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배달민족사-19화 (19/83)

(10) 피파랭킹 211위 피파랭킹 211위 ② 1

0월 12일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이번 입법위원회를 통

과한 총기소지금지법안에 대한 법률제정에 관한 처리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원의장인 척 체스터튼이 이렇게 선언하고 의사봉을 두드렸다. 이어서 법

안을 발의한 의원들의 발의요지를 듣고 몇몇 의원들의 찬성의견을 들었다.

그 뒤를 이어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의원들의 의견을 들었다. 회의 진행은

아주 조용하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국회에 등원한 의원은 전체

하원 435명의 70%정도 되는 314명이었다. 의사당 밖에서는 법률통과에 찬

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총기제조회사

의 이름이 쓰여진 피켓을 불태우는 사람들도 있었고, 총기에 다리를 잃은 몸

을 휠체어에 올려놓고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법안통과에 반대하

는 사람들은 "범죄자들의 총기가 있는 한 우리도 우리의 생명을 포기할 수

없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그에 대항하고 있었다. 이윽고 투표가

시작되었다. 로빈 애너스트는 의사당 2층에서 하원들이 투표를 하는 모

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투표는 외견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 번

투표도 지난 스물 여섯 번의 투표와 마찬가지로 부결될 것은 뻔했다. 일부

초선 의원들이 법률의 정당성을 가지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소수였다.

이 법안은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 대부분의 하원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질 게

분명했다. 상원에서도 이에 대한 법률이 상임위원회에 올라가 있다. 상원은

하원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이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저지할 것이다. 그들도

대부분 미국총기협회를 스폰서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회의원의

경우 상원과 하원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영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상원과

하원을 모두 선거로 뽑는다. 따라서 영국의 상원이 종신이며 법률에 관한 권

한이 없는 것과는 달리 미국 상원의 경우 하원과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 차

이가 있다면 임기 2년인 하원은 인구비례로 나눈 선거구에 따라 지역구 국회

의원을 선출하는 데 반해 임기가 6년인 상원은 인구에 관계없이 각 주 마다

2명씩의 상원의원을 뽑는다. 즉 미국 인구의 8분의 1이 모여있는 캘리포니

아도 상원 2명, 인구가 LA의 40분의 1도 안 되는 알래스카도 상원 2명이 배

출된다. 그러다 보니 상원과 하원들의 정치적 성향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총기소지금지법안에 대한 그 입장은 상원과 하원이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하원의 경우 유권자들의 지지로 선거에 당선된 초

선의원들이 그 공약에 따라 총기소지금지법안을 상정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

는 정도였다. 얼마안가 그들도 총기협회의 검은 돈을 받게 되겠지만 초선의

원들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그 소속에 관계없이 젊은 혈기로 이 법안을

상정하곤 했다. 청문회도 총기소지금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

았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등의

수세적인 대응을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청문회까지의 압도적인 법안통과

분위기는 본회의에 들어오면 번번이 꺾이고 만다. 오늘 의회의 결과를

대부분 예상하고 있는 모양인지 대부분 언론사들이 출입기자를 제외한 다른

기자들을 의회로 보내지 않고 있다. 사실은 시온파의 보도자제 지시가 소속

언론사의 대표들에게 지시된 상태이며 미국 내 대표언론사들의 의제설정 과

정에서 알게 모르게 이 내용이 묵살되고 있는 실정이었지만 일선기자들이 그

것을 눈치채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의사당 2층에 위치한 프레스

룸은 그다지 붐비지 않고 있다. 대부분 의례적인 보도진이었다. 다만 로빈만

이 이 기획보도의 완성을 위해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이다. 로빈은 이미 총

기소지금지법안을 다루는 기획기사를 5일 동안 계속 다루고 있었다. 시청자

들의 격려전화도 많았지만 반대의견도 많았다. 협박도 많이 받았다. 로

빈과 카메라기자인 투표를 하는 의원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데 전화벨 소

리가 울렸다. 로빈의 휴대폰이었다. "여보세요." "로빈 애너스트 기자?

