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지상파 방송국 YBC의 음악 방송 뮤직에어의 강윤석 PD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신인 아이돌을 카메라에 담으며 눈을 빛냈다.
“쟤들 신인 맞아?”
“이번에 데뷔하는 신인 그룹이랍니다. GH 엔터 출신이라는데.”
“GH…. 황 프로가 키운 애들이라고?”
“예, 그런 거 같습니다.”
“흐음.”
강 PD는 화면에 비치는 올리오스 멤버들을 보며 팔짱을 끼었다.
단순히 춤을 잘 춘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약간 긴장한 티는 났지만, 무대가 익숙한 듯 음방의 무대를 전체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선두에 선 저 두 센터.
마치 이게 당연하다는 듯 자유자재로 무대와 카메라를 활용하는 모습이 베테랑의 그것과 닮았다.
‘황 프로가 제대로 키웠네.’
황이서가 잘 봐달라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쩐지 자신감에 차 있더라니.
이렇게 키웠으니 차 있을 만했다.
“얘들 무대 두 개 뛴다고 했지?”
“예. 저희 쪽에서 찍는 건 전부 Angel이라는 곡이랍니다.”
“다른 곡은 외부에서 온다고?”
“예.”
“아쉽네. 그것도 현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입맛을 다신 강 PD는 올리오스의 무대를 감상했다.
“짤랑~. 강 PD님, 오랜만이에요.”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짙은 갈색으로 염색한 웨이브 친 머리를 찰랑거리고 있는 진효원이 커피 두 잔을 들고 서 있었다.
진효원.
15년 전, 17살의 나이로 실력파 가수로 데뷔한 그녀는 그 이후로 무려 15년 동안 어떠한 구설수도 나지 않고 탑급 가수로 계속 자리 잡아 온 인기 가수.
그러나 최근 2년간 신규 앨범이 없어 휴식기를 가진 게 아니냐는 말이 팬들 사이에서 오가고 있었다.
실제로 영감이 나오지 않아서 노래를 못 부르고 있다나.
“효원 씨, 앨범도 내지 않은 사람이 여긴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감독님 보러 왔죠.”
손에 든 커피를 마시던 효원이 강 PD에게 다른 커피잔을 내밀었다.
“여기 자주 오면 안 되는데.”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내가 여기서 허튼짓하는 것도 아니고.”
“카라멜 마끼아또네? 카페라떼 이런 거 시키면 내쫓으려고 했는데.”
“제가 감독님 커피 취향은 꿰고 있다고요.”
으음.
빨대로 커피를 마신 진효원이 화면에 보이는 아이돌을 보며 물었다.
“얘들은 누구예요?”
“이번에 데뷔한 신인. 올리오스라고 GH 엔터에서 키운 애들이야.”
“흐응~. 그래요? 비주얼은 좋네. 지금 이거 AR 틀고 하는 거죠?”
“부분 AR이긴 한데, 거의 없다시피 한 걸로 알고 있어.”
“그래요? 생각보다 깔끔한데.”
커피를 홀짝이며 화면을 보던 진효원의 눈가가 성훈의 파트를 듣는 순간 좁혀졌다.
높게 뻗는 고음, 날카로운 외모와는 다르게 청아한 목소리, 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바이브레이션.
“잘 부르네.”
입술 끝이 자기도 모르게 살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재능 있는 후배를 본 기분.
“얘들 잘하는데요?”
“이를 갈고 준비한 거 같더라고.”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파트.
건하가 정민과 성훈 사이로 나와 노래를 불렀고.
이미 성훈으로 올리오스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효원은 건하가 가진 비주얼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푹 빠졌다.
‘좋은데?’
엄청 잘 부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잘 부르는 건 성훈 쪽이지.
그런데 묘하게 사람의 가슴을 간질간질 건드리는 느낌에 그녀도 모르게 눈을 감고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었나 봐?”
강 PD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었어요. 어디서 저런 애들이 나온 거지?”
진효원은 커피를 쭈욱 들이켰다.
아메리카노의 텁텁한 쓴맛이 그녀의 잠든 머리를 깨웠다.
방금 들은 성훈과 건하의 목소리.
저 두 남자 보컬과 자신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면 어떨까?
상상 속 그녀는 자신과 올리오스가 무대 위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화음이 괜찮았다.
반은 장난으로 떠올렸던 아이디어가 가지를 뻗으며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지화 되었다.
머릿속의 뇌 신경이 파바밧 터지면서 영감이 떠올랐다.
‘재밌겠어.’
“이번 앨범 피처링 맡길 보이그룹이 정해졌네요.”
“뭐야. 이제 복귀해?”
“당연하죠. 그러려고 여기 찾아왔는데요. 미리 인사도 할 겸.”
