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배달민족사-23화 (23/83)
  • [email protected])=+=                  (11) 석유전쟁 (11) 석유

    전쟁 ④2007년 10월 16일 평택 미군기지세연은 미군 헌병대로

    옮겨졌다. 헌병들이 세연을 헌병대 사무실로 데려갔다. 세연이 들어가자

    미군 대위 계급장을 단 사내가 일어나 세연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리 앉

    으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지미 슬래터 대위입니다."

    "글쎄요. 좀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저도 반가웠을 지도 모르죠."

    "하하하, 죄송합니다. 이번 일을 아무래도 양측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 서로 좋은 방향으로 해결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떤 게 좋은 방향으로의 해결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군 측의 이런 자세가

    오해를 풀려고 하는 자세라고 생각하세요?"

    "뭐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마음에 들고 안 들고 문제가 아니죠. 가둬 놓고 협상을 하자는 얘기 같은데

    이건 공평하지 못한 처사예요. 말을 안 들으면 풀어줄 수 없다는 협박이구

    요."

    "그래도 근무병을 구타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것만 갖고도 저희는 형

    사처벌이 가능합니다. 공무집행방해에 폭행까지 한세연씨의 잘못도 있습니다

    . 저희는 저희 잘못을 인정하기 때문에 양쪽을 교환하자는 겁니다. 공평한

    거지요"

    "일견 듣기에 아주 그럴듯하군요. 미국이 얘기하는 공평은 항상 그런가요?"

    "무슨 말씀을?"

    "지구상의 핵무기 중 70%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제 우리 다함께 더 이상 핵무

    기는 만들지 말자 라고 하는 게 미국식 공평이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한

    국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주둔경비를 달라고 하는 것도 미국이고요. 이번 건

    도 그 미군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제가 그 군인을 때릴 이유도 없었어

    요."

    "그 미군은 당신이 영어를 못하는 줄 알았답니다."

    "X같은 새끼"

    세연의 입에서 한국어로 쌍말이 나오자 슬래터 대위가 깜짝 놀랐다. 한국말

    은 잘 모르지만 한국에 몇 년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욕은 알아들었다

    . 슬래터 대위는 이쁘장하게 생긴 세연이 거친 말을 하자 당황했다. "아!

    죄송해요. 전 당신이 한국어을 못하는 줄 알았어요."

    세연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슬래터 대위는 세연의 말을 듣고 멍하니 있다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이거 제가 한 방 먹었습니다."

    슬래터 대위는 군부대 헌병대에 끌려온 젊은 여자가 너무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데 호감이 생겼다.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신의 주장을 간결하고

    일목요연하게 그리고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미군은 자기 돈을 들여 한국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미군

    이 없다면 한국은 더 많은 국방비를 국가예산으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물론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미군은 한국에 주둔하면서 손실보다는 이득

    이 더 많고 한국은 미군이 주둔하면서 득보다는 실이 더 많아요."

    "왜 그렇습니까?"

    "방금 대위님은 미군이 자기 돈을 들인다고 했는데 그게 어디 한국에 주는

    돈인가요? 한국에 배치되는 각종 무기나 전투기, 군함 결국 다 미국에서 만

    든 거고 미 국방부가 돈을 내지만 미국 군수회사로 들어가는 돈입니다. 또

    한국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도 결국 미 국민들에게 지급되

    는 돈이자나요? 그 미군이 한국이 아니라 스위스나 일본이나 아님 워싱턴에

    근무하더라도 지급되어야 하는 돈이고 오히려 한국에 근무하는 군인 병력만

    큼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창출했죠. 오히려 한국에게 비싼 가격에 미국 전투

    기를 사라고 압력을 넣어 부당 이득을 챙기고 있는 게 미국이죠."

