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배달민족사-27화 (27/83)

(12) 선전포고 (12) 선전포고 ④2007년 10월 22일 아침 10시 평양역

평양역에 내린 세연은 개찰구에서 기차표와 여행허가증을 보여주고 역에

들어서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귀홍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마치 소녀처럼

부둥켜안고 폴짝폴짝 뛰며 반가워했다. "어찌 된 것인메? 엄청 걱정했어

. 미군 아새끼들한테 잡혔다면서?"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나도 정보가 있지 안캈어?"

세연은 귀홍에게 메일로 한 주 늦어질 것이라고만 보냈지 미군에게 체포되었

던 일을 말하지 않았는데 귀홍이 알고 있으니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여

행허가증 있지?" 귀홍이 세연의 여행허가증을 받아들더니 역 옆의 어떤 건

물로 데리고 갔다. 창구에 여행허가증을 내밀자 허가증과 세연을 유심히 번

갈아 보던 직원이 허가증에 도장을 찍고는 작은 자루를 내어줬다. 자루 속에

는 쌀과 보리가 섞인 잡곡이 들었는데 쌀보다는 잡곡이 많았다.

"여기선 여행갈 때 자기가 먹을 걸 싸 가지고 다니는 게 원칙인데, 당의 일

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저 곳에서 여행기간동안 먹을 식량을 탈 수 있어."

갑자기 세연은 자신이 북한에 왔다는 걸 실감하기 시작했다. 세연은 캠코더

를 꺼내서 여행자식량배급소를 찍기 시작했다. 귀홍이 질겁했다. "야 너

아직 촬영하면 안 돼! 촬영허가증을 안 받았잖아"

세연은 귀홍의 말에 할 수 없이 카메라를 도로 집어넣었다. 나중에 다시 찍

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오늘은 우리 집에 가자. 중앙방송은

내일 가기로 했으니까." 세연은 귀홍과 함께 운전사가 있는 승용차를 타

고 귀홍의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뭐하시는 분이니?"

세연은 귀홍의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민군 장군이셔

."

귀홍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세연은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자신의

북한 촬영 허가와 자신이 미군에게 체포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등이

이해되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평양시가지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대형 조각과 초상, 조형물들이 이상한 이질감으로 다가왔

다. 세연이 다시 카메라를 꺼내 평양시내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20

07년 10월 22일 오전 11시 김포공항 VIP룸"이봐! 박기자 자네가 여기 무

슨 일인가?"

"그러게, 우리 독자들의 관심이 많다고 부장이 나가보라고 하더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특사가 워낙 얼짱이잖아"

박기자는 스포츠연예신문의 기자였다. 박기자 말고도 기자회견을 위한 준비

를 갖춘 공항 VIP룸은 정치 경제 담당 기자 뿐 아니라 연예담당 기자들이 많

이 눈에 띄었다. 오혜린은 이미 도착 첫날 눈에 띄는 미모와 패션으로 관심

을 끌더니 세븐아이즈의 콘서트 관람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대통

령과의 단독 비밀회담으로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자연히 각 언

론사의 취재열기가 한참 뜨거워 있었다. 잠시 뒤 이곳에서 배달공화국 통

령의 특사인 오혜린이 기자회견을 할 것이다. 이미 한 시간 전 청와대에서는

강민우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과 배

달국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서로 존중하고 활발한 교역을 통해 서로에게 이득

이 되는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배달국을 독립국가로서 인정하

고 경제협정과 군사제휴 등의 조약을 위한 비준안을 국회에 상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들은 비록 현재 국회가 대통령이 속한 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여당 내부에서도 배달국의 문제에 대한

이견이 많아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이 그대로 실현될 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왔다. 특히 군사 제휴의 경우 과반이 아닌 3분의 2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만큼 야당이 반대하면 불가능한 부분이었다. 결국 모든 결정은 실사단

이 배달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다음주쯤 각 당의 입장이 정리될 것으로 예

측되고 있었다.

거기에 대통령이 비밀리에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가 밝혀지지 않

은 상황에서 비밀회담의 내용에 대한 억측이 난무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남녀가 세시간 동안 단둘만 있었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춰 야릇한 상상을 불

러일으키는 비방글도 올라왔다. 신중하게 대처하던 대통령의 태도가 배달국

을 인정하는 태도로 돌변하자 오혜린이 최면술사라는 유언비어도 나돌았다.

