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배달민족사-7화 (7/83)

(5) 은둔의 시간 (5) 은둔의 시간 ② 최성호씨는 21세기에

서 세 번째 아침을 맞이 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배달의회 집행

부에서는 최성호씨에게 아침식사가 끝나는 대로 상황탑 건물로 오도록 요청

했다. 최성호씨는 명진건설의 직원이다. 다른 회사 동료들은 오늘부터 집

행부가 지시한 건물들을 짓는데 투입되겠지만 최성호씨는 오늘 하루 작업을

빠지게 되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은 군대에

서처럼 줄서서 식사를 배급받고 있다. 음식은 23세기에서 가져온 인스탄트

식사이지만 사람들은 기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만간 21세기의 한국에

서 신선한 재료들이 도착할 것이라는 기대에 다들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최씨도 줄의 맨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어, 최성호씨!" 앞에 서

있던 동료가 뒤를 돌아보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몸은 괜찮아요?" "잘

잤어요?" "좀 어때요?" 최성호를 본 동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안부를

묻는다. 안면이 없던 사람들도 지나가며 눈으로 인사를 한다. "아직까지

는 별일 없는데요." 최성호가 대답을 하자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며 먼저

식사하기를 권했다. "먼저 드세요." 오늘 최성호씨가 이렇게 사람들

의 관심을 받는 것은 오늘 하루의 최성호의 모습은 바로 앞으로 자신들의 일

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 숨을 크게 마셔 보세요." 식사를 끝내

고 상황탑으로 온 최성호는 곧바로 진료실로 안내되어 혈압을 쟀다. "특별

히 다른 느낌 같은 것은 없나요?" "예, 아직까지는 평소와 똑같습니다."

"지난 번 접종받은 시간이?" "여기 카드가 있습니다." 최성호는 자신의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엄지손가락의 손톱에 ID카드가 붙어있었다. 이 I

D카드는 23세기에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여권 등의 모든 신분증과 신용

카드와 결재수단 등을 통합하여 한 장으로 카드로 관리되던 것으로 각종 의

료기록, 전과사실, 출신학교와 군복무사항, 연체유무 기타 등등의 정보를 모

두 담고 있는 카드인데 집이나 차의 열쇠 기능까지 확장된 모델이 나온 상태

이다. 형태는 조그마한 유리판처럼 생겼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반지나 목걸이로 만들어 가지고 다니기도 하지만 최근의 유행은 손톱을 살짝

파내어 심는 경우가 많았다. 도난이나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의

사가 스캐너를 손톱 위로 한 번 스치자 최성호의 각종 기록이 모니터 되었다

. 의사가 접종기록을 클릭하자 스톱위치같은 숫자가 나타났다. 00:22:24

00:22:23 00:22:22 접종 시간까지 30분이 조금 덜 남았다. 최성호가

23세기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아마 오늘 아침 일찍 어쩌면 어제 저녁에 라이

프가드를 접종받았을 것이다. 그 때 진료실로 김시백 박사가 들어왔다.

"좀 어떠세요?" 김박사는 최씨에게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말

을 이었다. "불안하시면 지금 접종을 받으셔도 됩니다. 23세기에서 가져온

라이프가드가 아직은 여분이 있거든요. 군인들에게 지급된 걸 일단 의회에

서 모두 모아놓았습니다. 사실 저도 내일로 접종일이 돌아와서 제가 먼저 실

험대상이 되어도 됩니다." 김박사는 6일 전에 노튼사로부터 라이프가드 판

매중지 통보를 받은 것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어차피

누군가 해야 되는 일이고 이게 잘못되면 우리 배달인들 모두의 일이 아닙니

까? 기다려보죠." "예, 좋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십시오. 아마 괜찮을

겁니다." 김박사가 시간이동을 하면서 가장 걱정한 것은 G-72 바이러스

가 배달섬의 공기에도 퍼져 있었기 때문에 21세기에 G-72까지 공기에 섞여

같이 오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였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섬을 감싸는 쉴

드를 펴서 섬과 외부공기를 일단 차단했던 것이다. 물론 도착할 때 내리는

비를 막는 것도 필요했지만 비가 오는 것과는 관계없이 도착하자마자 쉴드

작동을 명령해 둔 상태였던 것이다. 그 이후 대기상태를 측정하여 쉴드가

대기 중에 남아있는 지 검사를 하고 있지만 검사는 다각적으로 진행되기 때

문에 결과가 나오려면 아직 36시간 정도가 더 걸린다. 그래서 아직 쉴드를

제거하지 못한 상태로 첫 번째 접종대상자가 바로 최성호씨였다. 최씨는 스

스로 라이프가드를 접종받지 않겠다고 자원했다. 최씨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

