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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3화 (3/236)

<제3화>

멍하니 눈앞에 뜬 메시지를 보았다.

실패 시 윤건하 삭제. 삭제. 캐릭터 삭제.

윤건하를 삭제한다는 건, 이 세상에서 윤건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뜻.

이 세계에서 삭제된다고 원래 세계로 보내준다는 형편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랬을 거라면, 갑자기 빙의시키지는 않았겠지.

저 삭제라는 말은 곧 내가 죽는다는 뜻일 거다.

빌어먹을 미친 게임!

데뷔를 못 한다고 나를 죽이겠다고?

어이가 없네?

과금 좀 했다고 빙의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캐릭터 삭제라니.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내 이야기를 듣기라도 한 걸까.

[윤건하의 진엔딩 보상: 원래 세계로의 회귀]

진엔딩을 보면 원래 세계로 보내주겠다?

조건이 너무 빡세다.

사실상 마이 아이돌의 엔딩을 윤건하로 보라는 뜻인데.

SS급 연습생이었던 한진성으로도 적지 않은 과금을 해서 봤는데, 이제는 F급 연습생으로 보라고?

난이도가 그냥 지옥이 아니라 불지옥인걸?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플레이어의 원활한 공략을 위해 추가적인 스킬을 제공합니다.]

[스킬: 과금(EX)이 지급됩니다.]

과금?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모든 캐릭터의 스킬은 물론, 정보를 외우다시피 했던 내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건 설마?

‘특전 같은 건가?’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과금.

대체 무슨 스킬인 걸까 생각하던 찰나.

[윤건하 님이 입금한 금액의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10억 원이 정산되어 1000만 포인트로 전환되었습니다.]

[상태창을 오픈합니다.]

상태창?

마이 아이돌을 키우면서 수천 번이고 보았던 그 이름.

모든 연습생과 아이돌은 각자의 등급과 특성에 맞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능력치와 특성에 따라서 어떤 아이돌로 키울 수 있을지가 정해졌다.

메인 스탯은 총 4개.

노래, 춤, 외모, 예능.

어떤 능력치를 가졌느냐에 따라서 아이돌의 메인 보컬로, 서브 보컬 혹은 댄서, 아니면 노래가 아닌 예능이나 배우 쪽으로 키우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능력의 최고점은 99를 넘길 수 없다.

1에서부터 99까지.

엔딩을 보기 위해 모든 능력치를 99까지 올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특정 엔딩을 보기 위해선 최소한 하나의 능력치라도 99를 찍어야만 했다.

스킬이 구린 캐릭터는 스탯빨이라도 먹이면 어떻게든 공략할 수 있게 만들어놨지.

그래.

윤건하도 그 스탯빨을 먹여야 하는 캐릭터 중 하나였다.

윤건하가 가지고 있는 F급 최악의 특성.

[평범함(F) :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 2배의 추가 비용이 필요합니다. 추가 스킬의 효과가 50%만 적용됩니다.]

그래.

이거 때문이다.

다른 스킬의 효과 50%만 적용되는 것과 2배의 비용.

스킬빨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 더 높은 스탯이 필요한 거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물론 평범한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멋진 모습으로 팬들에게 꿈을 전달해야 할 아이돌에겐 최악의 특성이었다.

‘지금 내 능력치가 어떻게 되지?’

[노래: 20 (E)]

[춤: 10 (F)]

[외모: 15 (F+)]

[예능: 25 (E+)]

[가용 포인트: 1000만 포인트]

평균 10대의 능력치.

정말이지, 처참하다.

이러니 그렇게 연습을 해도 더 나아지는 기미가 없이 헤맸지.

과금이라면 역시 저 포인트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일 거다.

이 과금이라는 스킬을 잘 활용해서 능력치를 올려 데뷔를 해라.

그게 이 시스템이라는 게 내게 알려주는 최우선 공략법이었다.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그래, 나도 어떻게든 공략해 줄게.’

