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kskill.com)=+= (14) 대동강의 눈물 죄송합
니다. 제가 출장을 갔다 오는 바람에 오늘 연재가 늦어졌네요. 그리고 죄송
한 말씀을 드려야 겠습니다. 제가 전에 설문을 통해 짧더라도 자주 올리는
게 좋은 지 자주는 못 올리더라도 한 번 올릴 때 긴 게 좋은 지 여쭤봤는데
대부분의 독자분들이 이 짧더라도 자주 올리는 게 좋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
로 하고 주 5일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자주
올리면서도 양은 별로 줄어들지 않네요. 그러다 보니 연재를 하는 데 상당
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실력도 딸리는 데다 현대전을 위한 정보도 부족해 공
부도 많이 필요한데 시간도 부족해서요. 거기다 제가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
젝트를 맡아 훨씬 시간을 할애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득히 연
재 주기를 다시 조정할까 합니다. 다음 주부터 화/수/금/토 이렇게 4회 연
재하겠습니다. 대신 보다 깊이 생각하고 더 많이 조사해서 보다 알찬 내용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4) 대동강의 눈물 ②2007년 11월
3일 각 국의 반응 배달이 일본의 해군을 맞아 격퇴시켰다는 보도는 전
세계에 빠른 시간에 퍼졌다. 한국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에 환호
했고, 일본과의 화해를 주장하며 강민우 대통령을 비난하던 사람들은 애써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당당한 자세로 맞설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루만에 국내 석
유가격은 하락안정세로 돌아섰고, 주가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거기다
평소 미국과의 우방체계를 강조하던 사람들도 이번 유엔안보리에서 미국의
배달지지 발언에 고무되어 배달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한국 내 배
달의 인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배달의 정체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다. 일부 야당에서는 배달이 대통
령이 사적인 목적을 위해 군사력과 공권력을 통해 비밀리에 만든 불법 사조
직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일본과의 불편한 관계
자체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잇었다. 일본과 수출입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체
에서는 배달의 선전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 기업경영에 악영향을 미
치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고, 일본에 유학중인 학생들을 둔 가족들은 일
본 내 한국인들의 안전에 위해가 가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중국은 공
식적인 논평을 자제한 채 배달의 등장이 아시아의 세력균형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배달의 석유는 중국에게도 깊은 관심의 대상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중국은 자국의 석탄과 석유를 수출하는 국가였다. 석유
생산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주요 석탄이 풍부한 땅덩어리와 석탄 중심
의 에너지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력생산도 석탄의 비중이 95%
였고 나머지 5%정도는 수력발전이었다. 그러니 중국 국내에서 생산하는 석유
과 쓰고 남는 엄청난 양의 석탄을 수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
01년부터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하면서 엄청난 에너지소비의 증가로 일순간
석유수입국으로 변모해버렸다. 2003년에는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가봉으로부
터 9만여톤의 원유를 수입했다. 2004년에는 하루 원유 소비량이 580만 배
럴로 일본을 제치고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에너지소비 국가가 되더니 2
007년 현재 중국은 하루 평균 650만 배럴 정도의 원유를 필요로 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니 배달의 원유는 시비를 걸 거리가 없어 닭 쫓던 개 지붕 쳐
다보듯 하고 있을 뿐 닭이 지붕에서 내려오기만 하면 언제든지 목을 물어뜯
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본은 혼란에 빠져 들어 있었다. 전쟁에 자신
의 아들이 또는 남편이 참여했다는 것을 뒤늦게 안 가족들이 방위청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가족이 포로가 된 사람들과 전사를 한 사람
들의 입장이 미묘하게 갈리고 있었다. 전자는 포로 생환을 위한 일본 방위청
의 노력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반면 후자는 피의 보복을 요구하고 있었
