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200화 (200/209)

200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어제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을 승리한 오클랜드 슬랙스에게도, 그리고 패배를 한 뉴욕 킹덤즈에게도 말이다.

챔피언십 1차전에 4선발이 등판하면서 뜻밖의 승리를 쟁취한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2차전이 펼쳐지는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았다.

물론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는 야구팬 중에는 오클랜드 슬랙스를 응원하는 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 동부 뉴욕에서 뉴욕 킹덤즈를 응원하기 위해 온 팬도 존재했다.

하지만 두 구단의 팬이 아닌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오클랜드의 승리보다는 뉴욕 킹덤즈가 패배하기를 기원하며 모여들고 있었다.

“하구연 위원님! 오늘도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야구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정말 많네요.”

경기 전 미리 중계 부스에 나와 있던 김승주가 자신의 옆자리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하구연 해설을 보며 물었다.

“하하, 메이저리그는 이런 점이 참으로 부러워요.”

질문을 받은 하구연은 준비하던 것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며 그렇게 대답했다.

한국의 KBO리그는 인기 팀이 아닌 이상, 포스트 시즌에 들어서야만 경기장이 부산해진다.

아니, 인기 팀이더라도 그 해의 성적이 좋지 못하면 경기장이 텅 빈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에 반해 메이저리그는 포스트 시즌뿐만 아니라 항상 관중이 경기장에 꽉꽉 들어차 있었다.

경기장 출입을 위해 시즌권을 구매하는 금액이 적지는 않을 것인데, 메이저리그 팬들은 이러한 비용을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한 가족이 다함께 시즌권을 구매할 정도이니, 이들의 야구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하하, 저도 프로야구 중계를 하면서 그 점은 부럽더라고요.”

김승주도 야구 중계를 많이 하면서 미국인들의 야구 사랑만큼은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경기 전이다 보니 김승주나 하구연 해설은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중계 준비를 하였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있는 듯 김승주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제 경기에서 정대호 선수가 6회까지만 수비를 하고 교체가 되었는데, 혹시 몸에 문제가 있어서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조치를 취한 것일까요?”

3타석 2안타 1홈런 1볼넷을 기록한 대호가 6회 초 수비를 마치고 교체가 된 것을 두고 물어본 것이다.

“아마 그건 아닐 것입니다.”

“네?”

하구연은 어제 대호가 이른 시기에 교체되었음에도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하구연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린 김승주가 다시 물었다.

“부상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이유로 6회까지만 경기에 내보낸 것일까요? 심지어 직전 타석에서 홈런까지 쳤는데 말이죠.”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기에 물어본 것이다.

“제 생각에는 아마도 체력 안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체력 안배요?”

하구연의 설명에 김승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이유라면 챔피언십 시리즈 이전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그랬어야 하는데, 그때는 중간에 교체를 하지 않고 경기에 풀타임으로 뛰었다.

그런데 챔피언십 시리즈에 들어와 갑자기 체력 안배를 시작했다는 게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체

“잘 생각해 보세요. 정대호 선수는 올 시즌 중반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아!”

시즌 중반 큰 부상을 입었다는 말에 김승주도 생각이 났는지 탄성을 질렀다.

“6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었죠.”

“네. 그런데 그런 부상을 당하고도 60일 만에 치료와 재활까지 모두 마치고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죠.”

“맞아요. 정말 그때 생각만 하면 아찔합니다.”

김승주와 하구연은 6월 초 대호가 당했던 부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정대호 선수가 후반기 부상 복귀를 한 뒤 보인 행보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하구연 해설이 끝나자마자 김승주의 머릿속에 후반기 70경기 동안 대호가 보여 준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며 탄성을 질렀다.

“아!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맞습니다, 2001년에 세운 배리 본즈의 73개 홈런을 32년 만에 갱신을 했습니다.”

“하! 정말이지 정대호 선수는 팬들이 부르는 인크레더블이란 별명처럼 슈퍼 히어로가 아닐까 의심될 지경입니다.”

“그렇죠. 여기서 아까 제가 말한 체력 안배가 등장합니다. 후반기 70경기 동안 45개의 홈런을 친 것이나, 정규 시즌이 끝나고 특별 휴가를 받은 것 등을 감안하면…….”

