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메이저리그 2033시즌 후반기가 시작되었다.
“와아아아!”
야구팬들에겐 축제나 다름이 없는 메이저리그 본경기가 시작되려는 것이니 어느 곳을 가더라도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나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1위인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은 사실 오늘만 기다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달 간 보지 못했던 자신들의 자랑이 오늘 부상에서 돌아와 복귀전을 치르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BC스포츠 아나운서 김승주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KBC스포츠 해설 위원 하구연입니다.”
김승주와 하구연 해설이 카메라를 보며 인사를 하였다.
“하 위원님! 그게 사실입니까?”
“뭐가 사실이냐는 겁니까?”
하구연은 짐짓 모르는 척 질문을 하는 김승주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거 말입니다. 정대호 선수가 오늘 복귀전을 치른다는 것 말입니다.”
“아! 그걸 물어보시는 것이었군요.”
정대호란 이름이 거론되자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하구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기 전 잠깐 정대호 선수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하구연은 이곳 뉴슬랙스 볼파크에 도착했을 때, 잠시 대호를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원체 자신을 챙겨 주는 하구연 해설이다 보니, 대호도 시간을 내 대화를 나눈 것이다.
“몸은 진즉에 나았지만, 구단에서 이미 60일짜리 장기 부상자 명단을 MLB 사무국에 제출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동안 부상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면서 지냈다고 하더군요.”
대호와 나눴던 대화의 일부를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를 하는 하구연으로 인해 TV 중계를 시청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팬들은 깜짝 놀랐다.
부상은 이미 진즉에 나은 것은 물론이고, 기록 향상을 위해 인스트럭터를 채용해 훈련을 하고 있었다는 말에 놀란 것이다.
한 시즌 최다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경신하고 60일 장기 결장으로 인해 홈런 순위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표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순위가 확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남은 후반기 70경기라면 충분히 역전도 노려볼 수 있는 대호였다.
그런 대호가 기록을 위해 훈련을 하였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경기 감각을 찾기 위해 트리플A에서 치른 세 경기에 대한 내용을 들려주었을 때는 더욱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록 마이너리그라 하지만, 트리플A가 메이저리그에 비해 그렇게나 낮은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명백히 KBO보다 한 수 위라고 불리는 곳에서 고작 세 경기를 치렀을 뿐인데, 8타수 8안타 4홈런을 쳤다는 것에 놀랐다.
그뿐만 아니라 수비 범위 역시 살짝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이는 부상에서 회복된 뒤였기에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말도 들었다.
사실 대호의 엄청난 수비 범위는 오래 전부터 전문가들로부터 지적을 받던 부분이다.
분명 능력이 있기에 그러한 수비 범위를 커버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시즌이 끝으로 갈수록 몸에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이었다.
실제로 작년 2032시즌 챔피언십 시리즈 첫 경기에서 대호는 가벼운 발목 부상을 입고 7차에 이르는 시리즈 중 1차전 그것도 첫 타석만 뛰고 나와야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번 후반기 복귀를 하면서 수비 범위를 줄였다는 소리에 이를 듣고 있는 대호의 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그리고 그건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도 마찬가지다.
대호가 돌아온 것은 물론이고 수비 범위도 예전처럼 무리하게 넓히지 않고 적당히 줄여 몸에 걸리는 부하를 줄인다는 소식에 기뻐하였다.
“그 말씀은 정대호 선수가 미리 포스트 시즌을 준비했다는 말인가요?”
김승주는 놓치지 않고 그 말을 받아 질문을 하였다.
“제가 생각해도 그게 맞는 말 같습니다. 작년 시즌 챔피언십을 생각하면 너무도 아깝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챔피언십만 잡았다면 월드 시리즈도 우승이 가능했을 텐데…….”
2032시즌 오클랜드 슬랙스는 엄청난 포스를 보여 주었다.
정규 시즌 165경기에서 100승 이상을 한 것은 물론이고, 디비전 시리즈에서 보여 주었던 강력함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챔피언십에 들어가 대호의 부상으로 흔들린 수비로 인해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에 패배하며, 가을 야구를 마무리 지어야했다.