" "예 접니다." "제 목소리 기억하시겠습니까?" "예? 누구신지?" "

나는 당신을 기자로 만들어준다는 약속을 지켰는데, 목소리도 기억 못하다니

섭섭하군요." "아! 당신은 그 때 그....." "그렇소 어차피 제 이름은

모르고 있었을 테니, 결례를 용서하지요." "아십니까? 지금 FBI가 당신을

찾고 있는데요." "당연히 알고 있소. 그리고 CIA도 눈에 혈안이 되었겠지

." "그럴 겁니다. 저도 당신에 대해 궁금한 게 많습니다." "언젠가 좀

편안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요. 그보다 오늘은 또 선물을 하나 드릴

려고." "예?" "나도 지금 이 의사당 안에 있소." "예? 어디?" 로빈

은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낯선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계속 자신을

따라다니던 재수 없는 FBI와 눈을 마주쳤을 뿐이다. 해프먼이었다. "여긴

위험해요, FBI가 근처에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나는 지금 1층에 있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뭐라구요?" 1층은 의원

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하원의원이란 말인가

? 의원이 아닌 사람은 하원 속기사와 서기, 경비원 등뿐이다. 로빈은 1층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전화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1층을

빤히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1층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 정

도면 최소한 이 의사당 안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결과

가 어찌될 것 같습니까?" 갑자기 전화 속에서 표결결과에 대해 묻자 로빈

은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무슨 말인지......?" "오늘 결과가

결국 법안 공표까지 가게 되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조금 장난을 치려고 합니

다. 아마 재미있을 겁니다. 그럼 다음에 또." 전화는 끊어졌다. 로빈은

전화기를 들고 멍하니 있는데 자신을 미행하던 FBI가 갑자기 바빠졌다. 귀

에 손을 대고 혼자서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다른 곳에 있는 동료

와 통화 중일 것이다. 그 FBI가 로빈에게 다가왔다. "애너스트씨. 방금 누

구와 통화를 했소?" 로빈은 기분이 나빠졌다. "그걸 왜 물으시오? 내 핸

드폰은 도청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해프먼은 움찔하더니 말했다.

FBI는 로빈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었지만 이번 통화는 단 한 마디도 감청하지

못한 것이다. "FBI가 시민의 통화를 도청한다고 생각하시다니 오해요, 미

국은 사생활을 보호하는 나라요." "그렇다면 사적인 통화내용을 묻는다는

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결례라는 것도 알겠군요. 그리고 전 지금 업무중

이니까 방해하지 말아줬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해프먼은 벌레 씹은 얼굴로

내뱄듯이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명심하시오, 조만간 당신을 찾아가겠소

. 그 때는 꼭 말하게 될 거요." 로빈은 그 말을 듣고도 하나도 무섭지 않

았다. 그러는 동안 투표가 끝났다. 개표의원들이 투표함을 가지고 앞으

로 나왔다. 로빈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방송국으로 전화를 해서 카일 도노반

부장을 찾았다. "부장님, 로빈입니다." "아 로빈, 하원표결은 끝났나?

또 부결이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조짐이 이상합니다. 개표발표를 생방

송으로 연결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뭐? 생방송? 그게 무슨 말인가? 그

게 생방송을 할만한 꺼리가 되나?" "조짐이 이상합니다. 뭔가 큰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도노반 부장은 조금 생각을 했다. 어차피 지금도 뉴스가

나가고 있으니 뉴스 중간에 앵커가 현장을 부르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과연 생방송으로 연결될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법안이 가결된

다면 히트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부결될 경우 맥빠진 뉴스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방송 연결이 가능하겠나? 중계차도 없는데?"

"중계차는 없지만 국회에는 광케이블 연결단자가 있잖습니까? 다른 방송국에

서는 아무도 광케이블 사용 신청을 안 했으니 저희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도노반은 다른 방송국이 아무도 생방송을 안 한다는 말을 듣자 다시 망설

여졌다. 그러나 도노반은 로빈을 믿기로 했다. "좋아 연결하게" "감사합

니다. 부장님." 같은 시간 백악관 비서실 비서실장 지르킨 아미

트는 책상에 앉아서 오늘 국회에 상정된 법안의 제목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늘 하원에서 표결할 법안은 4개였다. 결과가 충분히 예상되는 법안들이었

다. 이미 3개 법안은 지르킨이 예상하던 대로 결과가 나왔다. 오늘 국회

표결결과는 TV중계가 없어 국회에 나가있는 비서실 사무관이 계속 연락을 취

해주고 있었다. 요식적인 절차지만 지르킨은 국회의 결과를 따로 보고할 곳

이 있는 것이었다. 물론 보고를 안 한다고 모를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우리 단체의 사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

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르킨은 믿고 있었다. 그 때 비서실에

켜둔 TV모니터 중 하나가 국회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CNN이

었다. 지르킨은 모니터로 다가가 볼륨을 올리면서 생각했다. "테드 터너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이런 건 국민들이 안보는 게 좋은데." 테드 터너

