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5화 (25/236)

<제25화>

센터를 정한다는 황이서의 말에 모두의 눈이 반짝거렸다.

나 역시 황이서의 말에 집중했다.

센터는 여러 명이 한 팀으로 묶이는 아이돌 특성상,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었다.

가장 카메라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무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가장 많은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

말그대로, 그룹을 대표하는 아이돌의 얼굴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였다.

앨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다들 이렇게 눈을 빛내며 황이서의 말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리라.

거기다가 나는 센터가 되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왜 그러냐고.

<마이 아이돌>에서 센터는 캐릭터 육성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센터에 오를 경우 이후 게임 내 재화 획득 보너스가 존재했다.

게다가 모든 무대는 아니었지만, 특히 데뷔 타이틀곡의 센터는 모든 스탯 +1이라는 엄청난 보너스 스탯을 부여하는 효과까지 있다.

포인트를 따로 투자하지 않아도 각종 스탯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만약 센터가 되지 못한다면, 최소한 최후 2인 후보만이라도.

원래라면 최후 2인에 오르기만 해도, 게임 내 재화를 지급했다. 여기서는 재화 대신 마일리지를 지급하니, 적어도 1 마일리지 정도는 주지 않겠어?

“우선 곡 컨셉부터 얘기할게. 다들 대충 알고 있겠지만, 이번 너희들의 타이틀곡은 이거다.”

황이서 프로듀서가 작업된 곡을 재생했다.

- ♪♩♩♪♬

빠른 비트가 인상적인 하우스 풍의 곡이었다.

신스 팝과 뉴 디스코에 영향을 받은 비트와 사운드가 녹음실에 울렸다.

GH와 전속 계약한 작곡가가 만든 노래였다.

소속사 작업실을 지날 때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가장 마지막까지 완성되지 않았던 노래.

타이틀곡으로 생각했던 노래가 생각보다 완성이 늦어져서, 타이틀곡 선정까지 시간이 더 걸린 느낌이었다.

기본적으로 댄스곡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너무 좋았다.

귀는 물론이고, 가슴까지 울리는 비트에 그 위에 깔리는 신디사이저 특유의 멜로디, 중간중간 들리는 기타 음까지.

듣는데 나도 모르게 어깨가 꿈틀거렸다니까.

듣는 내내 흥이 돌아서 온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제목은 ‘Angel’이야. 천사 같은 사랑을 만났다는 의미로 지었다. 겉은 천사였으나 그 천사 같은 사람 역시 언제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컨셉이지. 너희들 복장은 천사와 악마 느낌으로 갈 거고.”

황 프로는 이미 다 계획되어 있는 곡 컨셉과 연출을 줄줄이 얘기했다.

“두 사람은 악마 컨셉이니까 최대한 검은색으로 무대 의상을 맞출 거야. 두 사람은 천사 컨셉이라 하얀 정장 슈트를 입힐 생각이다. 대비되는 느낌을 제대로 살려야겠지?”

“나머지 한 명은요?”

내 질문에 황 프로가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루시퍼 알지? 타락한 천사 느낌으로 가져가야지! 대비되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해.”

황 프로가 흥분한 듯 작품 컨셉을 설명했다.

작품에, 그리고 우리에게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 표정과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천사와 악마 그리고 루시퍼라.

오글거리긴 하지만, 스테디하게 자주 나오는 컨셉이기도 했다.

데뷔 초반에 아이돌의 캐릭터를 잡고 세계관을 만들기에 이만한 게 없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연기력도 중요한 포지션이지.”

“사실상 센터네요.”

성훈의 말에 황 프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센터야. 가장 중요한 자리지. 부담도 많이 되는 자리기도 해.”

잠시 뜸을 들인 황 프로가 턱을 쓸며 입을 열었다.

그가 고민할 때마다 자주 보이는 습관이었다.

“맞아. 그래서 계속 고민했는데….”

턱을 쓰다듬던 황 프로가 나와 호진을 번갈아 보았다.

“건하와 호진이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황 프로의 말에 정민은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름 기대를 했는지 우주는 약간 아쉬운 탄성을 뱉었다. 성훈은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묘한 표정을, 그리고 호진은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각자 다른 반응이 재밌었다.

그럼에도 대체로 후보 두 명에 대해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어땠냐고.

포커페이스를 지켰지.

내가 이런 건 또 잘한다고.

‘최종 2인이라고? 내가?’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느라 고역이었다.

사실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 후보에 든 이상, 무조건 따내야겠다.

이런 기회를 쉽게 놓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호진이를 생각했다. 댄스가 되고 곡 해석도 뛰어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다시 내게 시선이 닿았다.

“내부 테스트 때 보니까 건하가 생각보다 표현력이 좋더라고.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 건하와 호진이 중에 누가 좋을지.”

그래서 서브 퀘스트가 뜬 거다.

원래 후보가 아니었던 내가 여러 조건을 달성한 덕분에 센터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냐? 건하랑 호진이.”

황 프로가 나와 호진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센터가 누가 됐으면 좋겠냐고?

글쎄.

쉽게 대답할 질문은 아니다.

누가 센터를 섰을 때 더 좋은 그림을 만들 수 있느냐.

더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느냐.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센터 한 명 때문에 이미지가 바뀔 수도 있었다.

그러니 조금 더 신중하게….

“저는 제가 더 맞는다고 생각해요.”

호진이 먼저 나섰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센터를 하고 싶은 욕심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꿈꿔온 듯했다.

지금 호진은 진심으로 센터를 노리고 있었다.

평소 과묵하고 말수가 적던 호진이, 자신있게 앞에 나서는 것만 봐도 말 다했지.

“호진이는 그렇고, 건하 너는?”

