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멈춰진 시간 (1) 멈춰진 시간 "혹시
타임머신을 발명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 없나?" 김시백 박사
는 100년도 더 된 듯한 고물 천체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준영에게 말했다.
"타임머신이 발명되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그리고..."
준영이 들고 있는 커피잔의 뜨거운 김을 훅훅 불어내며 덧붙혔다. "아
마 과거에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발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 "왜?" "만약에 한 백년후든지 천년후든지 누가 타임머신을 발명해서
과거로 왔다면, 우리가 그걸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요?" "하지만 준영
군, 미래에서 누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에 왔다면 그걸 어떻게 알겠어? 누
가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하면 자네는 믿을건가?" "믿어줘야요, 몇 가지
증거만 보여주면." 김박사가 싱긋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자네가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간다면 미래에서 왔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또
타임머신을 발명했다면 그걸 주변에 알릴 수 있을까? 아님 학계에 발표하겠
나? 학계가 아니면 정부는 어떤가?" 김시백박사가 준영의 커피잔에 커피를
더 부어주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흠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준영은 타임머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일이
있을까를 잠시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이다. 특히 지금의 한반도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타임머신은 아주 강
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준영은 다시 한 번 과학기술은 발전했으나
전세계가 미국의 발 밑 아니 미국 내에서도 (주)노튼사로 대표되는 미국의
지배층의 발 밑에서 신음하는 암울한 현실을 되새겼다. 타임머신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어
떤 일도 타임머신의 존재를 남들이 알아서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타임
머신이 있다면 자넨 무엇을 하고 싶은가?" 갑자기 김박사가 물었다. "하
고 싶은거야 많겠죠. 과거로 가서 제 공부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어오거나
, 미래로 가서 증권시세나 경마 우승마를 보고 오면 떼돈 벌겠죠?" 영준
이 짐짓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것뿐인가?" "그야 실제로 타임머신만 있
다면야.........." 준영은 그 뒷말은 삼켰다. 준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박사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준영군, 이제 등업
을 할 때가 되었지?" "예?" 등업!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인가? 준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두 사람은 "IF(
만약에)...?"라는 이름의 인터넷 동아리 회원이다. 동아리는 말 그대로 "만
약에"라는 주제로 토론을 펼치는 동아리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낮았다면>
, <안중근 의사의 거사가 실패 했다면> <명성황후가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제3차 한일전쟁에서 한국이 이겼다면> 등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이 동아리
는 토론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그 구성원들의 역사의식으로 동질감이 강한 동
아리였다. 요즘은 <만약 노튼사가 탄생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주제가 진행중
인데 그 토론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그런데 그 동아리에는 숨겨진 모임이
있었다. 바로 배달인이라는 특수회원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영준은 전
공이 역사학인지라 이 주제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
런데 그 동아리는 회원이 준회원, 정회원, 특수회원이라는 구분으로 이루어
져 있는 데, 준회원, 정회원이 주로 주제 학생들이나 젊은이들로 구성된 반
면 특수회원들은 그 명단조차 알 수 없었다. 아니 몇 명인지 조차 알 수 없
었다. 게다가 특수회원만이 열람할 수 있는 자료가 간혹 업데이트 되곤 했는
데 제목도 <특수회원 전용게시물 23호> 등의 형식이었다. 영준을 비롯한 정
회원들은 특수회원들에게만 제공되는 정보가 궁금하기도 했고, 배달인이라는
계급장을 얻고 싶어서 등업을 위해 열심히 활동을 했지만 2년 넘게 그 기회
를 부여받지 못했다. 아니 등업할 수 있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
다. 일부 정회원들은 해킹을 시도하기도 했다. 사실 남들은 모르는 일이었지
만 해킹 실력은 전세계적으로 준영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역사학도와 해킹
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야지만 역사학과 학생이라는 점이 준영의 그런 비
밀을 숨기기에 적당했다. 문제는 준영의 실력으로도 해킹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일개 동아리의 보안시스템이 미 국방부나 노튼사의 보안시스템(준
영이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던)을 능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이
특수회원 전용영역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동아리의 회장이 같은
학교의 천문학과 교수인 김시백 박사였다는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그것도
준영의 끈질긴 해킹과 자료수집에 의해 알아낸 것이다. 준영이 김교수에게
찾아가 등업을 요청하자 김교수는 들고 있던 책을 떨어트릴 정도로 놀랬다
. 처음 보는 학생이 찾아와 대뜸 이프의 회장님을 찾으니 놀랄 수 밖에. 그
게 4개월 전이고 김교수는 준영에게 6개월만 기다릴 것과 비밀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그런 김교수가 등업을 하고 싶냐고 묻는 것이다. 약속한 6개월까
