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타다다다!
대호는 외야로 날아오는 타구를 쫓아 달렸다.
휙!
워닝 트랙을 지나 펜스 앞까지 도착한 대호는 고개를 돌려 날아오는 타구를 노려보며 타이밍을 잡았다.
탓!
그러고 나서 떨어지는 타구를 향해 점프를 하였다.
퍽!
“와아아아!”
점프를 한 대호의 글러브에 텍사스 레이스 타자가 친 타구가 정확하게 빨려들었다.
“아웃!”
관중석 한쪽에서는 환호의 함성이,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안타까운 듯한 탄성이 터졌다.
안타까움을 담은 탄성을 지른 관중은 바로 텍사스 레이스를 따라 오클랜드로 온 팬들이었다.
8회 초 투아웃 상황에 현재 스코어는 3:6으로 홈팀인 오클랜드 슬랙스가 3점 앞서고 있다.
하지만 지고 있는 텍사스 레이스가 가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록 3점을 뒤지고 있지만, 현재 그라운드에 두 명의 주자가 나가 있어 홈런 한 방이면, 동점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텍사스 레이스 타자들의 스윙이 대체로 컸다.
사실 방금 전에도 공을 잡은 선수가 대호만 아니었다면, 희생플라이를 시도해 봄직한 외야 깊은 타구였다.
그렇지만 공을 잡은 외야수가 대호였기에 3루 주자는 홈으로 뛰지 않았다.
괜히 그랬다가는 아직 아웃 카운트가 하나 남은 상태에서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상황이 5회나 6회만 되었어도 과감하게 뛰었겠지만, 현재 텍사스 레이스의 공격 기회는 지금 8회와 9회, 아웃 카운트 네 개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주자 2, 3루에 동점도 가능한 상황에서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력을 믿고 뛰었다가 대호의 레이저와 같은 홈 송구에 보살이 된 경우가 거의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정말 드물게 희생플라이를 성공시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대부분 포수의 실수로 벌어지는 일이라 대호의 수비 성공 능력은 100%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3루 선상에 있는 텍사스 레이스의 주루 코치나 주자도 조용히 대호의 수비를 지켜볼 뿐이다.
여차하면 홈으로 뛰기 위해서 말이다.
팡!
우중간 펜스 앞에서 공을 잡은 대호가 홈으로 던진 공이 포수의 미트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는 외야수가 공을 잡으면 그라운드의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법칙이 있는데, 3루에 주자가 있을 때 홈으로 송구를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보통은 중간에 2루수가 중계를 하지만, 어깨가 좋은 외야수는 다이렉트로 포수에게 송구를 하기도 한다.
대호도 그런 선수 중 한 명으로, 대호의 홈 송구는 중계를 받아 홈으로 송구를 하는 것 보다도 빨랐다.
그렇기에 2루수인 브렛도 대호가 송구할 때면 중간에 중계하려고 길목에 서 있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방해하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하! 정대호 선수, 외야 플라이 볼을 잡자마자 바로 홈으로 송구를 하는군요.”
“네. 외야 수비라면 기본중의 기본이죠. 그런데 정대호 선수의 홈 송구는 그야말로 레이저를 방불케 할 정도로 곧고 빠릅니다.”
어깨가 좋더라도 외야에서 홈은 너무도 먼 거리다.
그렇기에 대체로 다이렉트로 던질 때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런데 대호의 송구는 그렇지 않았다.
웬만한 투수 이상으로 어깨가 강하다 보니, 마치 마운드에서 투수가 던지는 것처럼 공을 던졌다.
그러다 보니 대호의 홈 송구는 낮고 빠르며, 또 정확하게 포수 왼쪽으로 공이 날아갔다.
“텍사스 레이스의 8회 초 공격, 투아웃인 가운데 주자는 아직도 2, 3루에서 5번 타자 바비 톰슨 타석에 들어섭니다.”
텍사스 레이스의 5번 타자 바비 톰슨은 타율 0.256이기는 하지만, 전반기 95경기를 치르면서 28개의 홈런을 친 홈런 타자다.
또한 한 시즌 40개 이상의 홈런을 쳐주는 선수였기에 텍사스 레이스 내에서도 중심 타선인 5번을 맡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 반해 마운드에 있는 투수는 ERA(평균자책점) 3.86인 러블 레이디스.
