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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역사소설] 21世紀 地球史 (16) 통일의 꽃 ⑤2008년 1월 8일 화요일
배달 눈물의 광장세연은 실내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야외로 나온 관계
로 한동안 눈이 잘 보이지가 않아서 한참동안 눈을 깜빡였다. 오혜린은 얄밉
게도 어느새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어느 정도 눈이 익숙해진 세연은 눈앞
에 펼쳐진 눈물의 광장의 모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
떻게 된 일인가요?"
"텔레포트예요. 인쇄술, 한글, 파동역학, 우드파이트와 함께 한국인이 개발
한 10대 발명품의 하나죠."
"이, 이럴 걸 언제......?"
"차차 알게 되겠죠. 일단 배달청사에 가서 통령님을 만나보시죠."
"예? 그렇게 갑작스럽게... 전 뭐가 뭔지."
세연은 배달청사로 안내를 받았다. 청사는 배달의 행정기관들을 하나로 통합
한 건물로 웅장함과 세련미를 갖추고 있는 건물이었다. 김시백 통령은 청사
앞의 야외에 꾸며진 공원 형태의 휴식공간에서 세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한세연양."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통령님."
"세연양, 세연양이라고 불러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허허 준영군과 내가 워낙 사적으로 친근한 관계라 세연양에게도 호칭이 그
게 자연스러울 것 같소."
"준영에게 제 말씀을 들으셨나보군요."
"아 물론 세연양의 얘기는 준영군에게서 들었지만 지금은 여기 배달 사람들
중에 세연양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예? 그렇게나?"
세연은 준영이 평소에 자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렇게나 떠버리고 다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배
달 사람들이 세연양을 아는 것은 준영의 여자친구로 아는 것은 아니오."
김시백 통령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히려 세연양은 대동강의 눈
물을 만든 연출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아 그런가요? 대동강의 눈물이 여기도 방송되었나요?"
"그렇소. 한 번 방송되었소. 그런데 사실은 남북 간의 분단을 잘 알지 못하
는 배달사람들에게 분단의 문제는 잘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요. 다만 북한의
체제에 오히려 사람들이 동병상련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죠."
"왜 그렇죠?"
세연은 배달사람들이 북한주민들의 생활에서 동병상련을 느꼈다는 것이 이해
가 안되었다. 배달이 북한과 비슷한 체재를 가지고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 "사실 우리는 지금의 북한보다 더 통제되고 더 억압받던 기억을 가진 사
람들입니다."
"예?"
"얘기가 무척 깁니다. 사실 준영군이 직접 세연양에게 설명하기로 되어 있었
는데, 준영이 그동안 속인 게 많아서 자신의 입으로는 차마 말할 수 없다며
나한테 떠넘겼소. 허허."
"지금 준영은 어디 있나요?"
"지금은 평양에 있습니다. 오늘밤에 아니지, 내일 새벽에 평양에서 할 일이
있거든요."
세연은 통령의 말에서 이제 배달의 실체와 준영에 대해 더욱 궁금증이 일었
다. "나랑 같이 S지구에 갑시다. 차가 준비되어있을 겁니다."
세연은 여러 가지 질문이 많았지만 김시백 통령이 말을 해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두 사람은 청사 뒤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직접 운전하
시나요?"
"예, 여기선 통령이라고 전용 운전기사를 두지 않습니다. 제 경호원들도 제
가 배달섬 밖으로 나갈 때만 경호를 하죠."
주차장에 도착한 세연은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을 보고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
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주차장은 가장자리에 네모칸을 만들어 주차하는 방
식인데 여기 주차된 차들은 주차장의 왼쪽 윗줄부터 순서대로 쭉 늘어서 있
었다. "주차장이 이상하죠?"
세연의 표정을 본 통령이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주차장에서 밖으로 나가는 도로가 없었다. 주차장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지만 들어오거나 나가는 길리 없이 사방이 잔디밭으로 막
혀 있었다. "예. 이렇게 세워놓으면 차들은 어떻게 빠져나가나요?"
"들어온 방법대로 나가면 되겠죠."
"설마 날아서 나가나요?"
"맞습니다."
통령과 세연이 탄 차는 한국산 승용차였다. 통령의 차인데도 최고급 승용차
도 아니었고, 1800cc 정도의 중형이었다. "이 차는 한국에서 수입해서 배
달의 교통체계에 맞게 개조한 겁니다."
