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다른 노래를 고르자고? 이유가 있어?”
성훈이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성훈 생각으로는 선곡이 전혀 나쁘지 않았으니까.
Show down은 유명한 노래라 호응을 일으키기도 쉽고, 비트가 빨라 사람들의 시선을 확실히 잡을 수 있었다.
춤이 쉬운 것도 아니라서 이 곡을 할 팀은 아마 없을 거다.
곡도 겹치지 않아, 노래도 좋아.
이 곡을 고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건하의 노력과 실력은 인정하는 부분이나, 확실한 근거가 아니라면 ‘Show Down’으로 갈 생각이다.
다수결로 생각하더라도 이미 결론이 난 이야기였다.
‘건하라면?’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물었다.
“간단하지. 우리끼리 그 댄스를 소화할 수 없어.”
“소화할 수 없다고? 연습이 부족하다는 뜻인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긴 했지만, 그런 뜻의 이야기는 아니고.”
나는, 눈매를 좁히며 나를 노려보는 성훈을 마주 보았다.
그는 고민이 깊어 보였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반대를 해버리니, 뭔가 싶었던 걸 거다.
이런 반응이 당연했다.
“Show Down이 댄스로 유명한 노래는 맞는데, 우리와는 케이스가 다르잖아. 웅장한 춤선을 보여주기엔, 우리는 수가 부족해.”
‘Show Down’을 춘 크래프톤은 9인조 보이 그룹.
전원이 키가 180 중반대가 넘는 모델급 퍼포먼스를 가진 아이돌이었다.
심지어 당시 이 노래를 발표했을 당시, 그들의 뒤에 배치된 백댄서가 총 9명.
총 18명이나 되는 인원이 무대 위로 올라가 웅장함을 선사했다.
18명이 똑같이 움직이는 군무가 주는 쾌감은 다른 아이돌들이 쉽게 보여주지 못한 규모였다.
“Show Down은 18명, 우리는 5명. 우리도 키가 작은 건 아니지만, 숫자가 주는 무대의 맛이 달라. 특유의 웅장함을 내지 못할 거고, 그럼 상대적으로 페널티를 갖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물론 우리 멤버들의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크래프톤의 멤버들만큼 크진 않은 건 사실이었다.
주절주절 팀원들에게 이 노래가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내 말의 핵심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
분위기가 한순간에 무거워졌다.
당연했다.
온 지 얼마 되지 안 된 내가 그들이 계획했던 틀을 뒤엎자는 발언을 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반발이 나올 거다.
각오는 했다.
더 높은 곳을 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투닥거림은 필요했으니까.
반박을 하면 내가 가진 확신을 밀어붙이면 된다.
멤버들에겐 데뷔가 걸린 일이지만, 내겐 목숨이 달린 일이다.
[실패 시: ‘윤건하’ 캐릭터 삭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생각도 없다.
“Show Down보다 더 좋은 노래가 있어.”
“더 좋은 노래가 있다고?”
내가 선정한 노래가 무엇인지 들으면 아마 다들 찬성할걸?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무대에 오르는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 테스트 무대라도 괜히 경직되고 긴장하는 것보단 여유로운 게 훨씬 보기 좋을 테니까.”
“즐길 수 있는 무대라….”
정민이 내 말을 되씹었다.
“그게 쉽지 않으니 우리가 회의를 하는 거잖아. 그나마 좋은 의견이 방금 나왔던 Show Down이고.”
성훈의 말도 맞았다.
쉬운 일은 아니지.
그랬다면, 세상 모든 프로듀서가 아이돌을 위한 노래를 수도 없이 만들었으리라.
잠시 머리를 굴렸다.
즐길 수 있는 무대라.
말로는 쉽다. 너의 인생을 즐기라는 말만큼이나.
그러나 막상 실전에 적용하기엔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다섯 명이 전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즐길 수 있는 무대여야 하는데.
‘그런 노래가 하나 있지.’
나는 차례로 멤버들의 얼굴을 보았다.
