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5화 (15/236)

<제15화>

“무슨 일이야?”

호진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물었다.

이젠 나를 익숙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라면 쳐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을 텐데 말이지.

오늘은 내 질문에 대답까지 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숨을 고르지 않은 그의 어깨가 계속해서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내가 오기 전까지 계속 쉬지도 않고 연습한 게 분명했다.

종아리 근육에 힘이 빡 들어가 힘줄까지 솟은 것이, 당장 쥐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가만히 서 있으니, 더 자세히 보였다.

게임 속 일러스트로는 보이지 않았던 여러 가지 신호들.

한계까지 내몰린 근육이 덜덜 떨고 있었고, 숨이 거칠며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이러니 어디 하나 다쳐서 무대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나빠지지.’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자신의 한계를 너무 넘어가면 그 또한 문제였다.

아이돌 활동은 장거리 레이스와 비슷했다.

무대에 오르는 건 4분밖에 되지 않지만, 그 무대를 위해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동시에 우리가 올라가야 할 무대는 하나가 아니다.

빠듯한 일정을 해소하다 보면, 하루에 몇십 번이고 무대 위를 올라야만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대한 몸을 만드는 건 물론이고, 활동하는 기간엔 다치지 않고 자신의 몸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잠시 쉬는 게 어때?”

“…그럴 수는 없어.”

당연한 대답이었다.

말 한마디 했다고 쉴 친구였다면, 연습으로 인한 부상도 당하지 않았을 거다.

‘첫 무대라 긴장해서 이렇게 자신을 몰아치면, 막상 중요할 때 탈선하고 말지.’

20대의 과한 열정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이 열정이 자칫 자신을 무너트리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자중시키는 것일 뿐.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연습실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에 누워.”

“어? 누, 누우라고?”

“그래.”

“갑자기 왜?”

“왜긴, 너 지금 계속 그러면 다리 다칠 게 뻔하니까 도와주려고 그러지.”

연습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컨디션이 떨어질 게 분명.

어쩔 수 없이 계속 연습을 할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

지금처럼 연습을 해도 최대한 다치지 않는 방법을 만들어주는 거다.

대부분의 부상은 뼈의 이상보단 근육이 경직돼서 생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영업 사원들을 빡세게 굴리기 위해 쓰던 방법을 호진에게 쓸 생각이었다.

“연습해야 하는데….”

“잠깐 쉰다고 달라지는 거 없어. 일단 누워 봐. 받아보면 생각 달라질걸?”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아직 중소기업이었던 우리 회사를 키우기 위해선 적극적인 영업이 필요했다.

영업을 뛰기 위해선 많이 걷고 많이 뛰어야만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리와 발에 무리가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영업사원들을 위한 다리 근육 마사지.

처음에는 대표인 내가 뭐라도 해줄 게 없을까 싶어 시작했던 일이었다.

영업상을 탔던 직원에게 보너스 지급과 함께 다리를 주물러줬다.

근육을 풀어야, 더 많은 곳을 다닐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말이다.

몇 번 해보니 나도 꽤 익숙해지고 부하직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아서, 주기적으로 부하직원들에게 마사지를 해줬던 기억이 있다.

내가 우리 회사에서 황금손이라고 불린 사람이라고.

“괜찮아. 나 멀쩡해.”

“받아보면 알 거야. 네가 멀쩡한지 아닌지.”

나는 호진과 눈을 마주친 채로 말했다.

주저하던 호진이 결국 연습실 바닥에 엎드렸다.

나는 단단하게 굳은 호진의 종아리 근육을 손가락으로 꾸욱 주물렀다.

와, 진짜 딴딴하네.

근육을 만지는데 무슨 돌덩이를 만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뭐냐.

마사지라도 하지 않았으면 뭐가 됐든 성대하게 다쳤을 게 분명했다.

“으아아아악!”

엄청 아플 거다.

과도하게 무리한 근육에 자극을 주는 고통은 상당하다고.

버둥거리는 호진을 붙잡으며.

“참아. 조금만 참으면 복이 온다니까.”

종아리 마사지를 계속했다.

“으아악! 거, 건하야! 지, 진짜 아파아악!”

“아파야 낫는다.”

멈출 생각은 없다.

여기서 충분히 풀어주지 않으면, 너 크게 다쳐.

네가 다쳐서 우리 데뷔 미뤄지는 건 너도 싫잖아?

“으아아악!”

호진이 이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었던가.

확실히 목소리는 좋다.

아프다며 발악하듯 소리치는 와중에도 멜로디가 느껴질 정도니.

‘역시 자신감이 낮아 본인이 소화를 못 하는 게 문제겠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해결한다면 될 일.

우선은 이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을 풀어주는 게 우선이었다.

“으허어걱!”

호진의 비명이 점차 잦아들 때쯤, 나는 왼쪽 다리 마사지를 끝냈다.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무리해서 과열된 근육을 풀어주는 데만 한참 걸렸다.