의지를 다졌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데뷔를 해야만 했다.

다른 곳도 아닌 GH에서.

주먹을 쥐며 마음을 다잡고 있었는데.

“그래. 덤덤한 척했어도 힘들었겠지. 천천히 생각해라. 만약 네가 아이돌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그 선택 역시 존중해 주마.”

연달아 눈앞에 뜬 시스템 창을 노려보던 나를 보고 오해라도 한 걸까.

양 실장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당장이라도 모든 걸 포기해 버릴 사람인 것처럼.

동정의 눈빛마저 보냈다.

“아닙니다, 실장님. GH 엔터 소개해 주세요.”

“알았다.”

“GH 엔터 대표님께 오디션을 보면 되는 거죠?”

“아마 거기 담당 프로듀서도 같이 올 거다. 그 사람들 앞에서 오디션을 보면 될 거야. 합격만 하면 바로 데뷔할 수 있을 거다. GH에서도 데뷔조를 모집하고 있다니까.”

[서브 퀘스트: GH 엔터의 관계자에게 데뷔할 자격이 있는 아이돌이라는 것을 어필하세요.]

[실패 시: ‘윤건하’ 캐릭터 삭제]

[보상: 2 오픈 마일리지]

오픈 마일리지?

이건 뭐지?

아무래도 짐을 정리하는 김에 알아봐야 할 거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방에서 잠깐 준비하렴. GH 엔터 관계자가 오면 부를 테니까.”

“네.”

양 실장의 사무실을 나왔다.

“드디어 나가는 거냐?”

아까 내게 양 실장이 부른다고 말했던 이진우였다.

이번엔 동료들과 함께인 그는 사무실에서 나온 나를 보자마자 이죽거렸다.

놀리고 싶어 안달이 난 건가.

“빨리 꺼져라. 그 역겨운 얼굴 더는 보기 싫으니까 앞으로 이 바닥에는 절대 얼굴 들이밀지 말고.”

잘생긴 얼굴을 뒤틀며 비웃는 이진우에겐 곧 데뷔할 아이돌의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하는 말이 나중에 어떻게든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없나?

“하아, 지금까지 너 때문에 우리 팀이 매번 꼴찌였던 거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같은 팀, 함께 데뷔를 준비하던 동료라고 하기엔 적대적인 말들에 내심 놀랐다.

그러나 그건 이진우만의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같은 동료였던 걸로 보이는 멤버들은 그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거나 침묵을 지켰다.

전부 F급 연습생인 윤건하를 내심 무시하고 기꺼워하던 놈들이었나.

‘팀 내 왕따가 여기에 있었네.’

그게 나였을 줄이야.

그들은 작별인사를 하려고 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떠나는 마지막 모지리, 윤건하의 초라한 뒷모습을 보며 자신들은 살아남았다는 걸 위안 삼으려고 온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추측했다.

나는 그들을 돌아보았다.

게임에서 본 얼굴이 한 명도 없었다.

세계관 내에서 유명하거나, 인기가 있던 애들은 설사 경쟁사 아이돌이라도 영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

초중반 라이벌인 MAE 엔터 출신의 아이돌 역시 게임 내에서 자주 노출되었지.

그러나 이들 중에 낯이 익은 얼굴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이들 역시 이렇다 할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그저 그런 아이돌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애들까지 보인다는 건, 단순히 게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리라.

“네 꼬락서니를 보니 매번 꼴찌를 했던 게 꼭 내 탓만 있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뭐?”

“네 실력도 형편없다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분노가 차오른 얼굴이다. 새빨개진 채로 나를 노려보는 이진우가 주먹을 꽉 쥐었다.

화가 나겠지. 쫓겨나는 놈이 주제도 모르고 덤비는 꼴이니까.

그런데 방금 말은 진심이다.

남한테서 문제를 찾는 놈 치고 제대로 성공하는 놈 못 봤거든.

