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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5화 (5/236)

<제5화>

‘난 놈일세.’

최강훈은 상황이 점점 더 재밌어지는 걸 느꼈다.

외모 말고 다른 장점이 뭐가 있느냐는 프로듀서의 질문에.

“없습니다.”

…라고 말할 아이돌 연습생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아이돌이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무대에서, 비록 약식으로 진행되는 오디션이라지만.

그 현장에서 자신의 장점이 없다고 말할 연습생은 없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장점이 없다?”

황이서 프로듀서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놈 성격 나오는구먼.

황 프로는 분명 건하가 마음에 들었던 거다.

호불호과 확실한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애들에겐 그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런 황 프로가 질문을 했다?

나름 마음에 들었던 연습생에게 당돌한 대답을 들으니, 화가 난 거다.

황 프로가 저런 표정을 지었을 땐, 늘 흥미진진한 결과가 나왔다.

연습생이 울어 버리거나. 아니면 그 길을 접어 버리거나.

“아예 없지는 않죠. 하지만 프로듀서님이 원하시는 부분 중에선 장점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춤, 노래 중에 장기가 있는지를 여쭤보시는 거 아닙니까?”

아이 씨, 어디 팝콘 없나?

최강훈은 팝콘을 들고 오지 않은 자신을 질책했다.

“아이돌의 기본인 춤과 노래에 장점이 없다면, 우리 GH가 건하 군을 왜 데리고 가야 하지?”

“자신감입니다.”

“자신감?”

“예, 자신감이요.”

내가 가진 장점.

아쉽게도 방금 보여준 게 전부였다.

근성으로 만든 춤선 그리고 음 이탈이 나지 않는 노래 실력.

아직은 말이다.

나는 눈매를 좁히는 황이서 프로듀서를 마주보았다.

예상도 못 했겠지.

5년 이상을 연습생으로 보낸 장수 연습생이 잘난 거 하나 없다고 고백하는 모습이.

그런데 어쩔 거야.

진짜 없는데.

실제로 잘하는 것이 없었기에 윤건하는 늘 밑바닥 연습생으로 데뷔를 하지 못했다.

그때 윤건하는 외모마저도 평범했지.

전부 사실이다.

뼈아픈 사실.

동시에 내가 헤쳐나가야 할 현실이었다.

“자신감이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데? 자기 강점이 없다고 말하는 연습생에게 자신감? 믿을 수가 없지.”

톡톡톡.

황이서 프로듀서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오히려 양 실장님이 말하신 건하 군의 장점이 더 설득력이 있겠는데? 근성과 노력 말이야.”

나도 모르게 양 실장 쪽을 바라봤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며 멋쩍은 듯 볼을 긁었다.

아, 그런 거까지 신경을 써줬구나.

고마웠지만, 그건 별개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성과가 없는 근성은 장점이 될 수 없죠.”

“호오.”

최강훈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바닥이었다.

모두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타고난 매력, 혹은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목소리, 그게 아니라면 눈을 현혹하는 퍼포먼스 등.

노력 말고도 다른 뭔가가 있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자신감을 왜 강점이라고 생각한 건지 말해줄 수 있나? 내가 보기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황이서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를 노려보는 눈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누구 한 명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보다 훨씬 더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5년간 MAE에서 못 했는데 지금 와서 가능하다?”

“예.”

“왜지? 근성 때문인가?”

“아니요. 포인트를 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방법.

그건 바로 캐릭터.

수많은 아이돌이 데뷔하고 사라지는 것이 이쪽 바닥이라고 했다.

다른 이들을 압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게 아닌 이상, 평범한 캐릭터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없다.

그저 잊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잊기 어려운 캐릭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게 외모든, 아니면 성격이든 말이다.

물론 앞으로 포인트를 올려 이보다 더 성장한다면 이런 캐릭터가 없어도 주목받을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건 먼 미래.

지금은 이 뻔뻔함을 캐릭터로 삼아 나아갈 생각이다.

자신감?

이미 나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갖고 있었다.

왜냐고?

나는 윤건하니까.

F급 연습생인 윤건하가 아니라.

한 번 거대한 성공을 이뤄낸 윤건하니까.

한 번 성공한 거, 두 번이라고 안 될까.

