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내리 4승을 따내며 일찌감치 월드 시리즈에 이름을 올린 오클랜드 슬랙스와 다르게 내셔널리그는 접전 끝에 7차전까지 가서야 결판이 났다.
내셔널리그에서 챔피언십 시리즈를 4승 3패로 이기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팀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과해 올라온 애틀랜타 히어로스였다.
애틀랜타 히어로스는 끈질긴 추격 끝에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에서 12회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르면서 스코어 7:8, 가까스로 LA다윈스를 이기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다 보니 애틀랜타 히어로스 팬들은 12년 만에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것에 기뻐하였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리그 우승을 한 것에 대해선 기뻐하면서도 월드 시리즈의 전망은 낙담하였다.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메리칸리그를 우승하고 올라온 오클랜드 슬랙스가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뉴욕 킹덤즈를 4승 0패로 이기고 올라온 반면, 자신들은 LA다윈스와 접전 끝에 4승 3패로 겨우 올라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객관적으로 전력을 비교해도 오클랜드 슬랙스의 챔피언십 상대였던 뉴욕 킹덤즈가 자신들이 물리친 LA다윈스보다 더 강했다.
그런 구단을 한 게임도 내주지 않고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올라왔으니, 오클랜드 슬랙스의 전력이 어떤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애틀랜타 히어로스 팬들의 이번 2033시즌 월드 시리즈의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할 뿐이었다.
* * *
“우와아아!”
전 세계 야구팬들의 축제인 월드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월드 시리즈 첫 경기가 펼쳐질 장소는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홈구장인 트루이스트 파크.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를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LA다윈스를 어렵게 이기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히어로스의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아메리칸리그 우승 팀이 있는 오클랜드까지 날아가 경기를 치렀다가는 정말로 애틀랜타 히어로스는 아무런 힘도 써 보지 못하고 월드 시리즈 1차전을 내줘야 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히어로스의 선수들은 지쳐 있었다.
그런데 올스타 경기에서 내셔널리그가 아메리칸리그를 9:8로 이기면서 월드 시리즈 첫 경기는 내셔널리그 팀의 홈구장에서 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KBC스포츠 아나운서 김승주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하구연입니다.”
김승주와 하구연은 월드 시리즈 중계를 맡아서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무척이나 긴장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곧 있으면 경기가 시작이 될 텐데, 오늘 경기 관전 포인트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평소에는 그렇게나 입담이 좋아 농담도 던지고 하면서 중계를 하던 김승주였지만, 경기의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보니 멘트가 살짝 꼬였다.
하지만 이에 당황하지 않고 꿋꿋하게 멘트를 이어 갔다.
그리고 역시나 야구 중계의 베테랑 같은 하구연 해설 역시 조금 어색한 발언에도 흔들리지 않고 잘 받아 주었다.
“오늘의 관전 포인트라고 하면… 역시 어렵게 올라온 애틀랜타 히어로스가 먼저 4승을 하며 내셔널리그 우승자를 기다린 오클랜드 슬랙스를 어떻게 상대를 할 것인가, 그리고 두 번째는 막강한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봉이자 전 세계에서 최고의 야구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정대호 선수를 어떻게 막아 낼 것인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월드 시리즈 중계를 맡으면서 말문이 트인 것인지 하구연 해설은 당황하고 있는 김승주와 다르게 말을 술술 풀어냈다.
“아, 그렇겠군요.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인 정대호 선수를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투수들이 어떻게 막아 내야 할지 그것이 문제겠군요.”
하구연 해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김승주도 그제야 감을 잡은 것인지, 그의 말을 받아 이야기를 하였다.
“30여 년 동안 깨지지 않던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73개와 동일한 홈런을 쳤고, 시즌 초반에는 세계 최초로 열 경기 연속 경기 홈런 기록까지 세우지 않았습니까?”
“예. 정대호 선수의 올해 기록을 보면 야구 세계 기록을 무려 세 개나 기록했습니다.”
“네. 솔직히 매번 얘기해서 입 아플 정도 아닙니까? 이제 생략해도 될까요?”
“하하!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월드 시리즈 첫 경기이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말씀해 주시죠.”
김승주의 너스레에 하구연도 웃음을 터드리며 대호의 기록을 나열하였다.
“와! 매번 듣던 건데도 정말 어마어마하군요.”
하구연 해설 위원이 장황하게 대호가 세운 세계 기록을 언급하자, 이를 듣고 있던 김승주는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하였다.
한 사람의 단일 시즌 기록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대호 선수는 3년 연속 타율이 4할이 넘습니다.”
“네? 4할이요?”
김승주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데뷔 시즌인 2031년은 후반기 70경기만 뛰어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어찌 되었든 3년간 4할 이상을 친 것은 맞습니다.”
“아!”
대호가 데뷔 시즌부터 강력한 화력을 바탕으로 3년간 4할 이상의 타율을 보여 주었다는 말에 김승주는 놀라 탄성만 질렀다.
하지만 그가 놀랄 일은 끝나지 않았다.
“제가 방금 4할이라고 말했지요?”
“예. 그것도 데뷔 때부터 라고…….”
말끝을 흐리는 김승주를 보며 하구연 해설은 눈을 반짝이며 진지한 표정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 4할이란 것도 사실은 정대호 선수가 무리하게 홈런 기록에 도전을 하면서 떨어진 타율이란 것입니다.”
“……!”
