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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3화 (23/236)

<제23화>

데뷔곡 준비.

멀게만 느껴졌던 데뷔가 코앞으로 다가온 기분이었다.

단순히 곡 연습과 테스트 무대를 준비할 때와는 느껴지는 감각이 전혀 달랐다.

그때는 연습 게임 같다면, 지금은 실전이랄까.

“데뷔 날짜는 언제인가요?”

내 질문에 황이서 프로듀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부터 한 달 뒤. 9월 7일에 처음으로 생방 무대에 올라갈 거야.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시간이다. 준비 확실히 해야지.”

“생방….”

다들 입을 쩍 벌리며 생방 무대를 떠올렸다.

각자 다른 무대를 생각하고 있겠지.

하나 골자는 비슷할 것이다.

화려한 조명과 두근거리게 만드는 노래 거기에 관중들의 환호성까지.

“너무 들뜨지는 말아라. 결국 너희가 무대 위에 올랐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팬들의 반응은 달라질 테니까. 그들이 팬이 되는지, 안티팬이 되는지, 아니면 눈길조차 주지 않을지는 전부 너희에게 달렸다.”

환상에 젖은 멤버들에게 황이서가 경고하듯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낙천적인 사고가 도움이 될 때가 있지만, 이럴 때는 결국 실수를 부르니까.

“더 열심히 해야죠.”

녹음도, 춤도, 심지어 어떤 표정으로 무대 위에 서야 하는지도 전부 꼼꼼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수많은 아이돌 사이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빛날 수 있을 테니.

“그럼, 데뷔할 때 프로듀서님이 같이 오시는 건가요?”

우주의 질문에 황 프로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들 거야. 너희 데뷔하고 나면, 너희 스케줄부터 일정, 무대 관리, 스케줄 조율, 기타 방송국 PD들한테 너희를 소개해야 하고….”

황이서 프로듀서는 GH 엔터 내에서도 상당한 경력과 실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어지간한 실장급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이돌을 데리고 다니며 로드를 뛰기엔 어렵겠지.

“지금까지는 너희도 이렇다 할 스케줄이 없으니까, 내가 임시로 담당했던 거지. 이제 데뷔하면 바빠질 텐데 내가 맡기엔 어렵지.”

“아아.”

“아쉬운데요. 프로듀서님 계셔서 정말 좋았는데. 프로듀서님이 같이 안 가주시면 저희는 무슨 낙으로 다닙니까.”

우주를 보면서 느끼는 건데.

얘 진짜 사회생활 잘한다.

립서비스가 고등학생의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황이서와 헤어지는 아쉬움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인마, 너희 다 좋은 거 알고 있어. 이왕이면 비슷한 또래 매니저랑 같이 다니는 게 좋겠지. 공고는 예전에 올려뒀고, 괜찮은 친구로 찾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우리를 차례로 바라보던 황이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이다. 골든트랙 걔들한테 화제성 밀린 거 때문에 걱정이지?”

신인상은 탔지만, 그런 것에 비해 올리오스의 주목도는 낮았다.

관련 기사라곤 몇 개 나오지도 않았고, 그나마 있던 포토 기사도 골든트랙이 중심이었다.

알고 있었구나.

하긴, 이쪽에 대해선 이 중에 제일 전문가일 테니.

“괜찮아요. 어차피 예상은 했으니까요.”

내 말에 멤버들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럴 때는 일심동체다.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상황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이제 화제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이죠. 걱정 안 합니다.”

성훈이 대표로 대꾸했다.

더는 걱정시키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었을까.

유독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아, 그런 의미가 아니라. 자, 봐라.”

황이서가 새로운 기사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그곳엔.

-몬스터즈 한진성, 후배들 응원하러 왔어요

한진성의 SNS 게시글이 실린 기사가 있었다.

한진성의 SNS엔 그가 찍은 무대 위에서의 우리 사진이 있었다.

-후배들 응원하기 위해 보러왔는데, 잘한다. 재미있는 후배들, 머지않아 같은 무대에 서길 기원할게.

#GH엔터_#몬스터즈_#무대공연_#올리오스_#잘한다_#목표는그래미!

목표는 그래미라.

이건 꼭 나를 보고 하는 말 같았다.

이 SNS의 기사를 시작으로, 한진성이 우리들의 무대의 관객석에 있었다는 소식이 퍼졌다.

당연히 한진성이 올린 SNS를 바탕으로, 또 온갖 의견이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다.

-너무 대놓고 밀어주는 거 아님…?

-진성이 개바쁠 텐데 굳이 후배들 시간 내서 보러 온 거임… 솔직히 직접 후배들 챙기러 다니고 할 짬은 아니잖음?

⌎진짜ㅠㅠㅠ 이래서 한진성을 못 놓음 내가

⌎딱 봐도 소속사에서 시켰구만ㅋㅋㅋㅋ 포장을 해도 원

-그 와중에 애들 잘생긴 거 봐라

-진짜 이런 것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기사 써주면 얼마 받음?

악플도 상관없다.

연예인에겐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고 하지 않던가.

당장 우리에겐 관심이 필요했다.

‘의구심은 실력으로 보여주면 돼.’

우리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걸.

더 좋은 무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팬들에게 보여주면 된다.

조금 고된 길이겠지만.

무관심 속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서, 선배님….”

정민과 호진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한진성의 SNS 게시글을 보았다.

몇 번이고 보았다.

저러다 핸드폰 액정이 닳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보았다.

축복을 받은 사람처럼, 감격에 겨운 표정이었다.

“진성 선배가 우리 팀명을 태그 걸어줬어.”

“이거 꿈 아니지?”

“나 이거 저장할래. 잠깐만….”

