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다음 주에 무대에 선다는 갑작스러운 뉴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무대에 선다는 게 나쁜 건 아니다.
무대에 오른다는 건 데뷔 전에 우리의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가장 최선의 행동이었다.
데뷔하기 전에 인지도를 올리기.
물론 그래 봐야, 대단한 효과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원래 세계에서도 아이돌 기획사에서 이런 식의 쇼케이스를 한 적이 있지.’
Y○에선 데뷔를 앞둔 연습생끼리 대결을 붙여 이긴 팀은 곧바로 데뷔를, 진 팀은 연습생 생활을 더 한 뒤에 늦은 데뷔를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소속사마다 연습생들로 예능을 만들어 데뷔 전 일반인들에게 멤버들의 개성과 캐릭터를 보여주며, 그들이 그룹의 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그런 곳은 대부분 이름이 알려진 대형 기획사들.
GH에서 TV 예능까지 섭외할 정도로 영업력이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에도 있겠지.’
소속사 연습생들을 데뷔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일반인들에게 노출하기 위한 노력과 수단들.
없을 리 없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선다는 무대이리라.
“다음 주 토요일, 근처에 있는 재원 중학교에 있는 체육관에서 진행할 거야.”
“우리만 무대에 오르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 다른 소속사들과 합작해서 만드는 무대야. 교류 공연도 있겠지만, 사실상 각 소속사에서 데뷔하려는 팀들을 각자 테스트하는 무대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테스트 공연이네요.”
“그렇지.”
테스트 공연.
게임에서도 있었던 이벤트다.
그리 중요하지 않아, 문장 몇 개와 몇 장의 컷 신으로 넘어가는 작은 이벤트.
여러 소속사에서 앞으로 데뷔할 소속사의 유망주들을 선보이는 일종의 쇼케이스였다.
말 그대로 새 음반, 신인 가수 등을 관계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갖는 특별 공연.
여러 소속사가 함께 한다는 건 역시.
경쟁을 시키려는 거려나.
실제로 한진성으로 공략했을 때, 이번 테스트를 앞두고 각오를 다지는 신이 있었다.
-여기서 돋보여야 해.
이번 무대는 확실히 일반인보단 관계자에게 노출하려는 경향이 더 크겠는데.
경쟁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관계자들에게 어필하는 것.
데뷔도 못 한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일반인들이 그리 많이 오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혹시 거기서 꼴찌를 한다면 떨어지는 겁니까?”
“걱정 마. 공식적으로 순위를 따로 매기진 않을 거야. 다만 내부적인 판단은 하겠지.”
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이렇게 무섭게 들리는 거지?
거기서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면 지옥훈련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빡세게 준비해야겠네.
“아, 그리고….”
잠시 주저하던 황이서가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MAE 엔터의 데뷔조 애들도 이번에 참여한다고 했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숨을 삼켰다.
MAE 엔터의 데뷔조라.
생각보다 일찍 만나는데?
데뷔는 하고 나서 만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사실 악연이라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나마 기억나는 사람은 이진우뿐.
내가 떠나는 날에 이죽거렸던 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그에게 대단한 복수심이 들진 않았다.
내겐 보이지도 않는 상대였으니까.
이젠 얼굴조차 기억이 안 난다.
키가 컸던가?
“걔들 팀 네임은 뭐라던가요?”
“골든트랙인가 그럴 거다.”
무난한 이름이다.
그들에 대한 소감은 그게 전부.
“이름은 나쁘지 않네요.”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아 보이네.”
“멘탈 하나는 건강합니다.”
내 말에 황이서가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오해를 하는 거 같다. 억지로 밝은 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저 거친 외모를 가진 황이서도 날카로운 척을 하고 있지만, 은근히 속정이 깊은 스타일로 보였다.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챙겨주려는 형님 스타일 말이다.
“그럼 우린 골든트랙인가 실버트랙인가 하는 애들만 이기면 된다는 거지?”
우주가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경직된 분위기를 풀려는 듯한 목소리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충분히 이길 수 있을걸? 걔들 생각보다 별로 못해.”
우리 애들이 더 잘한다.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내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해서일까.
전체적인 분위기가 살짝 업 되었다.
나에 대한 걱정보단 앞으로 있을 쇼케이스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엿보였다.
‘확실히 착해.’
