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배달민족사-26화 (2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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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2007년 10월 20일 오전 10시 청와대 접견실

강민우 대통령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오혜린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오혜린이 바닥에 앉아 큰

절을 하자 순간 당황했다. "아니 이런, 이를..."

대통령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데, 이어 오혜린이 비서관에게 고급스럽게

생긴 두루마기를 받아 다시 고개를 숙인 채 대통령에게 내밀었다. "우리

배달공화국 통령님께서 대한민국 대통령께 드리는 친서이옵니다. "

"감사합니다. 이제 어서 일어나시죠."

대통령이 예의를 차려 친서를 받은 후 손수 혜린을 일으켜 세웠다. "이

리 자리를 하시죠."

"감사합니다."

대통령이 권한 자리에 앉자 오혜린은 다시 평상시의 활발하고 꾸밈없는 모습

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혜린이 유심히 보니 아무도 대통령에게 자신처

럼 바닥에 엎드려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다른 사람들은 대

통령에게 목례를 하고 대통령이 손을 내밀자 악수를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

니 아무래도 배달국 교육부장관인 임운학 박사님이 가르쳐준 인사법이 좀 이

상한 것 같았다. 혼자만 이상한 인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자 혜린의 얼굴

이 빨갛게 변했다. '임박사님 배달국에 가면 두고 봐요.'

오혜린은 속으로 임박사를 원망했다. 하지만 사실 임박사의 잘못도 아니었다

. 흔히 과거를 고증할 때는 다소 시대적 오류는 생기게 마련이었다. 조선초

기 사극에 빨간 김치가 나오는 것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임박사는 약

200년 전 국가원수에게 하는 예절은 조선시대 왕에게 하는 예절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한국에서 어제 첫날이셨는데 잘 주무셨습니

까?"

"예, 아주 즐거웠어요, 어젯밤엔 꿈에도 그리던 세븐 아이즈(7 Eyes) 콘서트

를 보러 갔었어요. 정말 감동적인 무대였죠."

혜린이 신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세븐 아이즈는 올해 들어 혜성처럼 떠오

른 그룹으로 네 명의 젊은 소년으로 구성된 팀인데 그 중의 한 명이 한 쪽

눈이 없어 이름을 세븐 아이즈로 지었다. 신인답지 않는 가창력과 무대매너

그리고 노래에 담긴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로 인해 많은 팬을 가지고 있었다

. 특사의 임무를 띄고 남의 나라에 와서 콘서트를 관람했다는 말을 태연

하게 하고 있는 혜린에게 청와대에 있던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대통령은 그냥

빙그레 웃고 있었다. 대통령은 이미 그 사실을 보고 받은 상태였기 때문

이기도 하지만 특사로 온 사람들이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시백 통령의 친서는 별다른 내용

이 없었다. 양국 간의 우호를 바라며 통상이 서로의 국익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과 실사단을 성심껏 영접하겠다는 초대의 내용이 다였다. 대

통령도 으레 친서는 형식적인 것이라 별다른 내용은 없을 것으로 알고 있었

기 때문에 오혜린 특사와의 접견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사는 뭔가 다른 중요

한 내용을 가지고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혜린이 대통

령과 단 둘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요구했을 때도 대통령은 그것을 기꺼이 받

아들였다. 청와대 비서실과 부속실에서 의전과 경호상의 문제로 거세게 반대

했지만 대통령이 고집을 피웠다. 오혜린이 대통령 집무실로 안내되고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오혜린은 자리에 앉지 않고 선 채로 말했다

. "죄송합니다만 대통령님 누가 우리를 보고 있군요."

이어서 오혜린이 집무실 안에서 몇 개의 카메라를 찾아냈다. 대통령이 얼

굴이 붉어졌다. "경호실장 들어오라고 하세요!"

대통령이 비서실로 연결된 인터폰을 누르고 소리를 질렀다. "대통령님

괜찮습니다. 아마 경호팀에서 경호문제로 CCTV를 연결한 것 같습니다. 소리

는 없이 영상만 받고 있었군요. 하지만 전 조금 더 조심하고 싶습니다."

이윽고 경호실에서 사람이 들어왔다. 경호실장이 들어오자마자 떠듬떠듬 말

했다. "죄송합니다. 대통령 각하, 경호문제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판단되어

제 직권으로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엿들을 생각은 없었습니

다. 마이크는 연결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혜린이 말한 대로 경호실장이 말하자 상당히 놀랐다. 경호실장이

카메라를 챙겨 방에서 나가자 혜린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드

린 친서는 형식적인 것이고 여기 김시백 통령님의 밀서가 있습니다."

"밀서!"

대통령이 밀서라는 말에 긴장하고 있을 때 혜린이 핸드백에서 조그만 은색

금속성의 상자를 꺼냈다. 대통령은 혜린이 저걸 어떻게 가지고 들어왔을까

궁금해졌다. 혜린의 핸드백은 혜린이 청와대에 들어올 때 당연히 금속탐지기

의 검색을 거쳤을 것이다. 혜린이 다시 핸드백에서 푸른 색 수정을 꺼냈다.

"이건 크리스탈 메모리라는 것인데 줄여서 CM이라고 부르죠, 일종의 CD나

DVD 같은 겁니다."

혜린이 수정을 은색 금속성의 상자의 한 홈에 끼우자 김시백 박사의 영상이

나타났다. 대통령이 놀랄까봐 일부러 화질을 많이 떨어뜨렸는데도 대통

령은 상당히 놀랐다. "놀라지 마세요, 그냥 영상편지 같은 겁니다."