“지금도 두 분이 제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춤을 췄을 때보다 훨씬 더요.”

“허.”

황이서가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 말대로 두 사람의 몸이 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듣고 싶은 것처럼.

아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

표정도 흥미로웠다.

귀를 쫑긋 세우고 내 대답을 기다리는 두 관계자는 이미 그들 스스로 내 말을 증명해줬다.

“크하하하하!”

내 말을 들은 최강훈 대표가 웃었다. 배를 부여잡고 웃는 그의 투실투실한 턱이 흔들렸다.

“황 프로! 방금 들었어? 크하하! 이거야 원, 정곡을 찔렸네. 하하하!”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닦은 최 대표가 내게 말했다.

“이거 물건이네. 아이돌 팀에 들어가려면 어중간한 춤과 노래보단 확실한 캐릭터가 더 필요하긴 하지. 키야, 어디서 이런 애가 나왔지?”

그는 나와 함께 들어왔던 양 실장을 보며 물었다.

“양 후배, 진짜 우리가 데리고 가도 괜찮겠어? 이 친구 캐릭터 너무 확실한데.”

“괜찮습니다. 이미 위에서 내린 결정이라서요.”

양현우 실장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 한 대 맞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약간의 배신감이 서려 있었다.

아마 왜 이전까지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냐는 거겠지.

“황 프로, 어때? 저 자신감. 인정할 만하지 않아? 저런 캐릭터 다른 애들한텐 없잖아.”

“…괜찮네요.”

황이서가 나를 노려보는 시선을 떨쳐내지 못했다.

쐐기를 박아야겠네.

“5년짜리 인생의 교훈 지닌 놈이 어디 흔한가요? 저 같은 멘탈 가지고 있는 놈 한 명 있으면 뭔 일이 터져도 팀이 분열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크하하! 이거 말하는 게 정말 난 놈이네.”

최강훈 대표의 웃음과.

뭔가 결정을 내린 듯 입술을 다무는 황이서 프로듀서.

“계약하자.”

됐다.

*    *    *

“고생했다.”

간단한 오디션을 마치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양 실장이 찾아와 어깨를 두드렸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거기서도 잘 지내고, 앞으로 곤란한 거 있으면 연락해.”

“예.”

“미안하다. 내 손으로 데뷔시키지 못해서.”

그가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말했다.

적어도 양 실장은 MAE 안에서 유일하게 윤건하를 긍정적으로 봤던 사람이니까.

“건하야, 그런데 말이다.”

“예.”

“그 모습을 조금 더 일찍 보여줬더라면, 같이 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목소리에 아쉬움이 진득하게 드러났다.

한숨을 퍽 내쉬면서도 못내 떠나보내는 것이 싫은 듯 혀를 찼다.

“MAE에서 쫓겨나고 알았어요. 이대로 의기소침해 있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요.”

“하아. 미안하다. 내가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챙겨 주셨잖아요. 지금 GH와 계약하게 된 것도 그 덕이고요.”

“그렇게라도 말해주니까 고맙다.”

아마 그전에 이런 면모를 보여줬다고 해도 MAE와 이어지는 일은 없었을 거다.

이미 내부에서 나를 쫓아내고 싶어 하는 기류가 형성된 상태였다. 멤버들은 이미 나를 배척하고 있었고.

남아있었더라도 성공할 수는 없었겠지.

GH로 가는 건 필연적인 운명이었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GH 엔터의 관계자에게 데뷔할 자격이 있는 아이돌이라는 것을 어필했습니다.]

[서브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2 오픈 마일리지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훌륭하게 인정받았습니다.]

[1 오픈 마일리지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GH의 관계자에게 합격하라는 퀘스트까지 받았다.

실패하면 죽음.

마치 이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이.

“그럼 가 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MAE 숙소를 나갔다.

MAE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

아마 언젠가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좋은 만남일 거 같진 않았다.

“어서 타.”

황이서 프로듀서가 탄 차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최 대표님은요?”

“먼저 가셨다. 일 때문에.”

“아.”

“가방은 뒤에다 넣고, 우선 숙소로 가자.”

“알겠습니다.”

“말 편하게 해도 괜찮지? 내가 너보단 나이가 많으니까.”

