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201화 (201/209)
  • 201화

    뉴욕 킹덤즈의 1회 초 공격은 너무도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오늘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발 에디 프랭크의 구위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98마일의 구속에 2,600RPM을 상회하는 포심 패스트볼의 구위 때문인지 뉴욕 킹덤즈의 강타선도 손을 전혀 대지 못하고 연속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러다 보니 뉴욕 킹덤즈의 1회 초 공격은 허무하게 삼자범퇴로 끝났다.

    하지만 오클랜드 슬랙스의 1회 말 공격은 무시무시했다.

    일단 1번 타자로 나온 대호가 슈미트 홈즈의 초구를 그대로 받아 쳐 솔로 홈런을 때렸다.

    한때 사이영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슈미트였지만, 메이저리그 최강의 타격력을 자랑하는 대호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특히나 대호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신을 거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 쪽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반개 정도 낮은 볼에 배트를 가져갔다.

    어퍼 스윙이었음에도 왼발을 한 걸음 더 벌려 자세를 낮추며 퍼 올리자, 73이라는 힘 스탯의 영향으로 곧장 좌중간 펜스를 가르며 뉴슬랙스 볼파크 2층 관람석에 떨어졌다.

    “와아아아!”

    1회 말 1번 타자로 나선 대호가 초구에 솔로 홈런을 때리자, 홈 관중은 물론이고 오늘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온 야구팬 모두 그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팀 동료들 또한 더그아웃 난간에 매달려 대호의 홈런에 환호했다.

    대호의 초구 솔로 홈런에 정신을 차리기도 전, 2번 타자로 나온 달튼이 이번에는 우중간 백투백 홈런을 때렸다.

    “우와아아!”

    대호야 원체 홈런 타자란 사실이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홈런을 친 것에 대한 환호보다 경기 초반부터 점수를 냈다는 것에 신나 있었다면, 켈리 달튼의 이번 백투백 홈런은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에게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올 시즌 초반 트리플A에서 콜업 된 켈리 달튼은 시즌 초반에는 7~9번 타순에 이름을 올렸었다.

    그러다 대호가 60일 IL로 빠지면서 타순을 점차 올리다 급기야 1번 타순까지 올랐다.

    달튼이 1번을 맡기 전까지는 대호의 콜업 이전에 팀의 1번을 맡던 지미 울프가 담당하고 있었지만, 두 시즌동안 2번을 맡은 영향인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보통 팀의 리드오프는 공격의 물꼬를 열어 주는 역할을 하는 타순이지만, 2번에서 1번으로 돌아간 지미 울프는 제 역할을 100% 해 주지 못했다.

    그동안 대호의 뒤에서 혜택을 누리다 보니 1번으로써의 역할에서 조금 벗어나 버린 것이다.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이러한 지미 울프의 문제를 깨닫고 새롭게 팀의 1번을 찾았다.

    그러다 눈에 뜨인 것이 바로 켈리 달튼이었다.

    켈리 달튼은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서 주로 2번 타순에 서긴 했지만, 간간히 1번에도 올라 그 역할을 다했다.

    또 대호만큼의 호쾌한 타격력을 보여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현대 메이저리그에서 요구하는 강력한 1번 역할은 톡톡히 해낼 수 있었다.

    그러하였기에 감독도 대호가 없는 타순에 켈리 달튼을 팀의 1번으로 올려 시험을 해 보았다.

    그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대호만큼 강력하진 않았지만, 출루율만큼은 대호와 비견될 정도로 높아 지미 울프에게 연결을 잘 해 주다 보니, 팀의 주득점원이었던 대호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오클랜드 슬랙스가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1위를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반기 들어 대호가 팀에 돌아오면서 타순이 2번 타자로 한 타순 밀리긴 했지만, 이전 지미 울프가 그랬던 것처럼 타격이 더욱 살아났다.

    그러다 보니 홈런의 개수도 늘어나 정규시즌에 32개의 홈런을 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챔피언 시리즈에서 달튼은 포스트시즌 최초로 홈런을 쳤다.

    또한 오늘 2차전에서도 방금 전 홈런을 친 것이다.

    당연히 홈 팬들은 방금 전 대호에 이어 백투백 홈런을 친 켈리 달튼의 이름도 연호하기 시작했다.

    짝!

    “축하한다.”

    그라운드를 돌아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켈리 달튼을 가장 먼저 맞이한 이는 대호였다.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 안으로 들어가려다 왠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보단 펜스 앞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다음 타석에 들어간 달튼이 백투백 홈런을 치는 것이 아닌가?

    “역시 비싼 보약을 먹으니 효과가 오래가네.”

    경기 전 라커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 달튼은 대호의 보약에 대해 언급을 했다.

    “그렇지. 비싼 보약이고, 또 켈리 너는 아직 젊고 노력도 하잖아? 그러니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홈런 치는 것도 당연하지.”

