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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7화 (17/236)

<제17화>

테스트 공연을 위해 근처 중학교의 강당을 빌리는 게 GH의 연례행사라고 했다.

1년에 한 번꼴로 관계자들끼리 내부 평가와 연습생들의 무대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만들어낸 작은 무대.

작은 무대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본격적인데?’

카메라 장비, 무대 위 세팅된 여러 조명과 오디오.

그리고 내부 관계자들과 기자들, 거기에 사전에 홍보해서 찾아온 소수의 팬들.

특정 누군가의 팬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다.

-소속사에서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소수의 팬을 초청하고, 그들에게 곧 데뷔할 새로운 아이돌들을 알리려고 하는 거야.

경쟁하기보단 우리 새로운 아이돌입니다! 하고 알리는 자리지.

물론 처음 목적은 그랬는데, 어쩔 수 없이 참가자들끼리 경쟁심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거라서. 나름대로 다들 철저히 준비하고 있지.

오는 동안 황이서 프로듀서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저기 있는 팬들은 새로운 연습생들의 공연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어쩌면 저들 중 우리의 팬이 되어 줄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쓴 티가 여기저기서 났다.

전부 연습생들의 더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한 사전 준비였다.

“대표님이 같이 하는 소속사 대표들을 설득해서 준비하신 거야. 이왕 데뷔시킬 애들이라면 최대한 실전과 비슷한 장소를 마련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거든.”

황이서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연습생들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한다라.

대단하네.

공연 자리를 만드는 거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규모를 이렇게 키우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무대에 올라간 저 많은 장비와 사람들.

저것들이 전부 다 돈 아니던가.

최강훈 대표.

확실히 연습생들에게 돈을 아끼지 않고 쿨하게 쓰는 면모가 있었다.

‘돈이 상당한가?’

몬스터즈라는 대박 그룹을 탄생시킨 일화를 들어보면, 적지 않게 있는 건 분명했다.

‘겉모습은 허허 아저씨더만.’

사업 수완이 확실한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현장을 준비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보였다.

GH 엔터 직원들과 외부 스튜디오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올리오스입니다!”

우리는 돌아다니는 내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좋은 첫인상을 위해 허리를 숙이고 다니기를 얼마나 했을까.

보이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다 보니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연습생을 보았다.

그들도 중소 규모의 기획사에서 나온 그룹.

“안녕하십니까!”

우리와 짠하게 닮은 연습생들을 보며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미래의 경쟁자가 될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분위기만큼은 화기애애했다.

아무래도 선의의 경쟁에 가까우니까.

얼마나 인사를 하고 다녔을까.

나는 우리가 설 무대를 살폈다.

리허설을 위해 올라온 팀이 하나 있었다.

“아.”

MAE의 골든트랙이었다.

이진우를 비롯한 골든트랙 멤버들이 무대 구성과 동선을 가볍게 짜고 있었다.

그들이 준비한 노래는 스트리브의 틱택톡이었다.

역시.

“자작곡으로 준비해서 다행이다. 잘못하면 골든트랙이랑 겹칠 뻔했네.”

골든트랙의 무대를 보던 우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었다.

경연까지는 아니지만, 무대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노래가 겹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우리가 저들보다 더 좋은 무대를 꾸밀 수 있어도 문제다.

같은 노래를 두 번 듣게 되는 관객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질리기 마련.

아무리 좋은 무대라도 줄 수 있는 감동이 떨어질 수 있다.

굳이 마이너스 요소를 더할 필요는 없지.

나는 무대 아래에서 골든트랙의 리허설을 가만히 지켜봤다.

잘한다.

확실히 대한민국 최고 소속사에서 뽑은 인물들이었다.

얼굴도 잘생겼고.

“잘 춘다.”

“저기 센터에 있는 애 괜찮지 않아?”

“평균이 높다, 평균이.”

리허설 무대부터 보고 있는 관계자와 팬들의 시선도 사로잡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팀이 더 괜찮아.’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그들의 무대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춤은 저들이 조금 더 잘 추더라도 곡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더 낫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노래에 대한 진심, 거기서 나오는 매력.

내가 매번 숫자와 결과를 중요시하는 사업가였지만, 아주 가끔은 그 숫자를 능가하는 무언가가 존재할 때가 있었다.

우리가 그 무언가를 갖고 있다고 자신했다.

가슴 속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저들을 이기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우리도 저들 못지않게 열심히 했으니까.

