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8화 (8/236)

<제8화>

정민은 GH에서 늘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정민이는 작곡에 재능이 있네.’

‘곡 만드는 센스가 있는데?’

처음 그의 노래를 들은 황이서 프로듀서의 극찬.

그 칭찬으로 팀의 작곡가 포지션이 정해졌다.

정민은 곡을 만드는 게 좋았다.

자신의 손에서 노래가 만들어지는 걸 보는 건 춤을 추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이었고, 새로운 재미였다.

완성된 노래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그걸 음미하는 사람들을 보는 건 포근한 만족감을 주었다.

자신의 노래로 사람들이 즐거워한다. 그건 정민이 작곡을 사랑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막상 그들의 데뷔곡에 올릴 노래를 만들려고 하니, 얘기가 달랐다.

내부 테스트용으로 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부담감이 정민을 짓눌렀다.

처음으로 부담감을 느꼈고. 자신의 노래를 순수하게 즐기지 못했다.

‘조금 아쉬운데?’

황이서의 아쉽다는 한마디.

그에게는 스쳐 지나가듯 뱉은 한마디겠지만, 그 한마디가 정민에게 주는 충격은 남달랐다.

늘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작업물에 회의를 느꼈다.

‘괜찮아. 데뷔곡으로 쓰기 아쉽다는 거지. 노래는 좋아.’

정민을 케어해 주는 작곡가 형도 계속해서 도와주었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좋은 평을 받았던 ‘New Taste’.

정민은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다.

‘정민아 완성본은 언제쯤 나오니?’

황 프로듀서의 질문에 정민은 대답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같은 노래를 고치고 수정하고 지웠으니까.

미루고 미루었지만, 마음에 드는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딘가.

어딘가가 부족했다.

그게 뭘까?

직접 작곡을 한 자신도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변주를 줘도, 이곳저곳을 바꿔 봐도, 아예 처음부터 다시 작곡을 해도.

정민은 곡에서 느껴지는 묘한 공허함을 채우지 못했다.

“브릿지 부분을 부드럽게 가져가라고?”

“그래. 곡이 너무 급해. 작곡가가 초조한 게 노래에서 느껴져.”

윤건하가 MAE에서 5년이나 구른 장수생이 아니었다면 무시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네가 뭘 안다고.

GH에서 히트곡을 낸 작곡가 형도 제대로 캐치하지 못한 걸 네가 어떻게 잡을 수 있냐고 반박하려고 했지만, 정민은 떠올렸다.

MAE에서 잘렸다지만, 무려 5년이나 대기업에서 버틴 건하였다.

큰 기업에서 나름대로 다양한 노래를 들었을 것이고, GH 엔터와는 작곡 방식을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이는 거 아닐까? 하는 작은 희망.

정민은 윤건하의 말대로 브릿지 부분의 템포를 조금 늘이고 손을 보았다.

간단하게 코드를 바꾸자.

“어?”

-♩~~♩ ♬ ♩~ ♪!

다급했던 멜로디 사이에 브릿지가 늘어나니, 밸런스가 생겼다.

정민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늘어진 브릿지의 멜로디 라인에 맞춰 기본 흐름의 템포를 아주 조금 늦췄다.

“이게 진짜 된다고?”

정민이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기며 재생되는 멜로디를 들었다.

대단한 변화도 아니었다.

조금 빠른 걸 손 본 정도?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정민이 느꼈던 부족한 2%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쉬운 방법이라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방식으로 문제가 풀렸다.

몇 년간 막혔던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후련했다.

“이걸 듣자마자 캐치한 거예요?”

“그런 셈이지.”

경악하는 정민과 다르게 윤건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마치 이런 일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작곡 때문에 끙끙 앓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이게 진짜 천재인가?’

그런데 대체 왜 저런 애가 MAE에서 데뷔를 못 하고 탈락했다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만큼 MAE 엔터의 수준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정민은 건하가 이미 ‘New Taste’의 완성본을 들었으리라곤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대단한 재능을 품고 있다는 감탄을 할 뿐.