세연이 안전벨트를 매자 김시백이 시동을 걸었다. 시동을 건 후 김시백이
차 앞의 플립을 열고 버튼을 누르자 차가 사뿐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어
머!"
세연이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지르자 김시백 통령이 큰 소리로 밝게 웃었다.
두 사람이 탄 차는 배달의 S지구를 향해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2008년
1월 8일 화요일 평양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동무도 잘 알 꺼야
."
귀홍이 허한식 김일성종합대학 문과 기숙사 대대장에게 말했다. 북한의 대학
교는 평양에 거주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학생들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
한다. 기숙사는 군대식 체계를 도입해서 기숙사 단위별로 연대, 대대, 중대
등의 편제를 가지고 있었다. 6인이 사용하는 방을 분대로 해서 방 네 개가
1소대, 4개 소대가 1중대, 4개 중대가 1대대였다. 기숙사 안의 생활을 사감
선생님이 있었지만 편제별로 나뉘어진 중대장, 소대장 등의 선임학생을 정
해서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군대생활보다는 훨씬 자유롭다고
볼 수 있었다. 적어도 김일성 종합대학에 다닐 정도면 북한 내에서도 어느
정도는 기득권 계층이 많았고, 지방 출신의 학생들이라도 사상적으로 문제
가 없는 집안의 자녀들이었기 때문에 기숙사에 대한 통제는 학생들에게 자율
적으로 맡기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별 문제 없이 대체로 잘 지켜지고 있
었다. "내래 잘 알지, 예전에 평양외국어대 사건도 있지 않았겠어?"
지난 96년 평양외국어대학에서는 20여명의 학생들과 교직원이 하루아침에 퇴
학, 해직과 함께 정치범수용소에 가거나 탄광, 농촌으로 추방됐다. 음란비디
오 즉 섹스비디오를 봤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는 학생과 기숙사를 관리하던
교직원, 그들의 사상동향을 감시하고 처리하는 국가안전보위부요원까지 연
루되어 있었다. 한 학생이 외국에 자주 나가는 아버지가 가져온 음란 테이프
를 기숙사에 가져와서 돌려보고, 그러다 그것을 감시해야 할 교직원에게 들
키자 다른 것도 더 있다는 말로 회유하여 교직원들도 같이 동참하여 돌려보
다 결국 누군가의 밀고로 발각된 사건이었다. 북한에서는 섹스장면이 묘사
된 영화나 비디오를 보는 것을 일절 금지하고 있다. 건전한 사회주의 사상을
해치는 자본주의 부르조아 사상을 퍼뜨리기 때문이란 것이다. 외국영화는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만수대 텔레비전 프로에서 건전하고 혁명적인 중국
, 쿠바, 구 소련 등의 영화를 방영하거나 우방국가의 국경절 즈음해서 평양
시내 영화관들에서 그 나라의 영화를 상영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국
가 영화의 상영은 철저히 금지한다. 또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외국영화는
보기는 해도 복사는 안된다. 북한에서는 외국노래를 들어서도 안 된다. 외
국소설도 국가검열기관에서 검열한 것만 읽어야 한다. 위반할 때는 사상적으
로 변질됐다는 딱지가 붙는다. 한국노래나 소설책을 듣고 보다가 들켰을 때
는 정치범수용소에 가야 한다. 보위부와 안전부에서는 색정(애정)적인 노래
테이프나 노래책들을 찾아내기 위해 1년에 한두 번 정도 불시에 가택수색과
기숙사 수색을 했다. 이때 걸리면 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2000년을 넘어오면서 상당히 완화되었다. 김대중 대통
령의 평양 방문 이후 한국영화와 노래에 대한 검열이 많이 완화되어 2003년
에는 남조선의 영화 "아리랑"이 평양에서 개봉되기도 했다. 특히 2005년 김
정일 국방위원장의 남한 방문 이후 한국영화들과 노래들이 TV와 라디오로 소
개되고 기숙사에서 테이프로 가지고 있는 것도 허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러한 것들도 모두 보위부의 검열을 거치고 허가가 난 것에 한해서였다. '
대동강의 눈물' 같은 해적 프로그램을 테이프로 가지고 있다가는 당장 '사상
투쟁' 대상이 될 것이었다. 사상투쟁은 계급투쟁의 기본형식이다. 사상투
쟁은 적대사상간의 투쟁 또는 노동계급이 자기 계급의 혁명사상과 적대되는
온갖「반동적사상」을 반대하여 벌이는 투쟁이다. 사상투쟁은 주로 근로대
중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른바 낡은 사상을 뿌리뽑고 그들을 선진적인 노동
계급의 사상,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시킨다는 것이다. 비판과 자기비판은
사상투쟁의 핵심이다. 사상투쟁의 대상이 된 사람은 다른 동료들의 앞에서
스스로 자기비판을 해야하는데 이 때 동료들에게 무시무시할 정도의 질책과
비판을 받는다. 아무런 육체적 고통이 따르지 않는 형벌이지만 간혹 사상투
쟁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등 그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다. '대
동강의 눈물'은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방에는 TV가 없
을 뿐만 아니라 TV가 있는 중대휴게실은 취침시간이 넘으면 문을 닫기 때문
에 그 때 방송이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그 시간에 휴게실에서 TV를 보는 것
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집에서 통학하는 학생들 중 '대동강의 눈물'을 본 학
생들의 입을 통해 그 내용들이 소개되자 그를 보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아
진 것이다. "안 들키고 조심해서 봐야해."
