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월드 시리즈 1차전 첫 타석에서 우익선상에 떨어져 구석까지 굴러가는 안타로 3루까지 진출한 대호는 한 손을 높이 들어 보이며 팬들 앞에 자신의 실력을 선보였다.
비록 홈런이 되진 않았지만, 무너진 자세에서 안정적으로 3루타를 때렸다.
그리고 여차하면 홈으로 뛸 것 같은 액션을 취하며 마운드 위 투수를 도발하였다.
가뜩이나 LA다윈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치르며, 아직 피로가 덜 풀린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1선발 이노아 와스키는 미간을 찌푸렸다.
간을 보기 위해 인코스 낮은 볼을 던졌는데,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그것을 밀어 쳐 외야 구석까지 날려 버리는 대호의 파워에 깜짝 놀랐다.
이것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초구에 얻어맞은 것이라 투구 수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첫 타자를 2루도 아니고 3루에 보냈다는 것은 투수로서 부담이 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거 출발이 좋은데!’
타석에 들어서던 달튼은 3루에 있는 대호를 잠시 돌아보다 투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야 짧은 안타 하나만 나와도… 아니, 외야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나 희생플라이만 때려도 1회 공격에서 점수를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생각에 달튼은 배트를 평소보다 조금 짧게 잡았다.
다른 선수들 같으면 희생플라이라도 노릴 요량으로 배트를 길게 잡았을 테지만, 달튼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짧게 잡으면서 3루 주자도 불러들이고, 또 자신도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이런 방법은 대호가 트리플A 시절 알려 준 것이었다.
굳이 1점을 내기 위해 타격 폼을 크게 키워 장타를 노리거나 외야 플라이를 기대하는 건 요행수, 혹은 도박이라며 차라리 타격 자세를 컴팩트하게 가져가며 안타를 노리는 게 훨씬 득점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스윙을 가져가자 달튼의 타율도 늘어났고 타점도 높아져, 그 후로 득점권 상황에선 굳이 스윙 폼을 크게 키우기 보단 이런 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2B 1S 상황에서 달튼은 부드럽게 스윙을 가져가며 빠르게 휘둘렀다.
따악!
2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가 나왔다.
2루수가 자신의 머리 위로 타구가 날아오자 팔짝 점프를 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타구는 그런 2루수의 글러브 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 우익수 앞에 떨어졌다.
타다다다!
안타를 친 달튼도 1루로 전력을 다해 뛰었고, 3루에 있던 대호는 빠르게 홈으로 들어왔다.
자신의 앞에 떨어지는 공을 빠르게 달려와 잡은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우익수가 홈으로 송구를 해 봤지만, 이미 대호는 공보다 먼저 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와아아아!”
연속 안타로 인해 오클랜드 슬랙스가 먼저 1점을 선취하였다.
2번 타자 켈리 달튼의 안타로 1점을 선취한 오클랜드 슬랙스는 타석에 들어서는 지미 울프를 보며 강공 사인을 보냈다.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 그것도 12회 연장까지 치르고 올라온 애틀랜타 히어로스를 상대로 오클랜드 슬랙스의 감독 마이크 케세이는 굳이 1루에 있는 주자를 2루로 보내기 위해 희생번트 같은 작전을 쓰기보단 힘으로 찍어 누르는 작전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작전은 보통 타격력 강한 구단들이 주로 애용했는데,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자신들도 메이저리그에서 상당히 강력한 타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작전을 들이밀었다.
따악!
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지만, 행운의 안타가 나왔다.
2루수와 유격수, 그리고 중견수도 잡지 못하는 중간 지점에 떨어지는 바가지 안타가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2루수는 물론이고 유격수도 우물쭈물하다 콜을 하지 못하고 그라운드에 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사이 달튼은 2루를 돌아 3루로 뛰어가 슬라이딩을 하였다.
뒤늦게 유격수가 공을 잡아 3루로 공을 던져 보았지만, 3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보통은 공이 높이 뜨게 되면 타구 판단이 어려워 자신감 있는 주루 플레이가 나오기 어려운데, 달튼은 과감하게 진루를 하였다.
그러한 과감한 판단이 성공을 하여 짧은 안타 하나에 3루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다만 1루에 진루한 지미 울프의 경우 죽어라 뛰느라 1루에서 오버런을 하는 바람에 2루로 뛰지 못해 1루와 3루가 되었다.
