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2033시즌 165경기 중 163경기를 마쳤다.
이쯤에서 오클랜드 슬랙스처럼 순위 경쟁이 끝난 곳도 있고, 그렇지 않고 아직도 포스트 시즌을 위해 경쟁을 하는 곳도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였다.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가 오클랜드 슬랙스의 우승이 확정된 것과 다르게,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는 지구 1위부터 3위까지 각각 1게임, 그리고 1.5게임 차이가 나 한치 앞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지구 선두인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와 2위 콜로라도 럭키스가 각각 85승 78패와 84승 79패를 하였고, 3위인 LA다윈스가 83승 79패로 한 경기가 더 남은 상태에서 뒤를 쫓고 있기 때문이다.
내셔널리그만 이런 것도 아니라,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도 1, 2위가 지구 우승을 위해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
보스턴 블루삭스와 뉴욕 킹덤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알아주는 라이벌 구단인 보스턴과 뉴욕을 연고로 하는 이 두 팀도 94승 69패와 93승 70패로 두 경기를 남겨 두고 1게임차로 1,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선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었다.
차라리 포스트 시즌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먼저 순위에서 밀려난 팀이 다음 2034시즌 준비를 훨씬 빠르게 들어가게 되었으니, 2034시즌에는 성적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이다.
* * *
덜컹!
“자기, 벌써 씻고 나오는 거야?”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대호를 보며 한나가 물었다.
샤워 타월을 허리에 감고 나오는 대호를 보며 물어보는 한나의 모습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살짝 배가 불러 있었으니 말이다.
그랬다.
한나는 현재 대호의 2세인 대호 주니어를 잉태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임신 4개월에서 5개월로 넘어가는 시기라 크게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충분히 그녀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몸매엔 변화가 있었다.
이 때문에 현재 한나는 울프TV에 휴직계를 낸 상태다.
이번 2033년 정규 시즌이 끝나면, 휴직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응. 경기 끝나고 씻고 왔는데, 집에서 샤워는 금방이지.”
별것 아니란 듯 무심하게 대답을 한 대호는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런데 한나는 벌써 휴직계를 낼 필요가 있었어?”
대호는 그것이 궁금했다.
아직 임신 5개월도 되지 않아 움직이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데, 굳이 이렇게 일찍 방송국에 휴직계를 낼 필요가 있었는지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한나의 생각은 달랐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29살의 나이가 결코 적은 나이도 아니라 생각하는 한나다.
또한 첫 임신이다 보니 조심해야 할 것이 많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대호는 현재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서 전설이 될 남자로 불리고 있으며, 몇몇 팬들에게는 영웅이라 불리고 있다.
그런 슈퍼스타의 2세를 임신하고 있었기에 팬들에게서 많은 걱정과 우려 섞인 댓글을 받기도 했다.
그중 가장 많이 달린 글이 바로 대호의 2세를 안전하게 낳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외부 활동을 하다가는 유산이 될 수도 있으니, 아기를 위해 활동을 줄이라는 조금은 선을 넘는 글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읽은 한나는 이를 그냥 흘려듣지 않았다.
그래서 이왕 임신하였고, 또 시즌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니 조금 더 빠르게 임신을 이유로 휴직을 신청한 것이다.
물론 한창 인기가 오르고 있고, 또 메이저리그에서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는 대호의 아내란 특별한 위치에 있는 한나가 임신을 이유로 휴직을 신청한 것은 울프TV 내에서도 안타깝게 생각을 하였지만, 또 다른 의미로 이를 인정해 휴직 신청을 받아들였다.
“회사에서도 좋게 받아들였고, 내년 시즌 초에 출산하게 될 예정이잖아. 그렇게 되면 방송국 입장도 난감할 텐데, 이렇게 내가 일찍 휴직 신청하는 것이 맞지.”
“흠… 그렇긴 하겠다. 배가 불룩한 상태에서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를 따라다니는 것도 좀 웃겼을 거야.”
