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노아의 방주
"노튼사의 초대회장인 프랭크 노튼 회장은 2007년 2월 12일 일요
일에 뉴욕의 경마장에서 첫 번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 6경주 복승
식에 1천달러를 배팅해서 260만달러를 땄습니다. 당시 1천달러라면 현재 화
폐가치로는 150만달러입니다. 미리 결과를 알지 못한다면 미친 짓이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주 역시 같은 곳에서 140만달러를 땄습니다." 준영은 조
용히 국회의사당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국회의사당의 의원석에는 3천 2백
명의 배달인들이 조용히 준영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인 장소
는 국회의사당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곳은 온라인 상의 한 대화방일뿐이다.
각 이용자들의 MS를 연결해 온라인 상의 가상의 공간 속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대화방의 형상은 방장이 결정하는 데 실제로 있는 장소부터 직접
디자인한 공간까지 다양한 모습의 대화방을 만들 수 있다.주로 소규모의 인
원이 만나는 대화방은 원탁의 기사들이 회의를 하는 원탁이나 조선시대 사랑
방 등의 배경이 인기가 많았고, 인원이 많을 때는 국회의사당이나 20세기형
강의실 등의 배경이 인기가 높았다. 대화방에 접속하면 모두 영상으로 만나
는 것이지만 실제로 만나는 것처럼 생생하게 모든 것이 구현된다. 준영
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또한 2007년 3월 17일 목요일 16주간 1등 당첨자
가 나오지 않아 2억 6천만달러가 이월된 호주의 파워볼 복권의 1등 당첨자가
17주만에 나타났습니다. 당연히 노튼회장입니다." 대화방 안의 사람들은
당시 2억 6천만달러면 지금 돈으로 도대체 얼마나 되나를 머리 속으로 열심
히 계산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은 "배달인"이라고 불리는 이프의 특
수회원들의 온라인 모임이었다. <배달인>들 명단과 인원수 등 모든 게 비밀
인 관계로 이 번 모임도 아주 비밀리에 이루어 졌다. 비밀리에 모이는 것이
위험하기는 했지만, 노튼사와 정부는 라이프가드 중심의 치안체계를 맹신하
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런 사적인 모임이나 정부 비판적인 모임에 대해서
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라이프가드가 해결해 줄 것이라
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그리고 어차피 이프의 온라인 모임은 이것이 마지막
이 될 것이다. 사실 준영은 배달인이 되고 난 후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특수회원들의 명단을 보면서 배달인들의 조직망에 경악하고 있었다.
과학자로는 천문학자인 김시백 회장을 비롯해서 물리학자 임운학 박사, 파동
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영역을 개척한 최석록 교수가 있었고, 의학박사
여러명, 포항제철 연구소 연구원 등 각계의 기술전문인과 전문인력 들이 있
었다. 현직 군인으로는 기갑부대 대대장 계운필 중령과 공군조종사인 정기욱
대위와 특전사 중대장 강하경 중위, 일본과의 해전에서 놀라운 전과를 기록
한 바 있는 조승태 소령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노튼사가 명령한 전쟁을 여
러 번 수행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들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우리 민족을 위해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로 전쟁에 임하여 왔지만, 항상
스스로를 체스판의 말에 비유하며 자신들의 운명에 피눈물을 흘려온 사람들
이다. 그리고 준영처럼 아직 학생의 신분인 회원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모
두 범상한 인물은 아닌 듯 했다. 준영은 김교수의 명령대로 2007년부터
약 10년간의 전세계를 망라하는 각국 뉴스와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스포츠경기의 결과와 경마결과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시
에 다른 배달인들에게는 자신의 분야에 따른 최신의 기술정보와 지식을 수집
하도록 명령이 내려졌다. 노튼사와 정부의 감시 속에서 수집활동을 하는 것
은 쉽지 않았지만 저마다 맡은 바 최선을 다했다. 특히 준영은 현재 노튼사
만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기술정보를 해킹하기 위해 몇 일째 한숨도 자지 않
았다. 수면대체제(복용하면 4시간정도의 수면을 한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일
종의 각성제, 많이 먹으면 불면증에 걸리는 등 부작용이 있다.)를 섭취하면
서 버티고는 있지만 모니터와 MS 등 정보 검색으로 눈이 많이 피로했다.