호진의 근육을 풀어준 내 등이 땀으로 흥건했다.

‘후우, 이거 장난 아니네.’

평범한 회사원의 다리를 마사지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후우, 어때?”

“어?”

왼쪽 다리를 까딱거리던 호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어떻게 한 거야?”

마사지를 받은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차이가 많이 날 거다.

자신의 상태를 대충 알겠지.

얼마나 몸을 혹사했는지 말이다.

“MAE에서 배웠어.”

나는 대충 둘러대며 반대쪽 종아리에 손을 얹었다.

“자, 시작합니다.”

“자, 잠깐….”

아까의 고통이 떠올랐는지, 호진의 얼굴이 핼쑥하게 질렸다.

“근육 마사지 안 받으면 다칠 텐데?”

“으, 으윽….”

버티기를 포기한 호진이 두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부,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손님.”

뭉친 근육 좀 풀어 드리겠습니다.

“끄아아아악!”

호진의 비명이 연습실에 퍼졌다.

“무슨 일이야?”

그 비명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황이서와 멤버들이 놀라 연습실까지 찾아왔다.

우우웅!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불행 이벤트를 1회 회피 성공]

[업적 – 불행 회피]

[보상: 1 오픈 마일리지]

아무래도 이벤트로 호진이가 다칠 일은 피한 거 같다.

‘다행이네.’

나는 종아리와 허벅지를 부여잡으며 끙끙거리는 호진을 보며 안도했다.

*    *    *

테스트 공연 이틀 전.

“괜찮은데? 이게 다 너희가 준비한 거라고?”

우리의 무대를 미리 본 황이서 프로듀서의 평가였다.

“예. 저희끼리 최대한 머리를 맞대서 아이디어를 공유해 봤습니다.”

성훈의 말에 황 프로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과감하네. 아직 데뷔하지 않은 연습생들이 자신들의 데뷔 앨범에 수록될 자작곡으로 무대를 꾸몄다는 게.”

“원래는 다른 곡으로 준비할 예정이었는데, 건하의 아이디어로 이 곡으로 나가기로 했어요.”

“아, 건하 아이디어야?”

황이서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

“확실히 보는 눈이 있네.”

나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유성훈이 담담하게 내 공으로 돌렸다는 게 말이다.

아무리 나를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황 프로에게 어필할 줄은 몰랐다.

한 번 믿으면 확고하게 믿는 스타일이었나.

대충 스타일을 잘 알겠다.

성훈이 나를 유독 배척했던 건 사적인 질투와 미움이 아니었다.

나로 인해 팀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내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고 나선, 완전히 내게 마음을 열었다.

성격 한번 화끈하네.

나는 게임에서 나왔던 성훈의 스킬을 떠올렸다.

[스킬: 고집(A)]

한 번 정한 것은 쉽게 바꾸지 않는 성격, 그렇기에 더 생각해야만 한다. 그의 고집이 정말 꺾인 건지 아닌지.

그저 다수결에 동의한다는 합리적인 의견을 따른 걸지도 모른다.

‘조심해야지.’

만약 불만을 갖고 있다면,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터질지 모른다.

그러니 그 불만이 터지지 않도록 그를 설득해야겠지.

잠시 무대를 되새기던 황이서가 우리를 보며 물었다.

“1등 할 거 같아?”

“예.”

“그래?”

“저희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성훈의 확신에 가득 찬 말에 황이서가 턱을 쓸었다.

“쉽지는 않을 거다. 이번에 다들 이 악물고 준비했던 거 같더라. 가장 주의해야 하는 건 역시 MAE의 골든트랙이지. 건하도 알겠지만, 골든트랙 애들은 이미 예능까지 찍고 있어서 카메라에도 익숙한 거 같고 말이야.”

다들 입을 다물었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각 소속사에서 성공을 위해 필사적으로 모은 재능이 넘치는 아이돌들의 공연이었다.

어디 하나 부족하지 않은 애들이겠지.

쉬운 상대는 없었다.

그만큼 우리 역시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미 다들 각오가 되어 있어.’

나 역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데뷔.

내겐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라고!

무조건 1등 한다.

무. 조. 건.

“곡은 민이가 깐 거고, 안무는 호진이가 아이디어를 냈을 거고,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확실히 성훈이가 잡고 들어가고, 남은 두 사람이 빈 부분을 채워주면……. 확실히 느낌 있네.”

가만히 우리를 보던 황이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1등이 자신 있다라…. 좋아.”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

“이번 테스트 공연에서 이 노래와 안무로 너희가 내부 평가 1등을 차지하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이 곡을 데뷔 무대에 세워줄게. 어때?”

데뷔 무대에 세워준다라.

타이틀곡과 함께 메인으로 들어가는 핵심 노래로 이끌겠다는 뜻이었다.

아직 데뷔도 하지 못한 연습생의 곡을 말이다.

