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연습실에서 내내 자꾸만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말없이 노려보는 유성훈.
입을 열진 않았지만,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표정만 보면 무슨 말을 꺼내도 욕으로 받아칠 거 같은 기세였다.
팀 리더이자, 연장자인 유성훈이 그런 태도를 보이자, 다른 멤버들도 입을 꾹 닫았다.
무거운 침묵이 연습실에 자리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담담했다.
분위기가 좋다. 기가 막히다.
아, 매일 이런 분위기에서 살고 싶다.
이건 진심이다.
나는 숨이 턱턱 막히는 이런 상황을 나름 즐겼다.
나를 무시하는 상대에게 내 진가를 보여주는 게 내 취미거든.
“건하 형, 번호 교환하자.”
그런 차가운 분위기 사이에서도 우주의 인싸력은 빛을 발했다.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가장 먼저 다가왔다.
우주와 함께 다니며 GH 안을 전부 둘러본 내가 내린 우주에 대한 인상은.
‘타고난 핵인싸.’
괜히 예능이 A급이나 되는 애가 아니라니까.
진짜 조금도 입을 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게 듣기 싫거나 짜증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분위기 메이커. 우주가 입을 열면 딱딱했던 분위기도 순식간에 풀어졌다.
지금도 스스럼없이 나와 번호 교환을 하자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중간에 합류한 낙하산인 내게도 차별 없이 친절한 우주.
괜히 유저들 사이에서 비타민이라는 별명을 가진 게 아니다. 하루에 한 번씩 봐줘야 기운이 난다나.
우주의 번호를 찍기 위해 핸드폰을 켜자, 액정에 업적이 완료됐다는 창이 떠 있었다.
[업적 - 첫인상 - 멤버들을 소개받기]
[보상: 2 오픈 마일리지]
[오픈 마일리지 포인트: 5]
업적 난이도에 비해선 쏠쏠한 보상이었다.
“형, 왜 아무것도 없는 배경화면을 보고 있어?”
“응?”
잠깐, 방금 뭐라고?
“어서 줘. 번호 찍어줄게.”
핸드폰 화면에 빤히 업적 창이 떴음에도 우주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역시 이 시스템 창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건가.
굳이 사람들 없는 자리까지 피할 필요는 없겠네.
다만 카메라 앞에선 조심해야겠지.
아이돌이 활동 중에 핸드폰만 계속 볼 수는 없으니까.
-최우주.
아버지와 양 실장밖에 없던 전화번호부에 한 명이 추가됐다.
“아, 내 것도 추가해 줘.”
눈치를 보던 정민이도 이 모습을 보더니 내게 번호를 건넸다.
순식간에 연락처가 두 배로 늘어나다니.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호진과 성훈은 굳이 핸드폰을 내밀지 않았다.
번호를 교환할 정도로 친하지 않다는 건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은근한 표시일 거다.
나는 연습실에 모인 4명의 멤버를 보았다.
유성훈, 안호진, 정민, 최우주.
각자 개성이 확실한 이들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확인하는 척, 다시 한번 멤버들의 능력을 정리했다.
헤실헤실 입꼬리에 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소년미 가득한 최우주.
이 팀의 유일한 미성년자이자, 막내.
[최우주]
[나이: 19]
[노래: B]
[춤: C+]
[외모: B]
[예능: A]
[스킬: ??(더 높은 호감도가 필요합니다.)]
내가 기억하기론 최우주의 고정 스킬은 A급 스킬인 친화력.
같은 멤버들의 케미가 올라가고, 상대의 호감도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는 스킬이었던 걸로 안다. 변동 스킬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친화력만 있다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다.
안호진은 180을 넘는 키에 잘생긴 외모 때문에 눈에 확 들어오는 인상을 가졌다.
숫기가 없어 말수가 적지만, 이렇게 잘생긴 애들은 오히려 그 점이 장점으로 여겨질 때가 많았다.