멤버들은 사춘기 소년들처럼 들뜬 목소리로 한진성의 SNS를 몇 번이고 읽었다.

“커흠, 대선배의 칭찬이 좋긴 하겠지만 그만 읽어라. 그러다 폰 닳겠다.”

황이서가 말리고 나서야, 다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윤건하 SNS 계정이 없네.’

원래 윤건하는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던 건지.

핸드폰에 SNS 어플이 깔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지금 당장 만들 생각은 없었다.

‘아직은 쓸데가 많지 않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도 되겠지.

“다들 고생 많았다. 그리고 신인상 축하한다. 생각해보니까 어제 치킨만 먹이고 축하 인사를 안 했던 거 같아서.”

내 어깨를 두드리는 황이서의 표정엔 첫날 보았던 의심과 걱정이 사라져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적응하느라 고생 많았다. 조금만 더 노력하자, 건하야.”

*    *    *

연습생들, 올리오스에게 칭찬을 남기고 연습실을 나온 황이서 프로듀서는 깊은숨을 내뱉었다.

“후우.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성공의 기쁨은 잠시였다.

이제는 진짜 무대를 위해 뛰어야 할 때.

애들이 현장에서 부담 없이 뛸 수 있게끔,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게끔 뒤에서 물심양면 도와줘야만 했다.

그는 연필심처럼 까끌까끌하게 수염이 박힌 턱을 한 차례 쓸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해.’

첫인상은 좋다.

관객들의 평도, 내부 관계자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화제성이 골든트랙에게 밀리긴 했지만, 그건 소속사의 파워 게임에서 밀린 것일 뿐.

아이돌의 실력은 우리 쪽이 훨씬 나았다.

자신할 수 있었다.

‘올리오스.’

이 팀을 만들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뛰어 다녔던가.

대표에게 애매하게 뭔가가 부족했던 4인조 보이 그룹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는 확신했었다.

저들이라면 성공할 거라고.

마지막 부족했던 한 조각을 건하로 채웠다.

솔직히 말하자.

의심했다.

묘하게 사람의 시선을 이끄는 부분도 있었지만, 데뷔조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자꾸만 걸렸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 선 그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비주얼 센터.’

데뷔곡 센터감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윤건하라고.

타고난 자신감, 그리고 부족함 없이 잘생긴 외모. 거침없는 성격까지.

당장 팀의 리더는 나이가 가장 많은 성훈이었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건하가 리더처럼 보였다.

최고로 뽑았다.

그러니.

“소속사 때문에 밀렸다는 소리는 안 나오게 해야지.”

그러기 위해선 지금 GH 엔터의 누구보다 더 달려야만 했다.

“많이 바빠지겠네.”

그렇게 말하는 황이서의 목소리엔 피곤함이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    *    *

데뷔 날짜가 확실하게 정해졌다.

이전과 달랐던 점은, 우리가 어느 무대에 오른다는 것까지 확정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미증유의 무언가로 남아 있던 데뷔가, 확실한 형체를 갖춘 순간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모든 멤버의 얼굴엔 환희로 가득했다.

모두가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기쁘네.”

담담하게 내뱉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이 담은 힘은 크고 깊었다.

특히.

MAE에서 쫓겨나 더는 데뷔를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을 때가 엊그제처럼 느껴졌으니까.

[메인 퀘스트: GH 엔터 소속 아이돌로 데뷔하세요.]

[실패 시: ‘윤건하’ 캐릭터 삭제]

이제 데뷔할 수 있다는 거잖아.

저 빌어먹을 캐릭터 삭제라는 페널티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거잖아.

기분이 좋았다.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이제 곧 자유다.

빌어먹을 시스템의 불합리한 퀘스트를 이겨내고, 곧 자유를 얻게 되는 거야.

역시 진엔딩을 위해선 그래미를 노려야겠지만, 더는 내 캐릭터가 삭제되는, 내 존재가 사라진다는 압박감에 휘말리지 않아도 된다는 게 중요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엔 소주에 삼겹살을 먹어야 하는데.’

문제는 아이돌 연습생이라는 입장 상, 그게 불가능했다.

적어도 활동을 쉬는 휴지기였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고생했던 내게 선물이라도 주고 싶은데.’

땡전 한 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제 뽑았던 스킬 뽑기 덕분에 계좌에 돈도 가득 들어왔다.

무려 8천만 원.

원래 내 계좌와 비교하면 형편없을 정도로 적은 돈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는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다.

괜찮은 거 없나?

음식은 안 되니 패스하고.

그렇다고 너무 비싼 물건을 살 수도 없는데.

‘음….’

나는 연습실에서 함께 기뻐하는 멤버들을 보았다.

“데뷔하면 뭐부터 해야 할까? 역시 SNS에 글 올리면서 소통하는 게 재밌을 거 같아!”

“무대 위에서 춤을 추기만 해도 기쁠 거야.”

호진이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말수가 적은 호진마저도 기쁨을 표출하고 있었다.

오늘은 경사가 여러 번 겹치는 날이니까.

“다들 너무 들떠 있어. 조금은 진정해.”

“말은 그렇게 해도 성훈 형도 기쁘잖아. 건하야, 너는 어때?”

정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뭐해. 기쁘지.”

몇 번을 강조해도 충분하지 않았다. 더 말하고 싶다.

기쁘다고.

미치도록 기쁘다고.

성취감에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데뷔를 기대하는 멤버들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앞으로 계속 함께할 멤버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도 괜찮겠는데?

데뷔 확정 난 기념으로 선물로 말이다.

“애들아.”

“응?”

“연습 끝나고 우리 플렉스 하러 갈까?”

“플렉스? 갑자기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선물 사주려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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