복합적으로 따졌을 때, 호진이가 센터를 서면 댄스의 퀄리티 면에서 조금 더 나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저도 제가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호오?”

춤만으로 앨범이 완성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외모로는 지금 누구한테도 안 꿀린다고.

그리고 보너스 스탯을 놓칠 수야 없지.

호진이 흠칫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놀랐어.

호진아, 미안하지만 형도 센터 자리는 양보 못 하겠다.

나도 진심이거든.

센터 말이야.

호진이가 열심히 한 것도, 실력이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윤건하는 물론이고 나도 결코 누구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게다가 한진성에게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는데, 시작부터 밀릴 수는 없지.

“둘 다 자신 있다는 거지?”

“예.”

우리의 대답에 만족한 듯 황이서가 웃었다.

그래야지.

꼭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았다.

“실력은 둘 다 부족함이 없는 걸 공연에서 증명했으니 굳이 한 번 더 보여 달라는 말은 필요 없겠고….”

잠시 생각하던 황 프로가 뒤에 있던 다른 멤버들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 두 사람이 어떤지 아직도 고민 중이다. 당사자 두 명도 모두 자신 있어 하고. 만약 누구 한 명이 양보했다면 모를까, 이제는 두 센터 후보가 생겼는데.”

황이서의 목소리가 무겁고 진중해졌다.

평소 그가 보여줬던 큰형님 같은 모습이 아닌, 냉철한 프로듀서의 얼굴이었다.

“우선 너희끼리 정하게 하고 싶지만, 그게 어렵다면 내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두 센터 후보 중에 적합한 사람을 뽑게 할 생각이다.”

투표라.

애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거다.

당사자인 우리는 자신을 지목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은 달랐다.

누군가 한 명을 지목하면 다른 누군가와는 사이가 서먹해지는 게 당연한 질문.

“저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보여주는 게 좋을 거 같아요. GH 엔터에서 오래 일한 분들이니, 객관적인 평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민이 의견을 덧붙였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습니다.”

“그럼 투표로 할까?”

그러나 성훈도 직접 투표로 하자는 질문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누구 하나를 뽑았을 때 생기는 후폭풍을 예상할 수 없으니까.

아, 이런 퀘스트였지.

서브 퀘스트, [센터 포지션엔 누구?]

게임 내에서 이 이벤트를 맞이했을 때는 항상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센터를 섰을 때 생기는 이득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대부분 투표로 진행됐지.’

내부 평가를 진행하게 되면, 의사를 결정하기 위해 시간이 딜레이되고,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무대 준비가 부족해졌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끝나는 투표 방식을 유저들이 많이들 택했다.

‘컷신으로 잠깐 넘어가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너무 잔인한 방식이었다.

그렇게 함께 노력했는데, 그중에서 더 잘하는 멤버를 뽑으라니.

“나도 이런 식으로 뽑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들 워낙 가능성이 있고, 누구 하나를 버리고 싶지 않아서….”

황이서가 착잡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았다.

“어떤 식으로든 센터는 정해야 한다. 너희에게 선택권을 주려고 해. 내부 평가를 한 번 더 치를까? 그게 아니라면 너희들이 뽑을래?”

당연하게도 모두는 침묵을 지켰다.

“하아.”

다들 말이 없자, 황이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이 따로 말하는 건 어려워 보이네. 그럼 내부 평가로 넘어간다?”

내부 평가라.

결국 나와 호진이 경쟁을 해서 센터 자리를 따내라는 것이다.

경쟁.

높은 성과를 따내기 위해서는 팀 내에서 경쟁을 시키는 구도가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내곤 했다.

기업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경영 전략이었다.

나 역시 기업을 운영했을 때 사용했었다.

내부 사원들끼리 실적을 경쟁하고, 보다 좋은 성과를 낸 이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했었지.

그런데 이게 맞는 걸까.

우린 아이돌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것보다 더 오묘한 결이 있는 아이돌.

뚜렷한 성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팬들에게 기쁨을 주고 매력을 어필해야 하는 아이돌.

단순히 경쟁을 하고, 윗분들이 골랐다고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멤버들이 초조한 얼굴로 황이서를 바라보고 있던 그 찰나.

“저기, 프로듀서님.”

나는 마음을 결정한 듯 말을 내뱉으려는 황 프로를 불렀다.

“더블 센터는 어떻습니까?”

“뭐?”

센터는 팀을 빛내는 존재.

한 명이 다른 이들보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였다.

센터는 보통 한 명으로 구성한다.

대표하는 멤버를 확실하게 박아두기 위해서.

한 명 좋지.

그럼 두 명이면?

두 명이 되면 안 되는 건가?

무대만 잘 구성한다면, 두 명의 센터가 갖는 이점이 훨씬 많을 거라 확신했다.

“두 명의 센터를 세우자고?”

“예. 그게 좋을 거 같습니다. 프로듀서님도 저희 중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워서 저희에게 투표를 맡기고 싶었던 거 아닌가요?”

“…….”

“그렇다면 아예 두 명이 모두 센터에 오르는 게 더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누구 하나를 버리는 게 아니라, 둘의 장점을 다 취할 수 있게요.”

누구 한 명이 센터가 된다면, 팀 내부적으로 팀워크가 상할 수도 있다.

그럴 애들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사람 속은 모르는 거니까.

“그게 뭘 뜻하는 건지 알지?”

“예, 무대 구성을 아예 바꿔야 한다는 뜻이죠.”

“잘 알고 있네.”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심할 경우엔 무대 컨셉까지 바꿔야 할 수 있는 문제였다.

“단순히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건하 너는 더블 센터가 더 좋은 무대를 꾸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예.”

황이서 프로듀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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