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배달민족사-32화 (32/83)

(12) 선전포고 (12) 선전포고 ⑨2007년 10월 25일 오전 5시

40분 배달국 북서쪽 173해리 해상"밧데리 잔량 확인해봐."

"73%입니다."

"그렇게나 남았어? 지금 몇신데?"

"05시 41분입니다."

마사카미 일등해좌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일본해군 중앙함대 소속 SS-591 미치시오 잠수함은 오야시오급 디젤잠수함이

다. 잠수함의 함장 마사카미 일등해좌는 최대한 음문을 죽이고 있었다. 마사

카미는 자신의 직속상관에게 알리지도 않고 작전에 나섰다. 일본 해군이 띄

어 놓은 E-2C 조기경보기는 근처에 어떤 국적의 대잠초계기도 없는 것을 확

인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잠수함이 있는 위치를 들키는 것은 좋지 않았

다. 아니 잠수함이 있다는 것 자체가 들키지 않는 것이 좋다. 한국이나 미국

이 대잠초계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미 해경의 단독 작전으로 세

상에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위성관측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한국이나 미국의 감시망에 노출되는 것도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중

에 잡아 뗄 수 있다. 배달국에서 알아챌 리도 없지만 안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마사카미는 생각했다. 그러나 절대 자신의 존재가 들켜서는 안 되는

상대는 따로 있었다. 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다. 바다에는 알게 모르게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일본 해경이 통보한 체포시한은 이제 약 15분 남

겨놓고 있었다. 조금 전 5시에 일본 해경으로부터 1시간 남았다는 통첩이 무

선으로 접수되었다. 이틀 전 유전 플랫폼을 가득 메웠던 한국의 실사단은

석유의 매장량을 확인하고 원유의 품질에 만족하고는 어제 오전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어제까지 순시함 1척에 순시정 3척이던 해경의 순시선은 밤사이 순시함 3척

에 순시정 7척으로 늘어나 있었다. 일본 해경의 체포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 "저 놈 의도가 뭘까?"

우경민 소위에게 조승태 소령이 말했다. 딱히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잣

말을 하는 거였지만 질문을 받은 우경민 소위는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잡았다. 조승태 소령은 해경 순시정의 뒤쪽 남동쪽으로 치우친 곳에 자리잡

고 있는 잠수함을 나타내는 위성표지판을 노려보고 있었다. 조소령이 궁금한

것은 잠수함의 목적이었다. 유진1호를 지휘하고 있는 조승태 소령은 원

래 23세기에서는 잠수함의 함장이었다. 그러나 잠수함은 단 한 척도 21세기

로 가져오지 못했다. 23세기에 동해를 주름잡던 조소령은 21세기에 와서 겨

우 유람선을 개조한 군함을 지휘하고 있다니 스스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21세기에 온 군인들은 딱히 육해공군의 구별이 없는 상태였다. 기갑대대의

대대장이었던 계운필 중령이 대령으로 진급하여 배달군의 전체 지휘권을 가

지고 있었지만 배달국은 계대령의 전공인 기갑장비도 가져오지 못했다. 만약

21세기에 막 도착했을 당시의 장비로 23세기의 전쟁에 참여하라고 한다면

혀 깨물고 죽는 게 나을 것이다. 그래도 기갑을 주특기로 가진 부대원들

은 좀 나은 편이다. 기갑장비는 항공모함, 구축함과 더불어 제작이 진행되어

이미 상당한 수량이 완성이 된 상태지만 잠수함은 건조계획 조차 전혀 없었

다. 배달국 군사기술고문인 이진범은 21세기 전쟁에서 23세기형 잠수함은 다

른 장비와 비교할 때 비용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군사기술

연구소는 21세기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해군은 구축함 TT-165, 육군은 기

갑장비로 WR-101, 공군은 항공모함 CE-004를 주축장비로 선택했다. (딴지 거

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 데 23세기형 항공모함은 공군소속입니다.) "본

부의 분석 나왔습니다. 함장님"

"읽어."

조소령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소위가 분석표를 읽었다.

"중앙함대 제1잠수군 소속의 오야시오급 디젤잠수함으로 잠수함 이름은 미치

시오입니다. 지휘관은 마사카미 일등해좌입니다."

"오야시오급이 뭔데?"

우소위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옛날 잠수함이라도 잠수함대장인 조소령이 오

야시오급을 모르다니? 21세기 해전사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하루시오나 유우

시오와 함께 대표적인 일본의 잠수함 등급이 아닌가?

"하픈과 어뢰 20발이 장착된 2700톤의 잠수함입니다. 길이는 82미터......"

어쨌든 우소위는 자신의 역사지식을 자랑할 기회가 생겨서 좋았는데 조소령

이 말을 짤랐다. "깡통이네, 근데 걘 왜 왔대?"

"본부에서 지금 분석중입니다."

갑자기 싸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일본 해경의 순시정들이 일제히 싸이렌을

울리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헉 벌써 6시인가?"