하구연은 말을 잠시 끌었다.

“아마도 오클랜드 슬랙스 수뇌부에선 이번 챔피언십이 아닌 월드 시리즈를 대비해 정대호 선수를 최대한 아끼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번의 풀타임, 그리고 한 번은 휴식 이렇게 말이죠.”

“그런 이유라면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그제야 김승주도 궁금한 점이 풀린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오클랜드 슬랙스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프런트도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가 아닌 그 너머 월드 시리즈를 노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점수 차가 10점 차로 벌어지자 과감하게 대호를 경기에서 뺀 것이다.

그 정도 점수라면 아무리 불펜이 방화를 하고, 또 뉴욕 킹덤즈 타자들이 살아난다 해도 불펜진이라면 충분히 승리를 따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일찍 무너진 뉴욕 킹덤즈 마운드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4선발을 올려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을 가져간다면 아쉽기는 하지만 뉴욕 원정에서 리그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최악이더라도 홈으로 돌아오는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 * *

“이게 그거란 말이지?”

몇몇 선수들이 대호의 주변으로 모여 떠들었다.

“안 돼요. 이건 아무 때나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도 더는 못 줘요.”

자신의 주변으로 몰려와 어머니가 지어준 보약을 노리는 팀 동료들을 보며 대호는 어떻게든 그것을 사수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헤이, 대호. 넌 그런 것 없어도 되잖아!”

누군가 선수들 뒤쪽에서 소리쳤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어제 대호에게서 보약 한 포를 얻어먹고 약발을 제대로 받은 브렛의 목소리였다.

“그러지 말고 대호, 오늘 딱 한 개만…….”

모여든 선수들 사이를 파고 안으로 들어온 브렛이 애원하는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대호를 쳐다보며 이야기하였다.

“너하고 달튼은 어제 한 포 먹었으니 오늘은 먹지 않아도 충분해!”

아직 20대 중반인 브렛이나 달튼이라면 굳이 매일 보약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간간히 보충을 해 주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어디 한계를 보이는 것인가.

대호의 보약을 호시탐탐 노리는 건 비단 브렛만이 아니었다.

다른 동료들이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면, 실제로 먹어 보고 경기에서 효과를 본 브렛이나 켈리 달튼, 그리고 홈런 브레드의 경우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다만 오늘 주장인 홈런 브레드는 경기에 나가지 않았기에 굳이 대호에게 부탁하지 않고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 모든 경기에 출전을 하진 않고 있었다.

대호가 60일 IL로 장기간 결장을 하고 있을 때, 홈런 브레드도 체력 문제로 지명타자와 선발을 오가면서 경기에 출전했다.

후반기에 접어들어 대호가 부상에서 돌아오자 이제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며 3일에 한 번씩 휴식을 취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제 대호가 준 보약을 먹고 경기에서 오랜만에 홈런을 쳤으니 그 느낌이 어떻겠는가.

마치 대호의 보약만 있으면 시즌을 풀타임으로 뛸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에 흥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약까지 먹어가며 현역을 이어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브렛처럼 나서서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20대 나이에, 벌써 이런 것에 의지하면 절대로 대성하지 못한다고.”

대호는 계속해서 자신의 보약을 노리는 브렛을 보며 그렇게 경고를 하였다.

솔직히 자신도 평소 같았으면 어머니가 보내 준 보약을 먹지 않고 임신한 한나에게 양보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즌 중반 부상을 당하고, 또 후반기에는 N사와의 후원 재계약 문제로 화가 나 무리하게 기록 도전을 한 여파가 남아 있었다.

분명 구단에서 배려를 해 주었지만, 체력이 살짝 부족한 감을 받은 것이다.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보내 준 보약을 먹는 중이다.

또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마이너 시절부터 자신을 도와준 브렛과 달튼을 챙겨 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약빨을 보고 그에 취해 때를 쓰는 브렛의 모습을 보자, 자칫하면 그가 합법적인 곳이 아닌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고를 한 것이었다.

“나중에 필요하다면 구해 주겠지만, 오늘은 아니야!”

대호는 단호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모습에 브렛도 더 이상 보채지 않았다.