“치고 싶으면 쳐. 연습생이 데뷔하기도 전에 폭력 사건에 휘말리면 대표님이 좋아하시겠네.”

“이 새끼가 쫓겨나는 주제에!”

“그럼 나중에 보면 되겠네. 누가 더 성공해서 무대 위에 서 있을지. 나도 아이돌은 그만둘 생각은 없으니까.”

어차피 메인 퀘스트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이진우의 발악도 소소한 재미 요소로 지켜보면 되겠네.

“무대에서 보자.”

“이 개새끼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이진우가 길길이 날뛰었다.

“진우야, 네가 참아.”

“쫓겨나는 애가 하는 말, 귀담지 마.”

중간에서 말리는 다른 멤버들 덕에 싸움까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든 나를 패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진우의 얼굴을 보던 나는 생각했다.

조금만 더 긁었으면 진짜 주먹 날아왔겠네.

성질이 저리 고약해서야.

양 실장님, 고생 좀 많이 하시겠습니다.

*    *    *

마지막 정리를 위해 숙소로 돌아온 나는 아까 눈앞에 떴던 상태창을 다시 확인했다.

[이름: 윤건하]

[나이: 20]

[스킬: 과금(EX), 평범함(F)]

[노래: 20 (E)]

[춤: 10 (F)]

[외모: 15 (F+)]

[예능: 25 (E+)]

[가용 포인트: 1000만 포인트]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과금이었다.

EX라는 처음 보는 등급과 처음 보는 스킬 내용.

나는 스킬을 확인했다.

[과금(EX): 무려 10억이라는 돈을 자신의 새로운 삶에 투자한 당신은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효과 1. 다른 세계의 돈을 포인트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환 비율 - 1 : 100]

[효과 2. 퀘스트 및 업적을 클리어할 경우, 잠겨진 어플을 새롭게 풀 수 있습니다. 어플을 풀어 더 많은 돈을 과금하세요!]

어플? 과금?

특성을 전부 읽기가 무섭게.

띠로링!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갤러리에 영상만 가득하고 연락처는 고작 아버지와 양 실장밖에 없는 카메라.

전화 올 곳이 없는데?

스마트폰을 꺼내자, 액정이 요사스러운 빛으로 빛났다.

무지개? 아니 오로라?

오색찬란한 빛이 기묘하게 섞여 들어가는 신묘한 색이 액정에서 시작되었다.

“어?”

빛이 차츰 가라앉으며, 스마트폰에 새로운 어플이 하나 생겼다.

“허, 이것 봐라?”

[마이 아이돌]

나를 이 세상으로 보낸 마이 아이돌의 어플이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떡하니 박혀 있었다.

[앞으로 ‘마이 아이돌’ 어플을 통해 윤건하의 스탯과 특성을 살필 수 있습니다.]

[추가 퀘스트와 업적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퀘스트와 업적을 클리어 할 경우, 포인트 투자를 위한 새로운 어플을 해금할 수 있습니다.]

[귀하의 성공을 빕니다.]

과금 특성에 스마트폰이라.

딱 어울리네.

모바일 게임하면 가챠와 과금이 가장 잘 어울리잖아?

나는 다른 어플을 확인했다.

그러나 통화와 메신저 어플 그리고 마이 아이돌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주로 쓰던 주식 어플과 부동산 어플을 깔려고 해도.

‘없어.’

기존에 쓰던 금융 어플들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업적과 퀘스트로 어플의 사용권을 얻어내라 이건가.

내가 사용했던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예금, 수많은 적금과 금융상품들.

전부 말이다.

공짜는 없다는 거 같은데.

근데 그거 원래 다 내 돈이잖아.

썅.

“이런 식으로 과금하게 하려는 거냐.”

나는 마이 아이돌에 접속했다.

익숙한 오프닝이 끝나고, 늘 봤던 게임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본래 게임에서 사용되었던 게임 메뉴를 확인했다.

마이 아이돌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수많은 메뉴가 가득했다.

