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노튼의 명단 (6) 노튼의 명단 ① 2007년
3월 23일 금요일 서울 K대 캠퍼스 21세기의 대학 수업은 전부 출석수업
이다. 처음에 그 사실을 알고 어떻게 공부를 해나갈까 걱정이 앞섰지만 막상
수업을 받아보니 기우였다. 23세기의 출석수업이 테스트 위주의 수업이고
대부분의 강의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습득인 것과는 달리 이 시대의 한 시간
강의 분량은 정보량이 아주 작았다. 한 시간 내내 강의한 내용을 정보량으
로 압축하니 2-3분 분량밖에 나오지 않았다. '또 1등은 따논 당상이군'
준영은 학기 초에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건 준영의 섵부른 판단이?
遮?걸 곧 알게 되었다. 23세기의 공부가 정보수집능력과 지식습득 위주로
하는 정보량을 우선시하고 있는 반면에 21세기의 역사 공부는 관점을 어떻?
?하는가 또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중요성을 두고 있었다. 준?
돛?21세기의 역사공부에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심취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준영은 강하경 중위와 함께 한국 내에 잠입하여 정보
수집과 향후의 배달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위한 사전준비를 위한 임무
를 맡았다. 준영은 K대학교에 입학하여 학생 신분이 되었고 강하경 중위는
특전사 대원들과 함께 여의도에 무역회사를 차렸다. 준영은 일단 배달국민
중 약 6십여 명의 사람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만들었다. 준영의 해킹실력으
로 이 사람들은 마치 대한민국에서 20세기말에 태어난 것처럼 모든 자료가
조작되었다. 준영도 당당히 수능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
러다보니 나이가 실제보다 4살 줄어들었다. 낮 동안의 많은 시간을 준영
은 도서관에서 보냈다. 밤 동안 가짜 인적사항 제작을 위해 인터넷을 헤매며
지내느라 잠을 거의 자지 않았지만 23세기에 거의 소멸된 고서를 보는 재미
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박사가 알면 임무태만이라고 화를 낼 정도로 준
영은 역사공부에 빠져들고 있었고 지난 번 대학생활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대학생활 속에서 21세기를 배우고 느끼느라 무척 행복했다. 준영이 느끼
는 또 하나의 행복은 바로 음식이었다. 준영의 입맛에는 모든 음식이 맛이
있고 처음 먹어보는 음식도 굉장히 많았다. 하숙집에서 주는 음식도 그에게
는 신선한 재료로 만든 전통음식이었다. 23세기에서 이렇게 한끼 먹으려면
반달치 정도 생활비가 들었을 것이다. 현재 배달섬의 재원은 미래정보를
이용한 투자를 통해 조달하고 있었다. 뉴욕증시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식
에 투자한 돈과 경마, 복권 등이었다. 문제는 노튼이 죽고 난 후 앞으로 진
행될 역사는 준영 등이 알고 있는 역사와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새
로운 재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준영은 배달섬에서도 모르게 주말마다
경마장을 가거나 따로 주식을 운용하여 개인자금을 만들어 두고 있었지만
개인적인 욕심은 아니었다. 앞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경마
장에서 돈을 따는 것도 기술이 필요했다. 너무 큰 돈을 따서 소문이 나거나
얼굴이 알려지거나 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래서 개인 구좌가 필요한
전화구매나 인터넷구매 없이 오직 경마장에 방문해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
는 범위에서 조금씩 벌어들였다. 반면 주식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느
시점을 정해서 필요한 종목을 사두면 되었다. 다만 주식의 경우 노튼의 죽
음이니 배달국의 이동이 어느 경로로 영향을 미치는 지는 모르지만 준영이
가지고 있는 자료와 서서히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준영은 오늘 수업이
끝나자 마자 학보사 편집실로 향했다. 만나 봐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 사
람이 이렇게 가까운 곳이 있었다는 것은 아주 의외였다. 한세연
은 요즘 뭔지 모를 불안감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
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한 번씩 주변을 둘러보고 하는 일이 잦아졌다. 세연
은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외모를 가지긴 했지만 그런 시선과는 다른 뭔
가 차갑고 불쾌한 느낌이었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다가 누가 듣고 있는 느
낌도 들었다. 누가 스토킹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
러나 요즘 학기초를 맞아 피곤이 누적되어 그런 기분이 드는가 보다하고 애
써 밝게 생활하려 애쓰는 중이었다. "세연아 누가 너 찾아 왔는데 ?"
세연은 학보사 편집실에서 마지막 기사정리를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학보
사 회원의 안내로 들어 온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좀 들어 보이지만
한 눈에 신입생이라는 걸 알았다. "누구시죠?" 세연이 자리에서 일어서
며 물었다. "예, 전 서준영이라고 사학과 07학번입니다." "저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예 지난번 학보에 쓰신 기사 때문에 궁금한 게 있어서요
." 세연이 입을 꼭 다문 채 코로 숨을 한 번 내쉬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그래서 왔구나, 남자다 이거지?' 이런 건수를 가지고
세연에게 작업을 들어오는 남학생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래요, 말씀하
시죠." 준영은 세연을 보며 사진보다 훨씬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200년이나 된 사진이 별 수 있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멍하니 세연을 바라보
고 있다가 세연의 말에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 예! 저번 기사에 학교
내 이중 국적을 가진 학생들의 실태를 쓰셨는데, 저도 그 중 하나이거든요?
그 기사가 우리 같은 이중국적자를 너무 편파적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아 따
지러 왔습니다." "아~하 그래요?" 세연이 기가 찬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어떤 점이 편파적인가요?" "예 저도 이중국적자이긴 하지만 대
한민국을 누구보다 사랑하거든요? 저는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 온몸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처럼 특례입학도 아니고 전 시험 쳐
서 들어왔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준영은 좀 찔리긴 했지만 당당하게 말
했다. "아 그러세요? 대단하시네요. 그럼 군대도 가실 생각 있으세요?"