지는 아직 2개월이 남았는데. "그럼 내가 자네에게 보여줄 게 있는데,
연구실로 같이 가지." 김시백 박사는 방금 천체망원경으로 촬영한 사진을
들고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 도착한 김박사는 한 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책장을 옆으로 밀어내었다. 책장은 레일을 따라 소리없이 한쪽으로 밀
려나갔다. 책장 뒤에는 또 하나의 책장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가
지고 있었다. 요즘같이 거의 모든 정보나 책자를 CM(Crystal Memory)에 저장
하고 있는 시대에 종이로 만든 책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다니 영준은 '박
사님이 괴짜는 괴짜야, 어떻게 저 정보를 검색하려고 그러나?'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안 쪽 책장에 꽂혀있는 책에는 Mars, Sun, Ursa Minor,
Satern......등 수없이 많은 천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박사는 그 중에
서 Omega Centauri라고 적힌 묶음의 책을 꺼내놓았다. 김박사가 꺼내놓
은 사진은 모두 켄타우루스 성단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의 첫장 한 귀퉁이에
는 AD1964이라고 쓰여 있었고 마지막장은 AD2206이라고 쓰여 있었다. 김박사
는 방금 자신이 찍은 사진의 귀퉁이에 AD2207이라고 쓰고는 사진을 맨 마지
막 장에 끼워 넣었다. "이것은.......?" "그래, 몇 장 빠지긴 했지만 매
년 1월 1일 켄타우루스 성단을 촬영한 천체 망원경사진이지." "이걸 왜 저
에게 보여주시는 거죠?" 켄타우루스 성단은 지구에서 가장 가깝고(약 1만
7,000광년) 눈으로 볼 때 가장 밝게 보이는 구상성단이다. 육안으로는 희미
한 얼룩으로 보이며, 수많은 별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이 책장
에 꽂힌 각 천체들의 사진을 약 30년 전부터 찍어왔네. 여기 2174년부터 찍
은 사진은 내가 직접 찍은 것이고, 그 전의 사진들은 내 스승이신 최영도 박
사가 찍으셨지, 최박사님은 또 자신의 스승에게 물려받은 거고. 이렇게 계속
매년 천체의 사진을 찍어두는 것은 시물레이션에 의해 유추할 수 있는 천체
의 움직임을 실제 사진으로 남겨두는 효과가 있지." 준영은 사진들을 하나
씩 넘겨 보았다. 사진은 옛날 우리나라에 천문학과가 생긴 후 지금까지 천체
의 움직임을 찍어둔 귀중한 자료였다. 그러나 사진 한 장 한 장의 차이는 즉
1년간의 움직임은 육안으로 보아서는 거의 차이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처음 한 5-6년 동안 어떤 의무감으로 이 사진을 찍어서 모으고 있
었네. 방대한 자료의 일부를 모으고 있긴 했지만 이 자료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 단지 스승들로부터 내려온 전통을 이어나간다는
마음뿐이었지. 그런데 약 20년전 우연히 이 사진첩을 보다가 이상한 걸 발
견했어." 김박사는 사집첩을 들고 통째로 휘어서는 오른손 엄지로 책 모서
리를 잡은 후 한 장씩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한 장씩 넘길 때 거의 변화
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사진 속의 켄타우루스 성단은 빠르게 넘기면서 갑자
기 생명을 불어넣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켄타우루스 성단 안의 별들이 그
자리를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야! 아름답습니다. 박사님
." 준영은 별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리를 조금씩 움직여가는 그림을
보면서 감탄을 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준영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마치 크리스탈 메모리로 영화를 보
다가 에러가 생겨서 나타나는 현상처럼 영상이 건너뛰는 모습이었다. "
잠시만요, 박사님." 준영은 고개를 들고서야 김박사가 책장을 넘기면서도
계속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영의 눈이 김박사의 눈과
마주쳤다. "2007년일세. 준영군." 갑자기 무언가 소름 같은 것이
준영의 등뒤를 타고 올라왔다. "시간의 뒤틀림은 한 성단 또는 한 은하계
속에서만 한정되는 현상이네. 나도 시간 차원을 연구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만 켄타우루스 성단은 2007년에 이미 2207년이 되어야만 나타날 모습
을 하고 있네." 김박사가 리모콘을 작동시키자 김박사의 연구실 전체가 하
나의 우주공간으로 변했다. 마블스크린이라고 하는 영상장치로 개발된지가
80년이 넘었지만 TV나 영화 등 아직까지 많은 영상매체에 적용되고 있는 방
식인데 이 스크린으로 야구중계를 보면 야구장에 직접 가서 중계를 보는 듯
이 느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요즘은 FMS(Flexible Marble Screen)이 개발
되어 시청자가 걸음을 옮기며 화면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영상장치까지
개발되었지만 제작비가 비싸 헐리우드 영화사에서나 1년에 5-6편 정도가 F
MS로 제작되고 대부분의 영화는 아직도 MS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김박사가
마블스크린의 한 부분을 클릭하자 켄타우루스 성단이 시물레이션되기 시작
했다. 이 시물레이션은 켄타우루스 성단의 좌표를 통해 세월이 지나면 어떻
게 변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물레이션은 조금 전 영준이 사진첩을 통
해 원시작인 방법으로 보던 영상과 같은 모양을 스크린하기 시작했다. 그러
나 연도가 2007년을 지나면서 사진첩에서 보던 것과 같은 건너뜀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윽고 스크린 속의 연도가 2207년을 가르키면서 시물레이션은 멈
첬다. "이것과 사진첩 속의 2007년 사진과 비교해보게." 사진과 정지
된 스크린 속의 별 배치는 마치 카피를 한 것처럼 똑같았다. "맙소사!
켄타우루스 성단이 200년을 건너뛰었네요?" "그렇게 생각하나?" "예?"
영준은 뭔지 모른 혼란으로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뭔가 갑
자기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혹시...혹시...." 영준이 김박
사에게 자신의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을 말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이 나오
지 않았다. 김박사가 조용히 그 해답을 말하기 시작했다. "200년 동안
지구의 시간이 멈춰진 것일 수도 있지."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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