이런 정민의 마음을 알 리 없는 건하는.

[멤버: 정민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멤버: 정민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어라?’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알람에 놀랐다.

정민의 인정을 받고 호감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화면에 떠 있었다.

‘생각보다 쉽네.’

조언 하나로 시스템이 뜰 정도의 호감도를 얻을 줄이야.

작곡가들은 까칠한 애들이 많아서 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인 듯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조언을 받아들이고 녹여낼 줄은 몰랐다.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네.’

[정민]

[나이: 20]

[노래: B+]

[춤: C+]

[외모: B+]

[예능: C+]

[스킬: ??(더 높은 호감도가 필요합니다.)]

정민의 전체적인 스탯은 밸런스가 잡힌 적당한 만능형.

그러나 공개되지 않은 저 스킬. 저 스킬 속에 보물이 있을 거다.

‘스킬이 잘 나왔나 보네.’

기본적으로 게임 속 아이돌들을 키우기 위해선 스탯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스킬이 중요했다.

가챠로 뽑은 연습생들은 기본적으로 1개의 고정 스킬과 1개의 변동 스킬을 가졌다.

고정 스킬은 캐릭터의 고유 스킬이지만, 저 변동 스킬은 매번 뽑힐 때마다 달랐고 추가적으로 뽑아서 여러 개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단순히 캐릭터를 뽑는다고 가챠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에 맞는 최상의 스킬이 함께 뽑혀야 캐릭터가 완성이 되는 거다.

그거 때문에 돈이 엄청 깨졌지.

저 스킬 시스템이 이 게임을 하기 위해 억 단위 돈이 깨진 원흉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지금 나의 고정 스킬은 평범함(F), 변동 스킬은 과금(EX).

최악의 고정 스킬을 가졌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변동 스킬을 얻은 거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정민도 나와 비슷한 케이스일 거다.

‘정민의 기본 스킬이 아마 작곡이었지?’

B등급의 작곡 스킬 하나만으로는 이 정도의 흡수력을 가지지 못했다.

아마 작곡을 보조하는 변동 스킬을 품고 있을 것이다.

‘A급 스킬인 빛나는 재능인가? 아니면 뛰어난 이해력?’

당장은 알 수 없었다.

스킬을 정확히 알기 위해선 호감도를 올려야겠지.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정민은 자신의 캐릭터에 맞는 적절한 스킬이 뽑혔다는 거다.

나머지 셋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잘하네. 정말 듣기 좋아.”

진심이었다.

New Taste의 최종본을 들었던 나로서는 프로토타입에서 이렇게 빨리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내가 기억하는 멜로디와 차이점을 살짝 짚어준 것임에도, 정민은 능숙하게 발전을 했다.

이게 재능이라는 건가?

조금 부럽긴 하네.

아직은 과금이라는 스킬밖에 없는 내겐 참 부러운 재능이었다.

“덕분이에요.”

정민이 머리를 긁으며 헤헤 웃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리트리버였다.

꼬리가 있었다면 사정없이 흔들고 있지 않았을까?

딱 놀아달라는 리트리버가 저런 표정이었는데 말이지.

나도 모르게 산책가자고 말할 뻔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존댓말 쓰고 있을 거야?”

“어?”

“우리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서로 불편하게 존댓말을 계속 쓸 순 없잖아. 만약 존댓말이 취향이면 나도 말을 높이고.”

“아니야. 편하게 해도 돼. 첫 만남에 이렇게 빠르게 친해진 적이 없어서.”

어색하게 웃은 정민이 손을 내밀었다.

“인사가 늦었네. 나는 정민이야. 윤건하라고 했지? 오늘 새 멤버가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어.”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래. 나도 부탁할게. 작곡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어.”

나를 보는 눈이 초롱초롱하다.

꼭 신입 사원이 믿음직한 상사를 보는 듯한 눈동자.

이거 왠지 착각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천재 작곡가가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성훈이 형은 어디 갔어?”

“아까 바람 쐰다고 잠깐 나간다고 했어.”

“그래? 한 번에 쫙 인사하고 딱 친해지는 게 좋은데.”