[안호진]
[나이: 20]
[노래: D]
[춤: A]
[외모: A+]
[예능: D]
[스킬: ??(더 높은 호감도가 필요합니다.)]
스탯도 괜찮고, 고정 스킬도 나쁘지 않은 걸로 기억했다. 고정 스킬 이름이 남다른 춤선이었던가? C급 스킬인데 반해, 효율이 좋았던 걸로 안다.
춤이 특기인 안호진에게 가장 안성맞춤인 스킬.
변동 스킬이 최악만 아니라면,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당장 문제는 이 숫기 없고 낯을 가리는 호진과 어떻게 친해지느냐다.
[정민]
[나이: 20]
[노래: B+]
[춤: C+]
[외모: B+]
[예능: C+]
[스킬: ??(더 높은 호감도가 필요합니다.)]
정민은 걱정이 없었다.
복슬복슬한 강아지 같은 외모에, 적당히 밸런스 있는 스탯, 고정 스킬이 작곡인데, 아마 그를 보조하는 괜찮은 스킬이 하나 더 있으리라.
문제는.
“뭘 그렇게 보는 거지?”
유성훈이다.
[유성훈]
[나이: 21]
[노래: A]
[춤: ???(더 높은 호감도가 필요합니다.)]
[외모: B+]
[예능: ???(더 높은 호감도가 필요합니다.)]
[스킬: ??(더 높은 호감도가 필요합니다.)]
이럴 줄은 몰랐다.
‘스탯까지 안 보일 정도라니.’
대체 나를 얼마나 싫어하는 거야.
스탯이 공개되지 않을 정도로 내게 적대감을 갖고 있다는 건데.
애초에 저들에겐 갑자기 등장한 낙하산 멤버가 하나 더 생긴 걸 테니까.
오히려 이렇게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준 정민과 우주가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니 서브 퀘스트로 그들에게 인정을 받으라는 말도 나온 걸 테고.
생각해 보면 나도 할 말은 있다.
나도 나름대로 황 프로듀서의 인정을 받고 온 건데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하지만 그렇게 얘기해 봤자, 유성훈에겐 들리지 않겠지.
내가 이 팀에 새로 들어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대단한 환영 행사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하루 연습을 쉬게 해줄 리는 없었다.
데뷔가 얼마 남지 않은 연습생들에겐 일분일초가 소중했으니.
이후의 스케줄은 간단했다.
모두가 연습실에 모여서 춤 연습을 하고 합을 맞추는 것.
데뷔 앨범 타이틀곡으로 내정된 곡의 안무를 연습하는 게 거의 연습 시간의 절반 이상이라고 했다.
아이돌이 성공하기 위해선 수많은 요소가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결국 무대를 어떻게 꾸미느냐가 가장 중요한 핵심.
문제는 당장 나는 그들의 춤도, 노래도 아는 것이 없었다.
나름대로 우주가 낑낑거리며 나를 알려주려고 했지만, 묘하게 합이 잘 맞지 않았다.
E급밖에 되지 않는 춤 실력으로는 같은 동작을 따라하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우주도 춤을 잘 추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내 춤 동작을 보며 안호진이 움찔거리는 게 보였지만, 그 무뚝뚝함 때문인지 끝내 알려주지는 않았다.
“쯧.”
유성훈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 들린다.
호감도 내려가는 소리가.
‘결국 스탯을 올려야 해.’
다른 것도 아니고 춤을 말이다.
이대로 호감도가 더 떨어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오픈할 수 있는 어플이 있나 잠시 살펴봤다.
[10 마일리지 미만의 어플을 검색합니다.]
[루룰 페이: 5 마일리지]
[루룰 페이 보유금액: 1억 2800만 원]
[LP 적금 어플: 8 마일리지]
[LP 적금 어플 보유금액: 2억 801만 1557원]
루룰 페이에 들어간 돈은 예전에 저금 겸 소액 결제용으로 넣어둔 거였다.