잠깐 지낸 것만으로도 나를 걱정하는 그 모습에서 깊은 정이 느껴졌다.
그 유성훈마저도.
“앞으로 남은 무대 제대로 준비해서 브론즈트랙 놈들 콧대를 완전히 짓밟아 주자고.”
전투 의지를 다졌다.
적어도 경쟁팀의 팀명은 제대로 불러줘라.
무슨 게임 티어 부르는 것도 아니고.
이름에 골드가 들어가 있다고 유명한 게임의 티어를 섞어 부르는 모습에서 애들이 혈기 넘치는 남자애들이라는 게 느껴졌다.
나는 멤버들을 향해 주먹을 내밀며 외쳤다.
“브론즈트랙 박살 내자!”
아, 아이언트랙이었나?
기억이 안 나네.
“의지는 보기 좋네. 아무튼 이번에 무대에서 내가 예상한 것보다 내부 점수가 낮게 나오면 데뷔 날짜 미룰 테니까 그것도 알아두고.”
“네! 알겠습니다!”
무대라.
약간은 기대가 되는걸?
[서브 퀘스트: 소속사 합동 공연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세요]
[성공 조건: 골든트랙보다 높은 순위]
[실패 페널티: ???]
[보상: ???]
잠깐만.
보상과 페널티가 물음표라고?
본래 게임에서도 그리 큰 보상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소속 연습생들 사이의 호감도와 컨디션이 조금 오르는 정도?
공략법도 간단하고, 몇 개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간단한 패턴을 가졌다.
사실상 첫 무대에 오르는 서비스 신이나 다름없었다.
작은 무대를 소중히 여기는 아이돌들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페널티가 생겼다.
있는 건 좋아.
왜 안 알려주는데?
심지어 보상도 물음표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보상이라도 생긴 걸까?
만약 그렇다면 역시.
‘골든트랙 때문이겠지.’
나와 엮여 있는 이전 소속사의 팀.
기존 이벤트에선 없는 경쟁사의 라이벌 팀이었다.
굳이 그들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라는 말까지 적혀있는 걸 보아, 확실했다.
‘결국 골든트랙이 변수야.’
테스트 무대를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는 안다.
어떤 무대가 높은 점수를 받는지, 어떤 무대를 펼쳐야 하는지 등.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이 꽤 있었다.
골든트랙이 변수이긴 하나, 그게 공략의 핵심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에 대한 건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할 거다.
“건하야, 걱정하지 마.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MAE 출신 애들 다 이길 수 있어. 걔들 별거 아니잖아.”
공략 방법을 생각하던 내 표정이 어두워졌던 걸까.
정민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 네가 별 거 아니라는 뜻은 전혀 아니야. 너를 버린 MAE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쫓겨난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기도 한데….”
횡설수설, 자신의 말에 당황해서 말이 꼬이는 정민의 모습이 마치 어쩔 줄 몰라 하는 커다란 강아지 같아서 다소 위안이 되었다.
불친절한 퀘스트에 상한 마음이 그나마 치유가 된다랄까.
이럴 땐 동료가 있다는 게 든든하네.
무대에 오르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지금 옆에 있는 동료들이 있었다.
골든트랙이 게임에서 등장하지 않았다고 당황하지 말자.
그들보다 훨씬 더 든든한 팀원들을 믿고 내 할 일을 하면 분명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고마워.”
나는 나를 위로하려는 정민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응. 별거 아니야. 건하 너도 나를 많이 도와줬잖아. 나도 힘이 되어줄 테니까. 우리 모두 힘내자.”
주먹을 불끈 쥐는 정민의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연습 열심히 해라. 무대 컨셉부터 댄스 동선까지 전부 너희들이 정하는 거야. 알고 있지?”
“네!”
“정민이 말처럼 MAE 애들은 이기자.”
“알겠습니다!”
상대해야 할 적이 있으면 사기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이치.
우리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 * *
“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연습실에 둘러앉은 우리는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무대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무슨 곡을 부르고, 어떤 춤을 춰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최대한 빨리 무대의 전반적인 구성부터 짜야 앞으로 일정이 타이트하지 않을 거다.
노래를 연습하고 춤까지 맞추려면 당장 연습해도 시간이 부족했다.
‘이런 것까지 의도한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연습생들의 임기응변을 테스트하려는 걸지도?