들이 시간이동할 때 분명히 짧은 시간이지만 진공상태를 느꼈다고 진술했다

. 그랬다면 지금 섬을 감싸고 있는 공기는 23세기의 오염된 공기가 아닌 21

세기의 공기일 것이다. 김박사도 그렇게 느꼈지만 빠른 속도감 때문에 진공

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보고 지금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23세기에

서 G-72를 가지고 왔다면 21세기의 선조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

는 것이었다. 드디어 접종시간이 되었다. 최성호의 ID카드가 접속된 컴

퓨터에서는 접종시간 5분전부터 10초 간격으로 경고음을 내고 있다가 막상

접종시간이 지나자 조용해졌다. 최성호씨도 조용했다. 만약 라이프가드가 필

요하다면 기침부터 시작하다가 눈물, 콧물,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몸에서 열

이나다가 정신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는 3일후에 사망하게 된다. 최성호

씨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쿨럭" 연이어 기침을 하

더니 최성호씨는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의사가 라이프가드를 준비

했다. 한번의 연이은 기침 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1분쯤 후 최성호

씨는 또 기침을 시작했다. 두 번째 기침은 좀 더 길게 이어졌다. 의사가

볼펜처럼 생긴 주사기에 라이프가드를 주입했다. 이 주사기는 고통없이 접

종이 가능하고 약 2미터 전방에서도 발사하여 주사할 수 있는 주사기이다.

기종 주사기가 한번 사용 후 버리는 옛날 방식에서 사용하자마자 자체 소독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1회용으로 바뀌었다가 현재의 비접촉방식으

로 바뀌어 교체나 소독없이 여러번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접종할까요?" 의사가 주사기를 들고 말했다. 김박사는 조금 더 기다리

고 싶었지만 최성호씨의 의견을 존중해야 했다. 김박사가 최씨를 바라보자

최성호는 기침을 계속 하면서도 손을 저었다. "아뇨 잠시만요. 쿨럭 쿨럭

쿨럭 조금 쿨럭 달라요. 전에도 쿨럭 쿨럭 쿨럭 조금 늦게 맞은 적 있거든

요. 쿨럭 쿨럭 근데 그 때랑 좀 틀려요." "하지만 너무 늦으면 뇌세포가

죽기 시작합니다." 의사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열이 오르기 전엔

뇌세포는 괜찮소." 김박사가 의사에게 말을 하고 최성호에게 물었다.

"어떻게 다릅니까?" "쿨럭 쿨럭 쿨럭 잘 모르겠지만 좀 달라요, 쿨럭 쿨럭

물이.... 물이...." "물을 드릴까요?" "아뇨 그때는 물이...쿨럭 그러

니까 굉장히 목이 말랐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대신 엄청..... 졸린데요"

그 말을 마치고 최성호는 정신을 잃었다. 아니 잠에 빠져들었는 지도 모른

다. 의사가 체온계를 최성호의 이마와 귓불 손바닥에 대어보더니 말했다.

"열은 없습니다." "계속 지켜 봅시다." 같은 시각 뉴욕의 한 호

텔방 "너무 단촐하게 챙겨왔네요." 하명찬 중사가 노튼의 짐을 챙기더

니 강하경 중위에게 말했다. 노튼의 짐은 작은 노트북 하나와 CM(크리스탈메

모리) 14개, 이미 한 번 사용해서 못쓰게 된 타임머신, 그 외 잡동사니였다

. "그런 말 마세요 그 CM 14개 정보량이면 이 시대에서는 도서관 5개 분량

이예요." 두사람은 호텔을 샅샅이 뒤졌다. 이윽고 냉장고에서 그들이 원하

는 것을 찾았다. "조심하세요. 잘 못 해서 깨지면 21세기도 끝장이예요

." 그것은 21세기 사람들이 보면 마치 당구공처럼 생겼다. 강중위가 주머

니에서 손전등같은 것을 꺼내 비추자 당구공 안이 보였다. 안 쪽에 한 번 더

밀봉된 중간 캡슐이 보이고 그 안 쪽에 투명한 액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바로 G-72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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