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10:0 이것은 9회 말, 경기가 끝난 후의 스코어가 아니다.
2033시즌 월드 시리즈 1차전 1회 초 공격이 끝난 뒤, 오클랜드 슬랙스가 애틀랜타 히어로스를 상대로 뽑아낸 점수일 뿐이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1회 초 공격이 끝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선수들 표정이 모두 굳어 있었다.
1회 초 수비를 하는 동안 애틀랜타는 투수를 두 명이나 교체를 했다.
선발 투수인 이노아는 여섯 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4점을 내주고, 두 명의 타자를 루상에 내보낸 뒤 교체가 되었다.
그렇게 이노아를 대신에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불펜 투수 중 한 명인 조지 히메네스였다.
올 시즌 성적은 승패 없이 3홀드만 기록을 하고 있으며, ERA 3.68로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필요한 때 제 역할을 해 주는 투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한 감독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주자 1, 2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그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7번 타자 브렛에게 몸 쪽 깊은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다 쓰리런 홈런을 맞았다.
그는 별로 타격을 받지 않고, 침착하게 8번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안정을 되찾는 듯 했지만, 9번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1회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대호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밋밋하게 들어간 슬라이더는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전 대호의 배트에 걸려 담장을 넘겼다.
그렇게 대호에게 두 번째 홈런을 맞은 히메네스는 무너져 버렸다.
선발 투수가 점수를 내주고 마운드에서 내려온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사단이 난 것이다.
다행이라면 히메네스가 몸을 풀 때 혹시나 싶어 함께 몸을 풀게 시킨 투수가 있어 금방 교체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세 번째 투수로 교체가 되고 오클랜드 슬랙스의 1회 초 공격이 끝나기까지 1점이 더 나면서 오클랜드는 1회에만 무려 10점이란 엄청난 점수를 뽑아냈다.
공수 교대가 되고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공격 차례가 되었지만, 이들의 공격은 금방 끝나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오클랜드 슬랙스의 마운드는 1선발 에디 프랭크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뉴욕 킹덤즈를 상대로 챔피언십 시리즈를 치를 때는 1차전을 버리는 각오로 4선발을 올려 보냈지만, 월드 시리즈 1차전은 아니었다.
이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천신만고 끝에 월드 시리즈에 올라온 애틀랜타 히어로스와 다르게 오클랜드 슬랙스는 일찍 승리하고 휴식을 취했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그러니 굳이 애틀랜타 히어로스와 피해 갈 이유가 없기에 정면 대결을 펼친 것이다.
예상대로 애틀랜타 히어로스는 오클랜드 슬랙스 타선에 마운드가 초토화되었다.
마운드가 무너지다 보니 수비들도 1회에만 20분 넘게 수비를 봐야만 했다.
그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잘 아는 오클랜드의 코칭스태프들이었다.
수비라고 해서 그냥 운동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얼마나 피 말리는 것인지 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그 때문에 1회 말 공격에 들어갔으면서도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에디 프랭크의 투구에 속수무책으로 아웃을 당했다.
30분 가까이 수비를 했던 애틀랜타 히어로스와 다르게 오클랜드 슬랙스는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수비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또한 이들의 공격은 2회에도 꺼지지 않고 4점을 더 얻어 냈다.
스코어가 14:0이 되면서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타선은 더욱 침묵에 잠겼다.
회가 갈수록 늘어나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점수와는 다르게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점수는 거의 가뭄에 콩 나듯 나왔다.
5회에 1점, 그리고 선수 보호 차원과 백업 선수의 경기력을 위해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선수들을 대거 교체를 한 뒤 8회와 9회 각각 1점씩을 내며 최종 스코어 25:3으로 2033시즌 월드 시리즈 1차전은 오클랜드 슬랙스의 승리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너무도 차이가 나는 오클랜드 슬랙스와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경기력으로 인해 5회 말 공격이 끝나면서 수많은 애틀랜타의 팬들이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8회가 되었을 즈음엔 빈자리가 상당히 많이 보였다.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사상 최초로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관중석의 3분의 2가 빈 채로 경기가 치러졌다.
