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com)=+= (10) 피파랭킹 211위 피파랭킹 21
1위 ① 2007년 9월 2일 K대 경제학과 교수연구실 "이 원고는
게재할 수 없습니다. 교수님" 세연은 원고를 가지런히 정리해서 안교수의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차분히 말했다. "아니 뭐가 문제인가?" 안교수는
학보 편집부에 있는 학생이라며 자신을 찾아온 학생이 자신이 기고했던 원
고를 돌려주자 의아해 하며 물었다. "민족의 대학이라고 자부하는 우리
학교의 학보로서는 이 원고의 취지와 우리 학보가 추구하는 바가 너무 다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안교수가 안경을 올려 잡으며 안경
너머로 한세연이라고 자신을 밝힌 학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이 원
고를 미국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적은 것 뿐일세, 선진국의 좋은 점을
배우자하는 게 무슨 사대주의라도 된다는 말인가?" "교수님의 글은 미국
의 것은 무조건 좋다는 식으로 논리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사대주의라는 비
판에서 자유롭지 못하실 것입니다." "뭐야?" 안교수가 벌컥 소리를 질렀
다. "이런 건방진 게, 감히 내 글을 지금 사대주의라고 폄하하는 거야?"
세연은 눈도 깜빡 않고 대답했다. "교수님의 글은 사대주의에 젖어 있을
뿐 아니라 권위주의적이기까지 합니다. 저는 그런 원고를 우리 대학신문에
실을 수 없습니다." 세연이 강경하게 나오자 안교수가 움찔했다. "아니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혹시 백악관 주변의 포르노가게 때문인가? 아 그렇
군 그래서 여자편집부원인 자네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말이군?"
"그것도 하나의 예가 되겠죠." 안교수는 1년 동안 교환교수로 워싱턴에
있었다. 미국에 1년 간 살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서 대학신문에 기고를 한
것이다. 특히 미국사회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우선
깨끗한 미국의 정치풍토에 대해서 얘기했고, 미국의 자유롭고 경직되지 않
은 사회 분위기를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 예를 들면서 미국의 정치인들은
뒷돈을 받지 않는다. 뇌물 같은 게 없다.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정말 유권자인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는 취지의 글이 주제였고,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백악관에서 한 블록만 떨어지면 포르노잡지
와 테이프, 각종 성인용품을 파는 가게를 예로 들었다. 포르노가 미국 법으
로 금지되어 있지 않는 한 백악관도 그 인근 가게의 영업에 관여하지 않는
원리 원칙과 백악관 주변의 포르노 가게를 허용하는 자유로운 사회분위기를
전했다. 우리 청와대 주변의 건물은 너무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다고 비판
했다. 그리고 포르노와 같은 음란물들에 대한 평가를 시민들에게 맡기는 성
숙된 시민의식을 전했다. 안교수는 그러한 자신의 글이 단지 미국의 선진문
화를 배우자고 하는 것이 왜 사대주의인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왜
내 글이 사대주의에 젖어있다고 생각하는 지 말해보게." 한세연이 말을 꺼
내기 시작했다. "우선 포르노 얘기를 꺼내셨으니까 말씀드리겠습니다. 백
악관 주변에 포르노 가게가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교수님
이 그것을 보는 시각의 이중적 잣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
오. 만약 백악관 주변은 공원이나 일반 건물로 조성되어 잘 정리되어 있는데
청와대는 한 블록만 떨어지면 포르노가게가 있다고 한다면 교수님은 우리나
라는 자유로운 사회분위기가 있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게 무슨 국
가망신이냐고 하시겠습니까?" 갑자기 교수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 당연히 청와대 주변의 포르노 가게를 비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안교수는
그걸 시인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잘못을 시인하면 교수로서 권위가 서지
않는 것이다. 세연이 계속 말을 이었다. "교수님이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시기 전인 재작년에 학교 축제에서 동성애자들이 행사를 계획하자 그걸 직
권으로 금지하셨습니다. 이 학교의 위신 문제라고요, 그것과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는 관계가 없는 사항입니까?" 안교수는 헛기침을 하고는 세연에게
말했다. "학생은 지금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기성세대의 의견을 너무 색
안경만 쓰고 보는 것 같구만, 학보사에서 내 글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일
부러 도움을 줄 필요가 없네, 이만 나가봐." 세연은 나오면서 한마디 덧붙
였다. "참 그리고 교수님, 제가 알기로는 미국의 국회의원들이 우리 국회
의원들보다 깨끗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틀 뒤 세연은 자신이 거절한 안교수의 원고가 글자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국내에서 제일 많이 발행된다는 모 일간지에 실린 것을 보고 기가 막혔
다. 준영이 세연과 중국에 다녀온 지도 6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 동안
준영의 첩보활동을 빙자한 학교생활은 큰 변화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중국
에 다녀오자마자 중간고사가 있었고, 또 눈 깜짝할 새에 기말고사와 방학이
다가왔고 2학기가 개강되었다. 준영은 같은 과의 친구들과 함께 방학동안
하계수련회라는 것도 다녀왔다. 준영은 이 친구들을 데리고 배달섬으로 MT나
하게수련회를 가면 어떻게 될까 재미있는 상상을 하다 나중에는 정말 가능
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연은 방학 중에도 학보사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요즘도 간혹 북한의 석귀홍