준영은 브리핑을 계속했다. "노튼 회장은 그 이후에도 경마와 복권, 스
포츠베팅 등으로 돈을 모았는데 가장 큰 건수는 바로 주식이었죠. 그렇게 모
은 돈으로 2년후인 2009년 노튼화학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게 현재 이
지구의 운명을 몰고 간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현재 확보한 정보는 이
외에도 몇 가지 설계도 및 의약품 제조공식, 물리학 논문 등인데, 저는 해킹
은 했지만 그 내용의 해석이나 응용은 잘 몰라서 일단 김박사님께 전해드렸
습니다. 김박사님의 말씀을 들어보시죠." 김박사가 천천히 단상으로 올
라왔다. "제가 타임머신의 이론을 정립한 게 3년전, 그걸 실제로 제작해
서 완성한게 9개월전입니다. 그동안 배달인 여러분의 많은 노력으로 우리는
이제 2년 이상 준비한 작전명 [노아의 방주] 계획의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
다. 물론 더 많은 것을 더 준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일단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충분하리라고
봅니다. 그간 여러분의 노력에 치하를 보냅니다." 박수가 나왔다. 박수소
리가 잦아들자 누군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
다. 박사님. 만약 우리가 과거로 가서 활동을 하다가 우리 중 누군가의 조
상이 죽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조상이 죽으면 우리도 사라지나요?
그리고 만약 우리가 노튼회장을 죽이면 노튼사가 개발한 과학기술이 없어지
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걱정을 하시는 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김박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현대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시간차원과 인과관계론 부분의 연구는 극히 미진한 상태
입니다. 20세기 초에 러시아의 과학자이자 소설가인 아이작 아시모프(Issac
Asimov 1920∼1992)는 이 부분의 연구에 가장 공로가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론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고 학계에서 그 이론을 인
정하지 않자 자신의 이론으로 SF소설을 썼습니다. 이 타임머신은 과거로만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사용된 타임머신은 재사용이 불가능합니다.
흔히 우리가 타임머신이라 하면 시간여행기계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것은 굳
이 이름을 붙힌다면 시간취소기계라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우리가 200년전
으로 돌아가면 우리를 제외한 모든 시간이 모두 취소됩니다. 우리가 돌아가
는 시점 이후의 역사는 모두 없었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이 우주 즉 태양계 또는 태양계가 속해있는 우리 은하계에만 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가 200년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200년이 사라지는 것
은 아닙니다. 우리 기억 속에 그 200년이 살아있듯이 우주 전체의 시간 속에
200년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그 시간동안 만들어진 원인물들은 우리가 간
과거에 그 결과물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이전의 타임머신 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과거로 갔다가 미래로 다시 돌아오면서 생기는 시간의 모순은 존
재하지 않게 됩니다. 전체 우주의 시간은 태양계의 시간이 어긋나는 것과
는 무관하게 그대로 흘러가게 되는 거죠." 김박사는 말을 잠시 끊고 좌중
을 둘러봤다. 열 몇 시간 후면 이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게 될 것이
다. "어떻게 노튼 회장이 어떻게 타임머신을 손에 넣은 것인지는 모르겠지
만 이것이 노튼사에서 회장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타임머신의 설계도입니다.