대호는 이날 월드 시리즈 힛 포 더 사이클을 기록하며 타격력의 건재함을 알렸다.
사실 대호는 기록 달성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아 힛 포 더 사이클의 마지막 조각인 1루타를 놓칠 뻔했다.
5회초 네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쳤을 때 곧바로 2루로 달리려던 찰나, 1루에 있던 주루 코치의 만류로 멈춘 것이다.
그때는 그저 점수 차가 20점 가까이 되었기에 무리할 필요가 없었나 보다 그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더그아웃에 들어간 뒤에서야 자신이 힛 포 더 사이클을 달성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경기가 모두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애틀랜타 히어로스 선수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패잔병이 따로 없었다.
이미 거의 모든 팬이 빠져나간 뒤라 그들을 질타하는 팬들의 고함 소리조차 듣지 않게 된 점은 다행이었지만, 내일 있을 2차전이나 오클랜드로 원정을 가야하는 문제로 인해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 * *
「정대호! 월드 시리즈에서 첫 힛 포 더 사이클을 기록하다.
2033년 11월 XX일에 치러진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1차전. 애틀랜타 히어로스와 오클랜드 슬랙스가 맞붙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듯, 이날 경기는 내셔널리그 우승팀과 아메리칸리그 우승팀의 경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25:3이란 엄청난 점수 차로 오클랜드가 승리를 가져갔다. 정대호 선수는 1회 초 선두 타자로 나서 3루타를 치며 이날 기분 좋게 출발을 하였고, 1회 두 번째 타석에서 투런 홈런을 쳤다. 그리고 3회 세 번째 타석에서 2루타, 그리고 5회 좌익수 방면의 안타를 기록하며 힛 포 더 사이클을 달성하였다.
KBC스포츠 이아람 기자」
* * *
월드 시리즈 1차전이 끝난 뒤 한국은 난리가 났다.
아니, 미국 애틀랜타 커뮤니티보단 덜했지만 한국도 난리가 난 것은 맞았다.
메이저리그 유일의 한국인 출신 메이저리거가 활약하고 있는 오클랜드 슬랙스가 월드 시리즈 1차전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순히 안타 몇 개를 친 것이 아니라 힛 포 더 사이클, 한국에선 사이클링 히트라 불리는 기록을 월드 시리즈에서 달성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행보를 이어 가고 있는 대호의 기록 행진에 야구팬들은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이렇게 대호의 기록에 흥분하는 한국, 그리고 오클랜드 슬랙스 팬과는 다르게 애틀랜타 히어로스 팬들은 그야말로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틀랜타 히어로스가 비록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강호 LA다윈스를 맞아 4승 3패란 접전을 치르며 어렵게 이기고 월드 시리즈에 올라왔다 하지만, 오클랜드 슬랙스에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클랜드 슬랙스는 야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스몰 마켓 구단이다.
물론 역대 전적을 보면 월드 시리즈 우승 경력은 오클랜드 슬랙스가 많았다.
하지만 그 많던 우승 이야기도 1989년이 마지막이었다.
그에 반해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마지막 월드 시리즈 우승은 7년 전인 2026년으로 2000년대 들어 한 번도 우승을 못해 본 오클랜드와는 경우가 다르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애틀랜타 히어로스는 오클랜드 슬랙스에게 패했다.
그것도 25:3이란 처참한 점수 차로 말이다.
팬들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프런트는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이기에 1회에만 10점을 내주고 또 매회 점수를 내주냔 말이다.
아직 월드 시리즈가 한 경기만 치러진 상태였지만,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에서도 이번 2033시즌 월드 시리즈는 이미 결과가 나와 있어 흥행에 실패를 할 것이란 이야기로 도배가 되었다.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다.
그렇기에 일반 경기보다 그 관람 티켓 가격이 무척이나 비쌌다.
그런데 이번 2033시즌 월드 시리즈의 관중 숫자가 확 줄어들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 * *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롭 프레드 커미셔너는 심각한 표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혹시…….”
야구란 게임이 농구나 배구와 같이 점수가 많이 나오는 구기 종목은 아니다.
