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207화 (207/209)
  • 207화

    팡!

    타석에 선 대호는 포수의 미트에 들어오는 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볼! Walk!”

    바깥쪽으로 공 두 개는 빠진 볼이었다.

    이로써 두 번째 타석에서도 대호는 볼넷으로 1루로 걸어 나가게 되었다.

    ‘투수가 피한다면 피하는 대로 방법이 있지.’

    이번 타석에서도 고의 사구로 볼넷이 되어 1루로 걸어가던 대호는 그렇게 궁리를 하였다.

    시즌 중에는 어떻게든 장타나 홈런을 치기 위해 무리해 투수를 도발하기도 했었는데, 월드 시리즈에 임하면서 그러한 무리한 플레이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시즌 홈런 기록을 세우기 위해 무리를 하는 바람에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보내 준 보약도 있고, 또 상태창을 보며 최대한 체력과 내구력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조금만 무리해도 스탯이 팍팍 깎여 나갔다.

    그래서 무리한 플레이는 지양하려고 자제를 하고 있다.

    더군다나 월드 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이제 겨우 2차전인데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턱턱턱!

    1루에 도착한 대호는 타격 장갑을 벗어 1루 주루 코치에게 넘겨주며, 손에 주루용 장갑으로 바꿔 끼었다.

    대호가 1루에 안착하자 마운드 위에 있던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2선발 케빈 에이츠는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대호와 승부를 피해 스트레이트 볼넷을 던졌으면서도 대호가 1루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하지만 그가 이러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회 초에도 이렇게 1루에 걸어간 대호로 인해 점수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1번 타자인 대호를 볼넷으로 출루시킨 후, 아껴 둔 힘을 모두 쏟아 2번 타자를 잡으려 하였다.

    그런데 이런 작전은 1루에 있떤 대호로 인해 불발이 되었다.

    전날 1차전에서 보았듯, 오클랜드 슬랙스의 2번 타자 켈리 달튼은 결코 쉬운 타자가 아니다.

    그런 달튼을 투수는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콜업 된 뉴비라며 무시를 하였다.

    그래서 신중하지 못하고 유인구를 이용해 병살을 잡으러 들어갔다.

    하지만 달튼도 그렇고 대호도 그렇고, 투수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눈치를 챘다.

    모르고 당했다면 통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투수의 의도를 깨닫고 있는 상황에서 당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유인구를 던지려는 투수의 의표를 찔러 스타트를 끊은 대호, 그리고 대호가 뛰는 것을 보며 반대로 2루수 방향으로 밀어 쳐 미처 2루수가 수비를 하기도 전에 우익수 방향으로 굴러가게 타구를 때린 달튼, 두 사람 다 훌륭한 팀 배팅을 하였다.

    그 결과 대호는 2루를 통과하고 3루에 안착하였다.

    그리고 2번 타자였던 달튼은 1루에 무사히 들어갔다.

    현재 원아웃 주자 1, 3루 상황으로 1회 말 애틀랜타 히어로스가 맞이했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오클랜드 슬랙스에게도 돌아왔다.

    물론 아직 오클랜드 슬랙스는 2회 초 공격에 들어와 점수를 내진 못했지만, 현재 득점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번 타자 켈리 달튼이 타석에 들어섰다.

    팀 배팅을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달튼이었기에 이번 1, 3루 득점 기회를 잘 살려 낼 것이란 판단이었고, 더그아웃에선 별다른 작전이 나오지 않았다.

    ‘후우.’

    대호를 볼넷으로 내보낼 때까지만 해도 짜증이 났는데, 2번 타자인 달튼이 타석에 들어서자 답답함이 밀려왔다.

    분명 가장 무서운 타자를 고의 사구로 보낸 뒤 이제 겨우 한 시즌을 치르고 있는 뉴비를 상대하는 것인데, 중압감이 밀려오을 느끼자 에이츠는 불안감과 짜증이 확 올랐다.

    ‘젠장!’

    오클랜드 슬랙스 타선은 누구를 거르고 상대할 정도로 얇지 않았다.

    오클랜드 슬랙스 타선 중 가장 낮은 타율을 치는 선수도 2할대 중후반으로 대호가 너무도 압도적인 타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낮은 것처럼 느껴질 뿐이지, 결코 쉽게 생각할 타순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호랑이를 피해 다음을 노렸더니, 이번에는 호랑이만큼은 아니지만 또 다른 맹수인 늑대가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고 있는 형상이었다.