“이번에 합동 공연에 참여하는 그룹은 9개 소속사에서 골라낸 15그룹. 이번에도 역시 많네요.”
“그래도 작년보단 적네. 그때는 20그룹이었잖아. 공연만 거의 2시간 넘게 했던 거 같은데.”
“5그룹은 터진 건가….”
“더 터졌을 수도 있어. 터지고 새로 구성한 걸지도 모르지.”
“아.”
분위기가 울적해졌다.
“아마 이중에서 진짜 데뷔할 수 있는 그룹은 손에 꼽을 거야.”
성훈이 쐐기를 박았다.
하필 이 타이밍에.
그래도 우리는 사정이 훨씬 낫다.
적어도 이번 테스트만 통과한다면, 얼마 안 있어 데뷔를 할 수 있는 입장.
아직 데뷔는 언감생심, 소속사에서 버티는 것도 힘든 그룹이 산더미였다.
지금 이 무대에 오르는 연습생들도 이미 소속사에서 몇 번이고 채에 걸러 선별한 이들이겠지.
“역시 유명한 곡을 가지고 올라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일반인보단 관계자들이 더 많을 텐데, 그분들에게 어필하려면 유명한 곡이 낫지 않겠어요?”
“이번에 핫했던 스트리브 선배님들의 틱택톡은 어때?”
“…나쁘지 않은 거 같아.”
“너무 유명한 곡은 겹칠 수 있다. 틱택톡은 보류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아, 겹치면 곤란하긴 하겠네요. 그러면 비교돼서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아무도 모르는 노래는 어때요?”
“그건 조금 힘들지. 너무 독특한 곡으론 주목을 받지 못할 거야.”
“그럼 역시 빠른 곡이 좋겠지?”
어떤 노래를 선정할지, 어떤 분위기의 노래를 고를지.
본격적으로 연습하기에 앞서 우리의 지향점을 찾기 위한 회의가 시작됐다.
적극적으로 노래와 분위기에 대해 어필하는 우주와 정민, 그들의 의견을 들으며 장단점을 살피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개선안을 내미는 성훈, 작게나마 의견을 내미는 호진.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그들을 지켜보는 나.
흠.
빠른 노래라.
이왕이면 빠른 노래가 무대에서 더 돋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빠른 노래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살펴야 하는 건, 노래의 빠르기가 아니라, 우리의 컨셉에 맞는지.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지였다.
그리고 유행을 탄 노래라고 무조건 인기가 있을 거라는 것도 착각이다.
“그럼 크래프톤 선배님들의 ‘Show Down’은 어때?”
의견을 주고받던 정민의 입에서 익숙한 노래 제목이 나왔다.
Show Down?
그걸 하겠다고?
진심이야?
‘Show Down을 여기서 듣네.’
아는 노래였다.
게임뿐 아니라 내 원래 세상에서도 유명했던 노래였으니까.
특이하게도 게임사에서 실제 보이 그룹과 콜라보를 했던 노래였던 걸로 기억했다.
이 노래가 나오다니.
댄스의 난이도가 너무 높은 데다가 노래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아서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노래였다.
무엇보다 이 댄스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괜찮은데? 빠르기도 좋고, 신나는 데다가 유명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노래잖아요.”
“…좋은 거 같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 곡은 안 된다.
아니, 애초에 접근방식이 틀렸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내가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우주도 호진도 성훈도 그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마치 그것이 그들의 조건을 전부 충족한 정답인 것마냥 말이다.
무대에 오른다는 설렘 때문일까?
아니면 부담감 때문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들은 노래가 가진 유명세에 집중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우리.
우리가 가진 매력을 그 노래로 보여줄 수 있는가다.
나는 감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건하 너는 어떻게 생각해?”
모두의 눈이 내게 향한다.
그들은 이미 Show Down에 빠진 얼굴이었다.
좋은 분위기에 산통 깨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말이지.
“난 반대야.”
“응?”
좋은 노래인 건 맞지만, 그 노래는 우리랑 맞지 않아.
거기다가, 나는 알고 있다.
이번 테스트를 공략하기 위해선 누구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으론 좋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걸.
“이 노래는 우리랑 맞지 않는 거 같아.”
“맞지 않는다고?”
“차라리 다른 노래를 고르는 게 어때?”
4 대 1 토론 배틀이라도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