LP 적금…. 이건 소소하게 입금했던 적금 상품이었다. 연 이율이 3%라고 했던가.
그런데 2개 밖에 없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분산투자를 할 걸 그랬나.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지금 내가 가진 마일리지는 GH의 관계자에게 인정받는 서브퀘스트에서 얻은 3포인트와 멤버들을 소개 받는 업적을 달성해서 얻은 2포인트로 총 5포인트다.
당장 열 수 있는 건, 5 마일리지 짜리 루룰 페이가 전부였다.
1억 2800만원을 전부 환산하면 128만 포인트.
E+급의 스탯을 C급까진 올릴 수 있는 포인트였다.
[이름: 윤건하]
[나이: 20]
[스킬: 과금(EX), 평범함(F)]
[노래: 20 (E)]
[춤: 20 (E)]
[외모: 61 (A)]
[예능: 25 (E+)]
[가용 포인트: 30만 포인트]
E급인 춤을 C급까지 올리기엔 부족한 능력치지만, 다행인 건 내게 30만 포인트가 남아 있다는 거.
‘사자.’
아끼다가 똥 될 바엔 흥청망청 쓰는 게 낫다.
‘전부 구매.’
나는 핸드폰을 눌러 마일리지로 루룰 페이를 해금했다.
[루룰 페이를 구매합니다.]
[총 5 오픈 마일리지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
[가용오픈 마일리지 포인트: 0]
[가용 포인트 : 158만 포인트]
전부 다 거덜 냈다.
살림살이 전부 거덜 내고 사는 거다.
그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으면 곤란해.
[E급 춤 스탯 ‘10’을 구매합니다. 사용 비용 40만 P.]
[춤이 E급에서 D급으로 상승합니다.]
[D급 춤 스탯 ‘10’을 구매합니다. 사용 비용 100만 P.]
[춤이 D급에서 C급으로 상승합니다.]
[총 140만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
[춤 스탯이 15 → 40으로 증가했습니다.]
능력치를 전부 올릴 때가 되니.
“자, 다들 어제 하루도 잘 보냈니? 연습하고 있었지? 어? 새로운 멤버가 있었구나. 오늘부터 함께 하기로 했었나?”
보는 것만으로도 활기가 느껴지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일사불란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윤건하라고 합니다!”
“목소리에 패기가 있네.”
다른 이들보다 늦은 시작.
MAE에서 오래 연습했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 ‘윤건하’는 내가 아니니까.
이 세계의 춤 동작을 아는 건 없다. 그저 갤러리 속 윤건하의 필사적인 움직임을 눈에 담아 기억할 뿐.
그러니, 첫인상이라도 좋아야 한다.
“좋아, 아까 오는 길에 황 프로한테 들었는데 오늘 댄스 연습 때 황 프로가 참석해서 지켜본다고 하더라. 아마 너희 데뷔가 얼마 안 남아서 빡세게 보고 싶은 모양이더라.”
“…….”
황 프로의 방문이라.
생각보다 빠르다.
적어도 며칠은 기다렸다가 올 줄 알았는데, 첫날부터 바로 참관이라.
아마 내가 팀에 잘 녹아드는지 보고 싶은 걸 거다.
멘탈과 자신감이 가진 것의 전부라고 말했으니,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한 거겠지.
그렇다고 바로 올 줄은 몰랐네.
길게 볼 필요 없다는 건가?
화끈하네.
“뭐, 다들 내가 하라는 건 잘했지? 너희 데뷔 얼마 안 남아서 이제 연습 빡세게 해야 돼. 첫째도 연습 둘째도 연습이다?”
“쌤, 방금 좀 꼰대 같았어요.”
“인마, 우주 너도 내 나이 돼봐라. 가만히 있어도 걱정이 막 샘솟는다. 너희 때문에 내가 잠도 못 자고 난리야.”
