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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4화 (24/236)

<제24화>

모두의 연습이 끝나고 쉬는 시간, 나는 멤버들을 데리고 숙소 근처에 있는 쇼핑몰을 찾았다.

없는 거 빼고는 다 있다는 대형 쇼핑몰.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 어두운 밤거리를 비추는 거대 쇼핑몰의 조명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쇼핑몰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가족끼리 온 이들도, 연인끼리 알콩달콩 데이트를 위해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부모님의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몰을 찾은 이들도 보였다.

가지각색 사람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오랜만이네.

이런 기분.

원래 세계에서도 이런 식으로 쇼핑몰에 와서, 나와 내 주변 사람에게 주는 선물을 고르는 것이 하나의 취미였다.

워낙 돈이 많아 어떻게든 쓰자는 마음가짐으로 매장에 들렸다가 이것저것 사는 맛이 있었다.

‘돈을 엄청 썼었지.’

고급 의류 매장부터 일상 물품을 파는 천원 매장까지.

천억이 넘는 자산가가 되어도 천원 매장은 잊지 않고 찾았었다.

꼭 비싼 걸 산다고 스트레스가 많이 풀리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을 찾았을 때의 성취감이 더 스트레스를 푸는 데 직빵이었다.

그래, <마이 아이돌>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립네.

예전에는 종종 이렇게 나왔는데 말이다.

“아, 사람 사는 냄새.”

멤버들은 선물을 사준다는 말에 다들 의아해했지만, 따라왔다.

“형, 갑자기 무슨 선물이야?”

“기념하자는 거지.”

“무슨 돈이 있어서 사주겠다는 거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이런 날 쓰라고 있는 돈이야. 신경 쓰지 마.”

우주가 유독 걱정하며 물었다.

우주야 걱정 마라. 형 돈 많다.

“그래도….”

“뭐, 사고 싶은 거 있어?”

나는 멤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들 부담스러운 걸까. 아니면 미안한 걸까.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빨리 골라. 여기 계속 서 있기만 하면 시선 집중되겠다.”

실제로 조금씩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돌 준비생, 그것도 이제 데뷔가 얼마 남지 않은 애들이었다.

다들 평범함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얼굴들이었다.

특히 호진.

입만 다물고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자동으로 모을 정도로 잘생겼다.

지금도 봐라.

“저 남자들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

“우와, 어디 연예인인가?”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우리를 보고 있다.

“히히, 우리보고 연예인 아니냬.”

우주는 또 그 말을 언제 들었는지, 좋아 죽으려고 한다.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들떴어.”

“히잉.”

“그것보다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안 사주면 안 보내겠다는 얼굴로 다시 물어보자, 정민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흠…. 진짜 사는 거야?”

“물론이지. 뭐든.”

“그럼 나 조리 도구 좀 사도 될까?”

“그걸로 괜찮아?”

“응, 우리 숙소에 있는 조리 도구가 얼마 없어서 좀 필요했거든.”

“어, 어음…. 그럼 난 이어폰! 선 있는 걸로.”

우주가 뒤늦게 손을 높이 들었다.

“나는 커피콩이면 돼.”

호진이 말했다.

확실히 아침마다 우리가 마실 커피를 직접 우려서 먹었다.

정민이 아침 식단을 요리해서 주는 것만큼 호진 역시 직접 커피를 우려내주는 걸 좋아했다.

다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있다 보면.

‘마, 마실래?’

라면서 블랙커피를 한 잔 건넸다.

산미가 있고 풍미가 깊은 맛이 꽤나 먹기 좋았다.

호진이가 타주는 커피가 또 기가 막혔단 말이지.

“성훈이 형은?”

“난 됐어. 그냥 다들 나오길래 외출 겸해서 나온 거니까.”

성훈은 선물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나저나 다들 너무 소박한 거 아니니?

모처럼 형이 플렉스 하겠다는데 다들 너무 소박한 선물만을 골랐다.

“일단 사러 가자. 비싼 거 사도 좋아. 그러려고 온 거니까.”

우리 다섯은 쇼핑몰 안을 마음껏 돌아다녔다.

사람들의 시선이 살짝 모이긴 했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애교였다.

