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아, 나는 신경 쓰지 마.”
황이서가 손을 휘휘 저으며 인사하려는 우리를 말렸다.
“연습에 집중해.”
말을 마친 그는 저벅저벅 연습실 구석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새 자란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쓰다듬는 황이서의 등장에 자리에 있던 멤버들이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 말이 많던 최우주도 입을 닫았고, 정민도 긴장한 듯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호진이도 나름대로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유성훈은 숨을 고르며 자세를 잡았다.
누구보다 지금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보였다.
끼가 많아 아이돌이 되겠다고 하는 애들이었다. 채남영이 들어왔을 땐 태연하게 대꾸하던 애들이 황이서가 나타나자마자 긴장을 했다는 것.
황이서가 이 팀에 가지는 영향력을 생각할 수 있었다.
“자, 그럼 바로 준비하자. 우선 네 명에서 다섯 명으로 바뀌었으니, 동선을 새로 잡을 거야. 핵심 파트에서 센터가 중앙에 딱 설 거야. 다들 확실하게 하자.”
“넵!”
“자, 이제 다들 어떻게 움직일 거냐면….”
채남영이 우리의 동선을 몇 번이고 체크했다.
반주를 함께 틀면서, 이 노래 파트에서 누가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동선을 확인하고 나서야, 단체 연습이 시작되었다.
혼자 출 때와는 다른 느낌이더라. 단순히 내 춤만 생각하면 될 때와는 다르게 내 움직임, 같이 춤을 추는 멤버의 이동반경, 무대의 넓이, 내가 춤을 춘 이후의 배치 등.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몇 시간 동안 채남영과 일대일 과외를 받은 덕분에 그나마 동작을 잊어먹지 않았다는 것.
내가 춤을 헷갈려서 헤매는 건 없었다.
다만.
“건하야, 거기서는 조금만 더 빠르게 팔을 저어야겠다. 다른 애들이랑 템포가 안 맞아.”
“죄송합니다!”
숙련도 이슈 때문에 채남영에게 꽤나 자주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괜찮아. 오늘 첫 시작인 것치고는 진짜 좋으니까.”
격려를 위한 말이었을까.
채남영은 내게 지적을 하면서도 오늘 처음이라는 걸 몇 번이고 강조했다.
짝짝.
“자, 그럼 다시 가자.”
반주가 흘러나오고, 다시 처음부터 호흡을 맞췄다.
‘빠르기만 해선, 안 돼.’
군무의 포인트.
여럿이서 추는 군무는 안무가 갖는 포인트를 모두가 함께 발현했을 때 오는 쾌감이 중요했다.
멤버들이 얼마나 비슷한 타이밍에 안무의 포인트를 갖추는가.
팔을 뻗는 속도, 멈추는 자세, 뻗은 손을 회수하고 다음 동작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까지.
거의 한 몸처럼 움직여야만 했다.
“좋아. 이 부분은 다시 한번 들어가 보도록 한다.”
파트의 동선을 맞추고 나니, 채남영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끊었다.
우리는 부분 동작으로 몇 번이고 같은 부분을 반복하며 서로의 움직임을 맞췄다.
서로의 동선이 아직 확고하게 잡히지 않은 탓에 춤을 추는 동안 몇 번 부딪치곤 했다.
“허억, 허억.”
댄스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때쯤에는 숨이 턱턱 막혔다.
전신에 땀이 뻘뻘 흘렀고, 숨이 거칠었다.
그럼에도 미소를 잃지 말라는 채남영의 외침에 우리의 입꼬리는 끝까지 올라가 있었다.
댄스 연습.
게임에선 고작 5초도 되지 않는 짧은 컷 신으로 넘어가는 장면이었다.
5초밖에 되지 않는 짧은 컷 신 이후엔 연습이 성공적이었는지 실망스러웠는지를 성공, 실패라는 자막과 스탯으로 보여줬었다.
그런 컷 신 사이에 이렇게 필사적인 연습이 있을 거라고는, 게임을 하는 유저로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춤을 노래 부르면서 해야 한다고?’
새삼 아이돌들의 체력에 감탄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춤을 추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노래까지….
다행인 건 적어도 이 몸의 체력이 받쳐준다는 것.
“자, 그럼 잠깐 쉬고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맞춰보자.”
“알겠습니다!”