ERA만 놓고 보면 러블이 더 유리해 보이지만, 사실 현 시점에서 러블의 ERA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러블은 메이저리그로 콜업 된지 이제 겨우 반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이번 시즌은 지내봐야 제대로 된 데이터가 쌓이고, 그때 가서도 ERA가 지금 상태라면 불펜으로써 수준급이란 말을 들을 것이다.
따악!
역시나 기록 측면에서 투수인 러블보다 타자인 바비 톰슨이 우위였는지, 낮게 들어오는 패스트볼을 배트 컨트롤만으로 걷어 올렸다.
다다다다!
내야를 살짝 넘기는 타구가 나왔다.
이에 대호는 바비 톰슨이 투수가 던진 공을 타격하자마자 바로 뛰었다.
조금 전에는 펜스가 있는 뒤로 뛰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2루가 있는 내야 쪽으로 뛰었다는 점이 달랐다.
투아웃인 상황, 2루와 3루에 있던 주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어차피 플라이로 잡히거나 말거나 텍사스로써는 뒤가 없기 때문이다.
턱!
안타깝게도 타구는 대호의 앞에서 땅에 떨어졌다.
텁!
휘익!
대호는 공을 잡자마자 바로 공을 1루로 던졌다.
아웃 카운트가 더 남아 있었더라면 점수를 주지 않기 위해 홈으로 송구를 했겠지만, 어차피 현재는 한 명만 잡아도 공수 교대를 하기 때문에 굳이 홈으로 송구를 하지 않고 1루로 공을 던진 것이었다.
텁!
“아웃!”
3루 주자가 홈 플레이트를 밟기도 전에 1루에서 타자 주자가 아웃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텍사스 레이스는 2, 3루의 좋은 기회를 대호 한 명의 활약 덕분에 놓친 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위기 뒤에는 기회라 했던가?
공수 교대를 하고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텍사스 레이스의 불펜 투수인 마틴 브렛이 던진 몸 쪽 낮은 포심을 그대로 퍼 올렸다.
따아아악!
마치 골프 선수가 드라이브로 티 볼을 치듯 아래에서 거의 수직으로 공을 퍼 올렸다.
“정대호! 정대호! 퍼 올린 타구가 쭉쭉 뻗어 날아갑니다!”
김승주는 높게 떠오른 대호의 타구를 보며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홈런이에요. 홈런!”
뉴슬랙스 볼파크 상공을 가르는 대호의 타구를 본 하구연 해설도 볼 것 없이 홈런이라며 소리쳤다.
아닌 게 아니라 높게 솟은 대호의 타구는 아직도 힘이 풀리지 않고 솟아오르고 있었다.
텅!
타구는 중앙 펜스를 넘어 2층에 떨어졌다.
비거리 136m나 되는 커다란 대형 홈런이었다.
“정대호! 정대호 선수가 66일 만에 부상 복귀전에서 홈런을 기록합니다.”
60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대호가 두 달 하고도 5일이 지나 후반기 첫 경기에 복귀하고 네 타석 만에 홈런포를 쏜 것이다.
“이로써 정대호 선수 2033시즌 홈런 개수는 스물아홉 개로 늘어났습니다.”
대호를 알고 있는 야구팬들의 관심사는 바로 이것이었다.
인크레더블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대호가 부상을 입은 후에도 복귀를 했을 때, 작년처럼 엄청난 홈런포를 보여 줄 수 있냐는 것이다.
야구 전문가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을 냈었다.
다른 부상도 아니고, 총에 의한 부상이지 않은가.
아무리 부상을 입힌 총이 작은 새를 잡기 위한 용도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총격은 총격이었다.
그렇기에 부상을 회복하더라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닐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무색하게 대호는 오늘 복귀전에서 시작부터 장타를 때려 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마지막 타석이 될 수도 있는 네 번째 타석에서 기어코 홈런을 친 것이다.
최종적인 결과는 4타석 3타수 2안타 1홈런.
아웃 카운트 하나와 볼넷 하나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오늘 기록은 대호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팬들에게 보여 준 셈이었다.
타다다다.
조깅을 하듯 가볍게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대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대호를 조용히 지켜보는 텍사스 레이스 수비들의 모습도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그중 압권은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였다.
“와아아아!”
홈으로 들어온 대호의 모습을 확인한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대호는 자신을 보며 환호하는 팬들을 향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답을 하였다.
“우와아아!”
“대호! 대호! 대호!”
예전에는 이런 때에 들리는 구호는 영어식으로 된 대호의 이름이었다.