    “으하하하!”

    대호의 너스레에 달튼은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날렵한 몸매를 가진 그인만큼 너털웃음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한편 또 다른 친구인 달튼이 홈런을 치고 들어오자 브렛의 눈에서 불이 켜졌다.

    ‘달튼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정규 시즌에서 서른 개가 넘는 홈런을 치기는 했지만, 달튼 본인도 자신은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입이 아니라 했다.

    상대 투수가 던진 투구를 정확한 타이밍에 휘둘러 홈런을 만드는 메커니즘으로 시즌을 진행하다 보니, 사실 올해는 플루크가 아닐까하는 걱정도 많이 한 켈리 달튼이었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 이틀 간의 활약을 보면 아무도 플루크의 ㅍ자도 꺼내지 못하게 될 듯했다.

    경기 시작부터 홈런을 때려 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대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을 들어 보니 실력도 실력이지만, 어제 먹은 보약의 기운이 정말로 오늘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나도…….’

    출루율은 달튼에 비해 떨어지지만, 장타력에서 근소한 차이로 살짝 우위에 있는 브렛이었다.

    달튼과 친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같은 내야수이고 한때는 같은 포지션을 두고 경쟁을 한 라이벌이기도 했다.

    사실 달튼은 내야 전 포지션을 다 볼 수 있는데 반해, 브렛은 2루 포지션 하나만 가능했다.

    그 말은 두 사람이 양립하기 위해선 한 사람이 포지션 양보를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결론은 멀티 포지션 능력이 있는 달튼이 2루수 자리를 양보하면서 끝났다.

    그러다 보니 달튼이 고마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격지심이 일어나 경쟁의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브렛이 조금이나마 달튼보다 더 나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OPS와 홈런의 숫자였다.

    운이 좋게도 투수가 부족했던 오클랜드 슬랙스가 기존 2루수인 아론 헤들러를 LA다윈스와 트레이드를 하면서 부족해진 2루를 보강하기 위해 브렛이 먼저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었다.

    한 시즌 먼저 메이저리그로 올라온 브렛은 2루수 백업을 하면서 실력을 키워 올 시즌 풀타임으로 시합에 나가면서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2년차 소포모어 징크스도 겪지 않고 3할 초중반의 타율과 서른 개가 넘는 홈런을 때렸다.

    시즌 중 성적을 보면 달튼과 브렛은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성장하였다.

    그런데 디비전 시리즈도 그렇고 이번 챔피언십에서도 브렛은 달튼에 비해 자신이 더 우세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랬기에 지금 달튼의 솔로 홈런을 보며 경쟁의식을 키워 가고 있었다.

    * * *

    “2번 타자 켈리 달튼 선수, 정대호 선수에 이어 백투백 홈런을 때려 냅니다!”

    김승주는 대호가 친 초구 솔로 홈런에 흥분을 했다가 또다시 2번 타자 켈리 달튼이 백투백 홈런을 쳐 내자, 마치 춤이라도 추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방금 전 홈런을 때린 켈리 달튼 선수도 우리의 정대호 선수와는 각별한 사이라고 하죠.”

    “예. 팀 동료 중 2루를 보고 있는 브렛 선수와 함께 오클랜드 슬랙스 막강 막내 라인이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막강 막내 라인이요?”

    “주장인 홈런 브레드 선수의 말을 빌리자면 인크레더블과 떨거지들이라고 하더군요.”

    언젠가 한국 기자들이 오클랜드 슬랙스의 지구 우승을 확정하고 인터뷰를 할 때 물어본 질문에서 주장인 홈런 브레드가 그렇게 두 사람을 소개했었다.

    팀에서 가장 친한 동료를 브렛과 달튼이라고 대호가 대답했을 때 일이다.

    “하하. 그렇다면 방금 전 정대호 선수의 홈런에 자극을 받은 켈리 달튼 선수가 백투백 홈런을 쳤는데, 브렛 선수도 가만있지 않겠군요.”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다고 김승주는 브렛의 경쟁심을 알지 못했지만, 마치 그러한 심정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이런 김승주의 예언 아닌 예언은 금방 확인이 되었다.

    3번 타자로 나온 리키 헨슨이 우익수 뒤로 넘어가는 2루타를 치고 2루에 진루를 하자, 오늘 홈런 브레드 대신에 4번에 타순을 올린 브렛이 타석에 들어섰다.

    “하하. 브렛 선수, 오늘은 4번 타순에 이름을 올렸군요.”

    김승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원래는 팀에서 6번과 7번을 오가는 타순에 있는 브렛이 오늘은 타순에서 빠진 홈런 브레드 대신 4번 타자로 나왔다.

    오클랜드 슬랙스 지도부는 오늘 2차전에서 초반 승부를 보기로 작정을 하였다.