    그만큼 2번 타자 켈리 달튼도 강타자의 반열에 속했다.

    따아악!

    아니나 다를까.

    켈리 달튼은 바깥쪽 꽉 찬 포심 패스트볼을 그대로 밀어 쳐 2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만들었다.

    3루에 있던 주자가 여유 있게 걸어 들어오고, 1루에 있던 대호는 마치 안타를 칠 것이란 예상을 한 것처럼 뛰기 시작하더니, 2루를 통과해 3루로 달렸다.

    3루에 도착하고도 대호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다다다다!

    * * *

    김승주는 볼넷으로 걸어 나간 대호의 뒤로 2번 타자 켈리 달튼이 타석에 들어서자 한껏 기대를 하였다.

    그리고 안타를 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켈리 달튼 선수 안타! 2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

    “우와아아!”

    “1루에 있던 정대호 선수, 빠릅니다.”

    2루를 돌아 3루로 뛰는 대호를 보며 김승주는 흥분해 소리를 질렀다.

    “더그아웃에서 별다른 사인이 나온 것 같지 않은데, 정대호 선수 타자가 치기 전 먼저 뛰었어요.”

    “미리 이야기된 것이었을까요?”

    어떻게 보면 런 앤 히트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중계 카메라에는 작전이 잡히지 않았었다.

    “작전 사인이 나오지 않았으니 그건 아닐 것입니다. 다만…….”

    원체 발이 빠른 대호였기에 플라이 아웃이 나오지 않는 이상, 아웃될 가능성이 적었다.

    “아마도 도루를 시도하였는데, 코스가 너무 좋아 타석에 있던 달튼 선수가 안타를 쳐 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조금 석연치 않았지만, 하구연 해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더그아웃에서 작전 사인도 나오지 않았는데, 임의로 선수들끼리 작전을 펼쳤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미 그린 라이트를 가진 대호가 도루하려던 찰나 안타가 나왔다고 보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았다.

    “어어! 이게 뭔가요?”

    김승주는 이야기를 하던 중 모니터를 보며 소리쳤다.

    그가 소리친 이유는 다름 아닌 대호가 3루에 도착하고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뛰었기 때문이다.

    “정대호 선수, 너무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 * *

    3루를 돌아 홈으로 뛰는 대호, 그런 대호의 모습에 공을 잡은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우익수 코디 로사이로가 급히 홈으로 송구를 하였다.

    보통 선수였다면 3루를 밟을 때 주루 코치가 멈춰 세웠겠지만, 대호는 달랐다.

    원체 발이 빠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1루에서의 스타트가 너무도 빨랐다.

    그러니 지금 3루를 돌아 홈으로 뛰게 되면 아슬아슬하게 접전이 펼쳐질 것을 알면서도 주루 코치는 모든 판단을 대호에게 맡겼다.

    인크레더블이라 불리며 뭔가 보여 줄 것만 같은 대호를 믿어 보기로 한 것이다.

    퍽!

    홈 플레이트 앞을 막아선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포수 에디 머피의 모습에 대호는 이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들이받았다.

    다른 때 같았으며 포수의 몸을 피해 홈으로 파고들었을 것이지만, 지금 포수는 딱 홈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서 있었기에 대호도 굳이 그를 피해 타이밍을 늦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상대가 위험한 플레이를 하려고 한다면, 대호도 굳이 이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이를 피해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려고 하다가는 자신이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으악!”

    198㎝의 키에 100㎏의 체중을 가지고 있는 대호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바디 체크를 하며 밀고 들어오니, 이와 부딪힌 에디 머피가 아무리 보호 장구를 몸에 두르고 있다고 해도 그 충격은 가볍지 않았다.

    덤프트럭과 부딪히는 듯한 충격을 받은 에디 머피는 두 발이 공중에 떠 날아가 버렸다.

    “세이프!”

    포수가 주자와 부딪혀 뒤로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주자 세이프란 판정을 내렸다.

    “아니, 이게 어떻게 세이프야! 수비 방해지.”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더그아웃에서 바로 항의가 들어왔다.

    포수가 주자와 부딪혀 뒤로 날아갔는데, 수비 방해가 아닌 정당한 플레이란 판정에 화가 난 것이다.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감독이 항의하며 나오자 마이크 케세이 감독도 홈으로 나왔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여차하면 그 또한 언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대호의 플레이가 정당했다는 판정을 내렸던 주심이 항의를 하는 브라이언 시네커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감독에게 조금 전 상황을 설명했다.