다. 그와는 별도로 중의원 앞에서는 연일 반전 시위가 있었고 우익이 주도하
는 보복전쟁 주장하는 시위도 계속되었다. 와세다 대학의 교수가 먼저 공격
한 일본이 보복을 거론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가 우익단체들의
테러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도 발생했다. 언론에서도 포로생환과 보복전쟁
으로 주장이 갈라져 있었다. 일부에서는 일단 배상금을 지급하고 포로를 돌
려 받은 뒤 그 뒤에 처절한 응징을 하자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었다. 그리
고 일부에서는 배달이 발표한 포로의 숫자가 너무 많다며 조작의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었다. 해전의 특성상 그렇게 많은 포로가 발생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사실 포로는 나포된 배에 있던 약 1300여명 정도라
는 주장이었다. 즉 배달이 배상금을 많이 받고 일본의 재침을 막기 위해 부
풀려서 발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주장은 재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해군
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공격의 새로운 걸림돌이 나타났
는데 그것은 미국의 유엔 안보리 연설로 표명한 일본 제재론이었다. 그
러나 정작 그 당사자인 미국 백악관은 그 어느 곳보다 곤란한 입장에 처해져
버렸다. 미국의 예상을 깨고 배달이 이겨버린 것이다. 원래 시나리오대로라
면 어느 족이 이기더라도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간여하게 되어 있는데, 일본
이 이길 것으로 단정하고 유엔에서 배달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해 버린 것
이다. 그래서 대놓고 배달에게 시비를 걸 소지를 놓쳐 버린 것이다. 그러
나 시온 장로회에서는 조급하게 뭔가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들은 기
다리는 데 익숙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미국의 입장을 번복할 수
있을 것이고 기다리면 반드시 기회는 오는 것이었다. 이라크 때도 12년을
기다렸다. 이라크 분쟁이 해결 안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온으로서는
손해볼게 없었다. 정치적 부담은 대통령의 것이지 시온의 것은 아니었다.
시온은 계속 무기를 팔고 있었고, 이라크의 석유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다
. 시온은 배달의 경우는 그 기회를 기다리는 데 이라크보다 훨씬 적은 시
간이 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2007년 11월 4일 평양 105부대 사단
장실 석정후 중장은 남조선에서 온 한세연이라는 대학생이 만든 프로그
램을 보고 있었다. "남녁동포 학생의 눈으로 본 공화국"이 제목이었다. 특이
한 프로그램이기도 했지만 석정후는 이 프로그램에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
었기 때문에 유심히 보고 있었다. 한세연이라는 남조선 학생은 자신의 딸인
귀홍의 친구였다. 얼마전부터 중국에 다녀온 딸이 남조선 학생과 채팅을 하
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고 노발대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세연과 귀홍이
그 동안 채팅을 한 캡쳐를 보고 석정후는 세연의 생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세연의 생각은 석정후가 평상시에 꿈꾸고 있던 공화국의 모습을 어렴풋
이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평양을 취재하고 싶다는 세연의 생각
을 듣고 그 방법을 생각해 본 것이다. 석정후는 중앙방송의 사장으로 있는
친구 김기철을 만나서 공화국의 최근 발전상을 선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을 말했고, 그걸 우리가 만드는 것보다는 남조선의 대학
생이 만든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말했다. 그래서 그 노력의
결과물이 오늘의 프로그램이었다. 그 동안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초기 방송
사에서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렸지만 전체적으로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
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어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은
훌륭했다. 전 분야에 진행 중인 공화국의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현장감있게
잘 보여주고 있었고, 북조선이 앞으로 나아갈 바에 대한 모습도 잘 제시하
고 있었다. 어느 부분 검열의 흔적들이 보이긴 했지만 프로그램은 최대한 자
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밝히고 있었다. 흔히 북한에서 만든 프로그램
처럼 웅변조의 해설이나 연출된 장면은 거의 없었다. 지루하지도 않은 속도
감있는 편집이나 역동적인 장면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감흥을 불
러일으켰다.