“오클랜드 슬랙스, 1회 초 공격부터 맹공을 펼칩니다.”
김승주는 2번 타자 켈리 달튼에 이어 3번 타자로 자리를 잡은 지미 울프가 또다시 안타를 치며 진루를 하자 흥분해 소리쳤다.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들, 오늘 스윙에 자신이 있어요.”
하구연 해설도 오클랜드 슬랙스의 켈리 달튼이나 지미 울프의 안타와 주루를 보면서 이들의 스윙을 칭찬했다.
지미 울프의 안타는 사실 운이 따른 텍사스 안타였지만, 스윙하는 폼은 무척이나 호쾌했다.
즉, 그 말은 스윙을 하는 것에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하였기에 공의 밑 부분을 맞아 타구가 높이 떴음에도, 내야플라이가 되지 않고 행운의 안타가 된 것이기도 했다.
“우와아!”
“굿! 주장, 싹쓸이 부탁해요.”
대기 타석에 있다 지미 울프가 진루를 하고 나가는 걸 보자, 타석에 들어서던 4번 타자 홈런 브레드를 향해 대호가 소리쳤다.
오늘 아침에도 대호의 보약을 하나 뺏어 먹은 홈런 브레드는 타석에 들어서다 말고, 대호의 응원을 듣고는 고개를 돌려 한 손을 올려 보였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지만, 이런 홈런 브레드의 모습에 3루쪽 원정팀 더그아웃 뒤쪽에 있던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이 큰 목소리로 환호했다.
“브레―드! 브레―드!”
홈구장인 뉴슬랙스 볼파크도 아니고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홈구장인 트루이스트 파크에서 때 아닌 홈런 브레드를 응원하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느닷없는 타자를 응원하는 구호에 마운드 위에 있던 투수가 당황했다.
‘이게 뭔 일이야?’
자신들의 홈구장에서 상대 타자의 응원 구호가 들린 것에 놀란 것이다.
팡!
“볼!”
당황한 이노아는 제 마음대로 공을 컨트롤 하지 못해 초구는 볼이 되었다.
하마터면 볼이 뒤로 빠질 뻔할 정도로 와일드 피칭이 나와 버렸다.
‘이노아, 진정해!’
자칫 뒤로 빠질 수도 있었을 거친 공을 잡아낸 포수 에드 머피는 공을 투수에게 던져주며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양팔을 널려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제스처를 하였다.
그런 포수의 모션에 이노아도 어느 정도 진정을 한 것인지 천천히 공을 던졌다.
팡!
“볼!”
이번에도 볼이 선언되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더 라인에서 공 하나 정도 빠지는 공이었다.
두 번째 투구가 잘 제구가 되어 바깥쪽 볼이 되었다고 하지만, 어찌 되었든 초구와 이번 두 번째 공도 바깥쪽 볼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안쪽으로 하나 정도 던져야 할 때였다.
타석에 있던 홈런 브레드도 15년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을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떤 공이 들어올지 짐작하였다.
‘인코스로 어떤 구종의 공이 날아올까?’
연속에서 바깥쪽으로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왔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인코스로 공이 날아 올 거란 사실 정도는 예상되었다.
다만 첫 번째와 두 번째 공처럼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지 아니면, 브레이킹 볼을 던질 것인지 그 것이 궁금했다.
쐐애액!
투수가 공을 던졌다.
그런데 공이 날아오는 각을 보니 패스트볼은 아니었다.
투수의 손에서 떠난 공이 순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중간쯤에서 어깨 뒤에서 나타났다.
‘백 도어 슬라이더!’
어깨 너머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백 도어 슬라이더였다.
코스는 예상대로 몸 쪽으로 파고들었다.
다만 구종이 패스트볼이 아닌 슬라이더였을 뿐.
코스와 구종을 확인한 홈런 브레드는 바로 타격에 들어갔다.
스윽!
앞에 있던 왼발을 살짝 바깥으로 이동하고, 공이 몸 중심 쪽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점이 잡히자 바로 허리를 회전시키며 스윙을 가져갔다.
따아아악!
90마일로 날아오던 백 도어 슬라이더는 그보다 빠른 반발을 보이며 좌중간으로 날아갔다.
“우와아아!”
3루 더그아웃 펜스에 기대 홈런 브레드를 응원하고 있던 대호는 주장의 타구를 보며 펜스를 뛰어넘으며 자리에서 팔짝 뛰었다.
