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통일의 꽃 [미래역사소설] 21世紀 地球史
(16) 통일의 꽃 ⑦
2008년 1월 28일
평양시 주석궁 국방위원장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5일전부터 시작된 평양의 시위는 평안도 전역으로 번지면서 개성
과 청진, 남포에서도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북조선에서도 당에 거역하는 사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
다. 그러나 지금처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시위는 일찍이 없었다. 1972년 개
성공단에서 여공들이 열악한 식사에 항의하다 23명의 여공들이 투옥되고 탄
광으로 끌려간 사건처럼 간간이 단체적으로 항명하는 사건이 몇 번 있긴 했
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으로 격분한 군중에 의해 우발적으로 촉발된 사건
들이었다. 단체행동에 가담한 자들은 남김없이 처벌되었다. 그와는 별도로
군부에서 쿠데타나 반역을 시도하는 일도 몇 번 있었다. 이런 경우 사전에
모의하여 계획적으로 준비되었지만 전략적이지 못했다. 모조리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기존의 사건들과 완전히 궤도를 달리하고 있었다. 어
떻게 통문을 돌리는 지 참가자가 수천명이 넘었고, 플랭카드와 유인물, 붉은
띠, 징과 꽹과리 등 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는 등 사전준비가 철저했다.
공안은 무차별 연행과 폭력적인 방법으로 진압에 나서 벌써 수백 명 이상의
시위참가자들을 체포했지만 시위대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또한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도 절묘했다. 군부에서는 이미 발포 등의 강경한 진압작
전을 건의하고 있는 실정이었지만,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개성공단 투자설명
회에 초청된 서방 인사들과 기자들의 눈을 의식해 일체의 살상행위를 금지시
켜 놓고 있는 실정이었다. 시위의 주장은 간단했다. '사유재산권 인정'과
군비축소를 요구하고, 공장과 농장의 자영권 보장, 자유로운 언론활동 보장
, 거주지 이전자유 보장, 직업 선택권 보장, 비리 고위당원들의 처벌 등 7개
항이었다. 시위대의 활동은 조직적이고 전략적이었다. 김 위원장은 시위대
의 배후에 특출한 지도자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런 혁명과도 같
은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이 북조선 인민들의 민생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후에 단계적으로 조금씩이라도 받아들여야 할 지도 모
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김정일은 개인적으로 '대동강의 눈물'을 재미있게
봤다. 적어도 앞부분은 정말 재미있었다. 뒷부분으로 가면서 상황은 달라졌
다. 고위 당직자들의 개인 축재가 폭로되는 부분에서는 벌떡 일어나 모두 체
포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위원장은 결코 시위대에 굴복해서 정책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일단 시위대는 강력하게 진압해야 했다. 특히 프로그램
에서 자신의 과거 실패에 대한 지적과 비판이 정면으로 제기되자 그것은 더
욱 분명해졌다. 1994년 김일성의 사망과 그 즈음 동구권의 몰락으로 무
역상대국을 잃어버린 북한의 경제는 처참하게 무너져 갔다. 1994년부터 199
7년까지 이른 바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시기 동안 김정일은 인민들의 민
생과 국가경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정권의 정비에 힘을 쏟았다. 당시 그는 연
설문을 통해 "부족한 자원을 민생이 아닌 군수산업에 투입한 결정을 후대가
이해할 것이다"라고 했지만 이 때 등한시했던 북한경제는 회복 불가능의 상
태로 접어들게 되었다. '대동강의 눈물'에서는 당시 김정일의 선택을 강력
하게 비난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1997년 10월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
한 뒤에야 '강성대국론'을 내세우며 경제 회복의 전면에 나섰다. 우선 농업
생산의 정상화를 꾀해 ‘먹는 문제의 해결’에 주력했다. 그리고 그는 2
002년 후반기에 처음으로 '실리사회주의'라는 용어를 도입하면서 당면한 냉
엄한 현실을 해결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2007년에 이를 때까지 여러 가지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을 해왔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은 상대적으로 방대한 국방예산과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않고
있는 정책이었다. 예산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방비의 이면에는 비효율적
으로 덩치만 키운 비효율적인 군 조직과 사유재산권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
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당의 반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김정일과 그
일가가 누리는 상당한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사유재산제도의 실행은 불