빅 타이거라는 구호가 들려왔는데, 방금 저에는 영어식 이름이 아닌 한국어로 된 ‘대호’란 이름이었다.
그런 팬들의 연호에 대호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다 말고 자리에 멈춰 한동안 팬들을 쳐다보았다.
그럴수록 대호를 찾는 팬들의 구호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8회 말, 대호의 솔로 홈런으로 스코어는 3:7, 4점 차로 벌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기회를 잡은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들의 집중된 팀 배팅으로 인해 2점 더 뽑아내며 스코어는 3:9가 되었다.
그렇게 8회 말 오클랜드 슬랙스의 공격이 끝나고 공수가 교대되었는데, 오클랜드는 이 상황에서 굳이 올리지 않아도 되는 마무리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6점 차라 마무리 투수가 타자들을 막아도 세이브를 올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오클랜드 슬랙스는 후반기 첫 경기를 확실하게 가져가기 위해, 마무리 투수를 마운드에 올린 것이다.
펑!
“아웃!”
펑!
“아웃!”
오클랜드 슬랙스의 마무리 데니스 에슬리는 빠른 승부로 텍사스 레이스 타자들을 삼구 삼진으로 잡아냈다.
야구계에서 삼구 삼진을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나잇이라고 빗대듯, 데니스 에슬리는 텍사스 레이스 타자를 상대로 그렇게 너무도 간단하게 삼진 아웃을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기 위해 투구를 하였다.
따아악!
너무 방심했던 것인지 초구 살짝 가운데로 몰린 포심 패스트볼이 통타되었다.
다다다다!
타구음이 들리자 외야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였기 때문인지 텍사스 레이스에서 대타를 내보냈는데, 그것이 통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공이 맞아 외야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데니스는 크게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잘 맞긴 했지만 홈런은 아니란 생각에 마음을 놓았다.
더욱이 타구를 쫓는 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수비를 잘하는 대호였다.
타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일명 통곡의 벽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대호다.
그리고 이러한 데니스의 믿음은 펜스를 향해 달리며 공을 보지도 않고 잡아내는 수비로 돌아왔다.
턱!
”아웃! 게임 셋!“
대호는 빠르게 날아오는 타구를 쫓으며 낙구지점을 정확하게 예측을 하고 이를 받아냈다.
“와아아아!”
아주 가끔 메이저리그에서 슈퍼 플레이로 리플레이 되는 수비가 나온 것이다.
이 때문인지 대호의 기막힌 수비로 경기가 끝났다는 주심의 선언이 있음에도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야구팬들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면서도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대호! 대호! 대호!”
경기가 끝났음에도 팬들의 연호는 계속되었다.
한편 그러한 팬들의 환호성을 받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는 한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복귀 경기에서 혹시나 실수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러한 걱정이 무색하게 대호는 한 점 오점이 없는 경기를 치렀다.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에서도 게임 MVP급 활약을 보여 주었다.
* * *
경기가 끝나고 대호는 MVP 인터뷰를 해야만 했다.
“자기, 홈런 축하해!”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나온 한나는 인터뷰를 하기 전 남편인 대호에게 홈런을 친 것을 축하해 주었다.
쪽!
“오늘 홈런은 한나를 위한 홈런이었어.”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대호는 거짓말을 하였다.
하지만 이런 대호의 인사말에 한나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오늘 60일 IL에서 복귀를 하였는데, 부담감은 없었나요?”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한나는 리포터로써 방송용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하였다.
“뭐…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최대한 부담을 가지지 않고 경기를 치르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대호의 답변은 늘 그렇듯이 정석적이었다.
괜히 꼬투리를 잡을 말을 했다간 텍사스 레이스의 팬들이나 안티들에게 먹잇감을 던져 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정해진 질문에 답을 하고, 또 질문을 받고 하면서 간단하게 MVP 인터뷰를 마쳤다.
그런데 막 인터뷰를 마치려 할 때, 브렛과 달튼이 몰래 스포츠 드링크가 담긴 음료통을 가지고 다가와 막 이를 대호와 한나 부부에게 뒤집어씌우려 하였다.
하지만 이미 눈치를 채고 있던 대호로 인해 둘의 의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촤아악!
“으악!”
“이게 뭐야!”
“하하하!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두 사람의 의도를 알고 있던 대호는 막 통이 기울어지려 할 때, 먼저 몸을 돌려 음료통을 반대로 두 사람에게 쏟아지게 입구를 돌려 버렸다.
그 때문에 무방비로 있던 둘은 통에 남은 음료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