"물론이지, 휴게실에서 틀어놓고 보다가 망을 보는 학생이 신호를 하면 재빨
리 TV로 바꾸면 되는 기야. 근데 오늘 새벽에도 방송된다고 하던데 그 얘기
들었어?"
"그 얘기는 나도 들었어."
"하필이면 또 새벽이라서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은 보기가 힘들어. 그리고 학
교 당국에서 오늘 자정부터 정전이 된다 하더라고, 인민들이 이걸 못 보게
하려고 눈에 혈안이 된 것 같아." "그러게, 언제까지 인민들을 장님으로
만들려고 하는 지 모르겠어. 하지만 흐르는 역사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야.
"
"역사라고?" "그래,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야. 이건 헤겔의 진보적 역사관
을 따르는 계급투쟁의 기본 이론 아니겠어? 지금 우리 조선의 공산당은 인민
들의 눈을 막고, 인민들의 피를 빨면서 호의호식하는 당원들의 부패가 만연
해. 그 옛날 타파해야할 계급으로 지목 받던 지주들보다 더 한 억압과 착취
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야. 언젠가는 인민들의 힘으로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
놓을 것이야. 그래서 진정 인민들이 풍요롭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해"
허한식은 귀홍의 말을 듣자 어깨 쪽에서 목덜미 쪽으로 소름이 돋아나는 느
낌을 받았다. 옳은 소리이긴 하지만 너무나 위험한 말이었다. "어, 어쨌든
, 석귀홍 동무. 테이프 고맙네. 우리 기숙사에서 돌려보고 돌려줄게. 언제
돌려줄까?"
"안 돌려줘도 돼. 안 본 학생들이 있으면 다 볼 수 있도록 해줘."
허한식은 귀홍과 헤어져 기숙사로 향하면서 귀홍을 보위부에 신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도 귀홍에게 불온
테이프를 받은 처지라 그에 연루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한편, 귀홍
은 한식과 헤어져 또 다른 대학의 기숙사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탔
다. 각 대학의 기숙사와 공장의 숙소, 심지어 군부대까지 귀홍은 테이프를
전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전하리라 생각했다. 언젠가는 보위부에 꼬리가 잡히
게 될지 모르지만 그 전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
했다. 지하철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귀홍은 벽에 붙여져 있는 작
은 쪽지를 발견했다. '1월 7일 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1월 9일 새
벽 1시 재방송 실시'
그 쪽지를 보자 귀홍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 날 혼자서 산을 내려온 이
후 귀홍은 리순천 감독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전화를 할 수는 없었다. 리감독
이 절대 자신에게 전화를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9일날 재방
송을 한다는 쪽지를 발견하면서 리감독이 무사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리
감독이 무사히 산을 내려와 지금쯤 어딘가에 숨어서 또 재방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떻게 재방송을 할 것인지, 이미 연주소를 이용하는
방법은 어려워졌을 텐데 하는 걱정을 하면서 아직은 리감독이 무사하다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왜 자신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지 서운
해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리순천이 보위부에 체포된 채 고문을 당하고 있다
는 것을 귀홍은 모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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