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별개로 혼자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던 조엘 헌트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고개를 꺾으며 스트레칭을 하였다.
겉으로 보기에 별로 일이 많을 것 같지 않은 단장이지만, 사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많은 업무가 그의 손에서 시작되고 또 끝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단장은 한시도 업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덜컹!
“뭐야?”
조엘은 갑자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비서 크리스 마틴을 향해 물었다.\
“보스!”
“음?”
“저희가 Mr. 정을 너무 가볍게 봤던 것 같습니다.”
크리스 마틴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알 수 없는 소리를 하였다.
그런 비서의 말에 조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세히 말해 보라는 모션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크리스 마틴은 자신이 받은 전달 사항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오늘부터 Mr. 정이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 내려가 점검을 한다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대호에 대한 계획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지?”
계속해서 자세한 설명 없이 자신만 아는 이야기를 하는 비서의 모습에 조엘은 살짝 짜증이 올라왔지만, 꾹 참고 다시 물었다.
“3타수 3안타 2홈런이라고 합니다. 기록한 안타도 3루타고요.”
“……?”
조엘은 비서인 크리스가 한 말의 뜻을 순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몇 차례 깜빡였다.
“3타수 3안타 2홈런이라니? 설마…….”
“아니, 단장님. 지금 제가 누굴 말하고 있겠습니까?”
크리스 마틴은 엉뚱한 질문을 하는 조엘을 보며 소리쳤다.
“아! 하하, 그렇지. 우린 지금 대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
“네. Mr. 정이 첫 타석에서 예고 홈런 퍼포먼스를 선보이더니 바로 장외 홈런을 쳤으며, 두 번째 타석에서도 3루타를 쳤고 마지막 세 번째 타석에서도 투런 홈런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마치 자신의 자식이 그런 성적을 낸 것처럼 떠드는 크리스 마틴이었지만, 이를 듣고 있는 조엘 또한 비슷한 표정이 되어 볼이 붉게 상기되었다.
정대호는 그가 오클랜드 슬랙스의 단장을 맡으면서 한 계약 중 최고로 잘했다고 꼽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 시즌 두 달이란 엄청난 기간을 날리긴 했지만, 그것이 오클랜드에 마이너스적인 요인이 되지도 않았다.
총기 난사범으로부터 어린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한 결과로 60―Day IL(부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도 오히려 격려를 보내 줬던 것이다.
비록 구단은 50승 38패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구단이 속한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에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시즌 초기 대호가 부상으로 팀 이탈을 하기 전 많은 승수를 쌓아 놓았기에 그 뒤로 20패가 늘었어도 승률 56%로 지구 선두는 물론, 2위와의 차이가 여섯 경기나 난다는 것이다.
그 말은 대호가 돌아오는 후반기에는 오클랜드의 성적은 더욱 향상될 것이고, 이번에도 변수가 없는 한 구단은 이번 시즌에도 가을 야구를 할 수 있을 터.
더욱이 더욱 노련해진 대호라면, 어쩌면 챔피언십 시리즈는 물론이고 월드 시리즈까지 노려볼 수도 있을 것이란 상상에 조엘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 *
시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2033시즌도 전반기 95경기가 모두 끝나고 올스타 브레이크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 올스타 브레이크는 오클랜드 슬랙스 팬에게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최애하는 최고의 스타가 2033년 6월 초에 있었던 총격 사건에 휘말려 부상으로 전반기 절반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번 올스타에는 선정이 되지 못했다.
아니, 설령 몸이 다 나았다고 해도 선수 보호 차원에서 올스타 브레이크에 참여시키면 안 된다는 여론이 강했기에 오클랜드 슬랙스 팬은 올스타 투표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대호가 마지막 점검 차 마이너리그에서 세 경기에 출장을 하면서 8타수 8안타 4홈런을 쳤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는 점이었다.
첫날 예고 홈런을 장외 홈런으로 장식하며 이날만 두 개의 홈런과 3루타를 치는 활약을 했다.