오성일보 인터넷 판에서는 친일파 이후 등장한 친배달파를 경계하는 내용과

배달공화국에서 보낸 특사가 미인계의 계략으로 보인다는 극단적인 사설이

나왔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이 배달국과 어떤 뒷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니

냐며 회담 내용을 밝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아주 간결하게 대

답했다. "비밀회담은 비밀로 할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밝히라고

해서 밝힌다면 애초에 비밀회담을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오혜린이

그 특유의 개량한복을 입고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곳곳에서 카메라가

터졌다. 일단 오혜린의 발표가 있었다. "친애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 배달공화국의 국민을 대표해서 제가 대한민국 국민여러분께 인사를 올리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대한민국과 우리 배달국은 같은 민족으

로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도와서 서로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모색하

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으로 배달공화국은 대한민국에게 앞으로 5년

간 석유를 국제시세에 관계없이 배럴당 26달러에 수출할 것이며,"

이 말에 기자들이 모두 경악했다. 배럴당 26달러면 현 시세의 딱 절반이었다

. 거의 2년전인 2005년 당시의 유가였던 것이다. 그 가격에만 석유를 들여올

수 있다면 한국의 수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 것이며 물가안정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이다. 기자들은 질문할 게 너무 많았지만 오혜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배럴당 26달러에 수출할 것이며,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가 원할 경우 현

시세의 80%수준인 배럴당 40달러에 수출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 배달

국은 세계 원유가의 전반적인 하향안정세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싸게 팔 것이니까 OPEC도 석유가격을 내리라는 압박이었다

. 사실 지금 국제유가는 매달 오르고 있었다. 배달국이 제시한 26달러는 불

과 2년 전 가격이고 40달러는 불과 석 달 전 가격이었다. "동시에 배달공

화국은 한국으로부터 배달국이 필요로하는 식량과 각 생필품 중심의 수입을

원합니다. 특히 음반, 영화, 방송, 문학 등 문화상품에 대한 수입을 기대하

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강민우 대통령님이 발표하신 한반도 주변의 개

발 계획에 우리 배달국도 참여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실사단의 시추장비

방문으로 밝혀지겠지만 우리의 석유시추 기술은 세계 제일 수준입니다."

여기까지 준비한 대로 읽은 오혜린이 원고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앞으로도 우리 배달공화국은 대한민국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이어나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질문 있으세요?" 거의 모든 기자가 동시에 손을 들었

다. 오혜린이 앞에 있는 기자를 가르켰다. 기자들은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말하고 질문을 했다.

"배달국의 역사와 건국배경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2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지금의 배달공화국에 정착

했습니다. 그리고 200년 동안 세상과 동떨어져 독립적인 생활을 해오다 이번

김시백 통령님이 취임하면서 국제사회에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배달공화국이 가진 석유는 얼마나 됩니까?"

"지금 시추해서 생산하고 있는 곳이 350억 그보다 약간 남쪽에 300억 그리고

섬 남쪽에 100억 모두 750억 배럴입니다."

"배달공화국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습니까?"

"기자분들도 이번 실사단에 포함되셨으니 직접 보시길 바래요."

"우리와 한민족이면 북한과도 한민족인데 북한과의 교류는 어떻게 하실 생각

이십니까?"

이 질문에 오혜린이 잠시 뜸을 들였다.

"그건 좀 민감한 부분인데 우리는 북조선과도 많은 부분 교류가 있길 원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배달국은 북조선과 대화하기 위해 시기를 기다리고 있

습니다. 아마 7-8개월 후쯤 북조선과도 교류를 시작할 예정이고 그 전까지는

북한이 원한다면 석유를 남한과 똑같은 가격에 공급할 수는 있지만 교류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조선이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

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무얼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결정

하거나 자세히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합니다."

사실 배달공화국은 북한이 스스로 힘으로 변화되는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배달국이 북한에 어떤 공작이나 조치를 취해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긴

하지만 배달국의 수뇌부들은 북한의 역사는 북한 주민들 스스로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비록 적지않은 희생이 따르겠지만 그것

이 역사였다. 남한도 정치 경제적으로 완전히 성장한 것은 아니나 그 국민들

의 힘으로 계속 변화해 왔고 계속 성장해 갈 것이다. 다만 역사의 중요한 전

환점을 맞았을 때 남한은 배달국의 힘이 필요하게 될 것이었다. 이렇게

여러 기자들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동안 오혜린은 미소를 잃지 않았고 민

감한 질문에도 명확하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때 오성일보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미모가 상당하신 것 같은데, 한국에 보낼 특사를 뽑을 때 혹시 미모가 선정

기준이 되었습니까?"

