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김예리는 메이크업을 마친 우리를 데리고 의상실로 향했다.
“이게 오늘 입을 옷이거든? 한 명당 8벌 정도 갈아입어야 하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입을 의상은 대체로 하얀색이었다.
역시 천사라 이건가.
눈이 부시다.
재질도 특이했다.
“스판 재질이네요?”
“그럼. 무대 위에서 춤추는 애들한테 평범한 면 정장 입혔다간 무대 위에서 사고 난다.”
사고라 함은 역시.
“찢어지는 거죠?”
“잘 알고 있네.”
그렇지. 무대 위에서 찢어지면 그건 사고지.
“근데 확실히 이미지가 강렬하네요.”
“컨셉이 워낙 세니까. New Taste에서 입을 옷들은 훨씬 더 차분하게 디자인될 거야.”
“으음…. 저희 옷은 어둡네요.”
정민과 호진의 옷은 내 것과는 정반대였다.
스타일이 비슷한 정장이었지만, 가죽 재킷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재질이었다.
대조되는 두 색깔의 상반된 옷을 입은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옷을 마저 입었다.
천사와 악마.
말로만 들었을 때는 확실히 다가오지 않던 이미지가 메이크업에 옷까지 갖춰 입고 나서야 확실하게 느껴졌다.
“너희 진짜 저승사자 같다.”
특히 호진.
그렇지 않아도 얼굴이 하얀 애가 메이크업에 아이라인까지 짙게 그리고 검은 옷을 입으니 이건 완전.
“노트에 이름 적으면 진짜 일 나겠는데?”
정민이도 얼굴에 드리운 은은한 미소만 지운다면 완벽하리라 생각했다.
“건하 형도 하얀색 진짜 잘 어울린다.”
특히 가장 신선한 건 성훈이었다.
센터는 아니지만 대조되는 하얀색, 검은색 옷을 입은 우리와 다르게 약간 밝은 톤의 회색 정장을 입으니 튀는 느낌은 있었다.
‘회사원이네.’
진짜 잘생긴 회사원.
툭툭 말을 던지면서도 은근히 알뜰살뜰하게 사람을 잘 챙기는, 그래서 회사에서 여직원들의 대시도 몇 번 받았지만 본인은 일에 미쳐 출세에 올인하는 그런 완벽주의자 회사원.
일을 너무 잘해서 상사들에겐 사랑받고 부하직원에게는 귀찮은 상사라며 질투 섞인 뒷말을 듣는 그런 직원.
황이서 프로듀서가 더블 센터가 정해지고 왜 성훈을 인간 역으로 맡겼는지 알 거 같았다.
우리끼리 감상을 하고 있는데.
“자, 올리오스 팀 나오실게요!”
조연출의 외침과 함께 우리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 * *
“컨셉 아트 보내준 것처럼 끊지 않고 촬영을 계속할 거예요. 중간에 애매하면 끊어서 들어가긴 할 건데, 춤을 추는 댄스 영상은 첫 테이크는 무조건 커트 없이 들어갈 겁니다. 무대에 서서 보여준다는 느낌으로 확실하게 완곡해 주시고, 두 번째부터 벌스 별로 자르고 들어갑니다. 개인 연기 신은 이거 마치고….”
황이서는 뭐 하고 있나 싶었는데, 살짝 떨어진 자리에서 직원과 함께 카메라로 우리를 찍고 있었다.
“비하인드 컷은 일단 많이 찍어두면 좋아.”
“네, 알겠습니다.”
“이번 촬영에 캐릭터를 잡을 수 있는 한 방이 찍혔으면 좋겠네. 우리 이런 그룹이다! 라고 외칠 수 있는 거 말이야.”
뮤비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올라가는 올리오스 멤버를 바라보던 황이서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 * *
“후우우.”
세트장에 만들어진 무대 위에 선 나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오늘을 우리 무대를 찾아온 관객은 조금 특별했다.
뮤직 비디오를 찍어줄 감독과 스태프들 그리고 몇 대의 카메라.
그게 오늘 우리를 찾아온 관객이다.
어떻게든 더 좋은 컷을 따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관찰할 열정 넘치는 관객.
몇 명 되지 않은 인원이었지만, 그들이 내는 열기는 누구보다 뜨거웠다.
실망시킬 수는 없지.
이번 뮤직 비디오가 어떻게 찍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전원 스탠바이 하시고. 자, 그럼 슛 들어갑니다.”