‘스킬 뽑기 or 강화’, ‘통장연결’, ‘캐릭터 케미’, ‘팀원 능력치’, ‘힌트’, ‘인연’, ‘스토어’, ‘컬렉션’.

기존에 보았던 게임 메뉴를 비롯해 처음 보는 아이콘도 보였다.

그리고 그 아이콘은 전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이것도 금융 어플처럼 죄다 잠긴 건가.

[특정 조건을 완수 및 어플을 해금할 경우 추가로 오픈할 수 있는 UI입니다.]

[더욱 다양한 성장을 위해 어플을 해금하세요.]

원래는 처음부터 열 수 있는 기능을 포인트로 사라는 뜻인 거 같은데.

어째 게임이 더 악랄해졌다.

그나저나 캐릭터 케미? 힌트? 이건 뭐야?

기존 게임에선 볼 수 없었던 기능도 꽤나 많았다.

직접 언급하지 않은 아이콘까지 포함하면 스무 개는 되어 보였다.

전부 윤건하의 몸에 빙의하면서 새로 생긴 시스템 같았다.

이걸 전부 해금하려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시스템은 이 이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쯧, 이것도 내가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는 뜻이네.

아이콘으로 어지러운 메인 메뉴를 치웠다.

그제야 대기 화면이 드러났다.

[과금 특성을 발동하셨습니다. 앞으로 상태창은 기존 어플 ‘마이 아이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주위를 맴돌던 상태창이 어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신기했다.

‘앞으로 허공에 있는 상태창 본다고 아까처럼 오해받을 필요는 없겠다.’

이젠 핸드폰만 보면 만사 해결!

그럼 이제 남은 건 포인트인데.

1천만 포인트.

모아놓고 금고에 쌓아봐야 이자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주저할 이유가 없지.”

나는 곧장 춤을 E급으로 올렸다.

[F급 춤 스탯 ‘10’을 구매합니다. 사용 비용 20만 포인트.]

[춤이 F급에서 E급으로 상승합니다.]

[스탯 1을 올리기 위한 비용이 ‘4만 포인트’로 늘어납니다.]

그래. 적어도 E급은 돼야 사람 구실은 하니까.

춤을 E급으로 올린다고 20만 포인트를 썼으니 이제 남은 건 980만 포인트.

남은 포인트를 위해 구매할 스탯은 이미 정해뒀다.

‘전부 외모에 몰빵!’

[F급 외모 스탯 ‘5’를 구매합니다. 사용 비용 10만 포인트.]

[외모가 F급에서 E급으로 상승합니다.]

[스탯 1을 올리기 위한 비용이 ‘4만 포인트'로 늘어납니다.]

[E급 외모 스탯 ‘10’을 구매합니다. 사용 비용 40만 포인트.]

[…….]

[A급 외모 스탯 ‘1’을 구매합니다. 사용 비용 100만 포인트.]

980만이라는 포인트를 전부 외모에 올인했다.

무조건 잘생긴 얼굴!

짜릿해! 잘생긴 게 최고야!

잘생긴 게 최고다.

화가 나도 잘생긴 얼굴만 보면 마음이 풀린다는 얘기가 있잖아.

나도 그렇거든.

다른 건 나중에 올려도 된다.

춤을 올려봤자, A급으로는 메인 댄서는커녕 서브 댄서가 고작이었다.

노래? 마찬가지였다.

예능? 그나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마저도 외모가 평범하면 될 것도 안 된다.

‘주목을 받지 못해.’

잘생긴 외모는 최고의 유머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거기다가 첫인상에 외모만큼 중요한 게 없다.

[총 950만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

[외모 스탯이 15 → 61로 증가했습니다.]

[외모 등급이 F급에서 A로 격상합니다.]

[스탯 구매 비용 100만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평범 페널티 적용가)]

[외모: 61(A)]

이제 GH 엔터의 관계자를 만날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네.

설마 사업가 윤건하가 오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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