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세연의 주변은 배달섬에서 쏘
아 올린 소형위성으로 24시간 호위를 하고 있었고 준영이 특별한 주의를 기
울리고 있었는데 KKK단의 와해 이후 별다른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준영은 인간들의 편견과 이기주의가 계속되는 한 KKK단과 같은 비뚤어진
단체들은 언제든지 또 나타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시온파의 조짐은 일
단 외부적으로는 조용했다. 시온파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정보과에서 부로 승
격한 정보부에서 관측이 가능한 영역까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일단 배달섬
에서 포착한 시온파의 간부는 서바인 군수회사 대표와 FBI 국장이며 성향상
CIA국장도 시온파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 외 각계에서 용의자
들을 선별해서 명단을 작성해 그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를 위해 지구 상
공에는 이미 4대의 23세기형 소형위성이 떠 있었다. 용의자들은 정말 다양한
국가와 계층에 분포되어 있었고 유태인에 국한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들의
그들 개인의 영달과 욕망으로 시온파의 권력에 빌붙어 있는 자들이었다. 준
영은 미국 뿐만 아니라 남미나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 중앙아시아의 마약 집
산지에 또 중국과 일본에 그리고 한국 내에 까지 곳곳에 권력과 재력을 바탕
으로 자신의 지위과 재산을 더욱 늘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그러한 힘의 역학 가운데 시온파의 음모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었다. 2007년 9월 2일 오후 5시 애틀란타 소재 CNN본사 사회부
로빈 애너스트는 저녁뉴스에 나갈 기사의 내용을 검토하고 있었다.
KKK단 간부살해사건 이후 로빈은 CNN에 정식 기자로 채용되었다. 물론 그
전에 FBI의 용의선상에 올라있던 관계로 집중취조를 받았지만 별다른 혐의점
이 나타나지 않고 여론의 힘을 얻어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 후 로빈은 연달
아 특종과 강단있는 기획기사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붙잡았고 지금은 CNN 사
회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기자가 되었다. 애너스트는 자신에게 행운을
준 사람들이 누군지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방송기자의 꿈을 키우며
이곳저곳에 문을 두드려봤지만 모두 실패를 하고 있던 로빈은 어느날 새벽
기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에
나간 로빈은 놀랍게도 KKK단 복장을 한 세 명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들과 함께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서 사건현장에 도착한 로빈은 그들이
준 기사를 가지고 리포팅을 했다. 피비린내가 나는 현장을 보고 로빈은 겁
에 질렸지만 일단 카메라 앞에 서자 자신감이 생겼고 단 한 번의 NG없이 원
고를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 원고 내용을 보니 이들은 KKK단이 아니거나 KK
K단의 노선에 반감을 가진 회원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고를 읽은 로빈은
보호를 위한 조치라는 설명과 함께 이틀 동안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감금
되었고, 감금에서 풀려나서 CNN에 왔다가 FBI로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조
사를 받은 사람은 로빈 뿐만 아니었다. 체육관에서 잠든채 발견되었던 KKK단
들도 당시 사건에 대한 증언을 해야 했다. 그들은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자
기도 모르게 잠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당시 세인들의 가장 관심을 가
진 것은 눈을 찔렸던 흑인 형제였다. KKK단에게 눈이 찔렸던 사람은 형제
중에 동생인데 그는 눈이 찔리면서 정신을 잃었고 형은 동생이 눈을 찔리는
것을 보고 기절했다는 것인데 그 후에 그들이 정신이 들었을 때는 알 수 없
는 곳에 감금되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KKK단 두건을 한 사람들이 식사를 갖
다 주었고 그들이 동생의 눈을 치료해주었다고 했다. 동생은 한 쪽 눈에 망
막이 손상되어 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어떻게 치료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주립병원 응급실이었다. 두
형제도 FBI의 조사를 받았지만 일단 풀려난 상태였다. 싱긋이 웃으며
지난날을 생각하던 로빈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자신을 무슨 매국노나
되는 것처럼 대접하던 FBI요원 해프만의 독사같은 눈길이 생각난 것이다. 해
프만은 로빈에게 무슨 일이 있거나 뭔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자신에게 연락
하라고 했던 것이다. 로빈은 아직 FBI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
고 있었다. 로빈은 쿠키를 커피에 적셔 입으로 가져가면서 오늘 기사에 다시
눈을 돌렸다. 오늘 기사는 "개인무기 소지금지에 관한 법안"상정에 관
한 보도였다. 미국 내 민간인들의 개인적 총기보유를 금지하는 법안이 시민
단체연합에 의해 발의되고 국회법율심사위를 통과해 오늘 하원에 상정된 것
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군인과 경찰 등 일부 법률이 정하는 공무를 위한
업무를 제외한 모든 민간인들의 총기소유가 금지될 것이고, 그동안 일어났
던 총기에 의한 범죄와 사고사건 등이 상당부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로빈 애너스트는 이와 관련해 기획기사를 준비중이었다. 로빈은 첫 멘트를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컴퓨터에 아래와 같이 쳤다. U.S.A is ca
rrying the Vietnam War in every two years. 미국은 2년마다 베트남전쟁을