그리고 오클랜드 슬랙스와의 승부에서 역전해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거둔 디트로이트는 고비를 넘겨서 그런지 월드 시리즈도 가져갔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월드시리즈에 오클랜드 슬랙스가 올라갔다면, 충분히 오클랜드도 우승이 가능했을 것이란 이야기가 오클랜드 팬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물론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만약에’라는 가정을 들어서 하는 이야기였고, 경기는 어디까지나 모르는 것이다.
잘나가던 오클랜드 슬랙스가 대호 한 사람 빠졌다고 디비전 시리즈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챔피언십에 올라왔던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에게 역전패를 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 것을 보면 스포츠란 각본 없는 드라마가 맞았다.
그렇기에 오클랜드 팬이나 프런트는 대호의 부상에 무척이나 예민하게 구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대호가 수비 범위를 줄였다는 것에 환호를 보내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 * *
오클랜드 슬랙스 홈구장 로커 룸에 선수들이 모여 결연한 표정을 하며 감독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뭘 그렇게 긴장들 하고 있어?”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선수들의 얼굴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결연한 표정을 한 선수들의 모습에선 뭔가 강렬한 포스가 느껴지고 있었다.
“대호! 프런트에게 듣기론 다 나았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인가?”
그 역시 두 달 전 대호가 총에 맞았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팀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선수이긴 하지만, 그 영향력은 주장인 홈런 브레드 못지않게 큰 선수가 바로 대호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출근을 하다 정신 나간 총기 난사범을 제압하려다 총에 맞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 막힌 말인가?
운동선수가 경기를 치르기 위해 경기장으로 출근하다 말고 총에 맞았다고 하니, 정말이지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충격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총기 난사범을 제압해 경찰에 넘겼고, 그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고, 다만 부상 치료를 위해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호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감독도 당연히 코칭스태프들과 함께 찾아와 부상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스럽게 왼쪽 팔과 옆구리에 2㎜ 구슬 몇 개가 박혔을 뿐, 치료 경과가 좋고 붕대를 감은 채 회복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마이크 케세이 감독 입장에선 그런 가벼운 부상도 가슴이 철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팀 전력의 절반이라 해도 될 정도로 대호는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공수 모든 방면에서 중심을 잡아 주는 선수다.
1번 타자로 최전방에서 상대 투수를 두들기고, 상대가 이를 피하면 그라운드에서 흔든다.
그렇게 다음 타자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또 한 방 크게 터뜨려 상대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또 수비는 어떤가?
웬만한 선수 두 배에 달하는 수비 범위를 가지고 있으며, 펜스를 살짝 넘기는 짧은 홈런 정도는 가볍게 훔쳐 버리는 그야말로 커다란 벽과도 같은 선수다.
더욱이 경기 외적으로도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을 보이며 선수들의 모범이 되는 선수이기도 했다.
매번 자신의 목표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이라고 떠들며,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와 가까이 하는 선수들은 공통적으로 팀, 아니 메이저리그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으며, 올해 메이저리그로 콜업 된 켈리 달튼만 봐도 서비스 타임을 넘긴 선수에 버금가는 활약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처음 대호가 부상을 당한 것을 보았을 때, 눈앞이 깜깜해졌었다.
또 한 번 작년 챔피언십시리즈가 오버랩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선수들이 달라졌다.
대호가 60일 부상자 명단에 올라 두 달이나 경기에서 빠졌음에도, 오클랜드 슬랙스는 무너지지 않았다.
전반기 53승 42패, 그리고 지구 선두를 안정적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기적의 사나이, 인크레더블이 집으로 돌아왔다.”
“우와아아!”
감독의 구호와 같은 목소리에 로커 룸에 있던 선수들이 크게 환호했다.
“우리에게 부족했던 1%가 채워졌으니 오늘 경기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
“예썰!”
쿵! 쿵! 쿵!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처럼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은 발을 구르며 자신의 기분을 그대로 발산했다.
분위기만 봐선 이곳 뉴슬랙스 볼파크가 무너질 것만 같은 기세였다.
“나가라!”
“우오우오!”
