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흐음.”
황이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얘들 뭐냐?”
“그러게요.”
“씨이팔, 기습 컴백? 지금 누굴 엿먹이려고!”
황이서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종이를 내던졌다.
펄럭!
라이언의 기습 컴백 앨범이 나올 거라는 기사였다.
‘프린트하길 잘했다.’
날아가는 종이를 보며 김문식 대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날아가는 게 자기 핸드폰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빌어먹을.”
애써 굵직굵직한 아이돌들 데뷔 시기를 파악해서 어떻게든 빈 시기를 하나 찾아 집어넣은 건데.
2주라는 짧은 무주공산.
이번 올리오스의 성공을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던져가며 발품 팔아 알아 온 정보였는데.
그런데 이 상황에서 라이언이라니!
테오 엔터테인먼트의 최정상 힙합 보이그룹 아이돌.
내는 앨범마다 차트 1위를 찍는 건 기본이요. 앨범의 수록곡들을 전부 줄 세우기로 가득 채우는 것으로 유명한 아이돌이었다.
멤버들의 군대 문제로 냈던 7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4년간 활동이 하나도 없었다.
멤버 전원이 전역하고도 2년간 활동은커녕 관련 뉴스도 나오지 않자, 내부적으로 다툼이 있던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던 라이언.
이제는 잊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그룹이 깜짝 복귀라니.
“하아, 자기들이 이거 다 먹으면 신인들은 뭐 먹고 살라고.”
라이언의 데뷔는 바로 열흘 뒤.
2주 정도 있던 짧은 무주공산의 기간이 절반이나 줄어버렸다.
“그래도 1주 정도는 노릴 수 있는 기간이 있으니, 이때라도 IN100 들어가는 걸 목표로 삼죠.”
“그래. 차트인만 하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
테오 개새끼들.
가장 중요한 소식을 안 뱉고 있었다.
하긴, 너희도 절박했겠지.
이해한다. 시부럴.
테오 엔터테이먼트.
국내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MAE가 대규모 멤버로 승부를 본다면, 유독 힙합 쪽의 아이돌 그룹으로 강세를 보였던 엔터였다.
라이언의 4년간 활동 정지로 주춤했던 회사의 기세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이었겠지.
GH 엔터 역시 몬스터즈 이후로 성공한 그룹이 없는 비슷한 입장이니 실무자들이 이해는 갔다.
황이서는 인터넷을 검색해 티저 영상을 보았다.
“돈 쓴 티가 나네.”
배경과 여러 환경을 그린 CG는 화려하면서 섬세했다. 이게 말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지만, 정말 그랬다. 카메라도 영화에서나 많이 쓰이는 고성능 카메라로 녹화한 티가 났다. 심지어 애들 스타일링은 또 어떤가?
패셔니스타로 이름난 라이언의 레오는 신이 바뀔 때마다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었는데, 그게 또 엄청 세련됐다.
‘중요한 건 노래겠지만.’
사소한 디테일 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게 보였다.
라이언도 테오도 이번 복귀에 힘을 엄청 쏟았다는 게 티저에서부터 드러났다.
“라이언 얘들 음방 일정은 파악한 거 있어?”
“연락해 봤는데, 실제 무대에는 안 오른다고 합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
올리오스는 1등을 노리는 건 아니다.
황이서가 스스로 정한 올리오스의 최종 목표는 100위 안에 들며 대중들에게 우리가 있다는 걸 알리는 것.
이왕이면 50위 안까지 들었으면 했지만, 그건 이상적인 목표.
60위권 쪽에서만 놀아도 데뷔 그룹치고는 훌륭한 성적이다.
‘1위가 제일 좋겠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라이언의 앨범이 줄 세우기를 해버린다면 상위 열 자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하아. 그렇다고 물러설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당장 사흘 후가 데뷔다.
지금 상황에서 데뷔를 미루는 거?
그룹을 말아먹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만큼 좋은 시기가 없었다.
굵직한 아이돌들은 활동을 멈추고 유명 그룹들이 이제 티저 영상을 내는 이 시기.
