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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90화 (190/209)

190화

20세기 최고의 복서 중 한 명인 마이크 타이슨이 이런 말을 하였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나에게 맞기 전까지는 말이다.’라는 명언을 말이다.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우승을 확정한 오클랜드 슬랙스를 상대로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LA데블스는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도전을 하는 대호를 맞아 자신들의 선발진 모두를 마운드로 내보낸다는 계획을 가지고 그의 기록을 저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러한 LA데블스 코칭스태프의 계획은 1회 초부터 파탄이 났다.

선발로 나온 투수가 자신들의 에이스란 것도 있고, 또 도발에 넘어간 포수의 영향도 있어 이게 조금씩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다 보니 대호의 노림수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1회 초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대호는 대기록 갱신까지 단 한 개의 홈런만을 남겨 두게 되었다.

단 한 개의 홈런만 더 치면, 역대 메이저리그 한 시즌 홈런 기록과 동률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것인지 LA데블스는 더 이상 방심하지 않고 대호와 어렵게 승부를 펼쳤다.

최대한 보더 라인 바깥쪽에서만 승부를 하다 보니 좀처럼 좋은 타구를 쳐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어느 덧 대호는 3타석 2타수 1안타 1아웃 볼넷 1개를 기록하였다.

스코어는 2:2로 팽팽하게 이루어졌다.

“우리의 정대호 선수, 첫 타석에서 예고 홈런을 치며 좋은 출발을 하였는데… 그 다음 타석에서 볼넷과 파울플라이 아웃을 기록하며 우리에게 아쉬움을 주었습니다.”

“LA데블스 입장에서도 방심하다 1회에 홈런을 맞고 그 뒤로 좋은 공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아나운서인 김승주는 7회가 되어 이젠 마지막 타석이 될지도 모르는데, 단 한 개의 홈런 때문에 메이저리그 한 시즌 홈런 기록과 동률이 될 기회를 놓칠 것 같자 답답해했다.

이에 하구연 해설 위원은 좋은 출발을 했음에도 더 이상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는 것에 원인 파악을 하고 설명을 하였다.

“정대호 선수 타석에 들어섭니다.”

* * *

후우!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깊게 심호흡을 하였다.

마지막 타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절로 조급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을 경계를 하며 최대한 평소 리듬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 이것 봐라!’

7회 초, 2:2로 팽팽하게 진행이 되고 있는 지금 이전 타석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대호의 모습에 타이스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렇지! 넌 지금 대기록에 단 하나의 홈런만 남겨 두고 있고, 타석은…….’

오랜 시간 LA데블스의 주전 포수로써 마스크를 쓰고 있는 그였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타자들을 상대해 보았다.

그중에는 지금의 대호만큼은 아니지만, 이름만 대도 알아주는 홈런 타자도 있었고, 매년 서른 개 이상의 홈런을 때리는 장타자도 있었다.

물론 그중 가장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타자는 단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대호가 최고였다.

하지만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는데, 시즌 막바지로 갈수록 그들의 타격 자세가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기록에 욕심을 내는 것이 당연한 타자의 본능이었다.

‘너도 어쩔 수 없는 욕심 많은 타자였군!’

뒤늦게 지금 대호가 기록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타이스는 마운드 위에 있는 산도발에게 사인을 보냈다.

‘몸 쪽에 붙는 커터야! 절대로 가운데로 몰리면 안 돼!’

타이스는 마운드 위에 있는 3선발 산도발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가운데로 몰리면 장타 혹은 홈런을 줄 수 있다며 주의를 주었다.

그런 타이스의 사인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산도발이 공을 던졌다.

팡!

부웅!

“스트라이크!”

제대로 컨트롤 된 커터가 공 하나 안쪽으로 들어오게 제구가 되어 들어왔다.

이에 대호는 몸 쪽으로 공 반 개 정도 빠지는 공으로 판단해 스윙을 하다 보니, 투수가 던진 공이 배트의 밑으로 빠져나가 버리면서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탁탁!