우주가 팔을 쭉 뻗으며 리액션을 했다.

여기가 리액션 맛집이다.

이제 남은 건 유성훈인가.

나머지는 한 번씩 얼굴을 맞댔다.

대충 어떤 성격인지, 게임과는 어디가 비슷하고 어디가 다른지 대충 알 거 같았다.

단순히 그림으로, 영상으로 봤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들이 살아 있음을.

이곳이 또 다른 현실임을 느끼게 해줬다.

그러나 그건 별개의 문제.

내게는 훨씬 더 급한 당면과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서브 퀘스트.

[서브 퀘스트: 멤버들에게 인정을 받으세요.]

[기간: 2주일]

[현재 (2/4)명 성공]

엥?

2명이나 성공했다고?

정민한테만 인정받았던 거 아니었어?

놀라 확인해 보니.

[성공 멤버: 정민, 최우주]

아마 정민에게 조언을 해준 부분이 우주에게 꽤 깊은 감명을 준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처음 숙소에서 만났을 때부터 나를 인정한 건가.

애가 참 선하다.

아주 마음에 들어.

남은 건 둘.

안호진과 유성훈.

‘호진에게 인정을 받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아 보이긴 하는데.’

팀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호진의 인정은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을 거다.

문제는 성훈인데.

유성훈은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멤버였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지금 멤버들 중 이 친구가 가장 능력의 편차가 심했다.

어떤 변동 스킬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팀을 캐리하는 멤버가 될 수도, 팀 자체를 망가트리는 원흉이 될 수도 있는 멤버였으니까.

유성훈의 별명은 무과금의 지옥.

그야말로 지옥 같은 편차를 갖고 있었다.

심지어 성격도 굉장히 딱딱하고 사무적이어서, 어떻게 아이돌이 될 생각을 했을까 싶다니까?

아이돌보다 경찰이나 검사에 훨씬 더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아마 취조실에서 한번 만나면 바로 술술 불어버렸을 거다.

그 정도로 가진 카리스마가 엄청났다.

특유의 차가운 남성미 덕분에 나름 골수팬도 갖고 있었다.

커뮤니티에선 북부대공 이미지 때문에 입덕했다는 사람도 많았지?

설득하는 것도 활용하는 것도 어려운 멤버였다.

“아, 우주 왔어?”

동굴처럼 울리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아, 성훈이 형!”

우주와 정민이 그를 반겼다.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자, 차분하게 가라앉은 검은 머리에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남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쪽이 이번에 새로 MAE에서 왔다는?”

“반갑다. 오늘부터 새로 합류하게 된 윤건하라고 해.”

“유성훈이다.”

손을 맞잡는 순간에도 표정은 진지했다.

“성훈이 형, 방금 형도 봤어야 했는데. 건하 형이 민이 형한테 조언 딱 해주자마자 해결되고, 진짜 장난 아니었어.”

“그래? 그렇군.”

이야 차갑다. 얼음 얼 거 같아.

한여름인데도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차가운 반응이었다.

아마 새로운 멤버인 내가 들어오는 게 그리 좋지 않은 걸 테지.

다른 멤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유성훈은 지금 4인 체제를 유지하고 싶었을 거다.

그것도 그럴 것이.

유성훈의 고유 스킬 때문일 거다.

[스킬: 고집(A)]

한 번 정해진 걸 쉽게 바꾸지 않으려고 하는 것.

이게 유성훈이 굉장히 까다로운 멤버가 된 이유였다.

자신이 관철하는 것에 뚜렷한 부가 효과를 얻지만, 그에 반대되는 의견이 나올 경우 거세게 부딪친다.

멤버들과 케미가 잘 맞을 경우엔 상당히 좋은 시너지를 내지만, 그렇지 못하면 내부 불화로 이어지는 골치 아픈 스킬이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그래. 프로듀서님이 정하셨다면, 따라야겠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은 전혀 아닌데?

아무래도 이 서브 퀘스트. 시작부터 상당히 고될 거 같다.

괜찮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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