“나중에 우리 유명해지면 이런 거 못 하는 거 아닐까?”

조리 도구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구경하던 정민이 대뜸 말했다.

“아마 그러겠지?”

데뷔해서 유명해진다면, 이렇게 마음 편히 쇼핑몰에 나와서 쇼핑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한다고 해도 들키면 사람들이 많이 따라와서 오히려 민폐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번 기회에 확실히 즐겨야겠네.”

“원하는 거 있으면 마음껏 사.”

“…….”

정민이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알고 한 거지?”

“뭐가?”

“우리 데뷔하면 다섯이 이렇게 함께 쇼핑몰 나올 일이 많이 없을 테니까. 그 전에 추억 하나 남기자는 의미로 나온 거 맞지?”

“그런 거 아닌데.”

단순히 애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관계 개선 겸, 고생한 우리에게 주는 선물 말이다.

“숨기고 싶은 거지? 후후, 알았어.”

첫 만남에서 그의 노래를 손봐준 이후, 정민은 유독 나를 고평가하는 기색이 있었다.

[정민의 호감도가 오릅니다.]

[정민의 호감도가 중하에서 중이 됩니다.]

[해당 아이돌이 당신을 더 믿습니다.]

굳이 그 생각을 바꿀 필요는 없었다.

덕분에 호감도가 올랐는데 굳이 인식을 바꿀 필요는 없겠지.

정민이 고른 건 조리 도구 세트였다.

냄비, 프라이팬, 뒤집개, 집게, 도마 등 각종 조리 도구가 정민의 손에 쥐어졌다.

다 합쳐도 20만 원이 되지 않는 소박한(?) 세트였다.

“이걸로 밥 볶으면 더 잘 볶이겠다.”

어차피 식단 중이라 요리할 건 얼마 되지 않지만, 좋은 장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난 눈치였다.

그다음은 우주였다.

전자제품 매장.

그것도 많은 종류의 이어폰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선이 있는 중저가 이어폰부터, 수십만 원이 넘어가는 고가 헤드폰까지.

별의별 이어폰이 다 있었다.

“우와….”

우주가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보며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하나, 그 호기심 어린 시선과는 달리.

“난 이게 좋을 거 같아.”

선이 있는 이어폰을 사겠다는 우주의 손에는 만오천 원짜리 저렴한 이어폰이 들려 있었다.

“그거 내려놔.”

“왜? 이거 성능 좋아.”

“사준다고 할 때 더 좋은 거 사. 이왕이면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괜찮은데….”

나는 매장에서 가장 비싼 블루투스 이어폰을 우주의 손에 쥐여줬다.

“나중에 우리 잘 돼서 핸드폰 바꾸게 되면 그 선 있는 이어폰 못 쓴다. 요즘 핸드폰은 선 있는 이어폰 못 쓰게 돼 있어서.”

“…….”

“앞으로 우리가 더 성공할 걸 생각해야지. 한 번 사고 몇 달 안 돼서 버릴 순 없잖아.”

블루투스 이어폰을 받은 우주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네. 성공할 때를 생각하면….”

마치 자신에게 되뇌듯 말하는 우주의 목소리에서 굳센 결의가 느껴졌다.

“건하 형, 이어폰 잘 쓸게. 고마워.”

[최우주의 호감도가 오릅니다.]

[최우주의 호감도가 중에서 중상이 됩니다.]

[최우주의 스킬을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우주의 호감도가 높았는지, 스킬 확인까지 개방되었다는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별거 아니야. 잘 써.”

호진은 진짜 커피콩만 가지고 왔다.

2만 원도 되지 않는 커피콩을 본 나는 호진에게 핸드드립 장비까지 챙겨줬다.

“안 그래도 되는데….”

괜찮다며 거절하려는 호진의 말을 거절하며, 드립 커피 세트도 선물했다.

선물하는 김에, 그가 좋아하는 커피콩도 조금 더 얹었다.

호진의 두 팔이 선물로 무거워졌다.

[안호진의 호감도가 오릅니다.]

[안호진의 호감도가 하에서 중하가 됩니다.]

“잘 쓸게.”

미미하게 호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성훈 형은 진짜 안 사려고?”