최우주의 말에 트레이너가 한숨을 퍽 내쉬며 말했다.
이제 겨우 서른쯤 되었을 사람이 세상 다 산 소리를 하니 재밌었다.
“쌤은 맨날 걱정한다면서 웃잖아요.”
“힘들어도 웃으면 저절로 행복해진다니까? 너희 오랜만에 웃음 치료 한번 당해볼래?”
“죄송합니다아!”
웃음 치료가 뭐기에 저리 다들 질색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장난 아니게 힘든 거라는 건 알겠다.
“아무튼, 너희는 따로 연습하고 있어. 오늘은 우리 신입이를 전문으로 케어할 거다.”
“알겠습니다!”
“신입이는 이쪽으로.”
나는 트레이너를 따라 연습실 한쪽으로 이동했다.
“다시 인사하마. 반갑다. 댄스 트레이너 채남영이다. 나한테 잘 보이려면 다른 거 필요 없다. 열심히만 하면 돼. 잘하면 좋지만, 뺀질거리는 건 내가 절대 못 참거든.”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다 했는데, 옛날 학교 다닐 때 체육 선생이 딱 이런 느낌이었다.
열정! 열정! 열정!
“오늘은 내가 우리 애들 활동할 메인 타이틀곡 안무를 하나부터 끝까지 전부 알려줄 거다. 아마 다 익히는데 며칠은 걸릴 거니까 열심히 해보자.”
“알겠습니다.”
“너무 부담 갖진 마라. 황 프로한테 다 들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잘생긴 얼굴이 춤을 다 캐리했다고.”
“아.”
“그 형님 나름대로 칭찬이긴 한데, 뭐….”
채남영이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잘생기긴 했네.”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춤 못 추면 빵점이니까 각오하고.”
“네!”
힘찬 대답에 채남영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대답 좋고.”
말은 더 길지 않았다.
채남영은 내게 타이틀곡에 쓰일 안무를 빠르게 선보였다.
“팔을 뻗을 땐 최대한 힘을 주고, 여기선 끊고 맺음이 명확해야 돼. 오케이?”
확실히 전문 트레이너는 달랐다.
어떤 동작에서 포인트를 줘야 하는지, 춤에서 핵심으로 가져가야 하는 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줬다.
“방금 턴 동작은 조금 더 부드럽게 돌아야 돼. 지금처럼!”
채남영이 빙글, 몸을 반 바퀴 돌렸다.
그의 설명은 간결하고 확실해서, 듣기만 해도 동작이 머릿속에서 연상이 되었다.
우주와 연습을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내 춤 실력이 C급으로 올라서 그런 건가?’
머리로 춤 동작이 이해가 되고, 그 동작을 그대로 몸으로 옮겼다. 이전에는 생각과 몸이 따로 놀았다면 지금은 머리와 생각이 함께 어우러졌다.
3시간.
채남영이 장장 3시간을 내게 붙어 연습을 시킨 결과였다.
다른 애들이 조금이라도 쉬었을 때, 나는 한시도 쉬지 않고 그의 강의를 들었다.
“5분만 쉴까?”
“아뇨. 조금 더 하고 싶습니다.”
1초도 쉬지 않았다.
쉴 시간도 아까웠다.
누구보다 더 바쁘게 움직여 내가 없던 이 팀의 공백 기간을 메꿔야만 했으니까.
그래도 우주와 했던 연습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이미지가 최대한 빨리 떠올랐거든.
맞춤 강의가 끝날 즈음, 나는 동작이 하나하나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은 할 수 있었다.
“연습만 계속하면 무대에서 못한다고 욕먹지는 않겠네.”
채남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의 표정을 보니 완벽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포인트를 살린 거 같다.
“그럼 한번 모여서 합을 맞춰볼까?”
채남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직도 하고 있었군. 내가 좀 늦었나?”
황이서 프로듀서가 연습실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