평소에는 친절한 대호지만, 이런 모습을 보일 때면 누가 와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알았어. 하지만 나중에 부탁하면 들어주는 거다. 약속한 거야?”

브렛은 물러나면서도 그렇게 재차 약속했다면서 강조하였다.

한편 경기장으로 출근을 한 앤디 프랭크는 로커 룸으로 들어오다 말고 뜻밖의 소동을 목격하고 어제 대호가 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 그것 때문이구나!’

무엇 때문에 대호 주변으로 팀 동료들이 몰려 있는 것인지 이해한 그는 옷을 갈아입으며 다른 동료 몰래 그것을 먹었다.

‘윽! 쓰다.’

앤디 또한 다년간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건강식품과 건강 보조 식품을 먹었다.

그중에는 먹기에 꺼림칙한 것도 있고, 또 맛이 끔찍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먹은 것처럼 쓴 것은 없었다.

‘으, 다시는 못 먹겠다.’

맛도 끔찍하게 쓸 뿐만 아니라 냄새도 고약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부탁해 얻은 만큼 억지로 참고 남은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먹었다.

‘이게 정말로 오늘 경기에 도움이 될까?’

그는 반신반의하며 몸을 풀기 위해 운동장으로 나갔다.

* * *

펑! 펑!

앤디 프랭크는 경기 시작 전 연습 투구를 던졌다.

‘어?’

경기가 시작되지 않았기에 60%의 힘만으로 공을 던졌는데, 포수 미트에 꽂히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앤디! 시작 전부터 너무 힘 빼는 것 아냐?”

공을 받고 있던 페레즈가 소리쳤다.

“아냐. 지금 60% 쯤으로 던지고 있는데?”

포수 카를로스 페레즈의 말에 프랭크는 자신이 현재 어느 정도의 힘으로 던지는지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오늘 긁히는 날인가?”

투수에게 그런 날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제구가 잘 되고, 또 변화구가 생각한 만큼 잘 꺾이는 때 말이다.

하지만 이는 투수 본인이 아는 것 보단 공을 받아 주는 포수가 먼저 눈치를 채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앤디 프랭크의 공을 받아 주고 있는 페레즈도 연습 투구를 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고 있었다.

“패스트볼은 된 것 같으니 이번에는 슬라이더로 한 번 던져 봐.”

“OK!”

자신의 공을 받아 주는 페레즈의 요구에 프랭크는 이번에는 10% 정도 더 힘을 주어 공을 던졌다.

쉬이이익!

펑!

“빌어먹을!”

공을 받은 페레즈가 느닷없이 욕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느닷없이 공을 받던 페레즈가 욕을 하며 일어나자 주변에 있던 투수 코치가 다가와 물었다.

“코치! 오늘 프랭크가 일 좀 낼 것 같은데?”

욕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던 페레즈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타이슨 로슨 투수 코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러자 페레즈는 미트에서 뺀 자신의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걸 좀 보세요.”

페레즈가 내보인 손바닥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60% 정도의 힘으로 던진다고 했는데, 공을 받으니 이렇게 부었습니다.”

“뭐!”

페레즈의 말에 타이슨 코치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프랭크가 팀의 에이스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위력적인 구위를 가진 투수는 아니었다.

그런데 평소보다 40%나 적은 힘으로 투구를 했는데도 주전 포수의 손바닥이 붉게 달아오른 것이다.

“부상당하기 싫으면 시합에선 속장갑을 한 장 더 껴라!”

타이슨 투수 코치는 페레즈에게 경고를 하고 프랭크에게 걸어갔다.

“프랭크. 페레즈가 그러던데, 너 지금 60% 정도로 공을 던지고 있다며?”

투수 코치의 질문에 프랭크는 솔직하게 대답을 하였다.

“오늘 공이 좋다고 해서 방금 전에는 10% 정도 더 힘을 줘서 던져 보았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보고 있을 테니 한 번 더 던져 봐. 참!”

타이슨은 프랭크에게 자신이 지켜볼 테니 다시 공을 던져 보란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스피드건을 가져오라 하였다.

“오늘 투구 체크도 해 볼 테니, 스피드건 좀 가져와.”

“알겠습니다.”

때 아닌 프랭크의 퍼포먼스로 인해 불펜은 시합 전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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