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배달민족사-35화 (35/83)

tra([email protected])=+=                  (13) 제 1차 태평

양대첩 (13) 제1차 태평양대첩 ③[D-3] 2007년 10월 30일 저녁 9

시 00분부산을 출발한 유진호는 어둠을 헤치고 세시간만에 배달국에 도

착했다. 김민호는 첫 번째 배달국의 방문 때 비행기로 두시간 반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고 유진호의 속도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서울과 부산 간의 거리

만큼 이동거리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배의 속도로는 엄청난 속

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달국의 중앙부두에 도착하자 한국에 특사로 왔

던 오혜린이 기자들을 맞았다. 오혜린은 배달국의 대변인이라고 자신을 소개

했다. 전쟁을 앞 둔 배달국 사람들의 분위기는 너무나 침착하고 오히려 쾌활

할 정도여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배달국으로 온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기자들은 오혜린과 다른 배달국 사람들의 안내로 '임시프레스센터'로

이동했다. 프레스센터는 임시라는 말이 붙어 있었지만 왜 임시인지 모

를 만큼 시설이나 장비가 좋았다. 배달국에 오기 전에 이미 자신들의 소속사

로 송출할 위성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프레스센타의 시

설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기자들의 숫식과 휴식을 위한 부대시설까지 완

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배달국이 낙후된 곳일 거라는 막연한 예상을 하고 디

지털영상편집기를 준비해 온 몇몇 기자들이 허탈해 할 정도였다. 오혜린이

프레스센터의 이용에 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프레스센터의 사용요금은 각

소속사에 청구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몇몇 기자들이 성급한 질문을

시작했다. 전쟁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 지 항복의사가 있는지 등

의 질문이 이어졌다. 오혜린은 모든 질문에 잠시 뒤 성명발표가 있을 것이라

고만 했다. "시간이 좀 늦었네요, 저녁식사를 하시고 기자회견실로 오십시

오. 밤 11시에 배달국의 공식개전(開戰)성명 발표가 있을 겁니다."

이미 시간은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프레스센터 내의 식당에

식사를 하러오는 기자들은 거의 없었다. 유진호를 타고 오며 간단한 식사를

하기도 했지만, 각 소속사에 배달국의 첫 번째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잠시 뒤 11시에 배달국의 성명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소

식을 본국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방송사 기자들은 배달국의 성명을 생방송으

로 연결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생방 준비라는 것은 별 게 없었

다. 이미 기자회견실에서는 카메라가 준비되어 있었고 위성으로 전 세계에

송출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로빈 애너스트는 카메라 앞에 선 채로

기자회견 전에 들어갈 VCR 촬영을 시작했다. "저는 지금 북서태평양의 신

흥산유군인 배달국의 프레스센터에 나와있습니다. 잠시 후 이곳 시간으로 밤

11시, 워싱턴 시간으로 아침 9시에 배달국의 성명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진 게 없으나 배달국은 성명발표를 통해 일본

의 공격에 대해 항전을 다짐하고 승리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표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아직 성명이 나오기 전에 배달국의 항전의지를 태연하게 예상하는 것을 보고

다른 방송사들의 기자들이 너무 성급한 게 아닌가하는 반응을 보였다. 한시

간만 기다리면 정확한 성명 내용이 나올 것인데 미리 그 내용을 예측하는 것

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물론 1,2분의 시간으로 특종을 판가름하는 현대의

보도경쟁에서는 방송뉴스의 한 시간은 엄청난 시간이다. 그러나 만약 배달

국이 항복이나 협상을 시사한다면 이건 오보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발전될 수도 있는 사항이다.

로빈 애너스트가 자신이 멘트한 VCR 영상을 위성으로 CNN에 전송을 시작하

자 올리비에 메르헴이 로빈에게 다가왔다. "당신이 어떻게 보이는 지 아세

요?"

로빈이 올리비에를 보고 싱긋이 웃었다. "특종에 눈 먼 골빈 놈으로 보이

겠죠."

"아시는군요, 그런데 왜 그렇게 보도하시는 거죠?"