치른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3만5천 명이 총기 사고로 희생된다. 미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11년 동안의 전사자가 5만8천 여명이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총기사고로 죽는 지 알 수 있다. 이 통계로
보면 하루에 105명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이고 그 중 16명이 어린아이였다.
영국의 경우는 1년을 통틀어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불과 30명도 안 된다.
영국도 총기는 허용되어 있지만 실제로 총기를 가지고 있는 민간인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총기사고로 죽는 사람의 45%는 자신의 집에 있는
총에 맞아 죽는다. 학교도 총기로부터 안전하지 않았다. 1999년 4월 20일
미 중부 콜로라도주 덴버의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동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이 날 두 명의 인종차별주의 학생은 총기를 난사 해 교사와 학생 1
5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했다. 사망자 중에는 재미교포도 한 명 있었
다. 그 이후에 미국의 등교모습은 마치 비행기 탑승모습과 같다. 금속탐지기
와 가방 수색을 통해 흉기소지를 검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
내 총기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다. 마국인들은 왜 그렇게 많은 총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미국의 군수산업 때문이라고 로빈은 생각했다. 총기회사가
매출신장을 위해 국민들이 총기를 갖도록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믿
었다. 로빈은 우선 총기소지 금지법의 통과를 요구하는 사회단체의 인터
뷰와 총기사고 희생자들 특히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 개인의 총기 소지에 대한 반대 여론을 충분히 수집했다. 반대
로 총기소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세상이 하도 흉흉하고 경찰도 믿을 수 없으니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미 민병대법 2조에 보장된 시민의 권리를 거론한다. 민병대법 2조
에는 "모든 시민은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할 권리가 있다
" 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법률은 미국이 독립되기 전 영국와 전쟁
중이고, 인디언을 학살하며 서부를 개척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법이었다.
원고를 정리하던 로빈은 잠깐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이래봐야 무슨 소용
이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총기금지법안은 사실, 1974년
처음 하원에 상정된 이후 지금까지 국회 회기가 시작될 때마다 하원에 상정
되는 법률이었다. 그 말은 즉 한번도 법률로 제정된 적이 없다는 말과도 같
았다. 이 법안은 상정될 때마다 하원의원들의 표결에 의해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곤 했다. 즉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들이 총을 가지고 있
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인데 이들 뒤에 총기제조회사와 군수회사의 엄청
난 로비가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오죽하면 NRA(The National Rif
le Association of America 미국총기협회)의 돈을 받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결국 이 번에도 이 법안은 부결될 것이다. 국회
의원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총기소지를 금지해야 한다고 하다가도 투표
만 하면 반대쪽에 표를 던지곤 했다. 로빈은 원고를 쓰면서 다시 답답한 마
음이 들었다. 2007년 9월 4일 화요일 오전 8시 구풍서는 교무실로
들어가면서 자신이 무척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감선생님의 안
내에 따라 교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아침 조회를 위해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교무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교감선생님이 선생님들에게 큰 소리로 구풍서를
소개했다. "선생님들, 여기 주목 좀 해 주십시오. 여긴 새로 오신 구풍서
선생님입니다. 전에는 강남에 있는 사립학교에 계시다가 해직되시고 오늘부
터 여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처음이라 낯설고 모르는 것도 많
으실 테니 다른 선생님 여러분이 열심히 도와주십시오. 구풍서 선생님은 10
학년 3반을 맡으실 거고 과목은 국어입니다. 구선생님 인사하시죠." 구풍
서는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며 잘 부탁한다고 했다. 선생님
들이 새로 온 교사를 환영하며 박수를 쳤다. 가까이 있던 한 선생님이 반갑
습니다 하며 악수를 청했다. "야, 구풍서!" 그 때 갑자기 자기를 부르
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그곳엔 놀랍게도 대학선배인 민태욱이 서 있는게
아닌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대전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해직당했다는 소문
만 들은 대학 과 선배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한 동안 참교육 활동도 하고 글
을 쓰기도 하던 민선배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이곳에서 만나
다니 풍서는 반가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니 선배님, 이럴 수가
선배님이 여기 계실 줄은......" 민태욱이 웃으며 말했다. "국어선생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교장선생님께 자네 얘길 했네." "아 그러셨군요.
