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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2화 (12/236)

<제12화>

MAE의 연습 환경.

사실 기억나는 건 없다. 윤건하의 과거 기억 중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저 알고 있는 건, 그들의 연습 스케줄이 굉장히 빡빡했다는 정도.

벽에 걸려 있던 건하의 스케줄러엔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윤건하의 발에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여 있고, 몸 여기저기엔 넘어져서 난 상처가 선명했다는 것.

아마 건하가 유달리 연습을 더욱 열심히 한 거겠지만, 그만이 특별히 더 많이 한 건 아니었으리라.

아, 시설은 엄청 좋더라.

내가 있던 시간은 잠깐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확실히 GH와는 차이가 있었다.

여기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MAE의 시설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녹음실과 연습실의 크기, 처음 보는 장비들, 사무실을 오가는 직원들이나 구내식당의 맛까지.

전부 좋긴 하더라.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연습생들의 자부심.

MAE 출신이라는 확고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보였다.

피부로 와 닿았다.

자신들이 실패할 리 없으리라는 굳은 믿음이 말이다.

윤건하도 그랬으려나?

아니면, 오히려 그런 다른 연습생들의 자부심을 보며 부담감을 느꼈으려나?

모르겠다.

거기까진.

내가 알아야 할 건 그의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이니까.

MAE에서 쫓겨난 상실감보단 GH에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각오로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궁금증에 안달이 난 우주를 보며 말했다.

“연습이야 비슷하지. 오전엔 보컬 연습하고 오후에 댄스 연습하고 각자 개별 연습하면서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집중적으로 도와주시지.”

“역시 그 부분은 똑같네. 먼저 데뷔한 선배님들은 보기 어려워? 아니면 못 보게 하나?”

“그런 건 아닌데, 다들 바쁘시니까. 선배 연예인을 볼 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나는 없는 기억을 억지로 끌어모아 그들에게 말했다.

거짓말은 할 수 없으니, 내가 아는 사실만을 최대한 떠올리고 생각했다.

“그래도 구내식당은 MAE가 더 맛있긴 하더라.”

“아, 유명하죠. MAE 구내식당. 거기 진짜 뷔페식으로 나오나요?”

“나오기는 하지만 알잖아. 우리 식단 할 땐 못 먹는 거.”

“아….”

“그래도 가끔 거기서 밥 먹다 보면 선배님들 만난다고 하더라. 나는 한 번도 못 만나봤지만.”

“크으…. 다른 소속사 연예인들도 갈 정도로 맛있다던데, 부럽네요. 구내식당.”

우주가 입맛을 다셨다.

“거기 장조림 계란이 정말 맛있다고 하던데. 소고기 장조림에 삶은 계란 쩍 갈라서 밥에 간장소스랑 같이 비벼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는데, 먹어 보셨어요?”

그렇게 맛있나.

글쎄, 나는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내가 MAE에서 먹은 거라고는 네 끼 정도밖에 안 되니까.

“맛…있긴 하더라.”

“역시…. 나중에 성공하면 MAE 구내식당 마음껏 갈 수 있을까요?”

“그러지 않을까? 한 번쯤은 MAE 출신 연예인이랑 콜라보 할 수 있을 때 되면, 갈 수 있을 거야.”

“히히, 그럼 식판에 계란 장조림만 담을 거예요.”

입에 침을 고인 채로 의지를 불태우는 우주를 뒤로하고, 나는 살짝 떨어진 유성훈을 보았다.

그는 아닌 척 내 쪽으로 몸을 틀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까보다 조금 가까워진 거 같은데?

얘도 궁금한 거다.

한국 최고의 엔터의 시스템이 말이다.

“유성훈…은 궁금한 거 있어?”

형이라는 말이 참 안 붙네.

“…….”

잠시 입을 다문 성훈.

그는 나를 주시하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수많은 단어가 저 입 안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고민하고 고민하던 유성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MAE에 대해서 궁금한 건 없다. 대기업이라고 해도 경쟁회사니까.”

역시 유성훈답다고 해야 할까.

칼 같이 자르는 말이 날카롭다.

아까 그렇게 궁금하다는 듯 귀를 쫑긋거렸으면서 궁금한 게 없다니.

거짓말에 서툴구만.

그때, 유성훈이 말을 이었다.

“내가 궁금한 건 MAE에서 네가 왜 떨어졌는가다.”

“뭐?”

