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84화 (184/209)

184화

N사와 후원 계약 재협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니, 첫 협상은 양측의 의견 차이가 너무 심해 제대로 된 협상을 하기도 전에 결렬이 되어 버렸으니 사실상 제대로 된 만남은 두 번째 이후부터였다.

10년 장기 계약에 계약금이 겨우 5천만 달러라는 것에 대호는 물론이고, 에이전트인 맥콰이어 또한 N사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그 정도면 굳이 N사와 재협상을 하지 않고 이쯤에서 후원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 나았다.

1년 남은 후원 계약이야 현재 보유한 재산을 일부 정리를 하여 위약금을 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N사의 라이벌인 A사와 협상을 통해 위약금을 대신 치르게 할 수도 있었다.

다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은 것은 이곳 미국이 N사의 본사가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 * *

2033년은 대호에게 참으로 다사사난한 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즌 초만 해도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경신하며 작년 2032시즌보다 템포가 빨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보유한 스탯 중 지능만 제외하고 모두 70포인트를 넘겼다.

시즌 초의 미친 듯한 활약은 그 영향이 컸다.

이런 추세라면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50―50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되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너무도 잘 나가던 때, 우연히 목격한 사건으로 인해 대호는 큰 부상을 당했다.

물론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선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었기에, 비록 그로 인한 부상 때문에 전반기를 날려 버렸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60일 부상자 명단에 올라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며, 너무 빠르게 시즌 페이스를 올리지 않았나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트리플A에서의 실전 감각을 점검하는 세 번의 경기에서 8타수 8안타 4홈런을 기록하며 점검을 마쳤다.

그 결과 후반기 첫 경기에서 복귀전임에도 불구하고 3타수 2안타 1홈런과 볼넷 하나를 기록했다.

사회적으로 ‘히어로’의 이미지까지 덧입혀지며 명품 스포츠 용품 브랜드인 N사에서 재계약 의사를 타진하는 이야기까지 들어왔다.

그러나 대호에게도, 또 에이전트에게도 불합리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조건이었다.

빠르게 재계약을 마치고 시즌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초반부터 꼬여 버렸다.

‘제길, 이게 뭐야!’

오늘 대호는 텍사스 레이스와의 홈 세 경기 중 마지막을 치르고 있었는데,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무리한 스킬 사용으로 인해 스탯이 다운되었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

아마 대호 자신도 N사와의 후원 재계약에 내심 큰 기대를 한 듯했다.

어찌 되었든 세계적인 브랜드에서 이번 몇몇 사건을 계기로 제안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마음속이 복잡해지자 평소와 달리 쉽게 집중할 수 없었다.

그 결과 1회 말 첫 타석에서 헛스윙으로 아웃되고, 또 5회 두 번째 타석에서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유격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투수가 던진 공을 타격하고 살짝 빗맞았다 생각해 빠르게 1루로 뛰었는데, 유격수의 허슬 플레이에 걸려 버린 것이다.

좀처럼 보여 주지 않던 모습을 보이는 대호의 이 낯선 플레이에 오클랜드 슬랙스 팬은 물론이고 동료 선수들도 긴장하며 대호를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공격에서는 부진했지만, 수비에서 실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수비에서도 실수를 범했다면, 안티들은 이때다 싶어 대호를 물고 뜯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아무튼 좀처럼 경기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모습에 더그아웃 안에 있는 선수나 코칭스태프들 모두 우려 섞인 눈빛으로 대호를 지켜보았다.

오클랜드 슬랙스 공격의 선봉이라 할 수 있는 대호가 이렇게 죽을 쑤다 보니, 다른 동료들도 텍사스 레이스의 투수를 공략하지 못하고 현재 스코어는 0:0으로 팽팽하게 흘러갔다.

“하!”

유격수 플라이로 아웃이 되어 자리로 돌아온 대호는 의자에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대호.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보다 못한 주장이 나섰다.

“주장, 죄송합니다.”

자신 때문에 더그아웃 분위기가 좋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는 대호였기에 얼른 사과를 하였다.

“아니야. 사람이라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그건 그렇고, 고민이 있으면 말을 해 봐!”

홈런 브레드는 대호의 옆에 앉아 그렇게 거듭 말을 걸었다.

그런 주장의 배려에 대호는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분노로 인해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토로하였다.

대호가 하는 두서없는 이야기를 듣고 난 홈런 브레드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깜짝 놀랐다.

사실 그도 N사와 후원 계약을 맺고 있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기에 내심 만족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대호에 대한 후원 재계약 내용을 보니 깜짝 놀랐다.