“김 대리, 우리 티저는 언제 올렸지?”
“나흘 전에 올렸습니다. 데뷔곡이라 조회 수는 아쉽긴 하지만, 좋아요나 댓글 반응은 좋습니다.”
황이서는 티저 영상을 확인했다.
멤버들의 실루엣이 보이는 영상에 Angel의 전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뜻언뜻 비치는 올리오스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웠다.
-GH 엔터 새로 데뷔한다는 애들인가?
-이름이 뭔데?
⌎제목에 나와 있잖아 올리오스라고;
-앞의 멤버들 사진이 실린 링크까지 원문입니다. GH에서 칼 갈고 나왔다던데?
-GH에서 몬스터즈 말고 돌 있는지 처음 앎ㅋ
-잘생기긴 했는데…. 그래봤자 GH임. 얘들 몬스터즈 이후로 성공한 거 없자늠.
⌎또 나오기도 전부터 억까하네;
⌎응 바람잡이 아웃! 또 고스타 꼴 날 거야.
-다들 잘생기긴 했다.
-노래도 좋을 거 같은데, 궁금하네.
소속사에서 올린 바람잡이 댓글과 진짜 팬들의 반응이 섞여 있었다.
조회 수에 비해 댓글은 많은 편이었다.
‘그만큼 티저에 나온 애들의 모습에 끌렸다는 거야.’
아직은 대부분 좋은 댓글이 많았다.
본 사람들의 반응은 분명 좋았다.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볼 유입이 상당히 적다는 것.
이건 단순히 라이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연이은 GH 엔터의 실패.
이게 작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빡세네. 진짜.”
이전의 그룹들이 망해 버렸기에 더욱 사활을 걸어야만 했다.
거듭된 배우와 걸그룹의 실패는 몬스터즈로 키운 회사의 규모를 정체되게 만들었다.
“고스타라….”
유독 그 악플이 눈에 들어왔다.
걸그룹 슈퍼스타는 황이서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망한 슈퍼스타의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멤버가 바로 현재 배우로 활동하는 채윤아.
채윤아에겐 항상 슈스타의 활동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었다.
팬들이 줄여서 슈스타라고들 많이 불렀는데, 슈스타 해체 후 비아냥거리는 윤아의 안티들이 멸칭으로 고스타라고 부르거나 고아라고 부르고 있었다.
처음 그 악플을 봤을 때 윤아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후우. 슈스타의 절차는 밟으면 안 돼.”
전부 다 믿음직스러운 애들이지만, 왜 이리 불안할까.
분명 순풍을 타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너무 큰 변수를 만났어.”
라이언이라는 큰 파도를 만나 생긴 변수.
사실상 우리가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은 1주.
그 안에 어떻게든 100위 안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들어가기만 한다면….”
유입은 기대해 볼 만할 거다.
* * *
누군가가 강제로 시간을 끌어당긴 것도 아닌데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눈을 감았다 뜨니 벌써 이틀 뒤가 음악 방송 데뷔 무대.
내일은 방송 준비로 이리저리 불려가고, 뿌리 염색 때문에 미용실까지 찾아가야 했다.
내일도 순식간에 지나가겠지.
아직도 얼떨떨했다.
분명 내부 테스트를 위해 무대에 선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
특히 앨범 컨셉이 정해지고 시간이 더 빨라지더라.
데뷔 앨범에 쓰일 커버를 찍기 위해 화보를 찍기도 했고.
뮤직 비디오 촬영에, 앨범에 쓰일 노래 녹음. 그리고 New Taste에 맞는 샘플 촬영에, 앨범은 아니더라도 우리끼리 홍보하겠다며 찍은 영상, 거기에 맞는 스타일링 및 사진 촬영까지.
이 와중에도 매일 하는 연습은 잊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까 엄청 바빴네. 우리.
어쩌면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생각해보니 시간이 빠르다고 느낀 건 단순히 연습만을 반복했던 일상에, 새로운 스케줄이 자꾸만 추가됐기 때문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넵.”