    슬래터 대위는 세연을 말을 들으니 갑자기 해마다 증가하던 미국 내 육군 병

    력 모집 인원이 작년에 처음으로 줄어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재

    작년에 한국 내 9개 미군기지 중 2개가 철수했던 것이다. 슬래터 대위는 당

    시에는 그 두 가지가 서로 연관이 되는 사항인 줄 몰랐는데 이 한국인은 그

    것을 정확히 분석해내고 있었다. 세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반대로 한

    국은 미군 주둔에 따른 사회문제를 안고 있어요.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사용되는 국방비를 한국이 부담하는 것과 비교하

    더라도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예요. 오히려 한국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적인 문제에서 피해를 입고 있어요. 특히 세 가지 특수한 문제들로 인해 감

    정적으로 과잉 상태가 되어 있는 상태구요. 첫째로, 매매춘 문제예요. 한

    국 내 미군기지 모두가 '사창가'로 둘러싸여 있어요. 둘째로, 소파가 매년

    조금씩 개정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미군의 남한 내 범죄에 대한

    치외 법권적 면책특권이죠. 셋째로, 한국에서 부담하는 미군 주둔 비용

    분담이예요. 부동산 가치를 합하면 그 규모는 엄청난 거죠."

    "Oh No! 더 이상 얘기하면 본전도 못 건지겠군요."

    슬래터 대위가 양손을 들며 항복을 표시했다. "할 말이 또 있어요."

    "예? 또 뭡니까?"

    "분명히 제가 때린 군인은 유엔군인데 왜 내가 미군 부대에 끌려와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거죠?"

    세연이 이렇게 묻자 갑자기 슬래터 대위가 말문이 막혔다. 사실 1978년

    이후 한반도 내에서 유엔군 사령부는 군사적 기능을 하지 않았다. 1978년

    미국과 남한은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했고 유엔군 사령부는 공식적으로 이

    새로운 사령부에 권한을 넘겼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미국이 아닌 다른 유엔

    군들은 대부분 자국으로 철수했다. 미군 장성이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 사

    령관 직을 겸직하면서 유엔군 사령부의 군복과 모자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에 참석할 때에만 착용할 정도로 유엔군 사령관으로서의 역할은 미미해졌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유엔군 사령부를 해체하지 않은 이유는 미

    국은 유엔군 사령부가 해체되면 남한군에 대한 미국의 작전통제권의 법적.

    정치적 기초가 흔들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1950년 이승만

    이 작전통제권을 유엔군 사령부에 이양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따라서 유엔군

    사령부가 해체되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자동으로 한국으로 되돌아갈 것

    인데 미군은 그것을 놓치기 싫어하는 것이었다. 흔히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이 미국에게 있다고 말들을 하지만 사실 공식적으로는 유엔군에 있는 것이고

    유엔군 사령부를 미국이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한국군의 작전통

    제권이 미국에게 있는 현실이 된 것이다. 몇 년 전에 죽은 리처드 스틸웰 전

    유엔군 사령관은 한반도에서 미국이 가진 작전통제 권한의 정도는 "전 세계

    에서 가장 보기 드문 주권 양도"라고 논평한 적이 있을 정도 다. "제 문

    제는 유엔군 사령부에서 처리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세연이 계속 따져 묻자 슬래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럼 한세연씨

    는 우리 유엔군이 어떻게 해 주길 원하십니까?"

    슬래터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유엔군 장교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세연은

    신분증을 보고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저는 그 때 그 군인의 직접적인 사과를 받고 싶고, 유엔군 당국의 해당자

    처벌과 재발방지 약속을 원해요."

    그로부터 4시간 후, 세연의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사과를 받자 세연도 때려

    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세연에 대해 각별한 호감이 생긴 슬래터는 다소 무리

    를 해서 세연의 요구가 관철되도록 노력했다. 세연은 집까지 모셔다 주겠다

    는 슬래터의 요구를 뿌리치고 평택역까지만 태워달라고 했고 슬래터는 직접

    자신이 선탑을 하고 세연을 서울 시내의 지하철역까지 배웅했다. "안녕

    히 가십시오. 이 일 때문에 미스 강의 방북일정에 차질을 주게 되어 정말 죄

    송하게 됐습니다. 만약 손해배상이 필요하면 연락 주십시오. 이게 제 연락처

    입니다."