이제 데뷔를 두 달도 안 되게 남겨둔, 파릇파릇한 신인 연습생들.
그들의 얼굴에는 데뷔한다는 기대감과 성공에 대한 불안,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시선이 정민에게 닿았다.
“우리는 이미 좋은 걸 가지고 있잖아. 안 그래, 정민아?”
내 말에 정민이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우리’의 매력을 살려야 해.
우리.
다른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아닌, 우리의 곡.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무대.
그리고 그런 무대는 직접 만들었을 때 성취감이 배가 되지.
“어?”
뒤늦게 정민의 입이 벌어졌다.
눈동자가 커지며, 미간이 좁아지고, 바람 빠지는 맥없는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그거 진심이야?”
“당연하지. 테스트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어.”
“무슨 말인데?”
옆에서 듣던 우주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번 앨범 수록곡에 들어갈 정민이의 자작곡을 무대에서 선보이는 거 어때?”
나는 처음부터 계획했던 아이디어를 그들에게 내밀었다.
정민의 자작곡, 그걸 통해 우리의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게 정답이라고 확신했다.
이 이벤트는 늘 3개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모두가 좋아하는 유행가를 부른다.
-알려지지 않은, 힙한 노래를 부른다.
-우리의 자작곡을 만들어 부른다.
1번 선택지는 약간의 컨디션이 올라가는 평범한 선택지. Show Down을 선택했을 때 받는 보상이었다.
2번 선택지는 컨디션과 멤버 간 호감도가 오르는 선택지였다.
그리고 마지막 3번.
무대 구성은 조금 부족할지언정, 누군가의 노래를 부를 때보다 가장 높은 컨디션 상승과 호감도 상승을 보여줬다.
1번 선택지보다 대중성이 부족해도, 2번 선택지보다 작품성이 부족해도, 우리를 보여준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우리를 보여주는 것 중에 자작곡만큼이나 더 안성맞춤인 게 있을까?
그렇다고 정민의 노래가 나쁜 것도 아니다.
나는 충분히 저 두 노래와 견줄 수 있는 노래라고 여겼다.
그러니 제안한 거다.
자작곡으로 무대에 오르자고.
“엉?”
“진심이야?”
그 말에 모두가 정민이랑 똑같이 괴상한 소리를 냈다.
“내 자작곡을 공연에서 쓰자고? 관계자들이 다 있을 텐데.”
“그러니까 기회지.”
그 말에 모두가 나를 보았다.
정민은 내 말에 당황한 기색을, 우주와 성훈은 생각하지도 못한 말에 화들짝 놀랐으며, 호진은 초롱초롱한 눈을 빛냈다.
“관계자들에게 우리는 자체 프로듀싱과 작곡도 가능한 팀이라고 어필할 수 있는 거야. 타이틀곡도 아니니, 유출될 위험도 적고. 운이 따른다면 누군가 한 명쯤은 흥얼거려주지 않겠어?”
우리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성공이다.
“아직 미완성인데….”
의기소침해진 정민은 기어들어 가는 말투로 말했다.
하나 내 생각은 다르다.
“지금도 충분히 완성도가 높아. 자신감을 가져도 돼.”
단순히 게임 이벤트 때문에 정민의 곡을 선택한 건 아니다.
지금 정민이 작곡한 곡, ‘New Taste’는 내가 원래 세계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좋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걸 평가하는 건 대중들의 몫이지만, 나는 자신할 수 있었다.
정민의 노래는 분명 팬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다.
“그럴까?”
“물론이지.”
정민은 여전히 고민이 되는 듯, 입술을 오물거렸다.
“다들 어떻게 생각해?”
나는 모두를 보며 물었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 끝나고, 우주가 입을 열었다.
“난 찬성! 정민이 형 노래가 확실히 우리한테 더 잘 맞는 거 같아. 정민이 형은 우리가 부르기 위해 곡을 만들었으니까.”
