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ail protected])=+= (13) 제 1차 태평양대첩
(13) 제1차 태평양대첩 ① 2007년 10월 29일 시애틀 경찰 본부
김인범은 경찰본부장을 만났다. 상원이나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사람이 자신
의 지역구내 행정관서를 돌며 인사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행사일 수
있다. 그러나 경찰본부를 찾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 시애
틀의 경우 범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의원이 일부러 경찰관서를 찾는 일은
없었다. 시애틀에서 경찰생활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시애틀을 벗어나 본 적
이 없는 제임스 포트먼 경찰본부장은 자신이 경찰로 근무하는 동안 국회의원
의 방문을 받은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새무엘 킴 상원의원의
방문을 맞아 어떻게 응접해야 되는 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포트먼
본부장은 우선 시애틀 경찰의 유사시 출동준비 상황과 최근의 범죄율 추이
, 시애틀의 경찰근무자들의 처우 개선 방안 등에 대한 자료를 준비하고 상원
의원이 오면 이에 대해 대화를 나눌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김인범 상원
의원과는 초면은 아니었다. 도슨 의원의 교통사고 사건 당시 현장에 달려온
김인범 의원을 만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비록 당은 다르지만 둘
은 친한 친구 사이로 알려졌다. 그래서 저번 상원의원 선거에서 둘이 후보로
맞붙었을 때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포트먼은 김인범의 손을 잡고 웃으며
인사했다.
"어서오십시오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본부장님"
두 사람은 포트먼이 미리 준비한 화제에 대해 2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경찰본부의 시설과 장비 등에 대해 견학하는 시간도 간단하게 마련되
었다. 본부방이 준비한 일정이 끝나가자 김의원은 시애틀 경찰의 비상근무
체제와 시설 장비 등에 대해 치하를 하고 경찰근무자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인범이 전 상원의원 폴 도슨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두 사람이
다시 본부장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런데 지난 번 상원의원인 폴 도슨의
사망사고는 수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김인범이 도슨에 대해 묻자 포트먼은 순간 긴장했다. "아 예, 그 사건은
수사고 뭐고 할 것도 없었지요.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도슨 의원이 술을 마
시고 교통사고를 일으켰지요. 그럴 분은 아닌데 저희들도 많이 놀랐습니다.
"
폴 도슨 의원은 자신이 운전한 자동차와 함께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었다. 검
시과정에서 혈중에 알콜성분이 나와 음주 운전 중에 생긴 교통사고로 처리된
것이다.
"제가 도슨 의원과는 소속된 당이 다르지만, 그 분을 잘 압니다. 술을 마시
고 운전할 만큼 책임감이 없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압니다. 그래서 더욱 충격이 컸던 것이지요. 술을 마시고 운전할 만큼
괴로운 일이 있었는 지도 모르지요."
"그 괴로운 일이 무엇일까요?"
포트먼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 그야 전 모르죠, 도슨 의원의 마음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도슨 의원의 검시도 여기에서 했죠?"
"예 그렇습니다만..."
검시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포트먼의 호의적인 분위기가 점차 경계태세로 전
환되고 있었다. 포트먼은 갑자기 과묵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걸 니가 알아
서 어떻게 할거냐는 표정이었다. 김인범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 "하하, 제가 너무 예민했나 봅니다. 제 전임 의원의 사고라 아무래도 신
경이 쓰이는 일이고, 또 개인적인 친분도 있던 분이라 궁금하기도 했고요.
어쨌든 참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요."
포트먼이 얼굴에 웃음도 띄지 않은 채 대답했다.