    “포수가 먼저 주자의 진루를 방해한 상황이었어!”

    상황을 정확히 보고 있던 주심은 그렇게 포수인 에디 머피가 주자의 진루 방향의 앞을 막아섰던 것을 언급하며, 대호가 포수를 들이 받으며 홈으로 들어온 것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렇지만 대호의 거친 플레이에 부상당한 것인지 팔꿈치를 부여잡고 있는 에디 머피의 모습을 보는 브라이언 감독은 인상을 쓰며 계속해서 항의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선수 보호를 위해 돌아서 들어올 수도 있었지 않나!”

    “그런 건 모르겠고, 포수가 주자를 태그한 것도 아니고, 공도 놓쳤으니 내 판정은 세이프야!”

    거듭된 브라이언 감독의 항의에도 주심은 꿋꿋하게 자신의 판정을 가져갔다.

    그런 주심의 모습에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바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대호도 잠시 억지를 쓰고 있는 브라이언 감독을 돌아보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안타를 친 달튼은 2루를 지나 3루까지 진루를 하였다.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감독 브라이언이 항의를 하러 나오는 상황에서 인플레이 상황이었기에 달튼은 우익수가 공을 잡아 홈으로 공을 송구하는 사이 1루를 돌아 2루로 향했고, 또 2루를 돌아 3루로 뛰고 있었다.

    포수인 에디 머피가 대호와 부딪히며 공을 놓치자 백업을 들어왔던 투수가 공을 주워 3루로 던지려 하였지만, 감독이 주심의 판정에 불복해 나오는 바람에 던지지 못했다.

    이렇게 1사 1, 3루 상황에서 우익수 깊은 곳에 안타를 친 달튼은 주자 싹쓸이 3루타를 기록했다.

    2:2로 팽팽하던 경기는 2회 초, 다시 한번 오클랜드 슬랙스가 2점을 앞서 나가며 4:2가 되었다.

    이렇게 오늘 2차전 경기의 흐름 역시 오클랜드 슬랙스 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게다가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사 3루 상황에 3번 타자 지미 울프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규 시즌에서도 3할 초중반의 타율을 치던 지미 울프는 이번 포스트 시즌에 들어와 34타석 30타수 17안타 2홈런을 맹타를 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타순도 쉽게 넘길 수 없다는 소리였다.

    1사 3루 상황에서 타점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지미 울프는 타격 자세를 취하며 눈을 빛냈다.

    팀에서 대호 다음으로 발이 빠른 선수가 바로 3루에 있는 켈리 달튼이다.

    그 말은 다시 말해 짧은 내야 안타만 쳐도 점수를 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이번 회도 2점을 선취하고, 또다시 득점 기회를 맞은 오클랜드 슬랙스의 더그아웃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더욱이 병살이 나올 상황이 아니기에 득점 기회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오클랜드 슬랙스를 응원하는 팬들의 반응은 경기장을 뜨겁게 달궜다.

    팬들의 반응만 보면 이곳이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홈인지,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오클랜드와 지미 울프의 이름이 경기장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다 보니 벌써 4점이나 내주고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낸 에이츠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젠장! 방심할 수가 없네.’

    조금 전 달튼을 상대로 잠깐 방심하다 2점을 헌납했다.

    그런데 그 뒤에 정규 시즌 3할 대의 지미 울프가 타석에 들어서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월드 시리즈 2차전의 선발로 정해질 때, 투수 코치로부터 오늘 경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4회까지만 버텨 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그때만 해도 속으로 자신을 너무 무시한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어제 1차전에서 팀의 에이스인 1선발 이노아가 경기 초반부터 털리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라면 퀄리티 스타트까지는 아니지만 5회 2점으로 막아 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경기 시작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타선은 자신이 정규 시즌에 상대한 그 어느 팀보다 더 강력했다.

    챔피언 시리즈에서 애를 먹였던 LA다윈스의 강타선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경기 초반부터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두들겼다.

    이제 겨우 2회 초인데 벌써 4점을 헌납했다.

    겨우 잠깐 방심을 한 결과가 바로 이러하였다.

    ‘으윽!’

    마운드 위에서 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포수를 보고 있지만,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듯한 압박감이 밀려들어 숨을 쉬기가 불편해졌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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