    "괜찮아요, 제 일이 1주일 늦어져서 안타깝긴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어쩌

    겠어요. 이와 비슷한 일이 다신 없길 바래요." "예, 다음부터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지 모르는 지 꼭 확인하라고 하겠습니다."

    슬래터가 웃으며 말했다.

    2007년 10월 17일 토쿄 총리 집무실

    "끝이 안보이다니 그게 무슨 말이요?"

    고미즈 이치로 일본 총리가 고바야시 사이토 해상막료장의 말에 놀라며 물었

    다.

    "그게 우리 잠수함으로는 더 이상 해저로의 진입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일단

    그 쪽의 수심이 약 6.4km 정도 되는 걸로 판단이 됩니다만 더 이상의 사이

    드스캔소나로도 판독이 어려울 정도의 해저입니다."

    "사이드스캔소나가 뭐요?"

    "음파를 이용해서 바닷속 사진을 찍는 기계인데 해당 지역의 바다가 너무 넓

    고 깊어 영상이 잡히지 않습니다. 또 우리 잠수함으로는 최대 1km정도까지는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그 말은 한국의 잠항기술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요?"

    "그럴리는 없습니다. 아무리 잠항기술이 뛰어나도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아

    마도 한국이 내압성이 강한 무인장비를 개발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 일본이 그걸 개발한다면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릴 것 같

    소?"

    "그건 제가 아는 분야가 아니라 뭐라 말씀드리긴 곤란합니다. 하지만 우리

    NTT(일본통신)에서 무인으로 해저 작업을 하고 있어서 그곳에 문의를 해봤는

    데, 해저에서 석유탐사를 목적으로 무인장비를 만든다면 적어도 5년은 걸릴

    거라는 예측이었습니다. 그것도 단번에 성공할 때를 기준으로 계산한 겁니

    다." "아니 그걸 한국이 언제 개발했단 말이요?"

    고미즈 총리는 녹차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간혹 혼자말로 '허 참'하며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한국보다 못한 건 축구말고는 없는 줄 알았는데,

    어떤 방법으로든 유전을 빼앗아 와야 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저 유전

    은 일본의 것이 분명했다. 그걸 눈뜨고 내어 줄 수는 없다. 혹시 한국 측이

    개발기술을 담보로 한 공동개발 의사는 없는 것일까? 고미즈 총리는 조금

    생각해보니 한국에게는 그런 의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그런 의사가 있었다면 배달공화국을 만드는 유치한 장난은 하지 않았을 것이

    다. 바로 기술 제휴와 공동개발에 대한 의사를 타진했을 것이다. 이건 일본

    이 가지지 못한 기술을 담보로 일본의 재산을 날로 먹으려는 도둑 심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미즈 총리는 한국의 얄팍한 수에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의

    지를 굳혔다. "고바야시 막료장!"

    "하이!"

    "혹시 미국은 그런 기술이 가능하지 않겠소?"

    "예?"

    "해저에서의 석유시추작업 말이오. 만약 우리가 공동개발권을 넘긴다면 미국

    은 싫어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미국이 해저시추기술을 가

    지고 있지 않을까?"

    "한국이 가지고 있다면 미국도 당연히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미국이 만약 그 기술이 없다하더라도 지구상에 한국말고도 합작할

    나라는 얼마든지 있겠지요." 고미즈 총리는 찻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2007년 10월 17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노스 하버

    스타디움 "이거 놀랐습니다. 우리가 무조건 상당한 차이로 이길 줄 알

    았는데. 배달국의 축구실력이 이 정도라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군요."

    에드워드 가먼 뉴질랜드 축구협회장이 웃으며 정학재 외무부장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외무부 장관이지만 이번 방문은 배달국의 축구협회장 자격으로 온

    정학재가 가먼 협회장의 손을 마주 잡으며 대답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

    다. 운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이렇게 좋은 스타디움에서 경기

    를 해보기는 처음이라 기운이 펄펄 났나 봅니다."