"예 함장님."

"전원 위치로."

일본의 순시정들은 플랫폼을 포위할 듯 간격을 넓히며 다가오고 있었다.

네 척의 유진호는 플랫폼의 네 귀퉁이를 둘러싼 채 호위하고 있었다. 뒤

쪽 순시함에서 순시선단의 총 지휘를 맡고 있던 이마다 케이지 총감은 중세

시대에나 어울릴 것 같은 목선 네 척이 순시정들을 향해 나서자 어이가 없었

다.

"뭐 하자는 거야?"

"보디체크 같은데요?"

"뭐야 육탄으로 막겠다는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미쳤군."

해전에서 보디체크는 미묘한 대립관계의 해전에서 의외로 자주 나타난다. 미

묘한 정치적, 외교적 상황이나 극단적 교전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주 사

용된다. 2002년에 연평해전이라 불리는 남북 간의 무력충돌이 있었다. 그때

남방한계선을 침입한 북한 배를 막을 때 남한의 해군이 처음에 사용했던 방

법이 바로 보디체크다. 당연히 배수량이 큰배가 유리하다. 큰배가 보디체크

를 시도하면 작은 배는 회피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나무로 만든, 허약해

도 한참 허약해 보이는 유진호가 보디체크를 시도하며 다가오자 이마다 총감

은 기가 막혔다. 소재는 둘째치고 배수량만 봐도 거의 반 밖에 안되어 보였

다. "본 때를 보여줘라"

"옛"

피할 이유가 없었다. 일본 해경 소속 제 3 순시정이 쏜살같이 앞으로 나섰다

. 유진 2호가 순식간에 제3 순시정의 앞을 막아섰다. 자신의 진로를 가

로막는 유진 2호의 속도에 순간 당황했지만 순시정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 유진2호는 배머리를 돌려 옆 선체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제 3순시정에

타고 있는 사또 경시는 상대방 배의 피해가 너무 커질 것 같아 순간 움찔했

지만 동시에 순시정이 유진호에 임펙트되는 순간을 생각하자 희열에 온 몸이

떨렸다. 잘하면 충격으로 침몰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들었다

. 그러나 사또 경시의 기대는 두 배가 부딪치는 순간 산산이 깨져버렸다.

충돌 순간 유진호의 옆부분이 살짝 들어올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엄청

난 충격이 가해졌다. 사또의 순시정은 충격으로 공중으로 거의 7-8미터나 솟

구친 뒤 다시 바다 위로 떨어졌다. 일시에 바닷물이 배 안으로 밀려 들어왔

다. 바닷물은 기관실과 조타실까지 밀려들어왔다가 다시 배가 솟구치면서 빠

져나갔다. 그러고도 배는 한참이나 파도의 흔들림에 붙잡혀 부침을 반복하다

가 한참 후에야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물벼락을 뒤집어 쓴 사또 경시의 귀

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또 경시님, 이사가와 순사장이 죽었습니

다. 기둥에 머리를 부딪힌 것 같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바다에 빠져 허우

적되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일단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내라, 어서!"

유진호와 부딪친 순시정의 선수는 잔뜩 찌그러져 금이 가 있었다. 반면 유진

호는 순시정과 부딪힌 순간 퉁겨져 나갔지만 마치 얼음 위로 미끄러지는 것

처럼 바다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아가 순시선을 향해 다시 자세를 잡았

다.

"크큭, 놀랐을 거다."

유진 2호를 지휘하는 민규호 대위가 웃었다. 사실 유진호가 그냥 순시정이

부딪혀 오는 대로 막기만 했으면 저렇게 큰 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진2호는 가만히 막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순시선이 부딪혀오기 직전, 순

간가속을 올려 마치 스냅을 주듯 순시정의 선수를 쳐낸 것이다. 그로 인해

순시정은 달려오던 자신의 속도에 유진1호의 순간가속까지 더해져 엄청난 충

격으로 부딪힌 것이다. 유진호의 재질은 우드파이트라는 화학합성물로 외

형이나 감촉, 심지어 향기까지 나무와 똑같지만 무게는 훨씬 가볍고, 탄성이

나 경도 등은 훨씬 강한 자재였다. 23세기에도 선박용 자재로는 이 보다 더

나은 소재가 없었다. "우리측 피해 보고하게."

"예, 별다른 것은 없고 주방에 있던 식기가 거의 다 깨져버렸습니다."

"쯧쯧 이런 낭패가 있나? 이제 밥을 어디다 먹지?"

제3 순시선과 유진2호의 충돌을 보고있던 해경 순시선단은 순식간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떡할까요? 포를

쏠까요?"