하지만 정해진 규칙 아래 경기를 치르면 20점 이상의 큰 점수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10점도 아니고 20점은 매우 드문 것도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프로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도 사실 자본의 원리가 강하게 작용한다.
즉 돈을 쓰는 만큼 우승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물론 오클랜드 슬랙스처럼 적은 페이 롤에서도 우승한 팀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포츠라는 것이 가지는 의외의 변수 때문이지 자본의 영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파악하지 못한 요소를 먼저 파악해 적은 금액으로 선수를 선점하여 적시적소에 활용하여 기적을 이룬 것.
그것이 바로 오래 전 오클랜드 슬랙스가 사용하던 머니 볼의 핵심이다.
그렇지만 머니 볼의 개념이 등장한 것도 어느 새 수십 년이 지났고, 빅 마켓 구단들은 머니 볼의 요소를 쓰면서 많은 자본까지 투자하며 더 이상 스몰 마켓만의 우위는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머니 볼의 시작인 오클랜드 슬랙스라 할지라도 어쩌다가 지구 우승은 거둘지언정 챔피언십 시리즈도 올라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 롭 프레드 커미셔너가 의심할 만도 했다.
오클랜드 슬랙스는 오래 전 그런 반칙을 활용한 전과가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철저히 조사를 하고 있기에 그런 염려는 없습니다.”
메이저리그 운영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이 오클랜드 슬랙스의 불법 약물 사용에 대한 의심의 말을 하자 이를 반박했다.
“그럼 애틀랜타 히어로스에 문제가 있나?”
25:3이란 경악할 만한 점수 차로 진 애틀랜타에 문제가 있는지 물었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챔피언십 시리즈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실 이들도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원인이 있기에 그런 엄청난 점수 차를 보이며 애틀랜타 히어로스가 오클랜드 슬랙스에 대패를 한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전부 납득할 수 있는 범위였다.
정규 시즌을 일찍 마무리한 오클랜드 슬랙스는 핵심 선수에게 포스트 시즌을 대비해 휴식을 주었다.
물론 기록 도전을 하는 대호는 마지막 165경기까지 모든 게임에 출전을 했지만, 후반기 체력이 떨어졌던 주전 선수들은 그러한 지도부의 배려로 포스트시즌 대비 체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주전 선수들이 대거 체력을 축적하고, 정규 시즌이 끝나자 디비전 시리즈 대비 훈련에 들어갔다.
반대로 기록 도전에 성공한 대호는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간 모든 외부 활동을 멈추고 체력 회복에만 전념했다.
그러자 디비전 시리즈 직전 평소 컨디션의 90%가까이 회복할 수 있었다.
원체 회복력이 좋은 대호였기에 짧은 휴식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다른 선수들만큼 체력이 회복된 것이다.
그렇게 회복된 체력을 바탕으로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강력한 화력을 바탕으로 이른 시기에 승부를 마무리하며 리그 우승해 월드 시리즈에 이름을 올리고, 월드 시리즈에 애틀랜타 히어로즈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애틀랜타는 앞서 얘기했듯이 정반대의 상황이었고 말이다.
아무리 홈경기라고는 하나, 이미 체력적으로 지칠대로 지친 그들이었다.
상대는 이미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기다리는 맹수, 그러니 경기 결과가 뻔했던 것이다.
더욱이 1회 초 공격부터 오클랜드 슬랙스는 모든 전력을 집중했다.
아무리 메이저리그 1선발이라 하지만, 오클랜드 슬랙스의 1번 타자는 그야말로 역대급 천재 타자였다.
거기에 야구 지능도 높아 필요할 때 스스로 작전을 쓸 줄도 알아 투수를 흔들었다.
이렇다 보니 시작부터 오클랜드 슬랙스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현재 오클랜드 슬랙스 타선은 신구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거기에 중간의 다리 역할을 하는 선수들도 모두 2할 후반에서 3할대 초반 타율을 자랑했으며, 출루율도 높았다.
이런 타선을 가진 오클랜드다 보니 지친 애틀랜타 히어로즈 마운드가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25:3이란 월드 시리즈 사상 유래 없는 대참사의 핵심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