“내일 데뷔 준비하다 보면 따로 감상할 시간은 하나도 없을 거다. 모레 새벽부터 음악 방송을 찾아가야 한다고.”
황이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 데뷔 이후 다음 주에 라이언이 복귀 앨범을 낸다고 했다.”
“알고 있습니다!”
라이언.
게임에서도 대박 남돌 그룹으로 나오는 멤버.
주인공이 넘어야 하는 산으로 나오던 라이언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을 가진 실력파 힙합 아이돌 그룹이었다.
몇 번이고 나타나 주인공 아이돌 그룹과 경쟁하는 선의의 경쟁자.
‘시작부터 난관이네.’
그러나 첫 데뷔부터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이기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팬덤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너희도 나도 우리 모두 이 악물고 준비했다. 그러니 열심히 하자.”
“네!”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된다. 잘해야지.
그러지 못하면 도태된다.
“그리고 너희한테 더 말해줄 게 있는데….”
뭐지.
“앞으로 너희를 담당할 로드를 소개할게.”
“로드 매니저 구해졌습니까?”
“그렇지. 2주일은 내가 함께할 거야. 다른 소속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신입이니까 수습 기간은 거쳐야지. 사실 훨씬 일찍부터 구했어야 하는데….”
황이서라고 매일 우리와 붙어 있을 수는 없었다.
프로듀서는 프로듀서의 일이 있는 법.
아이돌 팀에서 실장 역할을 함께하는 그는 앞으로 본격적으로 활동할 우리의 스케줄까지 전부 담당해야 할 사람이었다.
사실 황이서의 말대로, 이미 구해졌어야 하지만 사람 구하는 게 맘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이제라도 구했으니 다행이지.
“두현아, 들어와라.”
그 말에 문이 열리고 키가 190은 넘어 보이는 장정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와, 크다….”
우주의 감탄사대로였다.
키는 190이 넘었고, 어깨도 떡 벌어진 것이 범상치 않은 게, 운동 좀 한 것처럼 보였다.
액면가는 한 서른?
햇볕에 타서 그을린 피부와 단정하게 자른 스포츠머리 때문에 단순히 매니저보단 스포츠 선수처럼 느껴졌다.
“반갑슴다! 앞으로 올리오스의 전담 매니저가 될 이두현이라고 함다!”
기차화통보다 훨씬 큰 목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두현이는 로드 매니저가 처음인 신입이다. 두현아, 너 나이가 어떻게 되지?”
“스물다섯임다!”
“스물다섯?”
나도 모르게 외쳤다.
“너희보다 나이가 좀 많지만, 그래도 비슷한 나이대니까 서로 잘 통할 거 같아서 데리고 왔다.”
“잘 부탁드림다!”
이두현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올리오스 스케줄은 여전히 내가 관리하겠지만, 현장까지 따라가는 건 두현이가 대신해줄 거야. 그러니까 서로 친하게 지내라고.”
“네.”
나는 이두현을 보았다.
매니저보단 보디가드 느낌이 훨씬 더 많이 나는 남자가 우리 앞에서 쭈뼛쭈뼛 서 있었다.
“두현이 형,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네, 잘 부탁함다.”
“말 편하게 하셔도 되는데, 우리가 두현이 형보다 나이가 어리거든요.”
가장 나이가 많은 성훈도 스물둘.
우주는 아직 열여덟 살.
“아, 그, 그래도 될까?”
“물론이죠! 두현이 형은 어디 사시나요?”
“나는 어렸을 때는 부산에서….”
확실히 우주가 친화력 대장이다.
벌써 이두현의 옆에 착 붙어서 이리저리 수다를 시작했다.
매니저까지.
아직도 모레가 데뷔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일 밤은 멤버 여럿이 잠을 좀 설치겠다.
* * *
이틀 뒤, 데뷔 당일.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아니 애초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잠이 올까.
당장 오늘이 데뷔인데.
새벽도 아닌, 한밤중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과 이제 진짜 실전에 투입된다는 설렘이 하루 종일 정신을 말똥말똥하게 만들었다.
“애들아, 가자!”
드디어 시작이다.
올리오스의 본격적인 데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