새무엘 킴 상원의원이 돌아가고 난 뒤 포트먼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김인범은 경찰본부에 다녀오고 나서 도슨 의원의 죽음에 뭔가 의혹이 있
다는 것을 더욱 크게 느끼지 시작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김의원은 서랍에서
며칠 전에 누군가가 놓고 간 파일을 꺼냈다. 파일에는 도슨 의원의 사망사
고를 다룬 신문기사와 그동안 도슨의원이 진행하던 일에 대한 목록이 있었다
. 도슨 의원은 상원 내 환경위원회 소속이었다. 목록에는 도슨의 원이 죽기
전에 가장 많은 활동을 했던 환경감시 분야의 업무 목록이 있었는데 그 중
에 특이 할 점이 유타주에 새로 건설된 화학공장의 환경영향평가 부분이었다
. 도슨의원은 환경부분에 관심이 많았고 자신의 지역구가 아니더라도 전국
의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비록 소속당을 달랐지만 환경부분에 대해서
김인범과 도슨은 많은 부분 의견을 같이 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당을 넘어서
두 사람은 친분을 쌓아왔던 것이다. 김인범이 받은 파일에는 도슨의 의원
의 검시보고서도 들어 있었다. 김인범은 다시 한 번 검시보고서를 찬찬히
읽었다. 차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면서 목뼈가 부러진 것이 직접적인 사
인이었다. 그에 몇 군데 타박상은 직접적인 사망과는 관련이 없었고, 혈중알
콜 농도 0.19%로 거의 만취상태였다. 음주단속에 걸리면 면허취소와 3년 내
면허시험 응시금지, 2000달러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심각한 수치였다. 기
타 유류품은 차안에 있던 몇 가지 서류가 대부분 차량폭발 때 화재로 소실된
채로 발견되었고,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과 핸드폰, 만년필이 안주머니에서
발견되었고, 착용하고 있던 콘택트렌즈가 전부였다.
"착용하고 있던 콘택트렌즈"
김인범은 도슨이 눈이 나빠 항상 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정치를 시작하면서
안경 대신에 콘택트렌즈를 끼기 시작했던 것을 기억해내었다. 유권자들에게
깔끔한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유세현장이나 언론을 만날 때는 안경 대신에
렌즈를 끼었다. 하지만 도슨의원은 렌즈에 단백질이 자주 끼고 렌즈를 끼면
눈이 아파 일상생활에서는 렌즈보다는 안경을 선호했다. 특히 운전할 때는
항상 안경을 끼었다. 그 날도.... 도슨은...... 안경을..... 끼고 있었다
. 김인범이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소름이 음습했다. 그 날 도슨은 안경
을 끼고 있었다. 안경과 렌즈를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김인
범은 눈을 감고 그 날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다. 사고소식을 듣고 급하게
현장에 달려간 때에는 이미 경찰과 언론에서 나온 사람들로 혼잡했다. 비는
억수로 내리고 있었다. 낭떠러지에서 끌어올려진 자동차는 온통 찌그러진
채 불에 타 곳곳이 그을러져 있었다. 비 때문에 그나마 차는 전소되지 않았
다. 911구급대가 운전석 쪽의 차 문을 열고 도슨 의원의 시체를 끌어냈다
. 도슨 의원은 몸이 불에 그을린 채로 두 눈을 부릅뜨고 죽어있었다. 김인범
은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경찰들의 제지로 포토라인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누군가가 도슨 의원의 '안경'을 벗기고 그의 눈을 감겼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바로 제임스 포트먼 경찰본부장이었다. 2007년 10월 29일
평양 평양 방문 일주일째를 맞고 있는 세연은 점차 인내심의 한계가 드
러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처음 만나는 북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개방적이
라고 느낀 것은 첫날 뿐이었다. 북한이 당연히 폐쇄적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던 세연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개방적이었던 걸 세연은 인정했다.