"저도 제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배달국이 그냥 맥

없이 항복이나 협상을 시도할 것이면 이 정도의 프레스센타를 준비하지는 않

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것은 로빈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프레스센타의 준비라든지 배달국 사람들

의 표정에서 느끼는 담담함과 평상심은 등은 상당히 의외였다. 그것은 승리

를 확신하는 자신감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올리비에는 전쟁이 임박한 이라

크에 갔을 때 만난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입으로는 미국에 대한 성전을

다짐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지만 눈에는 공포와 막연한 불안감이 가득했

었다. 그러나 이곳 배달국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이 곳 사람들의 모습에

서는 전혀 전운이 감도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기자회견 시간이 되었

다. 기자회견에는 김시백 통령이 모습을 나타냈다. 김시백 통령의 모습은 정

치인이라기 보다는 대학교수나 시인이라고 하는 게 어울릴 정도의 온화함이

배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배달국의 통령, 김시백입니다. 일본과

의 전쟁에 관한 배달국의 공식 입장을 발표해 드리겠습니다."

김시백은 간결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성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성명서의 내용

은 기자회견실의 대형모니터를 통해 영어와 불어, 중국어, 일어 등의 자막으

로 동시에 번역되었다. "배달국은 일본의 선전포고 이후 일본의 오판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을 것을 기대하였으나, 일본이 이에 대한 시정의지가

보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배달국도 일본의 침공에 대비해 비상전시체

제를 선포합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 배달국의 영공을 포함한 영해와 영토 내

에 들어온 일본의 병력과 군사장비에 대해서는 적으로 규정합니다. 일본의

군사적 침공에 대해서는 배달국도 군사력에 의한 응전을 시작할 것이며, 전

쟁이 시작되면 승리의 여신이 일본을 위해 준비한 미소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배달국의 안전과 발전에 위해를 끼친 일본의 군사행동에 대

해서는 그 책임을 물어 배상을 요구할 것이며,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할 것입

니다. 그 집행을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일본이 가진 영해권, 영토권과 함께

일본 국민들의 기본권도 제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김시백 통령의 성명은 위성을 통해 세계 각 국에 방송되고 있었다. 김시백의

성명은 감정이 최대한 절제된 무미건조한 어조로 낭독되었다. 기존의 이라

크나 아랍권, 동구권의 전쟁에서 볼 수 있었던 눈에 핏발 선 모습이나 불끈

쥔 주먹은 보이지 않았다. 올리비에는 차분하고 담담한 김시백의 성명

에서 오히려 강한 저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간 배달국의 응전의지에

대한 예측은 가능하긴 했지만 이 성명에서는 전쟁 이후에 배달국이 일본의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까지 들어있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배

달국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막연히 알라신의 가호를 외치는 모

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김시백 통령은 지금 일본의 침공에 대응하여 이

길 것이고, 그 후에는 경우에 따라 일본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

는 것이다. 김시백 통령의 성명서 낭독이 이어졌다. "또한 우리 배달

국은 대한민국의 참전의사 발표와 유엔안건 상정 조치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런 조약이나 인준은 없지만 우리 배달국은 향후 대한민국을

우방이며 형제국으로 대우할 것이며 배달국 역시 대한민국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나의 일처럼 도울 것입니다. 하지만 배달국은 한국이 이번 전쟁

에 참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의 전쟁 참여는 또 다른 전쟁

의 시작이고 이 여파는 아시아 전역을 넘어 세계 전역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 배달국은 이 번 전쟁을 단독으로 수행할 것입니다. 강민우 대통령이 '배달

국의 요청이 있으면'이라고 단서를 단 것을 상기하면서, 우리 배달국은 한국

에게 어떤 참전도 요청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국의 참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통령의 발표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이