이 질문에 장내는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 졌다. 같이 자리한 기

자들은 외국의 특사에게 하는 질문으로 너무나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질문은 특사로서 오혜린의 자질을 의심하는 동시에 배달공화국을 무시하

는 발언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잘못하면 양국간의 우호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오혜린이 어떻게 반응할까를 초조하게 지

켜보던 기자들은 오혜린이 전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어머나,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전 한국에 와서야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배달국에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배달국 여자들은 거

의 저보다 예뻐요, 성형수술이 발달했거든요."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성형수술이 발달했다는 것은 의료기술도 상당

수준에 올라있다는 말씀입니까?"

누군가 웃음이 잦아드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질문을 했다.

"배달국의 의료기술과 과학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가

진 과학기술과 의료기술이 전 인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

다."

이 답변에 기자들은 배달국 사람들이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자 가운데 한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NHK 한국지사에 유우치 마

태오 기자입니다. 지금 석유시추지점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 안이라고 알

고 있는데 향후 일본과의 외교문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예, 향후 일본과 EEZ구역에 대해 협정이 필요하다면 협정에 응할 생각은 있

습니다. 하지만 국제법상 두 나라의 EEZ가 겹치는 경우 통상적으로 겹치는

구역에 대해서는 별도의 협정이 없는 한 양국의 배타적 경제권을 모두 인정

하는 것으로 아는데요? 또 별도의 협정이 있다고 한다면 그곳은 배달공화국

과 훨씬 가까운 곳이라 당연히 우리 EEZ가 될 것이고요. 그리고 우리는 일본

어선들이 우리 EEZ에 침범해서 참치와 고래를 잡는 등 어로행위를 하는 것

에 대해 한 번도 제재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물고기 몇 마리 잡는 어로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 당연히 일본과 사전 조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은 아직 배달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는 일본이 우리를 국가로 인정하든 하지 않든 별로 중요하

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그 유전을 개발하는 데도 일본의 도움은 필요 없

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그곳의 유전을 개발할 능력이나 있습니까? 일본은 거

저 줘도 못 먹을 걸로 아는데요?"

"그럴 리가? 일본이 개발 못할 리가 없소."

"그건 일본에 돌아가서 직접 확인해보시고, 더 이상 질문 없으면 기자회견은

이만 끝내기로 하죠."

혜린은 단호하게 말하고 회견을 끝냈지만 회견장을 빠져나가면서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어서 배달국으로 갈 실사단의 대표

로 단장을 맡은 경제부총리가 기자회견을 했다. 그 후에 실사단과 배달국

특사 일행은 대한항공 특별기를 탔는데, 이 일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한

항공은 처음에 조종사들이 가보지 않은 데다 정보상황도 미미한 공항에 착륙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특별기 편성을 정중히 거절했다. 배달국에서는 아직

100명 이상 탈 수 있는 여객용 비행기가 제작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배편으

로 이동을 하기로 한 것인데 배달국 특사들이 타고 온 배를 보고 의원들과

일부 장관들이 불안해서 타기를 주저한 것이다. 오혜린 등 특사 일행이 배의

성능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앞에서는 수긍을 하는 척 하더니 결국 몇몇 의

원들이 항공사에 압력을 넣어 특별기 편성을 강요한 것이다. 그에 따라 배

달국은 항공사에 배달섬 활주로의 D-ATIS 시스템 정보를 메일로 발송했고,

의외로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공항의 정보가 도착하자 항공사에서는 특별기

편성을 망설일 이유가 없어졌다. D-ATIS시스템은 공항의 기상상태, 활

주로 상태, 주변의 산지, 노탐 및 기타운항에 필요한 정보를 조종사에게 제

공하여 주는 시스템이었다. 전 세계에 위치한 모든 국제공항은 의무적으로

공항의 D-ATIS 정보를 자신의 공항에 취항하는 전 항공사에게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2007년 10월 22일 오후 1시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대한항

공 특별기는 배달공화국으로의 첫 비행을 위해 김포공항을 이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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