이렇게 첫날은 타격력만 확인하는 차원에서 지명타자로 3타석만 나와 두 개의 홈런과 3루타 한 개를 쳤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경기에선 수비 능력을 점검했는데, 이번에도 대호는 각각 경기마다 홈런 한 개씩을 치며, 장타력을 과감하게 보여 주었다.
정대호 특유의 넓은 수비 범위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외야수들보다 1.5배는 넓은 부분을 커버하였다.
또한 홈런이 될 뻔한 타구도 잡아내고 말이다.
이 때문에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은 시즌 전반기를 53승 42패로 마감했지만, 우려하던 것도 잠시 IL(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대호가 정상으로 회복되어 후반기에 돌아올 것이란 프런트의 설명에 즐겁게 올스타 브레이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와아아아!”
올스타 브레이크 전반 행사가 끝나고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올스타들의 대결이 펼쳐졌다.
대호도 비록 경기에 출전하진 않지만, 아내인 한나와 올스타 브레이크를 즐기기 위해 올스타 경기가 치러지는 플로리다를 찾았다.
작년 2032시즌에는 서부인 LA에서 올스타전이 치러졌지만, 이번 2033시즌은 동부인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자기! 경기장 안이 아닌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게 되니 느낌 어때?”
한나는 남편인 대호와 함께 마이애미 마린스 홈구장인 론디포 파크의 관중석에 앉아 그라운드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질문을 받은 대호는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대답했다.
자신도 지금 이것을 무어라 정의해야 할지 정확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이번과 같은 장기 부상자 명단에 들어 야구와 멀어지는 것은 지양해야겠다는 것을 말이다.
아내와 함께 올스타 경기를 구경하면서도 간간이 자신을 알아 본 팬들에게 사인을 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비록 대호가 소속된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은 아닌 사람도 있었지만, 팬의 사인 요구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 대호의 모습에 팬들은 환호했다.
올스타 브레이크는 야구인들의 축제였고, 또 메이저리그를 있게 해 주는 야구팬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치러지는 경기다.
그러니 비록 올스타에 선정되진 않았지만, 메이저리거로써 기본 소양으로 팬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다.
따악! 따악!
올스타라 그런지 선수들은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소속을 가리지 않고, 잘 치고 잘 던졌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경기는 무척이나 재미있게 흘러갔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도 올스타 경기는 내셔널리그가 7:8로 가져갔다.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5번, 루치아노 에스트라다의 9회 말 투런 포가 터지면서 7:6에서 7:8로 역전이 된 것이다.
‘올해는 타이탄즈가 만만치 않네.’
이번 올스타 경기에 내셔널리그 올스타 팀에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 소속이 세 명이나 되었다.
끝내기 투런 홈런을 친 루치아노와 블레이크 세이블, 그리고 투수에선 알렉스 벡이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특이한 점은 투수인 알렉스 벡이었는데, 그는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1선발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2033시즌 올스타에 뽑힌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알렉스 벡이면…….’
대호는 잠시 전생의 기억을 회상했다.
3회차 당시, KBO를 거쳐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대호는 LA다윈스와 계약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지구 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와는 참으로 많은 경기를 치렀다.
3회차에도 시스템의 도움으로 큰 활약을 했지만, 유독 알렉스 벡에게는 그리 신통하지 못했다.
마치 역상성을 띠는 천적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꼭 알렉스 벡만 만나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부진에 빠지곤 했다.
그는 평생의 라이벌인 히데오 소이치로와는 다른 의미로 대호를 힘들게 했던 선수 중 하나였다.
뒤늦게 알렉스 벡을 기억해 낸 대호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그라운드 안에 있는 알렉스 벡과 브레이크 세이블을 노려보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주전 포수인 브레이크 세이블과 알렉스 벡의 조합은 3회차 때 상당히 까다로웠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자신은 달랐다.
3회차에는 지금처럼 70포인트를 찍은 스탯이 많지 않았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당시에는 70을 넘긴 스탯이 없었다.
