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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4화 (4/236)

<제4화>

“건하야.”

같이 GH 엔터의 관계자를 만나러 가던 중에 양현우 실장이 물었다.

“화장법 바꿨어?”

“예?”

“얼굴이 좀 달라진 거 같은데? 분위기가 뭐랄까…. 조금 차분해진 느낌? 확 잘생겨졌는데?”

양 실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천천히 위아래로 바라보던 그는 턱을 쓸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작 이런 느낌으로 화장을 하지 그랬어. 훨씬 좋다.”

“그런가요? 평소랑 똑같은데.”

“아닌데….”

양 실장의 눈이 내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상한데? 평소랑 너무 달라…. 뭐지? 너 진짜 잘생겨졌는데?”

스탯의 효과가 확실하긴 하네.

거의 매일 지내며 내 얼굴에 익숙해져 있던 그가 이렇게 눈을 떼지 못할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에겐 훨씬 더 크게 다가올 거다.

다른 엔터 관계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으리라.

“지금이라도 다시 대표님께 말씀드려볼까? 이건 내가 못 보내겠는데.”

“실장님, 이미 쫓겨난 사람이 다시 돌아가서 껴달라고 하는 것도 웃기잖아요.”

“하아, 그것도 그렇긴 하지.”

좋게 봐주는 건 고맙지만, 내가 MAE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오랫동안 데뷔하지 못한 장수 연습생.

잘생겨져서 돌아간다고 해도 MAE에서 내 입지가 달라질 거 같지 않으니까.

아마 양 실장도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리라.

“이러다간 최 선배한테 내가 얻어먹어야겠는데.”

중얼중얼.

양 실장이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전히 나를 보내는 것이 아까운 눈치였다.

“긴장하지 말고.”

양 실장이 내 등을 두드렸다.

나를 MAE에서 데뷔시키고 싶은 욕망이 강했던 그에겐 이런 상황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네 장점을 잘 설명했으니, 그 부분을 어필하면 될 거야.”

윤건하의 장점이라면 역시.

노력.

매일,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 연습 벌레.

그런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로 어필했을 거다.

양 실장도 알고 있을 테니까.

아무리 연습을 해도 그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도.

그 때문에 위에서 함께 못할 거라는 통보를 받은 것도.

그걸 알기에, 다른 소속사에 추천할 때도 노력 쪽을 더욱 강조하지 않았을까?

“노력만으로는 힘들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다른 무기를 가져가려고요.”

“다른 무기?”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보시면 알 거예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양 실장과 함께 GH 엔터의 관계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당연하게도(?) 또 다른 윤건하가 오는 일은 없었다.

투실투실한 턱살과 도수 높은 안경이 인상적인 중년인 한 명과.

“오랜만이야, 양 프로. 이 친구가 자네가 말했던? 반갑네. GH 대표 최강훈이네.”

눈 밑에 드리운 다크서클과, 제대로 깎지 못한 샤프심 수염이 턱을 덮은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GH 아이돌 1팀의 프로듀서 황이서입니다.”

그들은 GH 엔터의 관계자라고 스스로를 설명했다.

“안녕하십니까. 윤건하라고 합니다.”

“윤건하. 이름은 나쁘지 않군.”

고개를 푹 숙이자, 최강훈 대표가 나를 품평하듯 살폈다.

투실투실한 외모와는 달리 끝이 올라간 눈매로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대표가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그만큼 급하다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양 팀장과의 사이 때문에?

거기까지 내가 알 수는 없었다.

내게 중요한 건.

[서브 퀘스트: GH 엔터의 관계자에게 데뷔할 자격이 있는 아이돌이라는 것을 어필하세요.]

[실패 시: ‘윤건하’ 캐릭터 삭제]

[보상: 2 오픈 마일리지]

저들에게 내가 데뷔할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내 여정은 여기서 끝날 것이 분명했다.

*    *    *

“황 프로, 어때?”

GH 엔터의 최강훈 대표는 함께 온 황이서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첫인상은 좋네요. 잘생기기도 했고, 마스크가 매력이 있습니다.”

매번 야근에 치일 정도로 많은 업무로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드리운 황이서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이놈도 아는구나.

지금 저 친구에게 느껴지는 성공의 냄새가.

“그치? 난 지금 삘이 딱 왔어. 얘는 될 놈이야.”

최강훈은 아이돌을 데뷔시킬 때마다 느껴지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너무 주먹구구식 선택이라고 비웃었지만, 최강훈의 선택은 대부분 적중했다.

될 거 같다 싶은 애들을 모아서 만든 팀이 현존 국내 최고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몬스터즈’였으니까.

