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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1화 (11/236)

<제11화>

안호진과의 추가 연습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텃세를 부리지 않을까 했던 내 걱정과는 달리 그는 내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줬다.

“지금 벌스 부분에서 측면으로 빠지는 동작이 어설픈데 어떻게 해야 돼?”

“여기선 이렇게 추는 게 좋아.”

말보단 행동.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보단 몇 번이고 같은 자세를 내 앞에서 시연했다.

그리고 그걸 내가 따라 할 때까지 몇 번이고 같이 췄다.

첫 질문 이후로 내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든 고쳐주기 위해서 도와줬다.

춤을 전공으로 하는 친구라 그런가. 체력이 남달랐다.

거의 쉬지도 않았다.

추고, 추고, 또 췄다.

데뷔 타이틀곡의 반주가 몇 번이고 울려 퍼졌다.

“허억, 허억.”

땀이 비 오듯 쏟아질 정도로 둘이서 연습했다.

내가 부족해 추가 연습을 하는 마당에, 게으름을 피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만사에 최선을 다하자.

그게 사업가 윤건하가 무일푼으로 성공할 수 있던 이유였다.

이렇게 말하니, 사기꾼 같네.

쉬지 않았다.

약간의 휴식은 곡을 정지하고 우리의 동작과 동선을 가다듬을 때뿐.

심장이 북소리처럼 쿵쿵 울렸다.

이러다 터지는 거 아닐까?

춤추다가 심장 터졌다는 사람은 없었던 거 같긴 한데.

땀으로 옷이 전부 젖었다.

전신에서 쿰쿰한 땀 냄새가 날 정도로.

아 씻고 싶다.

격렬하게 몸을 씻고 싶다.

“…여기까지 할까?”

나를 보며 머뭇거리던 안호진이 먼저 물었다.

그 안호진이 먼저 묻다니.

한 걸음 나아갔다고 보면 될까.

같이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그래, 기브 앤 테이크.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내가 이렇게 어필하면 상대도 받아줘야 재미가 있는 거지.

“시간도 늦긴 했네.”

추가 연습만 적어도 3시간은 했다.

오래도 했다.

“그래. 이제 숙소로 가자. 내일도 연습하려면 적당히 쉬어야지.”

“…응.”

나는 호진이 퇴근 준비를 마치길 기다렸다. 그래봤자, 운동화에서 편하게 신는 신발로 갈아신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나는 따로 챙길 짐은 따로 없었다.

오늘 왔는데 짐은 무슨.

“가자.”

내가 앞장섰다.

한 번 온 길이라 돌아가는 길도 잘 안다.

돌아가는 내내 어색한 침묵이 가라앉았다.

진짜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가끔 내가.

“날이 춥네. 저녁이라 그런가?”

라고 물어보면.

“그러네.”

단답으로 끝. 대화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아아, 이게 맥커터라는 건가.

선생님 한마디라도 더 해주세요. 말 건 보람이라도 나게.

그러나 과묵한 호진 선생님은 말이 없다.

*    *    *

안호진은 황이서 프로듀서와 최강훈 대표가 새로운 멤버의 오디션을 보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긴가민가했다.

‘친해질 수 있을까?’

새로 들어올 멤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보단 스스로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이미 멤버 추가는 예전부터 나왔던 얘기였다.

지금 4명으로는 부족하다고.

멤버들이 낼 수 있는 캐미와 균형 그리고 컨셉과 센터의 배치를 생각했을 때 홀수가 균형이 맞으니, 한 명을 추가할 거라고.

프로듀서님과 대표님의 생각에 토를 달 생각은 없었지만, 우리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 다소 실망한 건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더욱 연습에 매진했고.

‘실망시키지 말자.’

대표와 프로듀서 그리고 우리가 데뷔했을 때 마주할 팬들을.

안호진은 오늘도 그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러던 와중 우주와 함께 온 건하를 보았다.

처음 건하를 본 안호진은 생각했다.

‘잘생겼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잘생긴 사람들은 이 아이돌 판에서 차고 넘친다.

지금 우리 멤버들을 봐도 그렇다. 다들 동네에서 잘생기기로 유명한 이들이었다. 아마 연습생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이성, 엔터업계 등 온갖 곳에서 수없이 러브콜을 받았을 거다.

길거리 캐스팅 같은 것도 최소 몇 번은 당해봤을걸?

아이돌 연습생이 잘생긴 건 당연한 거다.

기본 중의 기본.

더 중요한 건, 얼마나 노력해서 팀원들과 합을 맞출 수 있는가.

춤을 얼마나 잘 출 수 있는가.