“예, 괜찮습니다.”

이미 스무 살의 윤건하에 빙의된 이상, 그 나이에 적응하기로 했다.

말을 낮추는 거 정도야 상관없지.

차가 미끄럽게 나아갔다.

“연습 많이 해야 할 거다. 우리한텐 시간이 많지 않아.”

정면을 주시하던 황 프로가 말이 날카롭게 귀여 꽂혔다.

무심하게 말한 그의 한 마디에 담긴 말뜻을 이해했다.

실력보단 내 캐릭터를 보고 뽑았다는 뜻.

그만큼 실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떨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알겠습니다. 프로듀서님이 만족할 수 있게끔 성장하는 모습 보여 드릴게요.”

“그랬으면 좋겠구나.”

당연히 보여줄 거다.

보여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덤빌 거고.

어떻게 뽑혔는데.

열심히 안 하면 내가 곤란해.

나는 목숨이 걸려 있거든.

[서브 퀘스트: 멤버들에게 인정을 받으세요.]

[기간: 2주일]

[실패: ‘메인 퀘스트: 데뷔’에 대한 페널티 부여.]

[보상: 5 오픈 마일리지]

GH에 계약서를 찍자마자, 새로운 퀘스트가 생겼다.

2주 안에 멤버들에게 인정을 받으라는 퀘스트.

아직 소개받지도 않은 멤버들에게 인정이라.

이놈의 퀘스트는 어떻게든 나를 아이돌로 데뷔시키려고 안달이 난 모양이다.

뭐가 그리 급한 건지.

2주 안에 인정 못 받으면 메인 퀘스트의 페널티를 주겠다는 퀘스트 내용에 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메인 퀘스트: 데뷔’ 의 페널티]

데뷔하는데 새로운 걸림돌이 생긴다는 뜻.

결국 서브 퀘스트를 깨지 않는다면, 메인 퀘스트를 원활하게 클리어 할 수 없을 거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2주 안에 다른 멤버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으려나.’

텃세가 심하면 곤란한데.

이진우 같은 놈들만 가득하면, 차라리 상대하기 편하다.

*    *    *

-잘 해봐. 애가 장수생답지 않게 파이팅이 넘쳐. 얼굴도 잘생겼고, 기존 애들이랑 쉽게 섞일 거 같으니까.

최강훈 대표는 방송국과의 미팅으로 먼저 자리를 떠났고, 건하를 데리고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은 황이서는 조수석에 앉은 윤건하의 옆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강훈이 형 말대로 물건은 물건인데.’

황이서는 윤건하를 복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절반 정도 긁은.

남은 절반에 어떤 그림이 나오느냐에 따라 꽝이 될 수도, 대박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복권 말이다.

나름대로 깡은 있는 거 같은데, 그걸 무대 위에서 쓸 수 있는가.

전부 미지수였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그 대단한 MAE에서도 건하를 데뷔시키지 못했다는 거다.

동시에.

‘MAE에서 5년을 버텼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많은 연습생을 제치고, 어쨌든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는 점.

황이서는 그거 하나만 믿고 배팅을 걸기로 했다.

실패한다고 해서 타격이 크진 않을 거다.

기존 계획이었던 5인 체제에서 4인 체제로 바꾸는 걸 테니까.

‘긁어볼 만하지.’

저 외모와 저 자신감 그리고 저 주둥이가 무대 위에서도 잘 통한다면.

분명 1등짜리 복권이 될 수 있을 거다.

황이서는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    *    *

“여기다. 숙소부터 안내할 테니까. 우선 짐 챙기고 나와.”

“알겠습니다.”

나는 가방을 메고 황이서를 따라 숙소로 들어갔다.

시설은 꽤 나쁘지 않았다.

투자를 많이 하는 걸까. 깔끔한 시설에 보기 좋은 건물.

숙소는 오피스텔의 일부를 빌린 것처럼 보였다.

“아마 지금 애들은 없을 거다. 다들 연습하러 갔으니까 우선 짐을 놓고….”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어? 프로듀서님?”

“우주야, 네가 왜 여기 있냐?”

“어? 이번에 새로 데리고 왔다는 분이에요?”

엘리베이터 문 앞에 멤버로 보이는 남자가 떡 하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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