본래는 경쟁을 목적으로 만든 공연이 아니었다던 황이서의 말이 떠올랐다.

한창 혈기 넘치는 연습생들이 한 무대에 올랐는데, 경쟁심이 들지 않는 게 이상하지.

“올리오스, 준비 들어가실게요.”

현장을 확인하던 스태프가 우리를 불렀다.

“올라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예!”

“그럼, 이따 안에서 보자. 당당하게 서. 너희는 머지않아 스타가 될 거니까.”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다짐을 받으려는 듯 묻는 황이서의 눈에는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역시 진심이리라.

황이서와 헤어진 우리는 스태프를 따라 무대 뒤에 있는 작은 공간에 도착했다.

“전 타임 팀이 공연할 때 여기서 대기하실 겁니다. 사회자가 간단하게 소개하면 바로 무대 위로 올라갈 거예요. 무대 위에서 준비하신 거 보여주시고, 간단하게 인사하시면 될 겁니다.”

말을 마친 스태프가 어디서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 간단한 동선을 체크했다.

무대 위에선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 어디에 서야 하는지, 내려갈 땐 어디로 내려가는지, 거기에 사람들이 어디에 주로 있을 것인지 등등.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정보를 듣다 보니, 어느새 골든트랙의 리허설 공연이 끝이 났다.

골든트랙의 이진우와 멤버들이 줄지어 내려왔다.

내려오는 그들의 얼굴이 나와 마주쳤다.

“어?”

먼저 나를 본 골든트랙의 다른 멤버들의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냐는 반응.

그러나 그 이상의 말도 행동도 없었다.

대단한 싸움이라던가, 영화에서 나오는 극적인 갈등은 없었다.

보는 눈이 많고 심지어 카메라와 기자까지 있었다.

여기서 잘못 입을 열었다가 어떻게 되는지,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심지어 MAE에선 늘 나를 꼽주던 이진우마저도.

“포기한 줄 알았더니, 여기 있었어?”

라는 말이 전부였다.

“무대에서 보자.”

그저 담백하게 받아쳤다.

데뷔도 못 하고 구설수에 올라가는 건 서로 싫잖아.

“괜찮아?”

무대에 올라가는 길에 정민이 물었다.

그런 얼굴로 물어오니, 꼭 힘들 때, 옆에서 위로해 주는 덩치 큰 리트리버 같았다.

“괜찮아.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아.”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상대다.

내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지금 우리의 무대.

나 때문에 무대를 망치면, 그거야말로 내가 용납하지 못한다.

“열심히 하자.”

“그래.”

“형! 나도 열심히 할게!”

“파, 파이팅….”

다들 어떻게든 내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이따 우리 1등 해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자. 프로듀서님도 오늘은 봐줄걸?”

“즐거워하는 건 좋지만, 아직 무대가 남았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해.”

성훈이 우주의 말을 툭 끊었다.

그의 말대로 아직 우리에겐 할 일이 많았다.

리허설 때 동선도 맞춰야 하고, 실제 무대에서도 실수 없이 잘 해내야만 했다.

“다들 무대에 집중하자고.”

우선순위를 확실히 해야 돼.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테스트 무대에 들떠서는 안 된다.

“자,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미리 준비한 ‘New Taste’의 MR이 흘러나왔다.

*    *    *

우리는 무대에 오르는 연습생들을 위해 체육관에 있는 방들을 이용한 작은 대기실에서 옹기종기 모였다.

다섯이 같이 쉬기엔 좁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어딘가 싶었다.

“후우, 진짜 긴장된다. 나 심장 엄청 떨려.”

우주가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심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긴장을 한 건 모두 마찬가지였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긴장을 풀고 있었다.

호진은 괜히 좁은 대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고, 정민은 눈을 감고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성훈은 그저 묵묵하게 멤버들을 보고 있었다. 사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유추조차 어려웠다.

나는 어땠냐고?

“다들 천천히 숨을 쉬어. 별거 아니야.”

“건하 형, 진짜 괜찮아?”

“물론이지.”

“나는 지금 저기 어딘가에 진성 님이 계신다는 생각에 가슴이 터질 거 같은데.”

단순히 첫 무대 때문에 애들이 긴장하는 건 아니었다.

한진성이라는 존재.

무대 어디에선가 보고 있을 그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과는 달리, 한진성이 너무 친근하게 느껴졌다.