뮤비 감독의 신호와 함께 카메라에 붉은빛이 떴다.
녹화를 알리는 붉은 빛이 뜨자마자, 주위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옅어졌다.
카메라 렌즈가 마치 물감으로 지워지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오직 멤버들과 음악 소리.
이 두 가지만이 남아 있었다.
우주의 도입부 파트가 빠르게 지나갔다.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입을 열었다. 제대로 들어간 박자 타이밍.
처음 시작이 좋다.
들어가는 타이밍이 어려울 뿐, 한 번 들어간 노래의 박자를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노래와 내가 하나가 되어가는 걸 느꼈다.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애쓰지 않아도, 어디서 어떻게 춰야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마치 노래가 나를 이끄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수도 없이 많이 해온 연습의 결과물이었다.
나와 호진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서로의 위치에서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그 움직임 속에서 단 한 번도 동선이 꼬이는 일은 없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우리는 무대를 꾸며나갔다.
이렇게 몰입한 건 나뿐만이 아닌 듯, 다른 멤버들도 모두 곡과 하나 되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악마를 맡은 호진과 정민은 웃음기를 완전히 지우고 노려보는 듯 차갑고 날카롭게 상대를 유혹하듯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
반면 나와 우주는 약간의 미소를 띠고, 저 둘보다는 조금은 부드러운 표정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호진과 눈을 마주치는 부분에서는 그 옅은 미소조차도 사라졌지만 말이다.
성훈은 그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 불안한 모습이었다.
곡이 이어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린다.
군무가 완벽하게 맞춰지는 느낌은 생각보다 꽤 재미있었다.
마치 모양이 딱 맞는 퍼즐을 완벽하게 끼웠을 때의 쾌감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작지만, 환호성이 들린다.
노래에 몰입한 내 귀에 들리는 환청일 거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테이프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소리를 낼 멍청한 스태프는 없을 테니까.
내가 스스로 만족했다는 뜻이리라.
들려오는 환호성을 그렇게 해석했다.
노래는 클라이맥스를 지나 마지막 엔딩까지 다다랐다.
쿵!
피날레 동작과 함께 곡이 끝이 났다.
노래와 함께 하는 격한 춤은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요했다. 연습과 운동으로 늘어난 체력에도 막바지에는 숨이 절로 거칠어졌다.
“하아, 하아.”
어깨가 들썩거렸다.
숨을 몰아쉴 때마다 사라졌던 카메라가, 스태프가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몰입이 깨지는 그 순간의 아쉬움이 내 마음을 잠식했다.
‘재밌다.’
연습 때는 힘들기만 했던 군무가 생각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힘들긴 하지만, 보람은 있달까.
그래, 이렇게 오는 게 있어야지.
“오케이! 좋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다음 신부터는 중간 커트하고 갈게요. 생각보다 춤이 격해서 후반부엔 땀이 나는 게 티가 나네요.”
“알겠습니다!”
“스타일리스트들! 화장 정비해 주고 의상 새 걸로 환복해서 20분 뒤에 바로 들어갈게요!”
완벽한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무대를 데뷔 무대에서 보여줬어야 했는데.
나는 땀을 주륵주륵 흘린 채로 물병에 담긴 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후하!”
얼음처럼 시원한 물을 마셨음에도 나를 달아오르게 만든 곡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여전히 부족하다.
더워.
이 열기를 해소하고 싶어.
차가운 물로 머리부터 그대로 등목이라도 하고 싶다고.
나는 갑갑한 정장을 벗었다.
탈의실까지 들어가기엔 너무나도 덥고 답답했다.
정장에 셔츠만 벗으면 될 거야.
상의를 전부 벗은 나는 달랑 언더웨어만 입은 꼴이 되었다.
아직도 더웠다.
그렇다고 더 벗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후우우.”
언더웨어 옷자락을 살짝 들어 나풀나풀 바람을 부쳤다.
시원한 바람에 배에서부터 올라와 전신을 쓸었다.
옷자락을 살짝 드는 바람에 아랫배가 살짝 드러났지만, 괜찮다.
운동을 많이 한 덕분에 근육이 옹골차게 자리 잡고 있어서, 혹여 누가 본다고 해도 숨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자랑스럽게 드러낼 것도 아니지만.
‘사진만 안 찍히면 되지.’
찰칵!
어디선가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프로듀서님?”
“방금 그 샷 굉장히 좋았어. 옷을 살짝 들어서 복근만 노출되는 그 샷, 나중에 좋게 쓰일 거다.”