석정후는 프로그램이 끝나자 걸어서 자신의 관사로 돌아가고 있었다. 집무실
에서 관사까지는 약 10분 정도 걸렸다. 보통 1호차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산
책을 즐기는 석정후는 일찌감치 운전병을 숙소로 돌려보냈다. 집무실에서 나
서자 보초병이 경례를 붙였다.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 북조선의 밝은 미
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찼던 석정후는 다시 공화국의 현실을 생각하며
마음이 어두워졌다. 지금 군부와 당은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금은 잠
시 시장경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개혁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긴 했지만
언제 보수적인 공산당원들이 득세를 할지 모르는 일이었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군부가 세를 규합하고 있었다. 석정후는 진정 인민들을 위한 공
화국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
람들이 주변에 많긴 했지만 그들을 조직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기반
도 약하고 또 서투른 조직화는 곧바로 반동의 이름으로 처벌될 가능성도 많
았다. 당은 공화국의 현재 모습이라고 세연의 프로그램을 선전했지만 프로
그램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공화국이 앞으로 변화해야 할 모습과 그 가능
성을 말하고 있었다. 석정후는 프로그램 안에서 그 어떤 희망을 가지게 되었
다. 그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깊은 사색에 빠졌다.
"힘이 없어....힘이..."
석정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힘을 조금 나눠 드릴까요?"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석정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권총을 빼어든 석정후
앞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이상한 망토를 걸친 20대 중반의 사나이가 서있
었는데 석정후는 단 번에 그가 공화국의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장군님.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
"누구냐?"
"전 서준영이라고 합니다. 배달 사람입니다."
"배달? 일본과 전쟁 중인 배달말이요?"
"맞습니다. 같은 동포죠."
"그런데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총 좀 치우시죠. 모두 말씀 드릴테니."
석정후의 뒤를 따라 사단장 관사로 숨어 들어간 준영은 석정후와 함께 긴 이
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105사단장 관사의 불은 새벽이 될 때까지 켜져 있었
다. 2007년 11월 5일 평양역세연이 평양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갈 날이 되었다. 세연은 방송이 무사히 끝난 것에 안도하고 있
었다. 세연이 '무사히'라고 하는 데는 상당히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었다
. 세연이 만든 프로그램에 대해 상당히 많은 논란이 있었다. 사용하는 용어
와 장면 하나 하나가 모두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검열을 통과하는
데 몇 번의 수정이 있었다. 세연은 검열국에서 전체적인 흐름은 보지 못하
고 용어나 장면 같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지만 이
정도의 주제를 다루는 내용에 대해 수용하기 시작한 북한 내부의 변화에 대
해서도 놀라고 있었다. "보다 더 빠르고 더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프로그
램의 주제에 대해 북한 당국이나 방송국 간부들이 대체로 큰 이견이 없었던
것이다. 세연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원래 계획했던 내용을 충분히 다루
지 못했지만 절반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제대로 완성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후일을 기약했다. 평양역에는 귀홍과 리
순천 감독이 배웅을 나왔다. 세연은 귀홍과 포옹하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
을지 눈물로 작별했다. 귀홍이 울먹이며 말했다. "꼭 통일이 될끼야, 그때
까지 건강하라우."
세연은 이 사적인 헤어짐에 통일을 들먹이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만 귀홍의 진지한 눈빛에 괜히 숙연해졌다. "리감독님 그동안 저 때문에
마음고생 많으셨죠. 감사했습니다." "무슨 말이요, 내래 한동무한테 한 수
배웠수다."
리순천은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한세연에게 배운 점이 많았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거이 선물인데
, 서울에 도착해서 풀어보라우." 그러면서 리순천이 쑥스럽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아쉬운 작별을 끝마치고 개성행 열차에 몸을 실은 세연은 평양역을 출발한
기차가 양각교를 지나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양각도는 마치 여의도
처럼 대동강 중앙에 위치한 섬인데 평양에서 제일 큰 축구경기장이 있는 곳
이었다. 축구장에서는 한참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었고 멀리 쑥섬 유원지의
나무들이 노랗게 단풍이 들어 늦가을의 풍취를 더하고 있었다. 한참 창
밖을 보던 세연이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세연은 자신을 보고 싱긋이 웃
으며 다가오는 준영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세연을 보고 준영이 웃으며 말했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야."
"이게 어찌된 일이야?"
"내가 선배 찾으려고 기차 앞쪽에서 여기까지 쭉 찾아다녔잖아."