“아니, 그놈들 미친 거 아냐?”

홈런 브레드가 듣기에 N사의 제안은 미친 수준이었다.

결코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아무리 대호가 부상으로 전반기 50경기 정도를 날렸다고 하지만, 그래도 연간 후원금 500만 달러는 너무 적었다.

자잘한 기록들은 차치하더라도 실버 슬러거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2032시즌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했다.

2033시즌에 들어와선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갈아치우며 세계 신기록을 썼다.

그런 선수에게 겨우 1년 5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후원 계약을 하겠다는 N사의 태도에 화가 났다.

물론 500만 달러가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인 법.

역대급 메이저리거인 정대호에 대한 스포츠 용품 사용 대가로 지불하는 후원금이라기에는 적어도 너무 적었다.

‘그 정도는 나도 받는 금액이야.’

물론 홈런 브레드 역시 오클랜드 슬랙스의 프랜차이즈 선수이며, 전성기에는 50개 정도의 홈런을 치기도 했던 적도 있었지만, 솔직히 그가 현재 기록하고 있는 성적이 부상으로 빠진 대호보다 살짝 높은 정도였다.

그럼에도 후원 계약으로 받는 규모는 550만 달러.

150만 달러 상당의 야구 용품 교환 바우처 + 현금 400만 달러였는데, 대호에게 그보다 못한 금액을 들이밀었으니 어처구니가 없게 들렸다.

“N사에서 먼저 재계약 제안이 들어왔고, 시즌 중이라 빠르게 사인하고 시즌에 집중하려 했는데…….”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대호의 말을 들은 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 다 안다. 그래, 저쪽에서 먼저 재계약을 하자고 했으니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했겠지.”

2회차와 3회차를 겪으면서 스포츠 용품 브랜드와 후원 계약을 해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심정적으로는 자신을 무시한 것 같은 N사와 과감하게 계약 해지를 하고 싶었지만, 인기 스타라고는 해도 이제 겨우 3년차인 자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십 년간 스포츠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기업 N사가 계약 파기 후 어떻게 나올지 짐작할 수 없어 고민하는 대호였다.

만약 결혼을 하지 않고 아직 혼자였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마음이 맞는 이성을 만났기에 빠르게 가정을 꾸리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야구에만 집중을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작년 N사가 후원 계약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모든 계획을 마친 뒤였기에 쉽게 계약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1년 만에 이렇게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는 듯한 N사의 태도에 화가 나고, 또 그런 N사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일단 계약에 관해서는 네 에이전트에 일임하는 것이 어때? 아니면 재계약을 시즌이 끝난 이후로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홈런 브레드는 팀의 주장으로서 적절한 조언을 해 주었다.

굳이 실력을 저평가하는 현 시점에서 후원 계약을 재협상할 것이 아니라, 시즌이 끝난 뒤로 미루는 것도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음… 그렇지. 내가 왜 이런 걸로 고민하게 됐지?’

주장의 조언을 들은 대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순간적으로 뇌리를 강하게 치고 지나가는 충격이 있었다.

세 번이나 회귀를 했으면서도 아직 모자란 점이 있다는 걸 느꼈다.

“주장! 고마워요.”

대호는 바로 주장인 홈런 브레드에게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하였다.

“표정을 보니 뭔가 깨달은 것이 있나 보네?”

“예, 제가 부상에서 복귀하고 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보니 그 계약 건에 좀 매몰되었나 봐요.”

“헐!”

“주장의 조언을 듣고 나니 여유가 좀 생기네요. 다시 한번 고마워요.”

대호는 그렇게 거듭 홈런 브레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래, 알았다. 이제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 남은 경기에나 집중하자!”

“네, 그럴게요.”

대답을 하는 대호, 그 순간 오클랜드 슬랙스의 6회 말 공격이 끝났다.

6회 말 공격이 끝나고 글러브를 챙겨 외야로 달려가는 대호의 몸이 이전과 다르게 한층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금방 나타났다.

8회 말 오클랜드 슬랙스의 공격, 선두 타자로 나간 9번 타자 페레즈가 내야 땅볼로 아웃이 된 뒤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선 대호.

대호는 마운드 위에 있는 텍사스 레이스 투수 하워드 스펜서가 던진 두 번째 투구를 그대로 밀어 쳐 우전 안타를 만들어 냈다.

주장의 조언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오늘 타격감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서 홈런을 치기 위해 억지로 당겨 치지 않고 날아오는 투구의 결대로 밀어 친 것이다.

다다다다.