그는 엄지를 올리며 눈빛을 반짝였다.
* * *
황이서는 올리오스 애들이 옷을 갈아입고 정비하는 동안, 그는 완성된 결과물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괜찮은데?”
“그렇죠? 아무리 생각해도 애들이 느낌을 잘 아는 거 같아요. 카메라 움직일 때 시선 처리도 같이 해주는 게 좋네요.”
“흐음, 묘하게 끌리네.”
“그런데 후반부 정말 쓰실 겁니까? 땀 때문에 확실히 느낌이 다른데.”
“너무 좋아서 버리기는 아까운데….”
황이서의 눈은 화면에 비치는 멤버들에게 향해 있었다.
총 세 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메인 카메라와 액션성을 조금 돋보이게 만드는 지미집,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같은 장면도 다른 감성을 낼 수 있게끔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다.
세 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비추고 있음에도 무대가 익숙하다는 듯, 애들은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찾았다.
모든 신이 완벽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버릴 신은 딱히 찾아볼 수 없었다.
“일단 다른 테이크 찍어보고 결정하지. 다음에 찍은 게 더 좋으면 나중에 비하인드 컷으로 내면 되겠어.”
“그러죠. 저야 선배님이 하자는 대로 하는 거니까.”
“무슨 말이야. 강 감독 없었으면 나는 누구랑 찍나?”
황이서는 믿음직한 후배인 강 감독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마스크가 매력적이니까 확실히 맛이 나네.”
말하는 황이서의 눈은 화면 속 건하에게 고정된 채였다.
아까 무대에서 췄을 때도, 영상에서도.
건하의 모습이 자꾸만 황이서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대단하지 않은, 다른 멤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몸짓과 표정임에도 벗어날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게 대스타의 자질인가.’
곧 실없는 생각이라며 헛웃음을 쳤다.
“참 재밌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말이야.
* * *
여섯 시간.
우리가 뮤직 비디오를 찍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젠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김예리가 화장을 고쳐주는 것도 이제 수십 번째.
워낙 강렬한 화장이었기에, 땀을 조금만 흘려도 밸런스가 엉망이 되어 매번 화장을 수정했다.
과장 조금 섞어서 찍는 시간보다 화장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더 걸릴 정도였다.
오랜만에 진이 빠진다는 감각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스튜디오 안에 에어컨을 켜고 있어도 격렬한 춤을 수십 번이고 반복해서 추다 보면 없던 더위도 생기더라.
에어컨 최저 온도로 맞춰주시면 안 될까요.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호진을 중심으로 한 신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열연 중이었다.
같은 센터인 내 중심으로도 한 번 더 찍어야 한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센터, 첫 뮤비 촬영은 어때?”
그때, 황이서가 찾아와 물었다.
“힘드네요.”
어렵게 꺼낸 소감에 황이서가 끌끌 웃었다.
“크크, 앞으로 성공하면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다. 그때가 되면 오늘처럼 이렇게 쉴 수 있는 게 복이었다고 말할 거라니까? 크크크.”
나도 마주 웃는다.
성공한 연예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떤 스케줄을 맞이하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이젠 능숙해졌더라. 처음과 다르게. 사람들 앞에서도 떨지 않고 잘하네. 누가 너를 데뷔조에서 떨어진 연습생으로 보겠냐.”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너무 빨리 칭찬해 주시는 거 아니에요?”
“데뷔를 안 했으니까 칭찬하는 거다. 데뷔한 뒤에는 욕만 무지하게 할 거야. 너희가 방심하고 들뜨지 않게.”
“…….”
“왜, 꼬우냐?”
“꼽다뇨, 고마운 거죠. 진정으로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삶에 얼마나 있을까요.”
“크크크, 말을 재밌게 하네.”
나를 보던 황이서가 내 등을 툭툭 두드렸다.
커다란 손으로 등을 가볍게 치는데.
우와, 진짜 아팠다.
“앞으로 고생 좀 할 거다. 내가 봤을 때 진짜 괜찮게 나왔거든. 우리가 음방 1등은 못해도 적어도. 차트 100 안에는 들어갈 거다. 확신한다.”
“프로듀서님도 그래요?”
저도 그렇습니다.
“건하 씨, 이제 마지막 촬영 들어갈게요!”
“갔다 와라. 잘하고 와.”
“알겠습니다.”
그렇게 뮤직 비디오의 마지막 촬영까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