그나마 메이저리그 7년 차쯤이나 되었을 때 민첩과 컨택 스탯을 70포인트로 올렸을 뿐.
다른 스탯은 겨우 50후반이나 60초반 정도에 그쳤다.
특히나 힘 스탯은 50중후반으로 지금과는 20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20포인트가 아니라 40포인트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는 스탯을 올리면 올릴수록 1을 상승시킬 때 들어가는 포인트가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3회차에는 알렉스 벡과 브레이크 세이블 조합에 당했지만, 이젠 아니다.
3회차에는 그들보다 경험도 부족하고 능력도 부족해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이젠 아니다.
더욱이 시즌 초 자신은 샌프란시스코의 선발진을 초토화 시키지 않았는가?
비록 자신이 부상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알렉스 벡을 경험하진 못했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의 알렉스 벡 역시 자신이 3회차에 겪었던 그 알렉스보단 아직 영글지 못한 시기이니 무섭지 않았다.
“자기, 시합 다 끝났는데 아직도 뭘 생각하기에 그러고 있어?”
경기가 모두 끝나고 관중석도 많은 사람이 빠져나가 많은 좌석이 비어 있었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좀 생각할 것이 있어서… 우리도 가자!”
자신이 너무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주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60―Day IL(60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대호가 이번 올스타 브레이크에 모습을 보이자 많은 야구팬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포츠 기자들까지 모여 취재를 하였다.
찰칵! 찰칵!
촤좌좌좌!
올스타 경기를 구경하고 나가던 대호와 한나 부부는 몰려드는 기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자회견을 할 수밖에 없었다.
“Mr. 인크레더블! 몸은 다 나은 건가요?”
호명을 받은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을 하였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대호의 메이저리그 복귀다.
그렇기에 6월 초에 있었던 케슬몬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히어로인 대호의 복귀는 단순히 야구팬뿐만 아니라 미국인, 그리고 한국인들의 주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예, 몸은 보시는 바와 같이 다 나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들어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보이는 퍼포먼스를 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기자들 앞에서 선보였다.
찰칵! 찰칵!
“총에 맞고도… 정말로 미스터 정은 닉네임처럼 인크레더블이군요.”
처음 질문을 던졌던 기자는 그렇게 대호의 회복된 몸을 확인하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하하하!
기자의 말이 웃겼는지 회견장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감사합니다.”
기자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호도 빙그레 웃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다.
“울프TV 스포츠의 한나 정입니다. 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그때, 느닷없이 아내인 한나가 기자들 사이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물었다.
웅성웅성!
주변에 있는 기자들도 방금 전 질문을 한 사람이 누군지 모두 알고 있기에 잠시 소란이 일었다.
‘이런…….’
질문을 받은 대호는 순간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 병원에 있을 때 아내가 했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다시는 그렇지 않겠다 약속을 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 앞이라 잠시 머뭇거렸다.
“음, 이거 당황스럽네요.”
하하하하!
언제나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던 대호가 느닷없이 당황스럽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에 기자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한나! 언제 그곳에 간 거야?”
대호는 능청스럽게 기자들 사이에 있는 아내를 보며 입을 뗐다.
“다시는 총을 든 사람 앞으로 뛰어들지 않을게. 약속해! 다만…….”
대호의 말에 조용히 숨죽여 이를 받아 적고 있던 기자들은 말미에 ‘다만’이라며 말끝을 흐리자, 살짝 고개를 돌려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한나를 보았다.
잔뜩 굳어 있는 한나의 모습에 기자들도 긴장을 하며 대호의 말을 기다렸다.
“이번처럼 어설픈 총잡이면 좀 봐줘!”
하하하하!
대호의 대답이 끝나자 주변에 이를 듣고 있던 팬들마저 크게 웃어 버렸다.
또 질문을 했던 한나 또한 대호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그녀도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병원에서 자신과 그런 약속을 했지만,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고 그것을 목격한다면 남편은 이번에도 똑같이 위험 속으로 뛰어들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장난과도 같은 이 어처구니없는 인터뷰는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4회차는 명전이다