미 전 세계는 한국의 참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따라서 이 전쟁

은 한일 간의 전쟁이 될 소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세계 각 언론에

서는 한일 양국의 군사력 비교를 통해 전쟁의 향방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

예측은 북한과 미국, 중국 등의 역학관계까지 고려되면서 복잡하게 얽혀 들

어가고 있었다. 한국의 참전이 어느 단계에서 이루어질 지도 관심사였다. 전

쟁 초기에 한국이 일본을 침공할 가능성은 적었고, 일단 일본의 배달국 침공

이후 참전규모나 형태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었

다. 이러한 모든 예측에서 배달국은 이미 전쟁터 이상의 의미가 없으며 전쟁

의 주역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배달국의 성명으로 이러한 전망

들은 모두 원점에서 다시 검토가 되어져야 할 것이다. 배달국이 저렇게 성명

을 발표한 이상 한국은 전쟁에 개입할 명분이 없었다. 올리비에는 배달국의

발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 자신감이 아니라 무모함일 뿐이었다. 배

달국과 일본은 객관적인 전력비교 자체가 의미 없는 상황이다. 배달국은 금

방 태어난 갓난아기까지 다 포함한 국민 수를 다 합친다 해도 1만 명이 되지

않는다. 일본군 1개 사단 병력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2007년 10월

30일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군은 바로 평양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 그래서 그런지 다른 농촌보다는 다소 깨끗하고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게

다가 한랭한 기후와 북한에서는 흔하지 않은 비옥한 토양인 덕에 배추나 무

등 채소 농사가 주종으로 여기서 재배된 채소가 대부분 평양으로 들어가 농

가의 수입도 다소 좋은 편에 속했다. 어제 방문한 회창군의 목재가공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한세연은 리순천의 안내로 이곳의 비닐하우스 농장

을 취재하고 있었다. "여기가 리감독 고향인가보죠?"

세연이 평양에서 순천으로 가는 차에 타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

"리감독과 이름이 같잖아요. 히히."

"난 평양에서 태어났수다."

리순천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특별히 서로 간섭을 하지 않으면서 둘

은 외형적인 대립이 조금 무디어 진 상태였다. 여전히 세연은 위험한 영상을

담고 있었고, 검열도 계속되고 있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리순천 감독은 3

2분 분량의 영상을 편집했다. 그러나 촬영 도중에는 그다지 간섭을 하지 않

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리감독님?"

"말씀하시기요."

"편집된 장면들을 보고 당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갑자기 리순천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세연은 궁금했다. 계속 영상이

잘려 나가고 있는 데도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중

앙방송사의 간부가 세연에게 일은 잘되는 지 묻고, 좋은 작품을 기대한다며

썩은 미소를 보낸 것이다. 세연은 저 간부가 자신이 찍은 영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평양에서 촬영을 시작한 처음 며칠간 세연의 영

상에 대한 당 간부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든지 아니

면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모르든지. 그런데 오늘 아침 방송사 간부의 표정의

호의적이었다. 세연은 그게 궁금한 것이었다. 리순천은 어떻게 대답해

야 할지 몰랐다. 사실 리순천은 세연이 찍은 문제화면들은 언제부터인가 아

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세연이 찍었던 화면 속에서 인터

뷰에 응했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남조선에서 온 학생에게 한 번 말실수한 것

때문에 당에 불려가서 반성문을 쓰고 사상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생각

하니까, 차마 그것을 그대로 간부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그래서 간부들에

게 보여줄 영상을 위해 또 한번 편집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두 가지

다른 편집을 하기보다는 한 번 편집한 테이프를 다시 복사해서 하나는 세연

에게 돌려주고 하나는 위에 제출했다. 그러고 나니 방송국내 분위기가 아주

부드러워졌다. 리순천은 중간에 끼여 곤란한 입장이 되지 않아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워졌다. 리순천은 대답을 기다리는 세연에게 말했다.

"한세연 동무가 찍은 걸 위에서 보면 동무는 남조선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

아서 내래 안 보여주었지요."

"뭐라구요? 그럼 원본은요?"

"다 소각했소."

한세연은 힘이 빠졌다. 검열로 삭제될 것을 무릅쓰고 촬영을 한 데에는 나름

대로 이유가 있었다. 적어도 당 간부들에게나마 북한의 현실을 항변하고 싶

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벌써 오래 전부터 그대로 삭제되었다는 걸 알게

되자 더 이상 촬영의 의미가 없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세연이 리순천 감독에게 말했다.

"이제 촬영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 내일부터는 후반작업을 하기로 하죠."

세연은 갑자기 피로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휴식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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