"예? 군대요? 어...저 군대는 벌써 갔다 왔는데요?" "거짓말 마세요. 무
슨 이중국적자가 군대를 갔다와요? 말장난하려면 그만 가보세요" 세연이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원고에 눈을 돌렸다. 준영은 세연의 책상 옆에서 허
리만 굽힌 채 귓속말을 하듯 조용히 말했다. "이중 국적학생에게 무슨 원
한이라도 있나요?" "기사에 쓴 대로예요. 그들은 외국국적을 가졌다는 이
유만으로 특례입학을 하는데다 장학금까지 받아요. 기숙사에도 우선적으로
입주가 되고 있구요. 전 학교당국의 이런 불공평한 정책이 시정될 때까지 계
속 다룰 생각입니다. 장학금 받으니까 좋아요?" "장학금 안 주던데요? 다
음 학기부터 받을려구요.....근데 제가 어느 나라 국적을 갖고 있는 지 궁금
하지 않으세요?" "왜요?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라도 되나요?" "헉!
거의 비슷하긴 한데 좀 다릅니다." 드디어 세연이 고함을 질렀다. "
이봐 신입생, 선배 괴롭히지 말고 이만 나가줄래?" "알겠습니다. 선배님.
담에 또 뵙죠." 편집실을 나가다가 준영이 갑자기 돌아보며 말했다. "
그런데요, 저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게 돼서 얼마나 기쁜 지 선배는 아마
상상도 못할 겁니다." 준영은 세연을 만나고 나오면서 후회를 했다. 좀
진지하게 말을 거는건데. 준영은 세연의 모습에 갑자기 자신의 페이스를 잃
어버리고 서투른 짓거리를 한 것 같아 괜히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왜 그런
걸까? 세연은 기가 막혔다. 기사에 대한 문의를 핑계로 작업 들어오
는 인간들 하나 하나 상대하기도 힘든데 나중에는 별 놈을 다 보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그러나 그 녀석이 돌아보며 말한 한 마디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 세연은 사학과로 전화를 걸었다. "윤선배, 나 세연." "응, 세연아
왠 일? 밥 먹었어?" "아뇨 기사 끝내고 먹을려구, 근데 언니, 언니 과에
서준영이라는 신입생있지?" "아 서준영, 있지 우리과 공부벌레?" "그 사
람이 공부벌레야? 근데 이중 국적이라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중 국적 아냐?" "이중 국적이라고?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잠깐만
" 수화기 저쪽에서 잠깐 침묵이 생겼다. "누가 그래? 이중국적이라고?"
"자기 입으로 그러든데" "야 걔가 너한테 관심있나봐, 다 뻥이야. 여기
내가 학적부 빼 가지고 왔는데 검정고시 출신이고, 중학교, 초등학교 다 부
산에서 나오고 태어난 곳도 부산으로 되어있어." "군대는?" "아직 안갔
지, 1988년생이고 이제 겨우 19살인데..." 뭐야? 88년생? 아직 어린게
선배를 갖고 장난을 쳐? 생긴 건 겉늙어 가지고 차라리 당당하게 데이트 신
청이나 하지, 남자들은 그걸 모른다니까, 세연은 픽 웃으며 시간 낭비만 했
다는 듯 다시 기사작성에 매달렸다. 기사에 열중을 하던 세연은 갑자기 왠
지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나 아무도 없다. 그러나 왠
지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기분이 떨쳐지지 않았다. 세연은 며칠째
자신을 따라 다니는 불안감이 그냥 기분 탓이나 피곤해서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준영은 하숙방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세연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그녀가 왜 노튼의 명단에 올라가 있는
지 도무지 알 수 가 없었다. 세연은 그냥 평범한 여학생이고 대학학보사 기
자이다. 단지 특이한 점은 이미 지난 1년간의 학보 기사를 통해 학교에서 상
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정도였다. 가정환경도 평범했다. 21세기에 와
서 준영이 직접 만든 검색프로그램을 통해 그녀의 정보를 찾아보던 준영이
마우스를 갑자기 멈추었다. [남북대학생 고구려 유적 합동탐사단 일정]
4월 6일 (금) 서울 출발 북경 도착 4월 7일 (토) 북경 출발 ..... 지린
(吉林)성 지안(集安)시 도착 저녁 6시 북한 대학생 탐사단과 만남 4월
8일 (일) 광개토대왕비 유적지 탐사 ... ... ... 다음 달 한세연
이 참가할 탐사일정이었다. 이게 노튼의 명단과 연관이 있을까? 한참 모니
터를 보고 있던 준영은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듯 지갑에서 CM를 꺼내 컴퓨터
옆쪽의 슬로트에 삽입했다. 이 컴퓨터는 21세기의 인터넷환경과 배달국의
네트워크를 호환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최근 과학국에서 개발한 작품이었다
. 키보드와 마우스를 번갈아 조작하던 준영이 갑자기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얼어붙었다. 모니터에는 인터넷 기사문이 떠 있었다. [중국 민항기 대
형참사 승객 192명 전원 사망한 듯]...............................2007년
4월 7일 북경에서 지안으로 가던 중국국내선 항공기 원인미상의 공중폭발
일으켜 고구려 유적 합동탐사단 참가 중인 한국인 대학생 26명도 탑승한
것으로 밝혀져 그 기사 아래쪽으로 사망자 명단에 한세연이라는 이름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
=+=+=+=+=+NovelExtra([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