"내가 이 기차에 탄 건 어찌 알고?"
"어디든 가봐. 내가 모르나?"
"기가 막혀, 평양엔 언제 왔어? 그리고 어떻게 ...."
세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세연은 평소에 준영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촬영을 하는 도
중에도 '이럴 때 준영은 뭐라고 할까'하는 생각도 했고, 준영에게 전화라도
해서 그 날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은 밤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준영을 만
나니 하고 싶던 말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평양엔 어제 아침에 왔
지. 석정후 장군과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서."
"뭐? 귀홍이 아버지말야?"
"응.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위해 아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었지."
"말도 안 돼."
세연의 말에 준영이 미소를 지었다.
"나 어제부터 삼중국적자가 되었는데 어떻게 하지?"
"아! 참! 너 전쟁 중 아냐? 어찌 된 거야?"
비로소 세연이 준영을 만나면 묻고 싶던 것 중 하나가 생각났다. 세연이 북
에 있었지만 세계뉴스를 접할 수 있는 방송국에서 일을 하면서 그간의 배달
소식은 듣고 있었다. 배달이 일단 일본의 첫 번째 공격을 막아내기는 했지
만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배달 얘기가 나오자 세연은 갑자기 화가 났다.
"너가 사라지고 나서 너가 살던 하숙집에도 갔었는데 아무도 너 어디 있
는지 모르고, 부산이 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배달
이라는 나라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서 그제야 너 국적을 알았잖아."
"어떻게 알았어?"
"뭘"
"우리나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걸."
"어이구"
세연이 준영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야 너 주먹 조심해, 미군 하나 잡았으면 됐지, 나까지 잡을려구?" 준영이
세연의 팔을 잡고 미군 얘기를 꺼내자 세연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울음
을 터트렸다.
"도대체 뭐야? 뭘 더 숨기고 있는 거냐구, 준영인 나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은데 난 준영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말도 해주지 않고
,"
준영은 세연의 팔을 잡은 채로 그대로 끌어안았다. "미안해, 조금만 기다
려, 너한텐 모든 걸 말할 수 있을테니."
세연은 준영한테 안긴 채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났을까
기차가 사리원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세연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세연이 갑자기 준영을 확 밀치더니 가지고 있던 가방으로 준영의 얼굴을 때
렸다. "언제부터 나보고 너라고 불렀니? 선배한테..."
"으악! 아파라. 그냥 대충 넘어가지."
"너 한 번만 더 기어올라와 봐. 죽을 줄 알어."
어느새 세연은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준영은 뭔가 아쉬운 듯 했지만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참! 프로그램 잘 만들었더라. 어제 TV로 봤
어."
준영이 칭찬을 하자 세연이 부끄러워 했다.
"으응. 어떤 게 좋았어?"
"다 좋더라. 특히 매일 김일성 동상을 청소하는 아저씨랑, 여행자식량배급소
에서 식량 타는 사람들, 남북한 공동건립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그런 것
들"
"뭐라고? 여행자식량배급소를 봤다고?"
"응, 왜?"
"무슨 소리야? 그건 방송 안됐는데? 여행자식량배급소는 마지막 검열에서 짤
렸어. 그걸 어떻게 본 거야?"
준영이 속으로 아차했다. "아 그거야 뭐...."
말없이 준영을 한참 쳐다보던 세연이 말했다.
"약속해, 언젠가는 이 비밀을 말해줘야 돼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에. 내 상
식으로는 도저히 이게 이해가 안되거든?"
준영이 역시 말없이 세연을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리순천에게 받은 선물
있지?"
"응"
"그걸 열어 봐."
세연은 가방에서 리순천에게 받은 상자를 꺼냈다. 세연이 상자를 풀기 시작
하자 준영이 말했다. "리순천은 그걸 준 것 때문에 인민재판에 회부되고
사형을 선고받게 돼."
"뭐라고?"
놀란 세연이 황급히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는 그동안 세연이 촬영해
서 리순천에게 넘겨줬던, 삭제되기 전의 촬영원본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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