곧이어 영상으로 나타난 김시백 통령이 입을 열어 말을 하자 대통령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강민우 대통령님, 저는 배달국 통령

을 맡고 있는 김시백입니다. 저희는 2207년에서 왔습니다."

대통령은 처음에 2207년이라는 말을 듣고 멍해졌지만 김시백 박사의 이어지

는 말을 듣고 곧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저는 2151년생이고 특사로 보낸 오혜린양은 2182년생입니다. 저희 배달공화

국 사람들 대분분이 22세기와 23세기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후손들입니다. 우

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왔습니다."

대통령이 오혜린을 보며 말했다.

"이걸 나보고 믿으란 말입니까?"

2007년 10월 21일 미국 시애틀 새무엘 김 선거사무실

새무엘 김(한국명 김인범)은 마지막까지 유권자들의 투표 독려를 마치고 막 선거사무실로 돌

아왔다. 밖에는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오고 있었다. 김인범은 비 때문에 혹시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을까 종일 투표소를 돌며 유권자들에게 투표를 호소했

다. 이미 사무실에는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사무실 직원들이 김인범이 도착

하자 환호를 하며 김인범에게 악수를 권했다. 김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 후

보는 이 번만은 결과에 희망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번이 그에게는 세

번째 도전이었다. 이미 여론조사도 박빙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여론조사

에서 김후보는 상대후보인 공화당의 재닛 우드를 54%대 47%로 누르고 있었다

.

TV에서 개표결과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전국적인 선거가 아니라 보궐선거라

서 언론의 집중보도는 없었지만 TV에서 간간히 소식을 전하고 있고, 지역방

송에서는 하단에 티커자막을 넣어 실시간으로 개표현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TV를 보면서 김후보는 불현듯 자신이 살아온 37년의 길디는 않지만 짧지도

않은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경기도 파주에 살다가 4살 때 어머니가 죽은 뒤 고아원에 맡겨졌던 김인범

은 미국에 입양되었지만 양부모의 학대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세

에 겨우 집에서 나온 새무엘은 고학으로 대학까지 마쳤다. 접시 닦기 등 갖

은 일을 하면서 펜실베이니아대와 워싱턴대에서 동양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

득한 김후보는 4년간 대학강단에 섰다가 2000년 시애틀 시의원에 당선됨으로

써 정계에 입문했다. 미국 내에서도 백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시

애틀이었지만 김인범의 부드러운 이미지와 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경력, 한

국인이면서도 동시에 한국교포만을 위한 정책이 아닌 전 시민들을 위한 정책

을 제시하면서 조금씩 워싱턴주 정계에 이름을 알려온 지 벌써 8년이었다.

김박사는 지난 8년간 지역구내 2만 7천여 가구의 거의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일일이 그들과 악수하고 그들의 어려움과 요구에 귀를 기울렸다. 미국 내

한국인이 잘 살고 미국인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미국사회를 잘 사는 곳

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인범을 만난

유권자들의 대부분 그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그것이 표로 연결되기는 어려웠

다. 김인범이 출마한 지난 두 번의 선거 때는 전국적으로 공화당의 우세가

강한 시기였다. 김인범은 두 번의 하원선거와 한 번의 부주지사 선거에 나섰

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대외정책과 경제정책에 실패한 것에 대해 유권자들이 실망하면서 민주당 후

보인 김인범에게 다시 기회가 오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워싱턴주의 상원

의원인 폴 도슨이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고, 워싱턴주의 보궐선거가 있게

되자 그 기회는 보다 일찍 찾아왔다. 시간이 흘러 거의 대세는 김후보에

게 기울고 있었다. 방송사 관계자가 와서 당선이 결정되면 생방송으로 인터

뷰를 하겠다며 미리 몇 가지를 의논을 했다. 사무실에 벨이 울리고 택배배

달원이 꽃다발을 들고 들어왔다. 꽃다발에는 '당선을 축하합니다'라고 한글

로 쓰여진 메시지가 있었다. "허! 누군가 성급한 사람이 있군, 김치국부

터 마시면 안 되는 데..." 하지만 김의원은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겉에 적힌 메시지를 번역해주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건 한국말

로 당선을 축하합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속에는 어디 보자 잠시만요?"

한 손에 꽃다발을 쥔 상태라 카드가 잘 열리지 않자 김인범은 비에 젖은 꽃

다발을 옆의 사람에게 맡기고 카드를 열었다. 카드를 열고 내용을 읽은 김인

범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카드 안에는 한글로 또박또박 적힌 메시지가

있었다. "일만이천육백칠십세명의 유권자와 함께 의원님의 당선을 진심

으로 축하드립니다. -배달-"

그때 TV에서 김후보의 당선을 알리는 속보가 나왔다. "방금 워싱턴주 상원

의원 보궐선거 개표가 끝났습니다. 12,673표를 얻은 민주당의 새무엘 킴 후

보가 9,947표를 얻은 공화당의 재닛 우드 후보를 누르고 워싱턴주 상원의원

에 당선됐습니다. 잠시 뒤 새무엘 킴 당선자의 당선소감을 생방송으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사무실에 대기하던 방송사 사람들이 김인범에게 인터뷰를 하기 위해 다가오

고 있었다. 김인범은 멍한 표정으로 TV와 자신이 쥔 카드에 적힌 글을 번

갈아 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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