“이야, 진효원의 2년 만에 복귀라니. 조만간 가요탭 불나겠네.”
진효원은 너털웃음을 짓는 강 PD를 마주 보며 웃었다.
“운이 좋았네. 이런 원석도 발견하고.”
그녀는 무대를 마치고 스태프들에게 인사하는 올리오스를 보며 웃었다.
* * *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쳤습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B)이 발현되었습니다.]
[빛나는 스타덤(SS)이 발현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 특별한 관객에게 인정받기]
[서브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감독과 관객들에게 자신의 스타성을 증명했습니다.]
[보상: 5 오픈 마일리지]
[특별한 관객이 당신을 눈여겨 봅니다.]
[보상: 2 오픈 마일리지]
“이게 다 뭐야.”
녹화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자, 핸드폰 화면에 수많은 메시지가 새로 떠 있었다.
스킬이 제대로 먹혔다는 메시지와 퀘스트를 받고 퀘스트를 깼다는 메시지, 심지어 특별한 관객이 보았다는 메시지까지.
“아직 생방은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퀘스트를 깼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도 잠시.
“형, 수고했어!”
우주가 내게 달려와 내 등을 툭 쳤다.
“아직 안 끝났어. 방송용 사전 녹화 무대로 너무 들뜨지 마.”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제 사전 무대로 들뜨면 곤란하지.
“왜. 그래도 무사히 끝낸 건 맞잖아.”
우주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잘한 건 맞지만, 들뜰 정도는 아니라는 거야.”
관객이 있는 무대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건하 말이 맞아. 너무 들뜰 필요는 없어.”
성훈이 내 말을 거들었다.
“진짜 딱딱한 형들.”
그러나 우주도 더 반박하지는 않았다.
아직 무대가 남았다는 건, 우주도 알고 있을 테니까.
나도 신나서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 만땅이지만, 침착함을 유지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지금이고.
본 무대에 들어가기 전에, 녹화용으로 찍은 무대만으로 퀘스트를 깼다는 즐거움을 삼켰다.
그런데.
‘여기에 적힌 특별한 관객은 누구지?’
* * *
시간이 흘러 이제 생방송 무대 들어가기 직전.
“아, 여기에 있었네.”
처음 보는 여자가 우리를 보더니 눈동자를 빛냈다.
그녀는 손에 새까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쪼옥 빨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올리오스, 좋은 이름이네. 반가워요. 나는 진효원이라고 해요.”
“알고 있습니다! 선배님!”
“어머, 내 노래 들어본 적 있어요?”
“선배님의 데뷔곡인 ‘비비부’부터 최근 타이틀곡인 ‘퍼플스타’까지 전부 애창곡입니다.”
“내 노래에 진심이었구나? 이거 정말 고맙네.”
평소엔 침착하고 늘 큰 형 같던 성훈이 평소와는 다르게 흥분해서는 외쳤다.
아, 이거 그거다.
동경하던 연예인을 만난 팬의 얼굴.
하긴, 보컬 중에서 진효원의 팬이 아닌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이 세계의 대한민국에선 진효원의 노래를 모른다면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명한 가수였다.
타고난 음색과 가창력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게임 내에서 주인공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은 그런 인물이었다.
‘원래라면 본격적으로 2집 앨범으로 활동할 때 컴백해서 갈등하는 신부터 나오는 걸로 아는데.’
한참 뒤에나 나와야 하는 사람인데.
그제야 특별한 관객이 있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 사람이 진효원이었나.
“여기 멤버들 이름이 뭐지?”
“아, 저는 유성훈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성훈이 대답했다.
“정민이라고 합니다!”
“최우주입니닷!”
“안호진이에요.”
차례차례 멤버들과 인사를 나눈 진효원의 눈이 마지막으로 내게 향했다.
웃고 있는 그녀는 손을 뻗고 있었고.
“윤건하입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다들 개성 넘치고 좋네요.”
우리를 감상하듯 잠시 살피던 진효원이 싱긋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잘하고 와요. 보고 있을 테니까.”
그 말에 성훈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기절할 거 같았다는 건 비밀로 하겠다.
* * *
“올리오스 들어 가실게요!”
관객들이 보인다.
녹화 방송 때는 없던 무대 아래의 관객들의 모습.
각자 응원하는 아이돌의 팻말을 들고 흔드는 그들 중에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을 기점으로 저 팬 중 몇 명은 우리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올 테니까.
이제 전국으로 생방송 되는 무대에 올라가는 거다.
진정해. 심장아.
“긴장된다.”
우주가 되뇌는 목소리가 들린다.
“걱정하지 마. 아까 잘했잖아. 아까처럼만 하자.”
나는 우주의 어깨를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청심환을 먹은 호진은 확실히 아까보다 나은 듯 떨지 않고 있었다.