그때 그 친구들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을 최강훈은 눈앞의 청년에게서 느꼈다.

이름이 윤건하라고 했던가?

‘스타가 될 기질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후배인 양 실장이 하도 사정하며 부탁하기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찾아왔다.

얼마나 잠재력이 있는 원석이기에 그렇게 애걸복걸하나 싶어서.

‘MAE에선 저 정도도 부족한 건가?’

떡잎부터 남다른데.

아직 춤도 노래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누군가는 물을 거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외모.

-아이돌 기준으로 보면 외모는 평범합니다.

평범하다는 양 실장의 말을 사전에 듣고 기대치를 낮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MAE라면 저 정도 애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할 법하지.’

국내 최대의 아이돌 기획사 아니던가.

그러나 최강훈은 무엇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건하의 눈빛에 더욱 사로잡혔다.

뭐든 할 수 있다는 듯 총기 있는 눈동자.

저 자신감 넘치는 깊고 반짝이는 눈빛이 몬스터즈 멤버들의 그것과 비슷했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이 확신을 함께 온 황이서 프로듀서도 같이 느꼈으면 했다.

“느낌 있게 잘생기긴 했는데, 얼굴만으로 데뷔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가르치면 괜찮지 않겠어?”

“아뇨.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면 과감하게 쳐내야죠.”

이번 캐스팅은 전적으로 황이서의 주관하에 이뤄진다.

이번 GH 엔터의 데뷔조는 황이서가 프로듀싱하고 있으니 말이다.

“건하 군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인사는 짧게 하고. 건하 군이 얼마나 아이돌에 진심인지 보고 싶은데, 노래는 가능하겠지?”

“예, 가능합니다.”

“좋아. 그럼 한번 들어보자고.”

*    *    *

노래라.

당연히 테스트가 있을 거라 생각은 했다.

그렇기에 머릿속으로 생각한 노래가 있었다.

‘떨리네.’

막상 노래를 부를 상황이 오니 가슴이 쿵쿵 떨렸다.

무엇을 부를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나 아무리 검색을 해도 이 세계에선 내가 아는 노래가 없더라.

원래 세계에 존재했던 그룹도, 유명한 노래도 없었다.

극히 일부, 비슷한 코드를 쓴 노래는 간혹 보였다.

예를 들어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와 비슷한 구절을 가진 노래가 있다거나.

듣기만 하면 유명 아이돌의 노래와 비슷한 코드를 가진 댄스곡이 있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걸 보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걸 확신했다.

그렇다고 이 세계의 윤건하가 불렀던 노래를 부를 수도 없었다.

‘이도저도 노래보단 차라리, 내가 가장 잘 아는 노래를 부르는 게 나아.’

음역대가 좁아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지금도 머릿속에 맴도는 노래.

‘마이 아이돌’의 메인 OST임과 동시에 게임 팬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받았던 노래.

‘For You’

어느 정도 부를 수만 있다면 효과적으로 완주까지 가능하고, 노래 자체의 색깔도 좋아서 현실 레몬 차트에서도 순위권에 꽤 오랫동안 올라갔던 노래였다.

여기서도 발매된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르는 노래를 억지로 부르는 것보단 나을 거다.

최악을 피하고 차선을 택한다.

“반주 없이 1절만 부르겠습니다.”

“오호, 무반주? 잘 부르기 쉽지 않은데.”

황이서 프로듀서보다 최강훈 대표가 먼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최 대표는 일단 내 첫인상이 마음에 드는 거 같고.

“그럼 하겠습니다.”

우선 목을 가다듬고.

감정을 끌어올렸다.

게임을 하면서 수백, 수천 번 들었던 그 노래의 멜로디가 마치 흘러나오는 것처럼 머릿속에 재생됐다.

그대라는 사람을 만나

나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목소리가 정돈되었다.

적어도 첫 소절부터 삑사리가 나지는 않았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음정.

고음으로 쉽게 올라가지는 않지만 저음 구간에서 유연하게 넘어가며 음색을 살렸다.

항상 내 옆에서 힘이 돼주고

기댈 수 있게 해줘서.

늘 말하고 싶었지만

겁이 나 하지 못했던 말.

시작이 좋으니, 다음 구절도 나쁘지 않았다.

조금씩 올라가는 음정.

그러나 부담이 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고마워요.

나와 함께해 줘서.

드디어 하이라이트 부분.

강렬한 고음보다는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하는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수없이 들었던 노래였기에.

어느 포인트에서 음을 꺾어야 하는지, 어디에서 감정을 실어야 하는지 정도는 몸에 익었다.