오랜만입니다. 선배" "그래 언제 도착했나?" "한 두어 시간 전에요, 근
데 선배님, 도대체 여기가 어딥니까?" "아니 이 친구 여기가 어딘지도 모
르고 무조건 온 건가?" "예, 전 낙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을 구한
다고 해서...." 주변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던 선생
님들이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사실은 이곳의 선생님들 대부분이 이
런 식으로 이곳 배달국에서 교편을 잡기 위해 온 것이다. 섬에 있어서
가장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교육이었다
. 배달국의 주민들 중 미성년자는 총 1200여명 그 중 취학 연령 즉 6세에서
18세의 아이들은 820여명 정도였다. 기존에 23세기에 배우던 교과교재는 2
1세기로 올 때 모두 저장되어 가져왔지만 과연 그 교재의 내용 즉, 호전적인
역사관, 계산적인 도덕관, 복종적인 정치관 등으로 점철된 기존 내용을 그
대로 가르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집행위 모두가 공감하는 바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학생들을 대한민국의 학교로 위장 전학 시켜서 가르치는 방안까지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은 대한민국의 교육환경도 크게 나은 점이 없
다는 것이었고 아이들이 섬에 대한 보안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였기 때문에 결국 섬에 학교를 세우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
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21세기로 올 때 교직에 있는 사람은 대학교수 몇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했다. 사실 지식이나 정보는 학생들이 스스로 찾
고 배우면 되는 것이었지만 교육의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어떻게 올바른 가
치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줄 것인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그래서 배달국
교육국의 요청에 따라 "낙도에서 근무할 선생님"들을 수소문하여 모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모집한 교사 수는 현재 28명. 21세기형 학교의
설립은 아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항상 인터넷과 네트워크를 통한 수업
위주로 교육받고 어쩌다 실시하는 출석수업은 대부분 테스트를 위한 형태로
학교라는 개념을 이해하던 청소년들에게 학교는 새로운 문화의 시작이었다
. 21세기의 선생님들은 23세기에서 온 학생들에게 지식보다는 인성의 교육을
중시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배달섬은 하루가 다르게 정비를 갖추
고 있어서 예상보다 빨리 섬의 자위권과 대외적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외부
적으로 볼 때 섬은 300년이상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보였다. 명진건설의 특
수건축기술인데 23세기에 부자들이 선호하던 고풍스런 분위기의 건축법을 도
입시켜 적당히 낡고 유서 깊은 건물들을 상당수 만들어 냈다. 반면 섬의
정비는 가장 우선적으로 자체 방어력 위주로 재편되었고, 군용 함정의 건조
를 위한 조선소가 건립되었다. 그 원자재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강하경 중위
는 성광호 포스코 영업과장과의 만남이 더욱 잦아졌고 성광호 과장의 아들과
셋이서 식사를 할 정도로 진전을 보였다. 둘이 같이 잤는지는 알려지지 않
았다. 김시백 박사는 섬이 군사력 위주로 체계를 갖추어 가는 것은 바람
직하지 않다고 보고 주민 편익과 문화생활을 위한 시설에도 투자할 것을 지
시했고, 집단 거주형식에서 개별거주 형식으로 점차 개인주택의 건설도 진행
되고 있었다. 섬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양식은 기와를 얹은 전통가옥
형식이었다. 이렇게 된 데는 명진건설 사장이면서 경제국장인 서명진 사장의
음모가 있었다. 서사장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양식의 기와집으로 섬을
꾸미기 위해 모델하우스를 선보일 때 기와집을 아파트형과 프랑스형 이태형
형 가옥 등의 다른 모델들을 제치고 가장 근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건설용
로봇이 두 대 더 만들어지면서 배달국은 배달국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빨리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과 후에는 집에서 쉬면
서 한국에서 가져온 DVD를 보거나 21세기 음악과 위성을 통해 연결된 한국의
텔레비전을 보면서 빠르게 21세기 문화를 접해가고 있었다. 21세기 한국문
화와의 동질감을 형성하기 위한 섬 정부의 지원책 중의 하나였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 50주년 기념공연을 가진 가수 이미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 23세기에도 이미자의 노래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옛날 노래이고 교