헛스윙을 한 대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두어 번 두들겼다.

저도 모르게 욕심에 크게 스윙을 가져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 경기가 아니고 시즌 중이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후우!’

실수를 깨달은 대호는 최대한 몸에 들어가는 힘을 빼려고 노력을 하였다.

홈런 욕심에 몸에 힘을 주면, 정말로 필요한 때에 몸이 굳어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자연스러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투수의 투구 폼에만 집중하였다.

‘된다.’

그렇게 투수에게만 집중을 하다 보니 몸에 힘을 빼는 것은 부수적이고, 후반기에 남발하다 보니 요즘 좀처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그 다음으로 주변 배경이 조금씩 좁아졌다.

그러다 두 눈에 마운드 위에 투수만이 남았다.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가 천천히 투구 동작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뭐지? 어떤 공이지?’

투수의 투구에 집중을 하니, 글러브에서 벗어나 공을 쥐고 있는 투수의 손이 보였다.

그리고 공을 쥐고 있는 그립이 눈에 들어왔다.

‘슬라이더? 아니, 비틀림이 없어!’

분명 그립은 슬라이더 그립인데, 꺾이는 각을 위해 손목을 비트는 동작이 없었다.

그리고 마치 패스트볼을 던지듯 팔을 휘두르는 동작이 보였다.

‘맞아! 저건 슬라이더가 아니라 커터야, 커터!’

투수들에게 들은 기억이 있었다.

투수 중 커터를 던지기 위해 그립만 슬라이더처럼 쥐고, 팔의 궤적은 패스트볼을 던지는 것처럼 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이다.

아니, 많은 투수가 커터를 던질 때 이러한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고도 했다.

이는 투구시 공의 구질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일리가 있다고 당시에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러한 투수를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리게 날아오는 공을 보며, 대호는 다시 한번 자신의 판단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아오는 공의 회전이 그것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떤 구종인지 확신한 대호는 앞에 놓인 왼발을 옆으로 벌리며 가슴을 살짝 열어, 몸 쪽으로 날아오는 공과 틈을 만들었다.

그대로 스윙을 가져가면 또다시 조금 전 헛스윙을 한 것처럼 공의 윗부분으로 배트가 지나갈 것이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 스윙을 조정한 것이다.

한편 다시 한번 커터를 던지라고 사인을 보냈던 타이스는 투수가 자신의 주문대로 커터를 던지는 모습을 보고, 또 이에 반응하는 대호를 보며 안심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호의 스윙이 조금 전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 돼!’

타자의 뒤에서 지켜보다 보니 무엇이 다른지 금방 깨달았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는 그대로 증명이 되었다.

따아아악!

대호가 휘두른 배트에 맞은 타구는 대포에서 발사된 포탄마냥 하늘 높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올랐다.

“우와아아!”

* * *

“정대호 선수. 힘차게 스윙을 가져가지만, LA데블스의 세 번째 투수 산도발 패드윅이 던진 공 위로 지나갑니다.”

산도발이 던진 커터에 헛스윙을 하는 모습에 안타까운 심정에 소리쳤다.

“괜찮습니다. 비록 스트라이크를 먹기는 했지만, 산도발 투수는 정대호 선수를 맞아 정면 승부를 펼치려 합니다.”

하구연 해설은 비록 대호가 헛스윙을 하며 초구 스트라이크가 되긴 했지만 괜찮다는 판단을 하였다.

“아, 그러고 보니 1회 초 이후 LA데블스 투수들이 정대호 선수와 정면 대결을 하지 않았는데, 산도발 투수는 정면 승부를 하였군요.”

김승주는 뒤늦게 방금 상황이 결코 대호에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산도발 투수, 커터 컨트롤이 아주 예리합니다.”

대호가 가져가는 스윙 궤적 아래로 빗겨 가는 공을 보며 하구연 해설이 부연 설명을 하였다.