가 시온파의 식구라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지르킨은 시온파가 언론에 손

을 대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1980년대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

나 언론계의 중요매체로 자리잡은 CNN도 틀림없이 시온파의 통제 하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볼륨을 올리자 로빈 애너스트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니 이놈은?" 지르킨은 로빈을 알고 있었다. 이미 KKK단 간부

살인사건을 보도한 놈 아닌가? KKK단이 시온파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KKK단의

와해가 기분 나쁜 와중에 그와 연관된 로빈이 화면에 모습을 나타내자 갑자

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는 지금 총기소지금지법안이 하원 본회의를

통과한 역사적인 장소에 나와 있습니다. 조금전 끝난 하원 표결에서 314명

의 의원들이 투표에 참가한 가운데 찬성 200표 반대 57표 기권 57표로 압도

적인 표차로 가결되었습니다. 예상 외의 결과에 하원의원들이 항의를 하고

있으며, 척 체스터튼 하원의장은 결과가 나왔는데도 아직 가결 선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로빈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본회의장 안은 아수

라장이었다. 몇몇 의원들이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며 의장에게 거칠게 항의

를 하고 있었고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떠드는 말이 그대로 마이크에 들어

와 TV를 통해 나가고 있었다. 찬성표를 던졌던 의원들도 다소 어리둥절한 표

정을 지었지만 의장에서 가결 선포할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이야" TV를 보고 있던 지르킨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갑자기 백악관 비서실의 전화들이 이곳저곳에서 동시

에 울리기 시작했다. 지르킨은 오는 전화는 받지도 않은 채 시온마스터와

직통으로 연결된 비밀전화를 들었다. "큰일났습니다. 마스터!" "알고

있소. 흥분하지 마시오." 예상 외로 마스터의 대답은 담담했다. "그 법

안은 아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소? 아미트 비서실

장?" 지르킨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도 목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그...그렇습니다. 마스터 염려 마십시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걱

정 따위는 하지 않소. 다만 시끄러운 건 싫소. 우리의 사업은 조용히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물 흐르듯 진행되어야 하오. 대부분의 사업이 그렇게 진행

되고 있소. 양당 총재들이 이번 일을 잘 못해낸 것 같은데. 아미트 실장이

좀 수고해야겠소." 전화를 끊고 아미트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마스터

아니 그 뒤의 원로원에게까지 자신의 노력이 평가될 것이라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뛰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아까부터 울리고 있는 전화를 받았다. 서

바인 사장이 흥분해서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나왔다.

2007년 10월 11일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 피파의 블래터 회장은

이사회에 들어가기 전 다시 "Republic of Baidal"이라는 나라의 요약보고서

를 읽고 있었다. 며칠 전에 피파 가입을 신청한 배달공화국이라는 나라 이름

은 들어 본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나라라고 주장하는 단체인지도 모른다

. 블래터는 이 나라, 어쩌면 나라가 아니라 독립을 요구하는 단체일 수도 있

고 그냥 섬 하나를 점유하고 있는 종교단체일 수도 있지만 피파 이사회는 이

번에도 이들의 피파 가입을 승인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파의 가입

은 국가별가입을 원칙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원칙은 피파가 생긴 초기 때

부터 무너졌다. 영국에서 처음 피파 가입을 할 때 국가 형태인 영연방왕국으

로 가입한 것이 아니라 잉글랜드, 스코트랜드, 아일랜드, 에이레가 모두 독

립적인 회원국 자격으로 가입했던 것이다. 피파는 지금가지 모든 분쟁에 대

해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분쟁이 있는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

정받기 않는 경우에도 피파 가입을 승인했다. 예를 들면 체코와 슬로바키아

는 각기 피파에 분리가입했고,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만은 여전히 가

입국가이며, 홍콩과 마카오가 각기 중국에 반환되었지만 여전히 독립적인 회

원국이었다. 2002년에 팔레스타인이 가입하는 2004년에는 2004년에는 필리핀

의 민다나오섬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봉기하고 2005년에 피파에 가입신청하

자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가입이 승인되었다. 이 방침은

피파에 몇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 평화를 추구하는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었고, 가입국수 가 늘어남에 따라 그 만큼 수입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