“누구보다 연습에 진심이고, 우리와 진도를 맞추기 위해서 따로 연습 시간을 가질 정도로 노력한 네가 왜 MAE에서 떨어진 거지?”

“헉!”

“흐읍!”

자리에 있는 모두가 숨을 멈췄다.

숨소리 하나 나지 않는 적막.

혹여나 내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어 아무도 묻지 못한 말.

왜 MAE에서 쫓겨났냐는 질문.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서 기를 쓰는 저들이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데뷔 직전에 떨어진다는 그 절망감을.

아이돌만 보고 달려온 그들에겐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겠지.

아마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하는 걸까.

정민과 호진의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아마 내가 싸우려고 덤벼들면 말리려고 하는 거겠지.

그 말 많던 우주도 입을 다물고 내 눈치를 봤다.

얘들아, 걱정 마라. 형 그 정도로 화 안 내.

그러나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다.

성훈이 괘씸했다.

의도적인 건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물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거 진짜 건하가 들었으면, 아마 크게 상처받았을 거다.

분명 울었을걸?

“그걸 묻는 이유가 뭐지?”

내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서늘했다.

“궁금해서 그렇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 네가 거기서 떨어진 게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

“노력만으론 성공할 수 없어. 실력이 부족해서지.”

“너 정도로도 부족한 건가? MAE는?”

“뭐라고?”

뭔가 말이 이상한데?

“이해를 할 수 없군. MAE 프로듀서들의 눈은 옹이구멍인가? 아니면 진짜를 보는 눈이 없는 건가?”

“엥? 지금 뭐라고 했냐?”

“말 그대로다. 나는 네가 MAE에서 떨어질 실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하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여겼다면 미안했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낯선 정보에 얼떨떨하게 서 있는 내게 유성훈이 말을 이었다.

“물론 나보다 MAE의 관계자가 훨씬 더 경험이 많겠지만, 식견이 짧은 내 눈에도 너에게서 남다른 게 느껴졌는데 그들이 못 봤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거든.”

나를 보는 성훈의 눈은 한 점 흔들림이 없었다.

“왜 그래? 갑자기.”

안 어울리게.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냐?”

“솔직히, 처음엔 싫어했다. 만약 네가 우리 그룹에 해가 되는 애였다면 계속 싫어했을 거다. 만약 MAE에서 왔다며 연습을 게을리하고 다른 멤버를 무시했다면 프로듀서님께 얘기할 생각이었다.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애 같다고.”

“그런데 아니었다?”

성훈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말해줬다. 호진이부터 시작해서 정민이 우주까지. 편견을 벗고 보라고. 연습도 열심히 하고 실제로 계속 나아지고 있지 않냐면서.”

“그래?”

“실제로 발전하는 게 보였지.”

나도 모르게 다른 멤버들을 보았다.

부끄러운지 그들은 모두 내 눈을 피했다.

“흠흠.”

“아이고, 바닥에 먼지가.”

“…….”

각기 다른 반응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진정해.

“언제 그런 말을 해준 거야?”

기특하네.

“연습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면 안 되니까.”

정민이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모습을 보니, 그들도 꽤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하긴, 팀 내부에서 투닥거리면 좋을 게 없으니까.

성훈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도 데뷔를 위해 인생을 걸었으니까.”

“이해는 한다.”

성훈의 말마따나 그들 역시 이번 데뷔를 위해 인생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다.

각자 쏟은 시간은 다르겠지만, 목표는 같았다.

아이돌 데뷔.

그 시작점에 섰으니 얼마나 긴장되고 떨릴까.

매일 시험에 드는 기분이었으리라.

“실력도 눈에 띄게 좋아지기에 더 놀랐다. 그래서 물어본 거다. MAE 관계자는 이런 걸 못 봤나 해서.”

“음. 못 봤으니 여기에 있는 거지.”

멋쩍게 웃었다.

내가 이렇게 각성한 것도 거기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니까.

성훈은 성격 자체가 진중한 건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의심하고 거리 둬서 미안했다.”

성훈이 손을 내밀었다.

“하아, 그래도 의심받고 테스트를 당하는 입장이 되니, 그리 좋지는 않네.”

나는 손을 내민 채 묵묵하게 나를 마주 보는 성훈에게 말을 이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내 대답을 지켜보았다.

“그래도 싸우면서 친해진다고들 하잖아?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서로 털어내고 좋게 지내자고. 앞으로 함께 해야 할 팀이잖아?”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이젠 서로를 믿어보자고, 싸우지도 말고.”