    가먼은 배달국이 경기에 졌는데도 운이 좋았다고 하며 경기장 시설을 추켜

    세워주니 괜히 기분이 으쓱해졌다. 경기는 3대2로 뉴질랜드가 승리를 거두었

    다. 신생국인데다 태평양의 섬나라라고 우습게 봤다가 전반전을 1대1로 비긴

    뉴질랜드는 후반전에서 심기를 가다듬어 내리 두 골을 연속으로 뽑아 사실

    상 승리를 확정짓는 듯 했다. 그 후 맹추격에 나선 배달국이 열심히 뉴질랜

    드의 골문을 두들겼지만 번번이 오프사이드에 걸려 제대로 찬스를 만들지 못했

    다. 배달국 선수들은 21세기 축구규칙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부족한 상태였

    다. 경기종료 3분전 배달국의 차승태 선수가 38m 거리에서 찬 프리킥이 골대

    를 맞고 골에 들어가 한 점 더 따라가는 데 그쳤다. 같은 날 호주는 퉁가를

    11대 0으로 눌렀고 괌은 솔로몬 군도를 맞아 4대 1로 승리를 거두었다.

    선수단과 같이 유진3,4호를 타고 응원을 온 배달국 서포터즈들은 경기에 졌

    지만 경기 내내 매순간 환호했고 양측 선수들에게 다같이 박수를 보냈다. 이

    겼으면 좋았겠지만 배달국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축구경기 자체가 처음 경험

    하는 하나의 축제였다. 경기장은 뉴질랜드 관중보다 오히려 배달국 서포터즈

    의 수가 더 많았다. 뉴질랜드에서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축구의 인기가 떨어

    지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던 경기라 상대적

    으로 관객이 적었다. 뉴질랜드에서는 TV중계도 없었지만 배달국에서는 이

    경기가 MS (Marble Screen) 카메라와 위성을 통해 중계방송되고 있었다. 물

    론 TV중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뉴질랜드 관계자들이나 FIFA 참관단들도 모

    르고 있었다. 경기 후 오클랜드의 한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린 배달국 사

    람들이 첫 A 매치를 가진 것을 기념하는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선수단과 응

    원단이 모두 참가하고 에드워드 가먼 뉴질랜드 축구협회장과 뉴질랜드 외교

    관계자 FIFA 관계자들이 초청되었다. 정장관과 준영, 그리고 대표팀 감

    독인 김용학이 손님들을 맞이했다. "요즘 아시아권 뉴스에 배달국 얘기가

    매우 뜨겁더군요."

    경기장에는 자리에 없다가 뒤늦게 파티에 참가한 뉴질랜드 외무장관 사무엘

    켄트가 정장관에게 말을 건냈다. 뉴질랜드에서도 배달국의 석유 소식을 접

    하고 있던 차에 마침 축구협회장으로 뉴질랜드를 방문한 정학재가 외무부장

    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부랴부랴 정장관과의 만남을 추진하다 오히려 예

    기치 않게 파티의 초대를 받고 참가하게 된 것이다. 양국의 외무장관이 만

    나는 자리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인 형태였으나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없는 두

    나라 사이에 정식적인 외교절차가 진행되기도 어려웠고, 정장관이 켄트 장관

    에게 그냥 개인적인 자격으로 편하게 만나자고 제의를 해 이런 자리가 마련

    되었다. "어떤 얘기가 많은가요?"

    "예, 이런 말을 드려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나 중국은 배달국과 한국

    의 관계를 상당히 수상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석유를 차지하

    기 위해 유령국가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증거가 석유를 국제유가의 절

    반 밖에 안 되는 가격에 팔겠다는 말도 안 되는 거래조건이라는 주장도 있구

    요."

    "귀국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장관이 부드럽게 웃으며 반문하자 켄트는 외교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말

    했다.

    "저희 국가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동북아의 국가들

    이 서로 원만하고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길 바라며, 석유와 같은 자원은 인

    류를 위해 긍정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장관이 빙그레 웃었다. 켄트는 아주 외교적인 견지에서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 뜻은 '특별히 아직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않겠지만 석유에는 관

    심이 많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석유가 인류 전체에게

    중요한 자원인만큼 모든 국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

    니다. (필요하면 뉴질랜드에게도 판매할 용의가 있다)"

    "그래도 한국과는 동일한 민족이라니 특별한 우호관계가 있겠군요.