고작 하루.

하루 만에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안호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윤건하가 적응하려면 적어도 몇 주는 걸릴 거라고.

그런데 채 트레이너님과 함께 빡세게 연습하는 걸 보고, 어색하지만 호흡이 맞아가는 것을 보고.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얘도 진심이구나.’

건하도 그와 똑같이 필사적으로 이 바닥에서 버텨왔던 애라는 걸.

그 생각의 확신은.

-나 연습 좀 도와줘.

-아직 모르는 게 많아. 오늘 배운 거 잊기 전에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서.

연습이 끝나자마자 추가 연습을 하고 싶다는 건하의 말을 듣는 순간 느꼈다.

MAE에서 떨어진 연습생이고, 우리 엔터에 낙하산으로 들어온 아이지만, 그도 분명 어제까지는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데뷔가 얼마 안 남은 연습생 신분이었다.

어쩌면 차트에서 경쟁하는 경쟁자였을지도?

건하는 추가 연습 때도 매사 진지한 자세를 유지했다.

단순히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절대 먼저 쉬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아까 댄스 트레이너 선생님과 할 때도 거의 안 쉰 거 같은데, 몸이 괜찮을까?

아마 건하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가 굴러온 돌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걸 말이다.

비록 성격 좋은 우주가 건하를 데리고 와 금방 친해졌다고 해도, 밖에서 온 건하 입장에선 다를 것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우리와 조금이라도 친해지려고.

그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이다.

적어도 방해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건하를 생각하니 조금 미안해졌다.

‘건하도 이렇게 노력하는데.’

나는 뭐 하는 거지?

그를 경계하기만 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잖아.

건하는 돌아가는 내내 여유로운 표정을 잃지 않았다.

다소 지친 기색은 역력했지만, 절대 그걸 밖으로 티 내지 않았다.

그가 돌아가는 길에 몇 번이고 말을 걸어 줬음에도.

“그러네.”

“응.”

“아.”

라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은 탓이다.

‘이 멍청아.’

아으.

자신이 먼저 말을 걸자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호진의 집안 자체가 말수가 적었다. 할 말을 못 하고 살던 것이 쌓이고 쌓인 것이 말주변이 없는 지금의 호진이었다. 특히 이렇게 둘이 있는 경우엔 더더욱 그랬을 거다.

입이 도통 떨어지질 않았다.

망설이고, 주저이고, 머뭇거리다 보니 어느새 숙소까지 도착했다.

꿀꺽.

여기가 아니라면 먼저 말을 걸 기회가 없을 거 같았다.

들어가자마자 우주가 떠들 거고. 분위기 메이커인 그의 주도하에 대화가 이어질 테니.

아마도 먼저 말을 꺼낼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

숙소 문고리를 잡은 호진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후우우.”

우물거리고 있자, 뒤에 서 있던 건하가 물었다.

“안 들어가고 뭐 해?”

“…고생했어.”

“뭐라고?”

“오늘 첫, 날인데 열심히 따라오느라 고생, 했다고.”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왔겠지?

삑사리는 안 났던 거 같은데.

괜히 말 걸었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조금 전까지 그렇게 말 없었으면서.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호진이 너도 고생했다. 춤 잘 추더라. 앞으로 잘 부탁한다.”

떨리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니, 건하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뭐해. 안 잡고. 민망해지려고 한다?”

“아, 응. 잘 부탁해.”

“그래. 힘든 거 있으면 얘기하고. 형이 다 들어줄게. 내가 자신감 키우는 건 전문이거든.”

“…우리 동갑인데?”

다시 어색해진 공기.

동갑이란 건 괜히 말했나.

“아무튼 들어가자. 빨리 샤워하고 싶다. 몸이 끈적끈적해.”

아무렇지 않은 척 기지개를 쭉 켠 건하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빨리 씻고 자고 싶다.”

“응, 그러게.”

*    *    *

‘휴우. 형이란 건 괜히 말했네.’

원래 서른이 넘었던 내게 스무 살 풋풋한 호진이 한참 어린 동생으로 보여서 무심코 말해 버렸다.

동갑이라는 그의 말에 뒤늦게 아차 싶었다.

나도 스무 살이지.

‘그래도 인정은 받은 거 같네.’

[멤버: 안호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멤버: 안호진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아마 끝까지 남아 연습한 덕택이리라.

첫날에 세 명의 마음을 사로잡다니.

나 생각보다 재능 있을지도?

숙소 안으로 들어가자, 거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던 멤버들이 보였다.

“늦었네? 생각보다 오래 연습했구나.”

이제 남은 건 한 명.