꿀맛 같은 5분 휴식.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황이서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은 상태로 2시간 내내 우리를 보고 있었다.
덕분에 연습실은 쉬는 시간임에도 경직된 상태였다.
저 사람도 그만큼 진심이라는 뜻이겠지.
이 연습실에 있는 사람 중에 진심이 아닌 이는 한 명도 없을 거다.
지금 분위기가 그걸 대변했다.
* * *
트레이너 채남영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윤건하를 보며 내심 감탄했다.
‘의지가 확고하네.’
솔직히 금방 나가떨어질 줄 알았다.
어려서부터 일을 시작해, 나름 이 판에서 짬이 많은 채남영은 MAE 출신 애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국내 굴지의 엔터 기업이라는 타이틀 때문일까.
MAE에서 1년 정도 구른 애들은 자기가 MAE 출신이라는 특유의 자존심을 짙게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골치 아픈 일들이 꽤 자주 일어났다.
이번에 왔다는 윤건하도 MAE 출신이라는 소리에 관리하기 골치 아프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서 1대1로 따로 코치를 맡았는데, 가진 눈빛은 이전에 봤던 놈들이랑 많이 다르더라.
-어차피 대충하면 되잖아요?
-그 춤, MAE에서 이미 배웠었어요.
참 뺀질거리기도 잘했지. 그 새끼들.
그런데 건하 이놈은 무슨 연습 첫날부터 악바리처럼 덤비더라.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처럼.
그래서 채남영도 전력을 다했다.
빡세기로 유명한 자신의 커리큘럼을 확실하게 따라올 줄은 몰랐다.
‘물건은 물건이야.’
근성도 있고, 멘탈도 좋다.
쫓겨난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기운찼다.
왜 황 프로와 최 대표님이 건하를 데뷔조에 꽂았는지 채남영은 대충 알 거 같았다.
황 프로가 굳이 오늘 연습실에 찾아온 건, 건하를 확인하고 싶어서겠지.
건하가 첫날에 어떤 모습을 보일까 하는 기대.
“황 프로, 퇴근 안 하십니까?”
평소라면 연습생의 부담을 얼어주기 위해 연습실을 나갔을 채남영이 구석에 앉아 있는 황이서에게 다가갔다.
“애들 춤추는 건 보고 가야죠. 갑자기 새로 들어온 멤버 때문에 적응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어떻습니까? 옆에서 봤을 땐?”
“채 트레이너는 어떻게 봤나요?”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한다라.
“확실히 열심히 합니다.”
“그렇습니까?”
“예,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로 노력하는 놈이 있었나 싶어요.”
만족했다.
열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채남영에겐 이미 건하는 합격점이었다.
“그렇다고 춤을 아예 못 추는 건 아니었고요. MAE 애들 기준이 높은 건지, 이 정도면 나쁘진 않습니다. 물론 손봐야 할 곳도 많지만 안무의 포인트를 본능적으로 캐치하고 있어요. 팀원들과 호흡도 괜찮고요. 체력도… 나쁘지 않은 거 같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차근차근 고칠 수 있다는 채남영의 말에 황이서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황 프로는 마음에 안 차십니까?”
“아뇨. 꽤 마음에 듭니다. 자르진 않을 거 같아요.”
황이서는 연습실에서 앉아 쉬고 있는 윤건하를 보았다.
오늘 아침에 있던 오디션에서 말한 그의 말이 떠올랐다.
-성과가 없는 근성은 장점이 될 수 없죠.
단순히 근성만으론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했던 윤건하의 말.
‘자기한테 하는 말이었나.’
건하는 아침에 오디션에서 보여줬던 허우적과 춤 사이에 있던 무언가가 아닌, 확실하게 포인트가 살아있는 댄스를 추고 있었다.
하루 만에 말이다.
물론 여전히 완벽하진 않았다. 채남영 말대로 묘하게 허술하고 손 볼 곳도 많으며 조언해 줄 곳도 천지였지만 건하가 오디션에서 보여줬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새끼, 그새 연습 많이 했나 보네.’
근성 하나는 타고난 놈이었다.
MAE에서 근성 하나만 보고 붙잡고 있을 만했다.
거기다가 자신의 실패 원인을 알고 반성하며 고치려는 침착함까지.
물건은 물건이다.
보기 전까지 그를 괴롭혔던 우려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에 황이서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이크.’