    (혹시 우리에게도 한국처럼 거의 반값에 줄 수 있나?)"

    "하하 그건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같은 민족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배달국은

    한국과는 아무런 종속관계가 없는 독립국가입니다. 글로벌시대에 맞게 가능

    한 많은 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축구경기는 양

    국 우호를 위해 아주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어떻게 한국하고 똑같이 대접받을 생각을 하니? 그렇긴 해도 뉴질랜드가 정

    원하면 생각해볼 수도 있지) "그렇군요, 배달국이 새로 국제사회에 등장

    한 만큼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으실 줄 압니다. (석유를 파는 조건이 있겠지

    ? 원하는 게 뭐냐?)"

    "별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런데 켄트장관님!"

    이제 본론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이다.

    "예, 말씀하십시오."

    켄트가 침을 꼴깍 삼켰다. 이런 무의식적인 행동이 외교관계에서는 금물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켄트장관은 무심코 침을 삼키고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뉴질랜드가 우리 석유를 원한다면 배럴당 40달러에 드릴 수 있습니다."

    정장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켄트는 너무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또

    한 번 침을 삼켰다. "아주 파격적인 가격인 만큼 조건이 있으시겠군요?"

    켄트도 단도직입적으로 나왔다.

    "조건요? 무슨 조건요? 아 예! 뉴질랜드에서 직접 유조선을 가져와서 가져가

    시고요. 석유대금은 3개월이내 US 달러로 지급하는 조건입니다. 참, 한국 원

    화도 받습니다."

    "아니 그것말고, 우리 정부에 요청할 다른 조건은 없습니까?"

    정학재는 켄트가 하려고 하는 얘기를 알면서도 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물론 있지요. 우린 양국 관계가 오늘 축구경기처럼

    항상 우호적이길 바랍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켄트장관은 깜짝 놀랐다. 현재 국제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52달러다. 엄청

    난 가격차이였다. 40달러라면 거의 2년 전 가격 수준이었다. 게다가 중동에

    서 석유를 가져오는 대신 북태평양에서 가져온다면 그에 소요되는 운송경비

    차이만 해도 엄청난 이익이 발생한다. 그런데도 아무런 조건 없이 석유를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켄트 장관은 석유판매를 조건으로 적어도 영사급 외교

    부나 하다 못해 배달국을 국가로서 인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

    다. 켄트는 이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딴소리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장관님, 혹시 우리 정부의 배달국의

    주권 인정 성명이 필요하신 것은 아니었습니까? 국제사회에서 당당한 국가

    로 인정받으려면 하나라도 더 그것을 인정해주는 우호국이 필요한 것입니다

    . 만약 배달국에서 석유를 조건으로 그러한 요구를 해온다면 국제정세가 민

    감하긴 해도 우리정부는 배달국을 하나의 독립국으로 인정해 줄 용의가 있습

    니다. 이미 전 그에 대한 재량권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정학재는 싱긋 웃고는 잠시 켄트를 쳐다봤다. "장관님, 외교관으로서 그

    런 솔직한 말씀은 상당히 위험한 일인데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참 감사합

    니다. 뉴질랜드의 그런 성의는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주권은 우리가 지키는 것이지 국제사회가 인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

    라는 우호국이 많이 생기길 원하지만 석유를 주고 국제사회의 인정을 살 생

    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국가로 인정해주는 우호국이 많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주권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

    켄트는 정학재의 말속에서 배달국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가진 강인한 의지

    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학재의 다음 말에 켄트는 너무 기쁜 나머

    지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하지만 뉴질랜드 정부의 호의에 감사하는 의

    미로 2달러를 더 깎아서 배럴당 38달러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월 19일에 계속됩니다-  =+=+=+=+=+=+=+=+=+=+=+=+=+=+=+=+=+=

    +=+=+=+=+NovelExtra([email protected])=+=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