아직도 언짢은 얼굴로 나를 보는 유성훈뿐이다.

‘호감도는 못 올려도 인정은 하게 만들어야지.’

그런데 어떻게?

*    *    *

GH에 오고 열흘이 지났다.

나름대로 이 팀에 잘 녹아들고 있었다.

특별하게 싸우는 것도 없고, 텃세를 부리겠다며 시비 거는 애도 없고, 그렇다고 성격 나쁜 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강훈 대표나 황이서 프로가 단단히 벼르고 준비했다는 게 느껴졌다.

애들은 착해.

걱정했던 것만큼 다툼도 없었다.

‘원래라면 슬슬 여기서 뭔가 이벤트가 벌어져야 하는데 말이지.’

너는 우리 팀에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말도 안 되는 오해를 씌운다거나.

의도적으로 괴롭힌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독히 현실적이었다.

이제 열흘 정도 지나니, 연습생 생활도 나름 적응이 됐다.

생각보다 생활 패턴이 단순했다.

오전엔 보컬 트레이닝.

오후엔 댄스 트레이닝.

남는 시간엔 체력 단련.

그리고 식단 조절.

이 4개만 잘 지키면 나를 터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생에선 이보다 훨씬 빡빡한 스케줄도 견뎠던 나다.

연습 정도야, 거뜬하다.

연습실 상단에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증명해라’라는 사훈이 있더라.

철저한 실력주의.

증명하지 못하면 쫓겨나는 지옥.

이 지옥이 오히려 내겐 참으로 알맞았다.

‘식단 때문에 매일 채소랑 닭찌찌 살을 먹는 것만 빼면 다 좋아.’

오늘도 평화로웠다.

최근엔 애들이 내게 달라붙어서 난리였다.

사교성 좋은 우주야 당연히 매번 내게 질문하며 따랐다.

뭘 좋아하는지. 장기가 뭔지. MAE에서 퓨처스 말고 다른 스타들은 봤는지.

전부 내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어떻게 대답해.

정민은 작곡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내게 찾아와 물었다.

“건하야, 이 부분 어떻게 들려?”

“여기는 어때? 지금 딱 하이라이트 부분이거든?”

솔직히 이미 내가 손을 대기엔 너무 완벽해서 할 말이 거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좋은데?”

이 한마디뿐이었다.

흡수력이 너무 좋다. 응용력도 좋은지, 생각보다 높은 완성도를 갖췄다.

내가 들었던 원곡과 거의 유사했다.

이 노래는 잘 될 거다.

무조건 알음알음 유명세를 탈 노래가 되리라고 확신했다.

호진은?

“…춤 연습할래?”

먼저 같이 춤 연습하자며 내게 물었다.

일대일로 붙어서 연습하라는 채남영 트레이너의 조언도 있었고, 나도 그 옆에서 같이 연습하는 게 훨씬 발전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서 거절하진 않고 있었다.

일단 이 셋에 대한 기초적인 호감작은 꽤 잘 된 거 같다.

내가 이상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갑자기 내게 등을 돌리진 않겠다 싶었다.

그래.

이상한 짓만 하지 않으면.

문제는 유성훈이다.

열흘이 넘었음에도 녀석의 호감도는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리 불만인지 잘 얘기하다가도 내가 있으면 말을 멈추고 자리를 피한다든지,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다른 연습을 하러 가는 둥.

나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이 팀에 도움이 된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을 기세인데.

‘최악의 미션이네.’

어떡하면 좋지?

연습을 빡빡하게 하면, 팀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유성훈이 나를 인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예상보다 더 빡빡한 친구였다.

아주 돌이야. 뿌리 깊은 돌.

박혀서 뽑힐 생각을 안 해.

이제 4일밖에 안 남았는데.

유성훈이 나를 인정하게 만든다.

어떻게 하지?

그때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MAE에 대해 묻던 우주가 또 물었다.

“형, MAE에선 어떤 식으로 트레이닝 해?”

“응?”

“우리 GH 엔터 트레이닝 방식만 따르고 형 쪽 노하우를 얘기해 주지 않아서 궁금해졌어.”

“그건 나도 궁금하다.”

“…….”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대기업 MAE의 트레이닝 방식.

궁금할 법했다.

아무래도 큰 회사는 뭐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겠지.

기억이 없다고는 말할 수도 없고.

어쩐다.

그때, 무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관심 없는 척 자신의 연습에 몰두하던 유성훈과 눈이 마주쳤다.

“크흠.”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유성훈.

호오? 여기서 반응을 보인다고?

이거 꽤 괜찮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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