“와아아아!”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모습에 대호는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언제나 보는 것이지만,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선수들을 도발하는데 참으로 도가 튼 사람이었다.
* * *
따아악!
첫 타석부터 대호는 맹활약을 하였다.
오늘 오클랜드 슬랙스와 상대하는 팀은 대호에게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헌납한 텍사스 레이스였다.
“정대호 선수, 첫 타석에서 우중간 2루타를 치고 나갑니다.”
1회 말 첫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복귀전 신고식을 하듯 2루타를 치고 진루를 했다.
“오클랜드의 마이크 케세이 감독, 참으로 배려가 없습니다.”
김승주는 복귀 타석에서 2루타를 치고 진루를 한 대호의 활약에 고무되어 상기된 얼굴로 하구연 해설에게 물었다.
“네? 배려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의 말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기 부상에서 회복된 선수에 대한 배려 없이 타순을 1번에 넣은 걸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보통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의 경우, 체력이나 경기 적응을 위해 후위 타선에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감독은 그런 배려 없이 바로 원래 대호의 타순인 1번 타자에 넣은 것이다.
하지만 하구연 해설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김승주나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아! 저는 텍사스 레이스 구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너무도 뜻밖의 설명에 김승주는 토끼처럼 놀란 눈이 되어 물었다.
“상대 구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니 그건 어인 말씀입니까?”
거듭된 김승주의 물음에 하구연 해설은 자신의 생각을 풀어 설명해 주었다.
“오늘 오클랜드 슬랙스의 상대가 누굽니까?”
“그거야 텍사스 레이스 아닙니까? 한때 코리안 특급이라 불리던 방찬우 선수와 추추 트레인이라 불리던 추인수 감독이 몸담았던 구단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또 있지 않습니까?”
“네? 또 뭐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한국과 더 뭔가 인연이 있다는 말에 김승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찬우와 추인수 말고 텍사스 레이스와 한국이 무슨 인연이 더 있고, 또 그러한 것이 오클랜드 슬랙스의 감독인 마이크 케세이와 어떤 상관관계이기에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도 모르겠다면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꾸만 뜸을 들이는 하구연 해설의 모습에 답답하긴 했지만, 김승주는 참을 인자 세 번 외치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을 상기하며 참았다.
“이번 시즌 초 텍사스 구단은 우리에게 커다란 행복을 선물하지 않았습니까? 연속 경기 홈런 기록 말입니다. 열 경기 연속 홈런 세계 기록!”
“아!”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이라는 말에 김승주도 놀람의 탄성을 질렀다.
200년이 넘는 야구 역사에서 세계 최초로 열 경기 연속 홈런을 친 주인공이 바로 한국인 메이저리거 정대호다.
그것도 고작 메이저리그 3년차에 들어선 상태에서 달성한 기록.
그뿐만이 아니다.
대호는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73홈런을 경신할 유일한 선수로 유력하기도 했다.
한국 야구팬들 역시 그런 선수를 보유해 요즈음 너무나 행복함을 느끼는 와중이었다.
“아! 그래서 위원님이 배려가 부족하다 했던 것이군요. 하하하!”
설명 풀이를 듣고 난 뒤에야 그 뜻을 깨달은 김승주는 하구연 해설의 재치에 감탄했다.
듣고 보니 정말로 그의 말대로 마이크 케세이 감독의 배려가 부족하긴 해 보였다.
대기록의 희생자를 두고 복귀전에 바로 제자리에 선수를 타선에 넣었으니 이보다 더 배려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다못해 7번이나 8번처럼 하위 타선에 넣었더라면 큰 배려가 되었을 것인데, 매너 없이 선두 타자로 넣었으니 텍사스 레이스 입장에서 얼마나 부담이 되겠는가.
이러다 대호가 복귀전에서 홈런이라도 쳐 버린다면, 텍사스 레이스는 또 한 번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선수인 대호에게 열 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헌납하고, 또 60일의 장기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막 복귀한 선수에게 홈런을 맞게 되는 일이기에 이보다 치욕스러울 수가 없을 것이다.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회자될 터이니 이는 두고두고 텍사스로써는 흑역사가 될 일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