두 달 전 여기 있는 준영군의 도움으로 이것을 노튼사의 중앙서버에서 빼내
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기계의 설계도 구석에 원 제작자의 이름이 적혀 있
었습니다." 김박사의 시선 앞쪽 공간에 설계도가 나타났다. 3D로 제작된
설계도는 전후좌우로 돌려가며 볼 수 있게 만든 약간 구식의 설계도였다. 설
계도는 놀라울 만치 김박사가 만든 타임머신의 설계도와 똑같았다. 설계도를
확대하자 설계자의 이름이 나타났다. 'design by Seaback Kim' 사람들
이 모두 탄식을 질렀다. "이 설계도에 왜 제 이름이 있는지는 또 제가 만
든 이 타임머신이 어떻게 노튼회장의 손에 들어갔는 지는 모르지만 노튼회장
이 200년전에 시간이동을 하기 전의 세상에서 이걸 제가 만들었나 봅니다.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차원에서 만든 것이긴 하지만 사실 전 이 세상이
이렇게 된 것에는 제 책임이 크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그
래서 꼭 제 손으로 이 지구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타임머신을 만든 과학
자에게 보내는 존경과 찬사의 의미였다. 박수소리가 잦아들기 기다렸다가 김
박사가 말을 이어갔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하도록
하고 우선 지금은 서둘러서 일을 마무리할 때입니다. 이 타임머신이 한 번
에 과거로 갈 수 있는 시간은 199년 262일 15시간이 한도입니다. 오늘 최대
한으로 가능한 과거까지 가더라도 이미 노튼회장이 경마장에서 첫 번째로 돈
을 딴 그 3일후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번째 경마일 즉 2007년 2월 18
일에 뉴욕 경마장에 가야 합니다. 이 날을 놓치면 그 다음에는 노튼을 잡기
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노튼이 당첨된 호주 파워볼 복권은 과거로 갔을 때
우리에게도 아주 유용한 자금이 될 것입니다." 김박사의 설명이 길어지
자 옆에서 준영이 시간이 없다는 눈짓을 했다. 김박사가 준영을 한 번 흘깃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사실 전 북태
평양 바다 위에 인공으로 만든 섬 위에서 접속중입니다. 명진건설의 나명진
사장님이 이 섬을 만드는 데 거의 전 재산을 다 들이셨습니다. 또 나사장님
외에도 많은 분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섬에는 텔레포트
단말기를 설치 해놓았습니다. 섬에는 우선 불편하긴 해도 생활이 가능하게
주거용 건물과 사무용 건물을 몇 동 만들어 놓았고 가능한 장비나 기계도
이미 설치했습니다. 공장도 하나 있습니다. 군사장비는 마지막 순간에 텔레
포팅될 예정입니다. 우리는 이 섬을 통째로 과거로 가져갈 것입니다. 지금부
터 앞으로 두 시간 안에 그 섬으로 텔레포팅하십시오. 이 섬은 우선 배달섬
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텔레포팅 주소는 E137.56.034 N22.47.107입니다
. 시간을 엄수하시고 데려올 사람은 같이 오셔도 좋지만 보안에 신경을 쓰십
시오. 한꺼번에 많은 인원과 장비가 섬으로 텔레포팅하게 되면 노튼사의 전
산망에 체크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텔레포팅 회선이 부족한 관계로 속
도가 좀 느려질 수 있으니까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신속히 준비를 해야합니
다.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김박사가 모임이
끝났음을 알리자 대화방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화방 안의
전광판에 대화방에서 나간 사람들의 아이디가 스크롤되기 시작했다. "준
영군" "예 박사님" "회원들이 수집한 정보는 모두 모아놓았나?" "예,
CM으로 총 73개구요. 모두 이미 섬으로 텔레포팅 해놓았습니다." "잘했네
, 그리고 지금 즉시 이프의 준회원과 정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섬으로 초청
을 하게, 자세한 내용은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정팅이라고 공지하도
록, 아니 번개팅이라고 할까?" "그냥 그렇게 하면 불참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요?" "할 수 없지, 그것도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 다음 편에
계속 - 아이작 아시모프(Issac Asimov 1920∼1992) 미국 공상과학소설
가·생화학자. 러시아 스몰렌스크 부근 출생 3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귀화하였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보스턴대학에서
생화학자로서 핵산연구에 전념했다. 공상과학소설가로서의 활동도 활발했는
데, 공상과학소설에 대한 그의 공헌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로봇을 주제로 한 단편집 《나는 로봇(1950)》으로 대표되며, 로봇을 주제로
한 유명한 <로봇공학의 3원칙>은 그가 제창한 것이다. 둘째는 3부작 《은
하제국의 흥망(1951∼53)》을 중심으로 한 인류의 미래사를 그린 연대기식
공상과학소설이다. 셋째는 공상과학소설과 미스터리를 결합시켜 새로운 분야
를 연 작품으로, 로봇형사가 활약하는 《강철도시(1953)》 《벌거벗은 태양
(1957)》이다. 이 밖에 평행우주와 외계인을 테마로 한 《신들 자신(1972)》
으로 《은하제국》에 이어 위고상을 받았다. 공상과학소설 이외에도 본격 미
스터리 등을 썼고 다수의 계몽적인 과학해설서도 저술했다. 1977년 봄 《아
이작 아시모프 SF매거진》을 창간하는 등 출판인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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