“주자아앙!”
홈런 브레드의 타격을 보자마자 대호는 느낄 수 있었다.
제대로 노리고 친 타격이었기에 33°의 홈런 각을 이루며 타구는 대기를 가르며 쭉쭉 날아갔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주장인 홈런 브레드 선수, 이름처럼 홈런을 때리면서 루상에 나가 있는 모든 선수를 불러들입니다.”
“하하하! 홈런 브레드, 참 이름값을 톡톡히 해 줍니다.”
김성주 아나운서에 이어 하구연 해설 위원까지 오클랜드 슬랙스의 4번 타자 홈런 브레드의 이번 홈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인터뷰에서 대호가 팀에서 가장 자신을 도와주고 신경 써 주는 사람이 바로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장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홈런 브레드라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 인터뷰가 나간 이후 한국에서는 홈런 브레드를 빵형이라 부르며 선물을 한 아름 보내주었다.
처음 이런 선물을 접한 홈런 브레드는 이게 무슨 일이냐며 대호를 찾아가 물었다.
한국 팬들이 종종 이러한 선물을 메이저리그 구단에 보내기는 하지만 한국인 출신 선수 앞으로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홈런 브레드는 자신의 이름으로 선물 상자가 전달되자 놀랐다.
그리고 뒤이은 대호의 설명을 듣고 난 뒤 더욱 기뻐하였다.
미국인 팬이 아닌 한국인 팬이 자신을 위해 선물을 보낸 것을 알고 기뻐한 것이다.
2,800만 달러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그가 한국 팬이 보내 준 과자 선물에 감동을 받아야 얼마나 받겠냐마는, 한국인 출신 메이저리거도 아닌 미국인인 자신에게 이런 선물을 보낸 외국인 팬의 마음이 더욱 고맙고 기뻤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도 대호와 같은 팀 동료란 이유도 있지만, 그를 잘 돌봐 준 것에 대한 감사로 홈런 브레드의 팬도 많았다.
그리니 김승주나 하구연 해설도 대호 못지않게 홈런 브레드의 이번 쓰리런 홈런에 기쁨의 멘트를 날리는 것이다.
“역시 주장이 해낼 줄 알았어요.”
대호는 홈으로 들어오는 홈런 브레드를 맞이하며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오늘도 불끈불끈하다.”
짝!
자신을 맞이하는 대호를 보며 한 손에 알통을 불끈거리며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다음은 제 차롑니다.”
홈런 브레드가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막 자신의 배트를 챙겨 대기 타석으로 나가려 준비를 하던 브렛이 주장을 보며 소리쳤다.
탁탁!
자신을 보며 자신도 홈런을 치고 오겠다며 벼르는 브렛의 모습에 홈런 브레드는 응원을 하듯 그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더그아웃 밖으로 내보냈다.
“그래, 너도 홈런을 치고 들어와라!”
“알겠습니다. 주장!”
자신을 응원하는 홈런 브레드의 말에 브렛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그아웃 앞으로 나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아직 대기 타석으로 나가려면 5번 타자인 리키 헨슨이 타격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애클랜타 히어로스의 선발 이노아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선발이란 것이 무색하게 그는 연속 안타와 홈런으로 인해 4점을 헌납한 상태에서 또다시 오클랜드 슬랙스의 5번 타자 리키 헨슨에게 안타를 맞았다.
따악!
이번에는 좌익수 방면 안타였다.
안타를 치고 진루를 한 리키 헨슨이 1루에서 자세를 잡으며 빈틈이 보이면 언제든지 뛸 준비를 하였다.
그 사이 6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7번 타자로 이름을 올린 브렛이 대기 타석에 들어설 때, 애클랜타 히어로스의 더그아웃에서 타임을 요청했다.
1회 초부터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타임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연속 안타와 홈런, 그리고 정신을 추스리기도 전에 또다시 안타를 맞았기 때문에 일단 투수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더그아웃에서 투수 코치가 나와 마운드로 올라갔다.
또 홈에 있던 포수도 함께 마운드로 올랐다.
이대로 두었다가 투수의 멘탈이 터져 버릴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었다.
또한 벌써 4점이나 내준 이노아의 뒤를 준비해야 하기에 시간을 벌어 줄 방법이 필요하기도 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