“효원 님이 보고 계셔….”
그동안 침착했던 성훈은 눈을 감으며 진효원의 말을 복기하듯 읊었다.
조명이 밝아진다.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조명이 켜짐과 동시에, 전주가 흘러나왔다.
-♪♩~♪♪♬
우주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네가 옆에 있다면.
지금 너를 보지 못해 느끼는 떨림이.
너를 보며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로 느껴지겠지.
조금 전까지 떨었던 우주는 어디로 사라지고,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로 보컬의 시작을 열었다.
우주의 파트가 끝이 나고, 바로 찾아온 내 파트.
[빛나는 스타덤(SS)이 발현되었습니다.]
[최고의 무대를 선보입니다.]
나를 비추는 카메라 렌즈와 아직 우리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팬들에게 읍소하듯 노래를 불렀다.
제발 떠나지 마. 내 곁에 있어 줘.
I can't let you go.
미련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어.
노래 스탯을 C+까지 찍은 뒤, 굳이 AR에만 의존할 이유가 없어 상당 부분을 MR로 작업했다.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 훌륭하게 내 파트를 마쳤다.
더블 센터인 호진이 곧바로 앞으로 나왔다.
세상 누구도 홀릴 거라는 듯 눈을 부릅뜬 호진의 모습은 남자가 보아도 아름다웠다.
어렵고 힘든 걸 알아.
우리 관계를 다시 붙인다는 걸.
걱정 마.
내가 느끼는 끌림만 같이 느끼면 돼.
역시 센터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홀리는 느낌이 들린다.
조명은 계속 우리를 비춘다.
화려한 조명에 눈이 부시지만, 오히려 즐겁다.
사람들의 눈길이 점점 우리에게 오는 것이 느껴졌다.
호진이 말한 가사처럼 느껴지는 본능적인 끌림.
마치 자석으로 이어 붙이는 그 감각이 좋았다.
노래는 클라이맥스로 다다르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어.
세지 못할 만큼 그 많은 우연 중.
하나를 만나 네가 내게 다가오기를.
성훈의 시원한 고음이 무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내가 들었던 어느 때보다 시원한 고음이었다.
진효원이 보고 있는 것 때문일까.
평소보다 힘이 더 들어갔다.
이후 호진과 내가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으로 노래는 끝이 났다.
하아. 하아.
절로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러나 피곤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서 새벽 3시에 일어나 지금까지 대기하고, 무대에서 격렬하게 춤사위를 이어 갔음에도.
오히려 내 심장은 더 뛰고 있었다.
아래에서 팬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격려의 박수 소리도 사방에서 들렸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서봤던 나였지만, 이런 순수한 환호성은 사업가로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역시 재밌어.’
무대 위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을 느끼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 * *
[메인 퀘스트: GH 엔터 소속 아이돌로 데뷔하세요.]
[메인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보상: 10 오픈 마일리지]
됐다.
드디어 캐릭터 삭제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됐어. 됐다고.
첫 번째 산을 넘었어.
이제 윤건하의 진엔딩 보상인, 원래 세계로의 회귀를 위한 위대한 한 걸음을 걸었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캐릭터 삭제는….
띠링!
[메인 퀘스트: 제한 시간 내 Top 10에 성공하세요.]
[성공 시: ???]
[실패 시: 캐릭터 삭제]
썅!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진정하자.
어차피 예상했잖아.
데뷔로 퀘스트가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건.
Top 10.
쉽지 않은 퀘스트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제한 시간은?’
[실패까지: 119일 59분 59초]
멤버들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우. 진짜 힘들었다아.”
축 늘어진 정민과 호진.
우주는 아직도 무대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감정 표현이 적은 성훈마저도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진짜 고생했다. 첫 무대 진짜 잘했다, 우리.”
녹화 무대와 생방송 무대까지.
모난 곳 없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무대였다.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이었다.
“어? 진성 선배 SNS에 우리 태그해서 올리셨다!”
우주가 핸드폰을 방방 흔들며 외쳤다.
“정말?”
멤버들이 모두 우주에게 우르르 몰려갈 때.
우우웅.
내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한진성
무대 끝나자마자 전화라.
보고 있었나.
“예, 선배님.”
-잘 봤어. 잘하던데?
“감사합니다.”
SNS를 감상하던 멤버들이 이젠 내게 달려들었다.
“어? 건하 형, 지금 진성 선배님이야? 선배님 싸랑해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봤구나? 내가 올린 거. 너희 앨범 듣는 거 인터넷에 인증하고 태그 올렸거든.
“감사합니다.”
한진성이 수화기 너머에서 큭큭 대며 웃었다.
-잘 짰더라. 괜찮게 나온 거 같던데? 노래도 좋고.
감상평을 말하던 한진성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좋은 소식?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