내가 그 손을 맞잡는 것과 동시에.

우우웅!

스마트폰이 울렸다.

확인하지 않아도 퀘스트가 완료됐다는 걸 알겠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나도 잘 부탁해. 성훈이… 형.”

“그래, 거, 건하야.”

“아, 이런 분위기 진짜 어색하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같았다.

원래 나보다 한참 동생인 애에게 형이라고 하는 게 어색했지만, 지금의 나는 20살이 맞으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처음과는 다른 의미의 어색한 분위기.

이 숨이 턱턱 막히는 적막은 참을 수 없었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배배 꼬이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연습할까?”

이런 분위기엔 연습이 최고지.

“그러자.”

그건 성훈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    *    *

연습이 끝나고, 나는 보상을 확인하기 위해 화장실을 찾았다.

아무리 자유로운 분위기라도 연습실에서 핸드폰을 꺼낼 용기는 없었다.

[서브 퀘스트: 멤버들에게 인정을 받으세요.]

[서브 퀘스트를 성공하셨습니다.]

[보상: 5 오픈 마일리지]

만료까지 4일 남기고 성공.

조금만 더 늦어졌다면 실패할 뻔했다.

그럼에도 계획보단 쉽게 인정을 받았다.

이보다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고집이 센 성훈 같은 사람들은 의외로 고리타분한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보단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다 보면, 알아서 알아준다.

입을 닫고 있어서 잘 느끼지 못하지만, 저런 사람들이 의외로 관찰력이 높거든.

계속 보고 있던 거다.

내가 연습하는 걸, 계속해서 이 그룹에 진심이었다는 걸.

당연히 진심이지.

데뷔하지 못하면 캐릭터가 삭제된다는데.

나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진 않다고. 사라졌다간 어떤 꼴이 될 줄 알고.

죽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없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지.’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든 진엔딩을 봐야 했다.

진엔딩이 뭘까.

원래 게임에선 그래미 상을 받는 것이 진엔딩이었다.

세계 최고의 스타.

그리고 그 후로 당신의 스타는 세상이 알아주는 별이 되었다는 이야기.

과연 이 세계의 진엔딩도 같은 걸까?

그래미 상을 받고 목표를 이루면 이 이야기도 끝나는 걸까?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나도 빈약하다.

‘그래미를 타도 이후에 내가 모르는 루트가 나올지도 모르지.’

애초에 게임에 빙의되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은 아니니 말이다.

적어도 건하로서 상을 받는다면, 뭔가 단서가 주어질 거다.

방금 클리어한 이 퀘스트처럼.

이 시스템 창이 내게 알려줄 거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일단 최종 목표는 그래미 상을 받는 걸로 잡아야겠어.’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아이돌에겐 너무나도 높은 벽이지만,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내 음악상이 아닌,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상.

안 된다고?

불가능하다고?

내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는 어떤 현자의 말이 있다.

그리고 내 사전에도 마찬가지다.

불가능? 그건 다 핑계야.

원래 윤건하로 돌아가기 위해선 무조건 해야 돼.

새로운 다짐과 함께, 퀘스트를 깨면서 받은 보상을 확인했다.

오픈 마일리지.

이걸 통해 능력 포인트를 올렸다.

5 마일리지라면 적은 보상이 아니었다.

E+급의 스탯을 C급까진 올릴 수 있는 포인트를 주는 보상.

다만 지금은 5 마일리지로 살 수 있는 어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단순히 스탯을 올린다고 내 실력이 오르는 게 아니야.’

내 상태창을 보며 생각했다.

스탯을 구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스탯을 올린다고 모르는 춤을 바로 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조금 더 빠르게 배우고,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스탯을 구매한 만큼 더 열심히 해야 돼.’

멤버들의 인정?

그건 이제 시작일 뿐이다.

내가 여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

그러니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다.

나 자신을 더욱 채찍질해서, 정말 이 그룹에 어울리는 멤버가 되는 것.

하나의 팀.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자신들과 같은 팀이라고 말한 그들이 후회하지 않게끔 해주는 것.

그게 내 최우선 목표였다.

결심을 마친 나는 찬물로 세수를 했다.

“후우.”

머리가 깨는 기분이다.

세수를 마친 나는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다.

“아, 건하도 왔구나. 그럼 간단하게 다시 얘기하겠다.”

황이서가 연습실에 찾아왔다.

애들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

“다음 주에 무대에 설 거다.”

“예?”

무대에 선다고요?

다음 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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