가능한 것이었다. '대동강의 눈물'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이 여과 없이 지적되
고 있었던 것이다. 위원장은 북조선의 경제를 살리고 인민들이 잘사는
정책을 펴고 싶기는 했지만 그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
았다. 대규모 변혁이 일어난 그 이후 자신이 언제까지 조선의 최고통치자로
계속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대동강의 눈물'은 북조선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가장 정확한 방법을 제시
하는 동시에 불가능한 방법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위원장의 입
장에서는 이 번 시위는 반드시 진압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위원장은 어
릴 때부터 지도자 수업을 받으면서 자랐고 그렇게 길러졌지만 정치를 하고
싶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음악이나 영화 등 예술 분야에 더욱 관
심이 많았다. 젊은 시절 그는 아버지에게 반항도 하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
어 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차 그는 정치에 필요한 타고난 자
질들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제 국방위원장의 나이도 환갑을 넘었다. 그의
나이 쉰이 넘을 때까지 아버지의 그늘에 있었으니 이제야 권력의 맛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 옳은 말이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국가원수의 자리를 이
어받았지만 아버지에게 바쳐졌던 수령이라는 명칭과 주석이라는 직함은 이어
받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가 가졌던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
다. 세습 2대에서 국가원수의 권위는 그만큼 약화되었다. 세습이라는 극히
이례적인 권력이양 과정에서 그는 반대파의 견제를 막기 위해 스스로 난폭하
고 건드리면 골치 아픈 존재로 자신을 이미지 시켜갔다. 동시에 권력을 세습
받은 태생적인 한계를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 신비주의적 통치 형태로 극복
했다. 그러한 것이 이번 사건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프로
그램에서는 김정일을 위대한 지도자동지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모든 존칭이
사라져있었다. 심하게는 "김정일은....." 하며 이름만 부르는 엄청난 무례
를 저지르고 있었다. '대동강의 눈물'에서 그는 더 이상 지도자 동지가 아니
라 권력유지 때문에 인민들의 민생을 저버린 탐욕스런 늙은이인 것이었다.
김정일은 수행보좌관을 불렀다. "인민무력부장 연결하라우"
믿을 것은 결국 군 밖에 없었다.
2008년 1월 29일 평양시 대동군 율리면
"이번 궐기대회에는 저도 참가하려고 합네다."
석귀홍의 말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걱정스런 얼굴이 되었다. '구국의 동지'회
는 귀홍이 구심점이었다. 처음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규합한 것도 그녀
였고, 그들의 운동에 이론적 배경과 당위성을 부여한 것도 그녀였다. 시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전술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도 그녀였다. "석동무 아
이 되요. 만약 석동무가 연행되거나 다치거나 한다면 차후 우리의 활동 전체
가 타격을 입게 되지 않갔소."
평양기술대학의 최민구가 귀홍을 말리며 나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오.
귀홍 동무는 우리 동지회의 회장이요.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킬 마지막 순간
까지 동지회를 지켜야 합네다."
순천화학공장의 노동자 대표인 이천호도 거들며 말했다. 이미 당에서는 시위
의 진압을 위해 발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중앙방송
에서는 차후 시위에 대해서는 반혁명적 매국행위로 규정한다는 경고가 나왔
다. 처음에 이들의 시위는 언론에서 다루지도 않은 채 공식적으로는 '일어나
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미 수천명의 동조자를 가지면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
는 시위를 계속 부정할 수는 없었다. 평양에서의 시위 소식은 전 세계에 알
려졌다. 심야에 방송하는 해적방송은 TV뿐만 아니라 라디오까지 가세해 이
러한 시위대의 활약과 그들의 주장을 매일 자세하게 전하고 있었다. 그로 인
해 시위대의 규모와 활동은 더욱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고 있었다. 귀홍은 김
일성대학 산하 기술학교 출신의 강태훈의 도움으로 매일 라디오로 인민들에
게 호소하고 있었다. 귀홍은 계속 되던 TV방송이 리순천의 활동으로만 알고
있었다. 리순천이 체포된 것이 공개된 이후 TV방송은 중단되었다. 그 이후
의 TV방송은 강태훈의 도움으로 계속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이번 시위
에는 당에서 더욱 강경한 진압이 예상됩니다. 평양 주변의 군부대들이 평양
근처로 이동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소."