대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짓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뭐라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 남편을 보며 한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타박을 하였다.
와락!
자신에게 따지듯 달려드는 아내의 모습을 본 대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살짝 아랫배가 나와 임신임을 알 수 있는 몸이라 조심했지만, 그렇다고 아내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쪽! 쪽! 쪽!
자신의 품에 깊게 포옹을 한 대호는 한나의 입술에 키스하였다.
연애 때의 깊고 진한 딥 키스는 아니었지만, 그의 키스에는 그녀에 대한 사랑이 깊게 묻어 있었다.
두 사람은 저녁을 먹고 나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자기, 그런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냐?”
이제 정규 시즌이 두 경기 남은 시점이었다.
대호의 안색을 살피는 한나가 그렇게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상에서 회복이 되고 후반기에 복귀하고 대호가 무리하는 감이 없지 않았다.
특히나 홈런 기록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이 이렇게 홈런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 후반기 복귀를 한 직후란 생각이 들었다.
“혹시 N사와 후원 재계약이 불발된 것 때문에 그런 거야?”
남편이 무리하기 시작한 때를 떠올린 한나가 물었다.
“응. 그런 것도 있고, 겸사겸사…….”
확실히 그날 N사 이사란 사람과 재계약 협상 자리에 나갔다가 받은 대우로 인해 화가 났었다.
또한 작년 시즌이 끝나고 세웠던 목표에 대한 것이 떠오르면서 무리를 하긴 했다.
타율을 조금 희생하기로 하고 홈런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 과정에서 작년 시즌이 끝나고 반성을 했던 것이 무색하게 되어 버리기도 했다.
그로 인해 현재 내구력이 작년 이맘때보다 더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 때와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이제 2033시즌도 두 경기만 남은 상태였다.
두 경기 동안 목표했던 73개 홈런 기록을 갱신해도 좋고, 그렇지 못해도 이젠 상관이 없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며 충분히 한 시즌 홈런 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전반기 95경기 중 50경기 정도를 날리고도 현재 71개 홈런을 쳤다.
이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능력을 폄하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서 나온 자신감이었다.
“자기, 너무 무리하지 마.”
“응. 이제부턴 그럴 거야.”
무엇 때문에 아내인 한나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는 대호였기에 그렇게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시즌이 끝나는 그날까지 대호는 매 경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앞으로 남은 두 경기는 물론이고,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 더 나아가 월드 시리즈까지 갈 수 있는 곳까지 모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2세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 * *
원래는 정규 시즌이 끝나기 전에는 만나지 않으려 하였다.
하지만 조엘과 맥콰이어는 어쩔 수 없이 한 자리에 만나고 말았다.
이는 너무도 뛰어난 선수와 의뢰인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오클랜드 슬랙스 구단의 단장을 맡은 조엘이나 여러 선수의 의뢰를 받은 에이전트인 맥콰이어도 가장 중요한 선수인 대호의 협상이 우선이었다.
사실 다른 선수나 의뢰인들은 기존 계약서에 명기된 내용대로 계약을 끝내면 되었다.
물론 그렇더라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맞았지만, 대호에 대한 계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였다.
그에 반해 대호의 계약은 기존 기준과는 다른 면이 있어, 오클랜드 슬랙스 구단이나 에이전트 모두 많은 신경이 쓰이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시즌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른 시간에 만난 것이다.
“이렇게 정규 시즌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단 먼저 말을 건 것은 조엘이었다.
이는 대호의 계약을 먼저 끝내 놓고 다른 선수의 연봉 협상을 하는 것이 구단 운영을 하는데, 문제가 적을 것이란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대호의 계약이 급한 것이 아니기에 오클랜드 슬랙스보단 비교적 여유가 있어 조용히 기다린 맥콰이어와는 입장이 달랐다.
“오클랜드에서 먼저 보자고 할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른 시기에 부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맥콰이어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며, 조엘의 눈을 보며 물었다.