“괜찮아. 동생한테 선물 받는 것도 그림이 이상하고.”

성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한 살이라도 어린 동생에게 선물 받는 게 어색한 걸까.

실제 내 나이는 성훈보다 더 많은데.

오히려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들에게 선물을 주는 기분이라 더 즐거웠다.

내 지갑 사정이 걱정돼서 최대한 저렴한 물건을 사려는 동생들의 마음이 갸륵했다.

저런 걸 보면 착한 애들이란 말이지.

만약 원래 세계에서도 이렇게 귀여운 동생들이 있었다면, 선물을 막 사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게 신경 쓰이면….”

나는 옆에 있는 남성복 매장을 보았다. 20대와 30대를 겨냥한 감성의 남성복 매장이었다.

안에는 젊은 남자 고객들이 주로 보였다.

“다 같이 입을 옷을 사면 되겠네.”

“뭐?”

당황해하는 성훈의 팔목을 잡고 이끌었다.

“일로 와. 내가 한 벌 사줄 테니까.”

“야, 야. 건하야….”

매장으로 들어가자,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저희가 입을 옷들 사이즈별로 보여주세요.”

“아, 다섯 분 말씀이시죠? 사이즈가 어떻게 되시나요?”

내 말에 다른 멤버들이 놀라 되물었다.

“우리 것도 사겠다고?”

“형,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니야?”

과한 선물이 독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명품 매장도 아니고, 현재 내 재정 상황에서 충분히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너희 맨날 트레이닝 복이랑 편한 옷만 입고 다니잖아. 나중에라도 입을 옷 하나쯤은 있어야지.”

나중에 TV에 나갈 때 너무 꼬질꼬질한 모습만 보이면 곤란해.

형이 너희를 위해서 사는 거다.

“부담 갖지 마. 이건 나 좋자고, 우리 팀 좋자고 하는 일이니까. 나중에 TV 나갈 때를 생각해야지.”

나는 직원에게 내 사이즈를 말하며 괜찮은 옷이 있는지 살폈다.

“…익숙해 보이네.”

성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샀으니까.”

“…그렇군.”

내가 옷을 고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성훈이 옆에 있는 옷을 집어 들었다.

성훈을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도 각자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 입었다.

갑작스러운 선물 공세에 당황해하던 멤버들이 모두 각자의 취향에 맞는 옷을 찾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가 들어온 남성복 매장에 작은 패션쇼가 열렸다.

다들 아이돌 연습생들이어서 그런가.

‘옷 태가 좋네. 잘 빠졌어.’

옷을 입을 때마다 모델과 비슷한 핏을 냈다.

쭉쭉 뻗은 팔다리와 조막만 한 얼굴 덕분에 남들보다 유독 더 옷빨이 잘 받았다.

“우와, 저기 봐.”

매장 주위를 지나가던 다른 손님들도 우리를 바라볼 정도.

옷을 사주겠다는 선택이 정답이었다.

진짜 입히는 맛이 있는 애들이었다.

“고객님, 이 옷은 어떠세요?”

매장 직원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가 옷을 다 입기가 무섭게 새로운 종류의 옷을 가지고 왔다.

내가 돈이 많다고 확신한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 입은 거, 이거 다 계산해 주세요.”

패션쇼가 끝나고, 나는 멤버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옷값을 전부 계산했다.

[유성훈의 호감도가 오릅니다.]

끝까지 오르지 않던 유성훈의 호감도도 올랐다.

그래, 이게 돈 쓰는 맛이지.

“건하 형, 이런 거 되게 익숙해 보인다.”

“혹시 재벌집 아들 아니야?”

“에이, 설마….”

“그런데 돈이 진짜 많은가 봐.”

뒤에서 멤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형은 자수성가한 스타일이야.

입은 옷을 전부 산 덕일까.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원의 호감도도 올라간 거 같다.

*    *    *

통 크게 한턱낸 다음 날.

“이제 곡 컨셉과 센터를 확정해야 하는데….”

황이서가 우리를 불러서 말했다.

센터를 정한다고.

[서브 퀘스트: 센터 포지션엔 누구?]

[성공 조건: 메인 센터로 데뷔]

[보상: 2 오픈 마일리지]

퀘스트도 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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