. 피파의 회원국은 2004년에 204개국이었던 것이 그 이후 6개 회원국이 늘어

2007년 현재 FIFA의 회원국은 210개국이니 배달공화국은 211번째 가입국이

될 것이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이 배달공화국이 피파 가입 신청서를

아시아협회인 AFC에 낸 것이 아니라 OFC에 제출한 것이다. 신청서에 따르면

섬나라인 배달공화국의 위치는 대양주보다는 아시아에 가까웠다. 가장 가까

운 나라는 일본남단에서 380해리 정도 떨어진 북태평양에 위치하고 있는 것

이다. 브래터 총재는 배달공화국이 왜 OFC를 택했는지 짐작이 갔다. 아시아

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월드컵 진출이 손쉬울 수도 있고 가입국이 가장 많은

AFC의 경우 가입을 AFC 내부에서 거절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마 OFC를

선택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OFC는 그 가입국가가 11개 밖에 안되기 때

문에 FIFA 사무국에서 가입을 승인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서를 보내 온 것이

다. 게다가 이번 배달국이 OFC에 가입된다면 OFC는 회원국이 12개국이 되면

조별예선을 각 조의 팀 수가 같게 조정할 수 있으니 일부러 딱 맞춰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2007년 10월 12일 아침 6시 청와대

강민우 대통령은 아침 일찍 산책을 하며 오늘 하루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

다. 대통령은 새벽 산책을 좋아했다. 젊었을 때는 새벽을 이용해 주로 조

깅을 했지만 생각할 것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면서 조깅보다는 산책이 좋았다

. 새벽공기가 매일 조금씩 쌀쌀해지고 있었다. 청와대 뒤뜰 산책로에는 벌

써 단풍이 들었다. 단풍을 보고 허 가을이군 하며 잠시 감상에 빠졌던 대통

령은 오늘 일정을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전 10시에 최근

유가 상승에 따른 정부 대책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이 있으며, 점심시간에는

정유회사 대표들과 오찬회동이 있고, 오후에는 이라크에서 3년간 주둔한 뒤

철수한 자이툰 부대원들의 원대 복귀 신고식이 있었다. 굵직한 일정만 그러

했다. 국제유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었다. OPEC는 겨울철이

다가오면 약속이나 한 듯이 감산 정책을 발표했다. 최근 5년간 기름 값은 2

배반이나 올랐다. 전 세계가 기름 값을 올리기 위한 치사한 담합이라고 분노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그 이면에 엄청난 진실이 숨어있

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새로운 유전을 발견하지 않는 한 앞으로 25년이면

지금까지 발견된 유전의 매장량이 바닥날 것이기 때문이다. 강 대통령은

알 나이미 사우디 장관이 올해도 한국에 올 것인지 궁금했다. 나이미 장관

은 16년 동안 OPEC회의가 끝나면 꼭 한국으로 와 북한산이나 설악산, 지리산

등을 찾곤 했다. 사막이 많은 사우디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산에 오르기 위

해 나이미는 일부러 한국에 오곤 했던 것이다. 나이미 장관의 등산에는 보통

외교통상부장관가 등산파트너로 동행해왔고 국내 최대정유사인 선우정유의

변사장이 동행하기도 했다. 그런 연고로 사우디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어

느 정도 긍정적인 것이고 석유감산이 이루어지면서 가격이 비싼 것보다 원활

한 공급이 더 중요한 현시점에는 사우디의 나이미 장관의 그런 인연도 석유

확보에 상당히 도움이 되곤 했다. 오찬회동도 국내 에너지 수급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기자회견이 끝나면 정유회사와 차후의 논의

를 진행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오후의 자이툰 부대 신고식은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갖는 행사로 2년 넘게 고생한 장병들을 위로하고 포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오늘 9명의 군인이 훈장을 받게 되는데 모두 이라크에서

고인이 된 장병들이다. 그 외에도 먼 타국에서 목숨을 잃은 62명의 대한 아

들들이 그에 따라 각종 포상을 수여받게 된다. 강민우 대통령은 목숨을 바친

그들에게 고작 해불 수 있는 게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조국의 현실이

미안하고 가슴아팠다.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파병을 결정했고, 조국을 지

키는 일도 아닌 국가의 조그마한 이익 때문에 이 땅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보

낸 것이 너무도 미안했다. 처음에 이라크의 정세는 평온을 찾는 듯하다 다시

혼란스러워졌고, 한국은 미루고 미루다 2004년 연말에야 파병을 하게 되었

다. 그러나 그 이듬해부터 미국과 시아파 간의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면서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도 테러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당

하는 미군이나 한국군 입장에서는 테러였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독립항쟁이

었다. 강민우 대통령은 6개월 전인 4월, 기자회견을 통해 "일제치하에서 한

민족의 독립군들이 일본군을 상대로 한 독립항쟁을 우리는 테러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라크는 이라크인들 손에 맡겨야 한다."고 선언하고 비전투병인