그러나 촬영을 하는 동안 중앙방송 관계자들이 안내를 핑계로 계속 세연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간섭하는 데 지친 것이었다. 촬영이 끝나면 중앙방송에
가져가서 그 날의 평가회의를 거치고 촬영된 영상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 토론은 지루하게 시간을 끌었다. 처음에 거침없이 자신의 주장을 얘기하
던 세연은 그들과 상반된 의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문제가 되는
영상은 삭제를 '권유'받았다. 말이 좋아 권유였지 향후 촬영일정에 심각한
애로사항이 생길 것이라는 유무형의 협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귀중한 촬영
원본을 빼앗기곤 했다. 간혹 촬영한 테이프를 한 두 개식 숨겨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자신의 안내를 맡은 중앙방송의 리순천 감독은 세연이 몇 개의
테이프를 찍었는 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충실한 감시자의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다. 촬영이 끝나면 중앙방송의 리순천 감독이 촬영원본
을 가져갔다가 다음날 다시 테이프를 가져다 주었는데 절반 가까이가 삭제된
채로 돌아왔다. 삭제된 내용에는 북한 주민이 무심코 솔직하게 말한 인터뷰
내용도 있고 북한당국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뒷골목의 모습, 관리들의 부정
행위, 정리되지 못한 군중의 모습 등이 있었다. 살아남은 모습에는 북한당국
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내용들이 있었다. 물론 살아남은 영상들이 다 필
요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대동강변을 조깅하는 북한주민
들의 모습이라든지 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주는 평양역 주변의 화가, 만경대
옆 매대(간이가게)에서 판매하는 북한가요 CD, 남북합작으로 만들어진 평화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모델인 '휘파람'과 '뻐꾸기", 지하철 역에
서 전철을 기다리는 노동자들의 활기찬 모습은 북한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인
동시에 세연의 입맛에도 맞는 영상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중앙방송
의 PD에 해당하는 리순천 감독은 사사건건 세연과 대립하곤 했다. 제일 처음
두 사람이 대립한 것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이었다. 차를 타고 가다 세
연은 온 건물을 뒤엎고 있는 김일성의 초상화을 발견하고 그 규모에 몹시 놀
랐다. 무심코 초상화를 가리키며 리순천 감독에게 질문을 한 것이 화근이었
다.
"우와 굉장히 크군요, 저건 넓이가 어떻게 되나요?"
"말조심하시오. 저거라니? 그리고 감히 장군님의 영정에다 손가락질을 하다
니."
세연은 리감독의 호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놀랬다. 서둘러 사과
를 하고 수습을 하려 했지만 그 뒤로 리감독은 세연을 마주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무안해진 세연이 풀이 죽어 말없이 초상화를 촬영하다 가만히 생각
을 해보니 너무나 억울했다. 초상화 한 장보다 못한 대우를 받다니,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북한주민들 중에 저 초상화보다 나은 대접을 받는 사람은 아
무도 없을 것 같았다. 리순천은 리순천대로 불만이 가득했다. 처음 이
일을 맡았을 때만해도 남조선의 대학생이 북한의 모습을 담는 프로그램을 만
드는 데 도움을 주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지원을 했었는데 고작 남조선 여학
생의 아마추어 작품에 안내역을 맡는 일이라 실망이 대단했다. 그리고 세연
의 태도에도 불만이 많았다. 처음 만난 날 보여준 장군님에 대한 엄청난 무
례라든지 리순천이 안내하는 촬영지에서도 간간히 콧방귀를 뀌는 모습을 보
면서 왠지 모르게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검열을
당하면서도 세연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매일 자기 입맛대로 촬영을 했다. 그
리고 촬영이 끝나면 말없이 테이프를 빼서 리순천에게 건냈고, 리순천도 말
없이 테이프를 받아 사전검열 작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촬영을 하는 도중
에는 세연의 촬영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지 않게 되었다. 말을 건네기도 싫었
지만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세연이 쏘아 붙였다. "나중에 알아서 빼세요,
저는 이걸 찍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기준을 모르겠거든요?" 세연이 찍
어온 영상을 편집하면서 리순천이 느낀 것은 경악이었다. 어떻게 구석구석
저런 장면들을 찾아내는 지, 당에서 보면 격노할 만한 영상들이 고스란히 담
겨 있는 것이었다. 리순천은 자신이 방송에 종사한 지 8년 만에 영상도 "말
을 할 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연이 찍어 온 영상에는 세연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던 것이다. 그리고 세연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북조선 주민들의 입에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무심코 뱉어내도록
하는 재주를 가졌다. 평생 공산주의 교육을 받고 또 인터뷰 연습을 며칠씩
이나 받은 북조선주민들이 세연과 단 10분만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해서는 안
될 말을 줄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편집을 하면서 리순천은 자신도 모르
게 몇 번이나 "반동 에미나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리순천이 볼 때 세연은
너무 위험한 인물이었다. =+=+=+=+=+=+=+=+=+=+=+=+=+
=+=+=+=+=+=+=+=+=+NovelExtra([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