스윙을 하고 공이 외야로 날아가자 바로 1루로 뛰었다.

1루 베이스를 밟은 뒤 빠르게 방향을 틀어 2루로 뛰어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2루까지 진출했다.

지금까지 나오지 않던 대호의 적극적인 파이팅에 조용하던 뉴슬랙스 볼파크가 팬들의 환호로 진동했다.

“와아아아!”

탁탁!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2루에 들어간 대호는 2루심의 세이프가 선언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유니폼에 묻은 흙을 털어 냈다.

“타임!”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하고 1루에 있는 주루 코치에게 배팅 장갑을 넘기고 2루로 돌아왔다.

그리고 2루에서 벗어나 자세를 낮추며 3루로 도루를 할 것처럼 모션을 취했다.

이 때문인지 오늘 경기 중 한 번도 긴장을 하지 않던 하워드 스펜서는 힐끗 대호를 쳐다보며 미간을 구겼다.

앞선 타석과 다르게 긴장감이 하나 없는 대호의 표정에서 3루로 뛰겠다는 의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투수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호가 베이스에서 떨어져 자세를 낮추며 투수를 노려볼 때는 다음 베이스로 도루를 하려는 때다’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대호가 도루를 시도할 때면 언제나 그런 동작을 했었다.

자세를 낮추고 투수의 투구 동작을 관찰하다 빈틈이 보이면 냅다 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워드는 쉽게 포수에게 공을 던지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팡!

“세이프!”

일단 주자를 뛰지 못하게 견제구를 던졌다.

“우우우우!”

갑작스런 견제구였지만, 이미 눈치를 채고 2루로 돌아온 대호로 인해 세이프가 선언 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관중석에서 팬들의 야유 소리가 울려 퍼졌다.

투수가 타자를 상대하지 않고 2루에 있는 투수에게 견제구를 던졌기 때문이다.

턱!

공은 다시 2루수에게서 투수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뒤로도 두 번이나 더 견제구가 날아왔다.

2루에서 자꾸만 3루로 도루를 하겠다면 도발을 하는 대호로 인해 투수가 흔들린 것이다.

마운드 위에 있는 하워드 스펜서도 느꼈다.

지금이 오늘 경기의 변환점이란 것을 말이다.

이 위기를 잘 넘기면 경기를 자신들이 가져가고, 그렇지 못하고 무너지면 경기는 오클랜드에게 넘어갈 터.

대호는 슬금슬금 길게 리드를 가져가며 투수를 자극했다.

발이 빠른 타자가 주자로 나간 상태에서 저런 행동을 취하는 것만큼 신경 쓰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하워드 스펜서는 억지로 그 감정을 참아 내고 이번엔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타다다다!

그 순간 대호는 3루로 뛰었다.

대호가 뛰는 순간 타석에 있던 켈리 달튼도 스윙을 가져갔다.

따악!

내야 수비를 살짝 넘기기 위한 스윙이었다.

더그아웃의 작전대로 2루에 있던 대호가 뛰고 타석에 있던 켈리가 타격을 가져간 것이다.

오클랜드 슬랙스 코칭스태프들은 대호의 빠른 발을 이용한 런 앤 히트 작전을 사용했다.

대호의 빠른 발이라면 내야를 넘긴 짧은 안타만으로 득점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켈리 또한 대호의 주루 능력을 믿어 큰 스윙이 하는 게 아니라, 단순하게 투수의 공을 맞춰 내야만 넘기는 스윙을 가져갔다.

타다다다.

원아웃 상황, 대호는 3루를 돌아 바로 홈으로 뛰었다.

2루수 키를 넘기는 짧은 안타였지만, 커버를 들어오는 우익수의 대비가 살짝 늦었다.

타구를 쫒아 앞으로 달려오던 우익수는 공을 잡자마자 바로 홈으로 송구를 하였다.

대호는 홈으로 들어오다 홈 플레이트 앞에서 자세를 잡는 포수의 모습을 보며 그를 살짝 돌아 슬라이딩을 하며 왼손으로 가볍게 홈 플레이트를 터치하고 지나갔다.

펑!

촤아아!

“세이프!”

“와아아아!”

살짝 공이 먼저 포수의 미트에 들어오긴 했지만, 홈에서 아웃 카운트를 잡기 위해선 만루 상황이 아닌 이상 주자의 몸에 태그를 해야 하는데, 이게 조금 늦었다.

포수가 대호의 몸에 미트로 태그를 한 순간, 이미 대호의 손은 홈 플레이트를 터치를 하고 지난 뒤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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