의무, 공병, 지원 등을 제외한 전투부대의 철군을 지시했다. 미국의 반발은

엄청났다. 미국은 공식 논평을 통해 "다른 이를 돕는데 인색한 자는 나중에

자신을 도와줄 이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며 협박을 가했다. 하지만 한국

은 이미 애초에 약속한 2년이 지난 상태였고, 2년이 지나도록 이라크의 안정

을 구현하지 못한 미국의 책임을 물어 철군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이미 한국

군보다 1년 일찍 철군한 스페인에 대해서는 깊은 유감이라는 논평을 냈던 미

국이 한국에 대해서는 협박에 가까운 논평을 하자 국내여론은 미국에 대한

반발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였다. 철군발표 이후에도 철군까지는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들어가는 것만큼 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한국군

의 철군이 발표된 이후 한국군에서는 더 이상 테러로 인한 희생자가 생기지

않고 나머지 병력들은 무사히 철군했다. 대신 미국과의 관계는 그만큼 악화

되었다. 산책을 마친 대통령은 아침식사도 하기 전에 집무실을 들렀다.

신문과 TV뉴스 내용을 정리한 브리핑과 더불어 밤사이 정보사항과 첩보사항

을 정리한 비서실의 보고서, 오늘 일정에 관한 부속실의 보고서가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제 밤부터 조금 전 산책까지 대통령을 따르던 경

호팀이 제자리를 찾아 재배치되고 있었다. 다음 경호팀과의 교대 시간이다.

대통령은 정보/첩보 보고서를 살폈다. 정보사항은 확인된 사항이고 첩

보사항은 검증이 필요한 상태이나 유용한 사실이다. 정보사항에는 사우디의

석유동력장관 알 나이미가 전용기의 김포공항 착륙허가를 신청한 사실과 이

틀 후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내용과 미국에서 개인총기소지제한법이 하

원 표결을 통과했다는 내용 등이 있었다. "흠 의외의 결과가 나왔군." 미

국과 같은 무기생산국에서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대통령은 잠시 갸우뚱했다

. 어쩌면 우리보고 무기를 더 사라고 압력이 들어올 수도 있겠는데 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예전에 미국 내에서는 담배를 마약으로 규정하다 시피하고는

우리에게 담배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력을 넣었던 것을 생각하고 대통령은 이

게 농담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첩보사

항을 살펴보던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 북태평양 해상에 위치한 섬나라가 FI

FA에 가입을 신청했고 한국시간으로 어제밤 피파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가입

이 승인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이 놀란 것은 그 국명이었

다. 바이달공화국(Republic of Baidal)이라고 적힌 나라명을 보고 대통령은

배달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이다. 대통령은 직접 인터넷을 켜서 피파홈페

이지에 연결했다. 피파회원국란에 Republic of Baidal을 클릭하자 바이달공

화국의 소개가 나왔다. 보통 이 곳의 소개는 자신의 국가가 신청서에 기재한

내용이 그대로 게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국가 소개를 보던 대통령이

갑자기 경악했다. FIFA RANKING 211 [REPUBLIC OF BAIDAL]이라는 첫줄 밑

으로 국가의 위치, 면적, 인구가 나왔다. 그것을 보고 대통령이 갑자기 경악

했다. [REPUBLIC OF BAIDAL] FIFA RANKING 211 위치 : 북태평양 서

북측 일본열도 남동쪽 바다의 섬나라 면적 : 67.0㎢ 인구 : 8천명 국

교 : 없음 주생산품 : 석유 언어 : 한국어 대통령은 [Language : K

orean]이라고 적힌 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다음 글

을 목요일에 올라옵니다.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국제정세에 대한 묘사가

등장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탄핵정국이고 총선 전이라 워낙 민감

한 사항이 되버렸네요. 헌재의 결정에 따라 2007년의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

령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모든 것을 가상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이 소설 속의 인물이나 사건은 현실과 가상이 혼재되어 있습니

다. 그냥 가상으로 간주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미 국회에서의 개인총기

소지금지법안이 매번 상정되지만 매번 부결되는 것은 사실이고 소설 속에서

가결된 것은 가상입니다. 사우디의 장관 이름과 한국산 등산의 취미는 사실

이지만 석유매장량은 가상입니다. 대체로 사람 이름은 가상이고 2004년 이전

의 사건은 사실일 경우가 많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 설정도 바꿀 생각입니

다. 현실과 다른 사항에 대한 내용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둥 딴지는 자

제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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