    컨디션이 좋은 에디 프랭크를 보며 초반에 힘을 실어 점수를 내 이것을 끝까지 지킨다는 작전이다.

    이런 의도는 1회 말 대호의 공격에서 바로 드러났다.

    대호의 솔로 홈런에 이어 달튼의 백투백 홈런, 그리고 3번 타자인 리키 헨슨의 2루타가 연속으로 터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타격감이 좋은 브렛이었다.

    홈런 브레드에 비하면 경험도 적고 또 파워도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경력에 비해 선구안이 좋고 아직 20대다 보니 파워가 적은 편도 아니다.

    만약 여기서 또 한 번 점수를 내준다면 오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따아아악!

    “우와아아!”

    브렛의 타격음이 울리자 이를 지켜보던 홈 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이는 타격음만으로 어떤 타구가 될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타구가 날아가는 방향을 보면, 절대로 파울 홈런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약간 우측으로 꺾이긴 했지만, 파울을 가르는 우측 폴 대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타다다다!

    분명 스윙을 하고 공을 때렸는데, 손에는 아무런 감각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브렛은 그라운드를 돌면서도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게 홈런을 쳤을 때 감각이구나!’

    지금까지 홈런을 수 없이 때려 보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이번처럼 손에 감각이 전혀 남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홈런을 쳤을 때, 묵직하게 손에 공을 때려 냈다는 감각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대호가 대형 홈런을 치거나 장외 홈런을 쳤을 때 들려주는 감각에 대해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전, 센터 방면 전광판을 맞추는 대형 홈런을 치고 지금 손에 아무런 감각이 남아 있는 않은 것을 확인하자 그 말을 믿게 되었다.

    홈런을 친 브렛이 그라운드를 돌아 홈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뉴욕 킹덤즈 더그아웃은 차가운 냉기만이 감돌았다.

    어제 1차전에 이어 2선발이 마운드에 오른 이번 2차전도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벌써 4점이나 상대에게 헌납해 버렸다.

    이제 겨우 1회 말인데, 4타자 상대로 홈런을 세 방이나 맞았다.

    그것도 팀의 2선발이 말이다.

    물론 1선발이든 2선발이든 초반에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하필 그런 날이 오늘일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팀의 1, 2선발이 무너지면 홈으로 돌아가더라도 오클랜드를 상대하기가 매우 어려울 공산이 컸다.

    더욱이 구단주는 구단 창립 130주년을 맞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사용해 팀을 꾸렸다.

    그런데 월드 시리즈도 아니고 기껏해야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준우승에 머물게 된다면 결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 젠장!’

    애런 본은 조용히 그라운드를 지켜보며 속으로 욕했다.

    어젯밤 그렇게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코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승부를 하라고 했는데, 상대가 그런 것도 없이 과감하게 배팅을 하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초상집이 된 뉴욕 킹덤즈 더그아웃과 반대로 오클랜드 슬랙스 코칭스태프는 이제 겨우 1회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어제에 이어 뉴욕 킹덤즈는 선발이 무너지며 불펜을 가동해야만 했다.

    그나마 어제 선발로 나왔던 헤르만 킹은 4점을 내주긴 했지만 4회까진 던졌다.

    5회 난타를 당하고 강판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 2차전 선발로 나온 슈미트는 1회부터 벌써 4점을 내줬다.

    안타 포함 3홈런을 맞고 4점을 내주다 보니 지금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맸다.

    따악!

    “우와!”

    오늘 2차전에서 5번 타자에 이름을 올린 지미 울프가 가운데로 몰린 패스트볼을 강타해 2루에 진출하였다.

    정상적으로 수비를 했다면 1루타로 막아 낼 수도 있고, 또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 2루에서 아웃을 잡아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슈미트가 연속 4안타(3홈런)를 맞으며 멘탈이 흔들릴 때, 뉴욕 킹덤즈의 야수들도 덩달아 정신 줄을 놓아 버렸다.

    그 때문에 단타로 막을 수 있던 공도 에러가 나오면서 2루타가 된 것이다.

    따아악!

    이렇듯 뉴욕 킹덤즈는 안팎으로 악재가 겹쳤다.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은 에디 프랭크를 상대로 안타 하나도 빼기 힘든 반면, 정신없이 때려 대는 오클랜드 슬랙스 타선에 똥오줌 가리지 못하고 허덕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코칭스태프도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압도적인 오클랜드 슬랙스의 전력에 악의 제국이라 불리던 뉴욕 킹덤즈가 먹혀 버렸다.

    선수, 감독, 코치 너나할 것 없이 완벽하게 상대에 압도되다 보니, 뉴욕 킹덤즈는 오늘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에서 깊은 수렁으로 끌려들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경기 시작이라 할 수 있는 1회 말 수비에서 말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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