 기세면 다음 주에는 방송 삼사 음방에 모두 나올 것 같다고.”

“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크크, 내가 좋게 봐준 게 아니라 너희 실력이 좋은 거야.”

강 PD는 이제 내 등을 팡팡 때렸다.

이번 건 조금 아팠다.

으으.

이건가?

한진성이 말한 좋은 소식.

데뷔 2주 차 때 방송 삼사 음방 데뷔.

‘가능성이 없진 않네.’

“앞으로 고생하라고, 자주 볼 거 같으니까. 크하하하! 다음 주에도 또 봐.”

“감사합니다! 들어가십쇼!”

강 PD는 쌩하고 지나갔다.

“진짜 우리 다음 주에 또 나오나?”

모두의 눈에 기대감이 가득 들어찼다.

*    *    *

우리는 첫 생방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들 녹초가 돼서 메이크업도 지우지 못한 채로 거실에 너부러졌다.

그러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우주는 거실에 대자로 뻗은 채로 한숨을 퍽 내쉬었다.

호진이는 아직도 무대의 여운을 즐기는 듯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정민이는 소파에 털썩 엎어진 채, 자신의 자작곡의 너튜브 댓글을 탐방하며 실실 웃었다.

성훈은 이 와중에도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 메이크업을 지울 준비를 했다.

“하아, 힘들었다아.”

두 팔을 쭉 펼친 우주가 천장을 향해 말을 내뱉었다.

목소리에 영혼이 빠져나가면 저런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그래도 좋았지? 첫 생방 말이야.”

“심장 엄청 떨리긴 했는데, 좋더라.”

“나도….”

멤버들이 각자 소감을 말했다.

“아쉽네. 효원 선배님의 무대는 꼭 보고 싶었는데.”

성훈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효원의 칭찬에 가장 설레고 기뻐하던 그였기에 더욱 아쉬웠을 거다.

“그러게. 효원 선배님 무대 오르실 줄 알았는데, 무대 스케줄엔 없더라.”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들 보려고 오셨던 걸까?”

“그럼 우리가 엄청 운이 좋았던 거네! 대선배님과 이야기도 나눴잖아!”

정민과 우주의 말에, 성훈이 말을 이었다.

“무대 내려오니 이미 사라지고 안 보이셨지.”

“그러게….”

“우리 무대가 별로였던 걸까?”

생각없이 내뱉은 우주의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첫 무대와 사람들의 반응으로 느껴졌던 설렘이 사라지고 울적해졌다.

“바쁜 분이니 스케줄이 많았을 거야. 그래서 못 보셨을 거고.”

“그렇겠지?”

“당연하지.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 우리 해야 할 게 많잖아.”

“아, 맞다! 우리 영상 봐야지! 어떻게 찍혔는지 보자!”

거실에 누워 있던 우주가 후다닥 일어나 다시 보기 채널을 틀었다.

“역시 유료네.”

“괜찮아. 질러. 내가 결제할게.”

다시 보기에 드는 돈 얼마나 한다고.

내가 쏜다.

뮤직에어를 틀고, 우리가 나오는 시간대를 맞췄다.

“와, 우리다!”

“건하가 카메라 진짜 잘 받는다. PD님이 괜히 말씀하신 게 아닌데?”

“호진이 너 잘생겼다고 너무 칭찬에 후한 거 아니야?”

“진심인걸.”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며 우리는 우리 무대를 감상했다.

기존 녹화분과 교차 편집이 되며 방송되는 ‘Angel’의 모습은 우리가 연습할 때보다 훨씬 더 잘 나왔다.

메이크업 덕분일까.

화면 속 우리는 정말 천사와 악마가 된 듯,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New Taste’는 또 달랐다.

앞서서 보여준 Angel이 진지하고 어두운 느낌이었다면.

New Taste는 상큼함이 가득한 생과일 같은 컨셉이었으니까.

Angel에선 나와 호진이 돋보였다면, New Taste에는 우주가 유독 돋보였다.

본체 성격 자체가 밝고 명량한 우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 번 더 보자!”

우리는 그 영상들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메이크업을 지우고 잘 준비를 마치는 그 순간에도 거실에선 Angel과 New Taste가 들렸다.

*    *    *

이른 아침에 온 황이서의 전화.

-너희 빨리 사무실로 나와야겠다. 두현이 보냈으니까, 같이 와.

잔뜩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 끝에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때문에 무슨 일이 터진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들었었다.

사고라도 친 건가?

싶었는데.

소속사 사무실에 진효원이 앉아 있었다.

“또 만나네요?”

“효원 선배님?”

님이 왜 거기서 나와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