“대호의 내년 연봉 협상을 위해 절 부른 것이겠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맥콰이어를 보며 조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이 맞았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맞습니다. 아무래도 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호의 연봉협상을 끝내지 않고는 다른 무엇도 잡히지 않을 것 같아 이렇게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이쪽의 패를 먼저 밝히는 순간 협상에 불리해짐을 잘 알면서도 조엘은 어쩔 수 없이 먼저 입을 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인 맥콰이어 역시 닳고 닳은 수완가.
어설픈 수를 써 봤자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런 전략을 취한 것이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맥콰이어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답을 하였다.
사실 맥콰이어의 입장도 비단 조엘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는 역사를 써 나가고 있는 대호이다 보니, 에이전트인 그도 2034시즌 대호의 연봉을 어느 정도를 부를지 기준이 서지 못했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던 중 조엘에게서 연락이 왔기에 일단 들어나 보자는 생각에 나왔다.
이제 겨우 서비스 타임 끝자락에 있는 선수에게 기록처럼 3천만 달러의 연봉을 주장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적은 연봉을 책정하면 의뢰인에게 만족을 주지 못해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을 수도 있었기에 맥콰이어로서도 조금은 버거운 협상이 아닐 수 없었다.
“저희 구단에선 2,300만 달러 +a 계약을 하길 원합니다.”
구단 회의에서는 2,500만 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조엘은 일단 첫 협상에서 패를 모두 오픈하지 않고 그보다 적은 2,300만 달러를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들은 맥콰이어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대호가 기어코 70호 홈런에 이어 71호 홈런을 쳤다.
처음 조엘의 연락을 받았을 때는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은 때라 대호가 홈런을 친지 몰랐다.
그런데 전화를 끝내고 한참 고민을 할 때, 경기에서 대호가 70호 홈런과 71호 홈런을 때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를 확인한 맥콰이어는 속으로 협상이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란 판단이 섰다.
그에 반해 뒤늦게 맥콰이어와 협상에 들어가기 전, 구단 회의에서 기준을 잡고 협상장에 나가려던 계획이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할 정도로 바뀌어 버린 것을 알게 된 조엘로서는 이 자리가 그리 편하지 못했다.
“+a는 옵션 계약이니 일단 넘어가고, 연봉 2,300만 달러라…….”
연봉을 언급하는 맥콰이어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지는 것을 보며 조엘이 긴장했다.
“데뷔 70경기에서 35홈런을 치고, 2년 연속 70홈런을 친 선수에게 2,300만 달러라. 단장님, 연봉이 좀 부족하다 생각하지 않습니까?”
“2,300만 달러가 적다는 말입니까? 이제 겨우 프로 3년 차 선수에게?”
조엘도 물러나지 않고 2,300만 달러라는 것을 언급했고, 또 대호의 프로 데뷔가 몇 년 차인지도 이야기하였다.
“물론 저희 의뢰인의 연차가 아직 서비스 타임을 끝낸 상태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장님이 언급한 2,300만 달러가 적은 돈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그 정도 연봉을 받는 선수가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조엘의 말을 듣고 있던 맥콰이어도 인정을 했다.
분명 2,300만 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그 3년 차인 선수가 아직 프로 전성기에 들어선 나이도 아니고, 또 전성기가 꺾인 에이징 커브에 들어선 선수도 아니다.
아직 시즌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3년 290경기에 나와 176개 홈런을 친 선수다.
홈런 개수만 많은 것도 아니고, 타율도 3년 연속 0.400이 넘었다.
아니, 올 시즌 전반기에 50경기를 부상으로 날리고도 71개 홈런과 0.452의 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2031시즌 후반기 메이저에 콜업 되고 얻은 타율이나 풀타임 시즌을 소화한 작년 2032시즌 타율보다 떨어졌음에도 그 정도였다.
사실 이것만 따져 봐도 그가 생각하기에 2,300만 달러는 너무도 부족해 보였다.
“그래도 그건 아닙니다.”
맥콰이어는 단호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의 기준에 대호는 그보다 충분히 많이 받아도 되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