떨어진 타율이 4할이란 말에 자리에 앉아 있을 힘도 풀린 나머지 몸이 무너지는 듯한 모션을 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런 김승주의 모습에 하구연 해설은 뭘 그런 것을 가지고 놀라냐는 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방금 전 하구연 해설이 한 말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호는 시즌 중반에 사고를 당해 50경기 이상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그 사고 전까지 무려 28개의 홈런을 치면서 작년에 아쉽게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도전에 실패한 것을 극복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작년 2032시즌에는 중간에 올림픽 대표로 출전하는 바람에 9경기 정도 결장을 하면서 70홈런에 그쳤는데, 이번 2033시즌에는 총기 난사 사건을 막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60일 장기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도전이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스로 후반기가 시작되는 때 복귀를 하기는 했지만, 팬들은 이번 시즌에도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달성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는 대호를 응원하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오랜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호는 그 동안 신중하게 투수가 던지는 볼을 보면서 치던 것에서 벗어나 홈런을 의식한 타격을 선보였다.
그러면서 타율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반대로 홈런의 개수는 늘어났다.
그렇게 후반기 70경기를 치르면서 대호는 결국 메이저의 역사에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깊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이릅니다.”
“네? 그건 또 무슨…….”
김승주는 놀라긴 이르다는 하구연 해설 위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TV중계 카메라를 통해 안방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대호 선수의 이번 포스트시즌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죠.”
“아!”
하구연 해설의 이야기에 급히 자신의 앞에 놓인 자료들을 살피던 김승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 총 일곱 경기를 치르면서 대호는 100% 출루율을 보였기 때문이다.
볼넷을 포함해 아웃 카운트 하나 없이 홈런과 안타를 치며, 오클랜드 슬랙스가 월드 시리즈에 진출을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게 사실입니까?”
김승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물었다.
“함께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100% 출루라니…….”
연이은 김승주의 말에 이를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 감독도 놀란 눈을 하며 굳어 버렸다.
* * *
“드디어 때가 도래했다.”
지저분한 원정팀 로커 룸에 모인 선수들을 보며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비장한 톤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이를 듣고 있는 선수들 또한 비장한 표정이 되어 그의 말을 경청했다.
“지금까지 생각은 잊어라! 이 시간 이후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오직 애틀랜타 히어로스뿐이다.”
디비전 시리즈 상대였던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를 가볍게 이긴 것이나, 악의 제국이라 불리는 막강한 전력의 뉴욕 킹덤즈를 4승 0패로 가볍게 물리친 것에 대한 언급이었다.
자칫 방심을 할 수도 있는 문제였기에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월드 시리즈가 펼쳐지는 이곳 트루이스트 파크 원정팀 로커 룸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잊으라는 말을 한 것이다.
“잘 봐라! 이 지저분한 장소를.”
말을 하면서 케세이 감독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런 감독의 말에 선수들도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저분한 낙서와 구석구석 쌓인 먼지들, 메이저리그 구단이 사용하는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시설과 환경이었다.
“난 다시 이곳에 오고 싶지 않다. 너흰 어떠냐?”
원정으로 시작되는 이번 오클랜드 슬랙스의 월드 시리즈를 언급한 감독의 말에 선수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이런 지저분한 로커 룸은 이번 원정에서 끝입니다.”
“그렇지. 나도 그렇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은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저들은 지쳤다. 얼른 쉬게 해 줘야 하지 않겠나?”
“맞습니다. 같은 직업을 가진 동료로서 지친 저들을 편히 쉬게 해 줘야 합니다.”
대호는 이번에도 큰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렇지. 우리의 인크레더블이 말한 것처럼 저들을 편히 쉬게 해 줘야 한다. 그게 바로 같은 직업을 가진 동료로서 해야 할 일이다.”
“옛 썰!”
감독의 연설과 대호의 대답 등으로 분위기가 고무되자 선수들 눈에는 투쟁 본능이 불타올랐다.
“좋아! 좋은 눈이 되었군.”
선수들의 바뀐 눈빛을 보며 케세이 감독은 그렇게 칭찬을 하였다.
* * *
따아악!
잘 맞은 타구가 우익수 방면으로 날아가 라인 안쪽에 떨어졌다.
하지만 힘이 남아 있었는지 라인 밖으로 굴러 나가며 펜스 깊은 곳으로 흘러갔다.
다다다다!
대호는 우익수 방면 안타를 치고 빠르게 뛰었다.
“와아아아!”
대호의 안타에 장내에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정대호! 정대호! 우익수 방면 안타! 안타입니다.”
“우익수 방면 구석으로 굴러가는 타구! 이거 3루타가 나올 것 같습니다.”
1회 초, 첫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포심 패스트볼을 그대로 밀어 쳤다.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왔다면 제대로 힘을 실어 홈런을 쳤을 것이지만, 공 한 개 정도 빠지는 볼이기에 균형을 조금 무너뜨리며 배트 끝에 가져다 대며 쳤다.
다른 선수였다면 파울볼이 나왔겠지만, 대호는 70이 넘는 힘 스탯으로 인해 중심이 무너진 상태임에도 손목을 단단하게 고정시키며 배트 끝에 맞은 타구를 그대로 밀었다.
그러다 보니 타구는 우익수 선상에 떨어져 펜스 구석으로 굴러갔다.
1루를 지나 2루 베이스를 밟은 대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3루로 향했다.
대호가 막 2루에 접근했을 때, 펜스 구석에서 공을 잡은 애틀랜타 히어로스의 우익수는 급히 3루로 공을 뿌렸다.
촤아!
3루에 다다른 대호는 슬라이딩을 하였다.
급하게 들어가기 위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이 아니라, 발부터 들어가는 벤트 레그 슬라이딩이었다.
펑!
“세이프!”
공보다 발이 먼저 3루 베이스에 들어왔다.
“우와아아!”
3루에 들어온 대호는 환호하는 팬들을 향해 왼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응답을 하였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빅타이거! 빅타이거!”
“인크레더블! 인크레더블!”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