순시함은 경찰 소속이긴 하지만 하츠유키급 구축함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배달국의 도발은 부족한 감이 있었다. 이마다 총감은 생각 같아서는 포뿐만

아니라 어뢰까지 날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외형적인 충돌은 단지 두 선박이

부딪힌 것 뿐 이었다. 군사적 도발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 보디체크의 특성

이기도 했다. 그러니 도발로 간주하고 총공격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게다가

유진호는 배의 옆부분으로 충돌하지 않았는가?

이마다 총감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헬기로 유전에 직접 상륙한다.

무장한 채 반항하면 사살하고 비무장으로 반항하는 자들은 발포하되, 다리나

팔을 겨냥했다는 성의를 보여줘."

여기까지 말한 이마다 총감이 짧게 덧붙였다.

"빗나가면 할 수 없고." 3척의 순시함에 있던 수송헬기에 무장경찰들이 탑

승하기 시작했다. 그 시간 조소령은 배달국으로부터 통신을 받고 있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사석작전이라니?"

"일본군 잠수함이요, 잠수함이 출동한 이유가 바로 사석작전이라구요." 외

교차관인 서준영의 목소리였다. 감히 일선부대장이 차관급에게 반말을 하는

형국이었지만 두 사람 중 아무도 개의치 않고 있었다. 나이가 조소령이 훨

씬 많은데다 서준영이 그냥 학생일 때부터 안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전 인

근 해역에 일본군 잠수함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준영은 허겁지겁 본부로

달려가 교신을 시도한 것이다. "잠수함은 잘 감시하고 있어."

"그게 아니라 일본 순시선들을 보호해야 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 하나 박살냈는데."

그 순간 우경민 소위의 외침이 들렸다. "잠수함에서 어뢰 2발 발사!... 또

2발 발사!.....또 2발 발사!" "뭐야, 즉각 방어태세로..."

조소령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또 2발! 함장님 계속 발사됩니다."

잠수함은 20발의 어뢰를 모두 쏟아내고 남쪽으로 도망갔다. "그런데 함장

님, 목표가 우리가 아닙니다."

"뭐야?"

잠수함에서 발사된 어뢰는 곧장 일본 해경의 순시선으로 향하고 있었다.

조소령이 어찌된 상황인지 몰라 멍하게 서 있는 사이 어뢰는 쏜살같이 순시

선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조소령님 어뢰를 막아요, 빨리요. 안 그럼

우리가 뒤집어써요."

번뜩 정신이 든 조소령이 피라미의 발사를 지시했다.

네 척의 유진호에서 피라미 대어뢰침이 발사되었다. 꽁치 정도의 크기로 어

뢰를 잡는 데 쓰이는 소형 어뢰였다. 대략 어뢰 속도의 3.5배 정도의 속도로

마주 오는 어뢰를 막거나 잘못 발사된 어뢰의 뒤를 쫓아가 소멸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곳곳에서 어뢰를 저격하는 피라미들이 어뢰와 함께 폭발하면

서 바다 위로 곳곳에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대부분의 피라미들이 자신의 임

무를 다했지만 두 마리는 어뢰를 놓쳤다. 23세기에서는 어뢰는 이미 역사

책에서나 나오는 구식 무기인 것처럼 피라미도 폐기된 지 오래된 구식무기였

던 것이다. 일본 해경의 순시정 두 척이 어뢰의 공격으로 타격을 입었다

. 공격을 받은 해경 순시함들은 놀라서 당황하다가 일제히 유진호를 향해

반격을 시도했다. 배달국은 일본 해경의 공격을 막기만 했다. 일본 해경의

공격은 단 한 발도 유진호를 공격하지 못했다. 일본 해경은 침몰하는 순시

정에서 생존자들의 구출작전을 시도했다. 일본 해경은 더 이상의 공격이 없

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생존자들을 구출해 서둘러 일본 쪽으로 철수

했다. 배달국에서 군사력 수준의 도발이 나올 경우 신속히 철수하라는 사전

명령을 받은 탓이었다. 일본해경은 EEZ내 체포작전에서 단 한 명의 배

달국 사람도 체포하지 못한 채 사망자 16명, 실종 9명, 부상 33명에 순시선

두 척을 잃고 철수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일본은 급격히 응징론이 부

상했다. 사건 발발 1시간만에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보수단체들이 배달국

의 군사력 사용에 대해 비난하고, 응징을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되었고 언론

들도 일제히 배달국를 공격해야 하는 이유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2007년

10월 25일 정오를 기해 일본 의회은 배달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인준했다.

배달국은 사건 직후 성명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일본 군부가 전쟁을 정

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국민들을 희생시킨 음모이며, 일본 해경을 공격한 어

뢰는 마사카미 일등해좌가 지휘하는 미치시오 잠수함에서 발사된 것입니다.

배달국은 어뢰와 같은 원시무기는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단 한 척의 잠수함

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일본 국민에게 믿어달라고 요구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분명한 진실이며 우리는 이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일로 양국 간에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만약 일본이 이를 빌미로 배달국을 침공한다면 배달국은 결코 좌시

하지 않을 것이며, 일본은 이 일을 크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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