과서에서나 배웠던 고전이라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못했는데 얼마전 50주년
기념공연을 TV를 통해 본 사람들이 그 매력에 쏙 빠져버렸다. 그 외 조용필
부터 김건모, 서태지 이효리, 보아로 이어지는 근래의 음악에 23세기 사람들
은 새로운 감성을 발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메마른 세계에서 살던 사
람들이라 21세기의 문화에서 느끼는 감성적 경험은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었
다. 23세기에 컴퓨터가 자동으로 작곡하는 음악에 식상해진 것이다. 배달국
사람들은 배달국의 은둔이 끝나면 교과서에서나 나오던 역사적 인물들인 한
국 가수들을 초빙해서 콘서트를 열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아직 배달국의
식량자급율은 10%대 수준이었다. 자급율이라 해봐야 수산물을 주변 바다에
서 포획하는 정도이고 인근 바누아트 왕국에서 열대과일 나무를 옮겨 심어
과수원을 만든 것과 한국에서 호주산 젖소를 사들여 만든 목장과 집유처리소
정도가 전부였다. 목장의 경우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여야 한다는
정영혜 박사의 강력한 주장으로 최우선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외의 식량은
전량을 한국에서 매주 사와야 했다. 식량 구입만 전담으로 하는 담당자만
14명이었다. 전 국민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 23세기에는 요리가 고수익의 전문직으로 요리 자격 따기도 어려울 뿐 아니
라 배우는 데 돈도 많이 들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단한 요리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거의 세끼 전부를 오토쿠킹을 통해 사 먹거나 만들
어진 패키지요리를 집에서 활성화시켜 먹는 정도였다. 그러나 신선한 재료를
접하게 된 사람들이 차츰 스스로 요리를 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었고
, 실제로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에 따라 섬에 있는 요리기술자들은
배달국 사람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시간 틈틈이 희망자들에게 요리기술
들을 전수하느라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요리기술자들은
힘은 들어도 기술자들이 많아져야 자신들이 보다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
으로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다. 섬이 21세기로 오고 나서 반 년 동안 늘
어난 인구는 총 42명으로 수업을 담당한 교사 28명 외에 12명은 출산을 통해
서 태어난 아기이고 2명은 귀화인이다. 배달국에 와서 배달국의 CPU 성능에
반해 돌아가기를 거부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케빈 로우와 강제 억류 중이다
가 정착을 희망한 중국인 쑨 퀴유안이었다. 케빈 로우는 변함 없이 컴퓨터와
씨름하며 하루를 보내고 간간이 바닷가를 산책하는 정도였다. 퀴유안은 자
신의 배를 찔렀던 특전대원과 결혼을 했고 아들 딸 구별 없이 최소한 넷 이
상 낳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섬의 재원은 그동안 준영이 만든 허위 명부
로 거래해 온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주식과 선물거래를 통해 부가가치가 어
느 정도 쌓이고 있었지만 장기적인 사업에는 적당하지 않은 판단으로 배달국
경제국에서는 새로운 사업분야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석유였다. 배달
국은 전세계 바다 속의 지하자원 지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를 시추할 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경제국은 석유 판매를 통해 섬의 부를 축적하고 동시에 석
유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국제질서에 주도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
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를 위해서 배달국은 이
제 국제사회에 그 존재를 알릴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지만 국방국 보고서는
그것이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일단 공격적 국방체
계는 앞으로 더 다듬어야 하지만 섬의 자위력은 완벽에 가깝다는 김시백 통
령의 판단에 따라 배달국은 조만간 국제사회에 등장하기로 결정하고 그 시기
와 방법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
=+=+=+=+=+=+=+=+=+=+=+=+=+=+=+NovelExtra([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