리듬 게임을 하면서 흥얼거린 짬밥이 있는데.

프로듀서와 대표의 표정이 묘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놀랐다는 느낌?

양 실장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모르겠네.

잘 부른 거 맞나?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황이서 프로듀서였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 어떤 노래인지 알 수 있을까요?”

“For You라는 노래입니다.”

“흠, 자작곡인가요?”

이럴 줄 알았다.

‘For You’는 이 세계에는 없는 노래였다.

어느 누군가의 머리에는 있을 수 있지만, 아직 발매하지 않았다는 것.

코드를 짜거나 작곡을 할 수는 없지만, 떠오르는 멜로디대로 부르는 건 가능했다.

“자작곡은 아닙니다. 하지만, 직접 부르는 건 제가 처음일 겁니다.”

“흠, 그럼 MAE 팀 내 미공개곡?”

황이서가 양현우 실장을 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우리 팀 노래는 아니에요.”

“그렇다는 건, 어쨌든 발표된 적 없는 이 노래가 건하 군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거군요.”

양 실장의 확답을 얻은 황 프로의 얼굴이 밝아졌다.

“노래가 좋네요. 발성이나 손봐야 할 부분은 많이 보이지만, 완전 나쁘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아직 고음 쪽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 같고, 주요 파트에서 음정이 흔들리고 있지만 괜찮을 거 같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정확한 평가.

이 정도면 호평이었다.

노래는 잘 넘겼다.

“이번에는 춤을 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춤이라.

아이돌이 가져야 할 최우선 덕목이 무엇인가.

노래와 춤이다.

그중에서도 춤을 얼마나 잘 추느냐는 어떤 면에서 노래보다 중요했다.

팀원과 함께 군무를 맞추는 것.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무대를 완성하는 것.

노래는 AR로 어떻게든 커버가 가능해도 춤은 그렇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춤을 잘 모른다는 것.’

믿는 건 오로지 하나.

몸에 깃든 기억.

방에서 GH의 관계자를 기다리며 보았던 동영상을 떠올렸다.

“춤은 많이 부족하지만 블루커버 선배님의 ‘My Love’를 추겠습니다. 혹시 반주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가장 최근에 췄던 건하의 댄스곡이었다.

“물론이죠.”

그리고 엠프에서 My Love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영상으로 몇 번이나 보았던 노래가 나오자, 몸이 절로 들썩거렸다.

나는 모르지만, 윤건하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노래.

몸이 반주에 반응하며, 음악에 따라 춤을 추었다.

고작 E급밖에 되지 않은 춤 스탯.

“♬♩♪♬♩~.”

영상에서 봤던 것보다는 조금 나은 느낌이긴 했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강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황이서가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떻게 보이려나.

이미 완성된 이들의 무대를 지겹게 본 저 사람에겐 형편없는 몸짓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는 순간 탈락일 것이 분명했기에.

“후욱, 후욱!”

My Love의 1절이 끝나고.

“좋습니다. 거기까지.”

황이서가 노래를 끊었다.

“잘 봤어요. 춤은, 기대한 것에 비해 많이 실망스럽네요.”

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노래로 얻었던 점수가 모두 무너지는 소리였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장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장기 말인가요?”

“그래. 뭘 제일 잘하냐고.”

“음….”

장기라.

나는 고개를 들어 사무실 거울에 비치는 나를 보았다.

SS급 아이돌처럼 천상에서 내려온 얼굴까지는 아니지만, 이 얼굴로 길거리를 돌아다닌다면 분명 주목을 받을 외모였다.

분명 이대로 나갔으면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을걸?

“얼굴이요.”

“뭐?”

“얼굴이 제일 자신 있습니다.”

“허, 이놈 봐라.”

황이서는 내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크하하하! 대답 한번 좋군! 크크큭!”

옆에 앉은 최강훈 대표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황이서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아이돌이 잘생긴 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 그거 말고 없냐고.”

“외모 말고 다른 거 말입니까?”

“그래. 네가 가장 자신 있는 거.”

자신 있는 거라.

필사적으로 A급으로 올린 외모를 제외하면 전부 다 E급이라는 형편없는 능력치.

주사위를 던져야 하는데, 전부 다 눈이 1짜리 주사위였다.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기로에서 던질 수 있는 게 오로지 1짜리 주사위라니.

지금 내가 가진 1 주사위로 딸 수 있는 건 지옥행 특급열차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판을 뒤집는 것도 방법이다.

“없습니다.”

“뭐?”

황이서가 어이가 없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판을 엎고 새롭게 시작한다.

황이서가 원하는 필드가 아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필드에서 싸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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