"이번 궐기대회는 목숨을 걸어야 할 지도 모릅네다."
동지회의 주축멤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학생들과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귀홍에게 테이프와 책자를 전달받아 자신들의 동료들과 돌려보고 귀
홍과 토론하면서 그에 동조해 행동을 같이하기로 한 사람들이었다. 석귀
홍은 군부대가 움직였다는 말에 아버지가 생각났다. 궐기대회 도중 아버지의
군대와 마주치게 되면 어떻게 할까? 어쩌면 귀홍을 딸로 두었다는 이유로
이미 아버지도 입장이 곤란하거나 처벌대상이 되어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
다. 귀홍은 벌써 보름 가까이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기존 붉은 청년단 소속
인 귀홍이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청년단 교육에도 참가하지 않았으니 이미
귀홍은 당에서 수배가 되어있는 상태일 것이었다. 또한 라디오를 통해 계속
방송을 했으니 아는 사람들은 이미 그 목소리가 귀홍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제가 참가하려고 합네다. 동지들에게 무
슨 일이 생기면 저라도 막아야지요."
"귀홍동무!"
사람들이 다시 한 번 귀홍동무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 때 김만석 동지가 입
을 열었다. 그는 회창군 노농적위대에서 조장을 맡던 농민으로 구국의 동지
회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강직한 성격으
로 적위대에 있을 때도 많은 후배들이 따르던 인물이었다. 회창군 농장에서
시위에 참여한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럽시다. 귀홍 동지.
같이 참여합세다. 귀홍 동무가 나가면 많은 동지들에게 힘이 될 것이외다.
"
"조장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나 참"
이천호가 혀를 차며 말했다.
"고맙습네다. 조장님."
귀홍이 김만석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특별히 조심해야 합네다
. 당에서 귀홍동무가 최우선 체포대상자라는 말이 들리고 있소."
"알겠습네다. 조심하겠습니다."
"귀홍동무 오늘밤 방송 녹음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 때 강태훈이 녹음기를 가지고 들어오며 말했다. "아, 예 태훈 동무. 태
훈 동무야 말로 절대 잡혀서는 안 되는 동무지요. 태훈동무가 없으면 누가
방송을 합네까?"
그 말에 태훈은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지었다.
녹음이 시작되었다. 특별히 방음장치를 한 방은 아니지마 비교적 조용한 방
을 골라 녹음을 시작했다. 귀홍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차분하면서도 단호하
게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갔다. 약 30분에 걸친 녹음이 진행되는 동안 태훈은
옆에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귀홍은 녹음 도중 간간이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엷은 웃음으로 답했다. 태훈은 그녀의 웃음에도 굳은 표
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녹음이 끝나자 태훈은 깔끔한 학생복을
꺼냈다. 김일성대학에서 여학생들이 입는 교복이었다. 그러나 조금 달랐다
. 교복에는 없던 베레모 형태의 모자가 있었다. "선물입니다. 귀홍 동무.
"
"이건 뭐지요?" "귀홍동무 교복입니다. 집에 안들어가신 지 오래되지 않았
습니까? 만약 궐기대회에 나가시면 깨끗한 옷으로 입으시라고 제가 준비했습
니다."
"우와, 고맙습네다. 이 번 대회에 제가 나갈 거라는 것은 어찌 알고 준비하
셨습네까? 정말 마음에 듭네다."
"귀홍 동무!"
"예."
옷을 살펴보던 귀홍이 태훈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순간 태훈이 그녀를 와
락 껴안았다. "아니 왜 이러시오? 태훈 동무. 누가 보겠습네다."
귀홍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라디오 방송을 위해 그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정도 많이 들었고, 원고를 쓰면서도 도움도 많이 주었던
태훈이다.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생긴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귀홍동무 약속하시오. 꼭 조심하겠다고."
"알았습네다. 태훈 동무, 동무도 조심하시라요."
"내 걱정을 말고, 제발 조심하시오. 그리고 귀홍동무. 절대 모자를 벗지 마
시오. 또 만약 군인들이 총을 쏘면 머리나 얼굴을 맞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합니다."
귀홍이 태훈의 얼굴을 보며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살짝 웃
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태훈 동무.
"
태훈이 귀홍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귀홍이 태훈을 향해 고개를 들며
눈을 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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