“곡에 맞춰서 미리 생각해 둔 안무가 있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호진이 우주의 뒤를 따라 찬성했다.
“확실히 보는 시선이 다르네.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던 성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곡을 바꾸자는 이야기에 좁혀졌던 미간이 지금은 풀어진 상태였다.
전부 다 찬성이니.
이제 남은 건 작곡가인 정민뿐.
“어떻게 할래?”
“으으, 이미 결정된 거 아니야?”
“작곡가 의견이 제일 중요하니까.”
정민은 오랜 시간 고민을 이어갔다.
강아지처럼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더니, 다시 바라봤다.
우리는 그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렸다.
“하아, 건하 너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거 같아.”
“그럼 찬성인가?”
“응.”
테스트에 도전하는 곡을 바꾸자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선곡을 듣자마자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132가지의 반박 논리도 생각해 둔 걸 쓰지 못한다는 건 아쉽지만.
일이 쉽게 끝났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자작곡 발표라. 신박해서 좋네. 우리 노래를 홍보할 수 있을 테고, 서로 호흡을 맞추는 시범 무대로도 쓸 수 있겠어.”
성훈의 말에 동감이다.
“자, 그럼 간단하게 합을 맞춰볼까? 호진아, 아까 생각해 둔 안무가 있다고 했지?”
“아, 응.”
이제 테스트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 * *
공연을 위한 연습과 연습이 이어졌다.
채남영 트레이너가 호진이 만들고 기획한 안무에 살을 붙이고 의견을 더했다. 보컬 트레이너는 우리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연습 시간이 끝나면 우리끼리 모여서 합을 맞췄다.
어떤 식의 무대 구성이 더 좋을까 머리를 맞대며 의논하는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다들 필사적이었다.
“그래도 이건 조금 더 활발하게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베이스를 조금 넣는 건 어때?”
무대가 좋지 않으면 데뷔가 미뤄진다는 사실이 모두의 의욕을 자극했다.
당연한 일이다.
모두 데뷔를 위해서 여기까지 달려온 아이들.
코앞이라 믿었던 결승선이 더 멀어진다는데, 어찌 필사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강행군에 가까운 일정이었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특히 호진은 그 잘생긴 얼굴에 땀을 송골송골 맺혀가며 연습에 매진했다.
땀이 주르륵 흐르고 머리카락이 땀으로 젖어도 신경 쓰지 않고 한 번 더 춤을 췄다.
“호진이 형이 필사적이네. 저러다 다치는 거 아닐까 싶은데….”
홀로 연습실에서 춤을 추는 호진을 보며 우주가 말했다.
“아무래도 은근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나 봐. 호진이 형이 말은 안 해도 부담을 잘 느끼는 스타일이거든. 좀 내성적이기도 하고.”
알고 있다.
‘익숙한 이벤트네.’
호진이를 육성하면 늘 만나게 되는 이벤트.
숫기가 적고 내성적인 호진이 첫 무대를 앞두고 긴장을 하는 바람에 무리를 하는 이벤트였다.
‘이건 따로 퀘스트로 주는 건 아닌가 보네.’
이 특수 이벤트 때문에 호진이를 육성하던 초반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선택지에 따라 호진의 컨디션이 하락하거나, 심할 경우엔 부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가는 디버프 이벤트였다.
긴장하는 호진을 본 프로듀서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지는데.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
-벌써 기가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노력해, 노력.
첫 번째 선택지는 의욕이 과해져 발목을 다치는 부상을 입는 이벤트로 이어지고.
두 번째 선택지는 풀이 죽어 컨디션이 2단계나 떨어지는 이벤트가 시작된다.
즉, 이 선택지엔 버프가 없다.
‘게임에선 그랬지.’
그러나 이곳은 현실.
선택지로 돌아가는 세상은 아니다.
즉.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버프를 줄 수도 있다는 뜻.
너무 과한 노력은 상처를 남긴다.
그러니 적당히 자중시킬 필요가 있었다.
“호진아.”
거, 어깨에 힘 좀 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