“TV에서 많이 본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럼 좀 나을 거야.”

“TV에서 매번 본 사람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라서 떠는 건데.”

아무래도 내 조언은 우주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거 같다.

“그런데 진성 선배님이 우리 공연보고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시면 어쩌지?”

우주의 말에 대기실 분위기가 축 처졌다.

가장 심하게 반응한 건.

“내 노래가 형편없어서일 거야. 으으.”

역시 작사와 작곡까지 담당한 정민이었다.

아직 한진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부정을 당한 듯 지금까지 얻은 자신감을 모두 잃고 있었다.

“그럴 일 없으니 걱정 마. 우주 너도 너무 기운 빠지는 얘기는 하지 말고.”

부정적 에너지는 말하면 말할수록 쌓인다.

괜히 기세를 잘못 타면 무대까지 망칠 수 있다.

이럴 땐 최대한 마음을 가볍게 먹는 게 중요했다.

‘상태를 보니, 얘기해봤자 들리지 않겠다.’

그저 애들이 알아서 기운을 차리길 기다릴 뿐.

그때 성훈과 눈이 마주쳤다.

“건하 너는 긴장이 안 돼?”

덤덤한 말투 속에 떨림이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성훈 역시 긴장하고 있는 거다.

“난 괜찮아. 이런 거 익숙하거든.”

“그래?”

“그럼. 적어도 한진성이나 저기 아래에서 공연을 볼 사람 중에선, 내 멱살을 잡고 뒤흔들 사람은 없잖아.”

트집을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켠 투자자들 앞에서도 멀쩡히 PR을 했던 나다.

한진성이야 내가 조금 못해도 웃으며 봐줄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은 절대 아니다.

딱 한 번, 회사가 휘청거렸을 때가 있었다.

그때의 분위기란.

말실수를 조금이라도 하면 가지고 있던 채권과 주식을 전부 던질 기세였다.

채권이 뭐야. 칼 들고 쫓아오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이 정도야 뭐.

견딜 만해.

“춤 못 춘다고 올라와서 멱살을 잡고 흔든다고? 그런 곳이 있어?”

“있어. 그런 게.”

나는 애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니 너무 긴장하지는 마. 우리가 실수해도 박수로 화답해주실 분들이야. 물론, 데뷔는 미뤄지겠지만.”

멱살이 잡혔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우스갯소리로 들린 걸까.

대기실의 분위기가 다소 가벼워졌다.

우주부터 시작해서 성훈까지 다들 실없게 웃었다.

“농담을 잘하네. 그렇게 안 봤는데.”

성훈이 긴장이 풀린 듯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건하를 마주 보던 성훈은 첫인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에 놀랐다.

그의 얼굴은 약간은 유약해 보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모성애를 잔뜩 자극할 거 같은 가냘픈 외모였다.

다만, 입을 열 때면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오히려 뒤 없이 달리는 불도저 같다랄까?

유약한 외모에서 나오는 강단 있는 말투.

갭 차이가 상당했다.

지금도 봐라.

별거 아닌 농담으로 대기실의 분위기를 한 번에 바꿔버렸다.

‘신기하네.’

이상하게 그런 건하의 웃음을 보고 있으면, 초조했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그의 자신감이 전염되는 느낌.

딱 그거였다.

“덕분에 진정되는 거 같다.”

성훈이 건하에게 말했다.

내심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래?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조금은 얼떨떨했다.

내가 따로 한 게 없는데.

성훈 본인이 도움이 됐다니까.

그렇게 조금씩 긴장을 풀고 있었는데.

똑똑.

누군가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아, 넵! 있습니다!”

각자의 자세로 긴장을 풀던 멤버들이 바짝 군기가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바라봤다.

혹시 스태프가 온 거면, 바로 인사를 할 준비를….

“안녕? 다들 여기 있었구나.”

그런데 웬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쓴 남자가 들어왔다.

“엥?”

누구세요?

모두가 일시 정지를 누른 듯 가만히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이 누군가 싶어서.

그러나 다른 넷은 이유가 조금 달랐다.

“하, 하, 한진성 선배님?”

우주의 호들갑을 시작으로.

모두가 입을 쩍 벌리고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았다.

잠깐.

이 사람이 한진성이라고?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고 있을 때, 한진성이라고 불린 남자가 마스크를 벗었다.

“안녕? 애들아.”

와, 저게 사람 얼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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