그는 다급하게 턱을 쓰는 척 입가를 가렸다.
아직은 애들 앞에서 풀어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그가 연습실에서 고생하는 애들 앞에서 웃는 건 적어도 성공적인 데뷔를 끝마친 후.
그때까지는 엄한 프로듀서, 상벌이 뚜렷한 프로듀서의 이미지를 갖고 가야만 했다.
“황 프로도 고생이 많습니다.”
그 기색을 눈치챈 채남영이 빙긋 웃었다.
“다 고생하는 거죠. 우리가 고생해야 애들도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을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삐비빅!
채남영의 시계에서 쉬는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하자!”
채남영의 박수와 함께 다시금 연습이 시작되었다.
* * *
“당분간 댄스 연습할 때는 호진이가 건하랑 같이 움직인다. 알겠지?”
“제가요?”
“그래. 건하가 아직 안무를 정확하게 모르니까, 흐름은 외웠다고 해도 아직 무대에 설 정도는 아니니 밀착 마크해서 확실하게 이끌어줘.”
“…알겠습니다.”
채남영의 말에 안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건하도 지금처럼만 하면 금방 다른 애들 따라잡겠다. 다들 빡세게 연습하자고. 오늘 댄스 연습은 여기까지! 자, 해산.”
공식적인 댄스 연습이 끝났다.
“건하 형, 하루 만에 어떻게 그렇게 잘 따라온 거야? 원래 MAE 출신은 다 그래?”
우주가 놀라 물었다.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첫날부터 이렇게 따라올 줄은 몰랐나 보다.
“열심히 한 결과지.”
“우와, 진짜 대기업은 다른가 보네. 든든하다, 진짜. 참, 형은 바로 숙소로 돌아갈 거야?”
창밖이 어둑어둑해졌다.
연습도 끝났겠다, 다들 숙소로 돌아가려는 듯 준비하고 있었다.
“아니, 아직.”
나는 마찬가지로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 안호진에게 다가갔다.
이야, 진짜 잘생기긴 했다.
보는데 눈이 부시네.
“호진아.”
“…응?”
대답이 한 박자 늦게 되돌아왔다.
“너 숙소로 돌아갈 거냐?”
“…….”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곧바로 대답을 듣지 못한다는 건 답답하네.
답답한 마음에 순간 대답을 재촉하고 싶어졌지만, 나는 한 번 더 참았다. 안호진에겐 그랬다간 오히려 호감도가 마이너스로 깎일 거다.
이 친구는 조금 천천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말이 없다고 굳이 타박할 게 아니라, 살짝 천천히 말이다.
“나 연습 좀 도와줘.”
그래. 딱 지금처럼.
안호진이 눈을 끔뻑이며 나를 보았다.
“아직 모르는 게 많아. 오늘 배운 거 잊기 전에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서.”
잠깐의 침묵.
대답을 할지 말지 망설이는 듯 바라보던 안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새로 바뀐 동선을 연습해야 하니까.”
오케이.
마침 채남영 트레이너가 좋은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기회에 안호진을 내 편으로 만든다.
“우주야, 정민아, 너희는 어쩔래?”
“난 쉴래. 내일 컨디션 잘 챙겨야 해서.”
“나도 작곡 때문에 오늘은 여기까지.”
우주와 정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이미 오늘 연습으로도 진이 빠진 얼굴이었다.
“유성훈…은 어때?”
차마 형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원래 나이까지 치면 서른이 훌쩍 넘는데, 한 살 차이 형에게 형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나도 됐다.”
그는 나와 있는 자리가 불편한 듯 자리를 떴다.
“하, 하하. 그럼 나도 가볼까.”
우주와 정민이도 짐을 챙겨 연습실을 나갔다.
모두가 나간 연습실엔 나와 안호진 둘만이 남았다.
“…….”
“…….”
미칠듯한 침묵.
와, 다른 의미로 숨이 턱턱 막힌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까 잘 추더라.”
의외로 먼저 말을 꺼낸 건 호진이었다.
“그래?”
“응….”
그것이 끝이었다.
잘 춘다는 말.
그러나 그 짧은 한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쉽게 활로가 뚫리겠는걸?’
나는 호진에게 말했다.
“바로 연습부터 할까?”
호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생긴 애가 저렇게 끄덕이니, 주위가 빛났다.
왜 이렇게 눈이 부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