타이밍 좋게 스윙을 가져갔지만, 투수의 노림수가 더 좋아 헛스윙이 되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하구연 해설은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예감은 너무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초구에 던진 커터가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투수가 다시 한번 같은 구질의 공을 던지는 것이 보였다.

대호와 같은 능력은 없었지만, 중계석에서 카메라를 통해 투수의 공을 지켜보다 보니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가 어떤 공을 던졌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따아아악!

벌떡!

마치 공을 쪼갤 것 같은 맑은 타격음을 내며 날아가는 타구에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홈런! 홈런이에요!”

아직 펜스를 넘어간 것도 아닌데, 김승주는 벌써부터 홈런이라고 떠들어 댔다.

다른 때라면 설래발 치지 말라고 자제를 시켰을 하구연이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도 이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홈런이다.’

결과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처음 공이 배트와 부딪히면서 들린 맑은 소리, 그리고 배트에 맞아 튀어 나가는 탄도각만 보더라도 아직 펜스를 넘기지 않았지만 이 타구는 홈런이라고 직감한 것이다.

“우와아아아!”

데블스 스타디움을 찾은 펜들도 모두 느꼈다.

지금 타구가 단순한 장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은 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타구를 쫓았다.

웅성웅성!

38°의 각을 이루며 대기를 가르며 날아가던 타구는 마치 대기록 갱신을 축하해 주는 것처럼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날았다.

올라가면 내려오는 때가 있다고 했던가?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던 타구가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라운드 내에 있는 LA데블스 야수들은 그것을 쫓으려 하지 않고 그저 지켜만 보았다.

그럼에도 데블스의 팬 누구 하나 그런 선수들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들 또한 대호가 친 홈런성 타구의 방향을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슈슈슈!

빠르게 대기를 가르며 날던 타구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긴 했지만 결코 그라운드 안에 떨어지지 않았다.

“홈런!”

대호의 타구를 보면서 주심은 무심하게 홈런이라 선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타구는 데블스 스타디움의 외곽 담장을 넘기는 장외 홈런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와아아!

주심의 홈런 선언에 야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30여년 만에 시즌 홈런 기록이 갱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 누구도 73개의 홈런을 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간신히 60개를 넘겼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3년간 가능성만 보여 주던 대호가 실제로 기록을 갱신했다.

그러다 보니 오클랜드 슬랙스 팬이나 대호의 개인 팬뿐만 아니라, 오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은 야구팬은 역사적 기록이 갱신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크게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탁탁탁탁!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아 홈으로 들어왔다.

대호의 홈런으로 스코어는 3:2로 오클랜드 슬랙스가 1점 앞서게 되었다.

짝짝짝짝!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감독의 권유로 다시 한번 더그아웃에서 나왔다.

더그아웃에서 나온 대호는 더그아웃 뒤쪽에 자리한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신의 홈런에 환호해 주는 팬들에 대한 보담을 하기 위해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에 맞게 모션을 취한 것이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이전보다 더한 환호성이 들렸다.

“우와아아!”

“빅 타이거! 빅 타이거!”

“인크레더블! 인크레더블!”

영어식 이름과 많이 유명해진 닉네임이 함께 들려왔다.

비록 이곳이 LA데블스의 홈구장인 데블스 스타디움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대호가 주인공이었다.

“고국에 계신 야구팬 여러분! 들리십니까? 지금 이곳 데블스 스타디움은 우리의 자랑인 정대호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의 소리로 가득합니다.”

김승주는 눈가에 눈물마저 맺힌 채 울부짖었다.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비록 요즘 인종차별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 심심치 않게 인종차별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분하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는 미국인도 있었고, 유럽에서 관광 온 백인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때려는 폭행까지 당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다른 곳도 아니고 적진이나 다름없는 데블스 스타디움에서 라이벌 구단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수 이름이 울려 퍼지고, 또 그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 정대호이니 김승주가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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