생각보다 조건이 파격적이다.

“““정말요?”””

나를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거의 동시에 똑같은 말을 외쳤다.

“뭐야? 건하는 별로 놀라질 않네.”

“프로듀서님이라면 그 말씀을 하실 거 같았습니다.”

“나라면 그 말을 할 줄 알았다?”

“예. 아무리 연습생들이라도 이미 한 번은 히트한 노래들 사이에서 부각을 드러낸다면, 좋게 판단하실 거 같았거든요.”

“설마 알고 이거 올린 건가?”

황 프로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의 이야기였지. 사실 진짜 올리신다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크크, 이거 진짜 물건이네.”

다른 멤버들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이건 마치.

무당을 보는 눈빛이었다.

“형, 우리 복채 내야 하는 거 아니지…? 나 돈 얼마 없는데.”

우주가 팔을 쓸어내리며 하는 말에 황이서만 웃었다.

다른 멤버들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건하 말이 맞다. 히트곡들 사이에서 1등을 받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으면 한 번은 대중들에게 보여줘야 되지 않겠어? 게다가 너희가 힘을 합쳐서 만든 노래다. 팬들에게 나름대로 어필도 될 거야.”

신인에게 무대가 어떤 의미인가.

시청률 0.1%짜리 케이블 방송에 나가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것이 바로 신인 아이돌들이었다.

그건 무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무대든 하나라도 더 나가서 팀의 이름을 알리는 것.

그 짧은 4분짜리 무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심지어 많은 수록곡 중 하나가 될 자작곡으로 무대에 오른다?

그건 신인에게 더 큰 기회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제목은 지었나?”

“아뇨. 제목을 생각하고 지은 노래가 아니라서요.”

“그래?”

정민의 말에 황이서가 팔짱을 꼈다.

“분기 테스트에 선보일 때 제목까지 같이 보여줘야 임팩트가 살 텐데, 괜찮은 게 없을까?”

노래만큼 중요한 게 제목이라, 다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하나의 제목이 떠오른 상태였다.

“New Taste, 어떤가요?”

“뉴 테이스트?”

“네, 새로운 맛이요. 우리는 이제 막 새로 등장하는 신인이잖아요? 대중들에게 처음 맛보는 노래라는 의미로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노래도 신선하잖아요.”

“신선하다?”

“예.”

“나쁘지 않네. 확실히 데뷔하는 아이돌의 첫 자작곡 제목으로 써도 나쁘지 않을 거 같긴 해.”

황이서가 다른 멤버들을 보았다.

특히 정민을.

“정민이 네 생각은 어떠니?”

그 말에 정민이 나를 잠깐 보았다.

“괜찮은 거 같아요. New Taste. 딱 저희를 가리키는 거 같아서 좋네요.”

“좋아. 그럼 제목은 그대로 간다. 그리고 이제 너희 그룹명도 슬슬 정해야 하는데, 그건 정했어?”

그 말에 성훈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대표님이 파이브 보이즈 어떠냐고 물어보시던데요.”

“그건 기각. 너무 유치해.”

“이서 형! 이건 어때요? 보이 스타즈요!”

“우주야, 그건 저번에 안 된다고 했잖아.”

“히잉, 나쁘지 않은 거 같았는데….”

“워너비는 어떠십니까?”

“그건 비슷한 이름을 가진 보이그룹이 따로 있어. 이름 겹쳐서 좋을 거 없다.”

그 이후로도 몇 개의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전부 황이서에게 기각당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고,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시선이 따갑네.

“건하는 생각해 둔 그룹명이 있어?”

내가 이 게임을 하면서 늘 썼던 그룹명이 있었다.

‘올리오스.’

내가 게임에서 엔딩을 본 아이돌들은 전부 이 그룹에 속해 있었다.

언제나 성공했던 내 경험이 녹아든 팀명.

그건 실제로 내가 설립한 회사의 상표였다.

그래서 마이 아이돌을 시작할 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이름이라 생각하면서 늘 이 이름을 붙이곤 했다.

“올리오스 어떠신가요?”

“올리오스?”

“예.”

“이름에 의미라도 있어?”

올리오스의 의미라.

“All We once. 모두 우리를 한번 봐 달라, 뭐 이런 느낌이긴 한데…. 이대로 쓰면 발음이 어려워서 살짝 발음을 뭉갠 겁니다.”

“흠, 괜찮은데? 일단 발음이 입에 착착 달라붙어.”

황이서의 반응이 꽤 좋았다.

“다들 어때? 반대 의견이 없으면 이대로 가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다른 멤버들도 만족스러웠던 걸까.

“전 좋아요!”

“찬성!”

“동의합니다.”

“괜찮네요.”

새로운 올리오스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너희에게만 말하는 건데….”

팀명을 확정 지은 황이서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번 공연을 보러 한진성이 올 거다.”

“예?”

한진성이 온다고?

내가 키웠던 그 한진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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